어제 뉴스에서는 지금이 겨울이라고 했다. 곧 눈도 올 거고 크리스마스도 오고 또 새해 복 많이 받을 날이 닥치는 겨울. 하지만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고 모두들 장롱 속에서 묵혀두었던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기 시작했지만 겨울이라는 단어는 남자에게 아직 낯설다.
오늘도 어제와 다르지 않다. 월요일과 일요일의 구분이 따로 없이 남자는 아침이 되어서야 잠을 자고 밤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누군가 그에게 직업이 뭐예요? 라고 물어보면 개인 주식 투자자 라고 했다. 할 일 없어보이지도 않고 제법 폼 나니까. 저는 개인 주식 투자자 일을 합니다 라고 말 하면 다들 이야, 경제학과 나오셨나봐요? 요즘 주가가 자꾸 떨어진다던데 라고 대답했고, 하지만 남자는 경제학과는 커녕 변변한 대학교조차도 나오지 못 했다. 그마저도 국문학과를 다니다 적성이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라며 자퇴를 했다. 주가가 떨어지는 게 뭐 어쨌다고? 남자는 코스피와 코스닥도 구분을 할 줄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만남의 자리에서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주식이 떨어질 것 같으냐 올라갈 것 같으냐 고 물으면 남자는 늘 웃어보였다. 글쎄요 라는 덧붙이는 말 만큼이나 웃음짓는 그의 얼굴은 모호했고 또 한 편으로는 단호했다. 더 이상은 묻지 마세요. 고급 정보니까 라는 듯이.
그도 한 때는 인기가 많았다. 조금 마르긴 했으나 외모가 제법 준수했었고, 20대 중반까지는 멋내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가 번화가를 휘적휘적 걷고 있노라면 지나가는 여자들이 한 번쯤 힐끗 쳐다보게 만들 정도는 되었었다. 줄곧 여자가 주변에 넘쳤노라고 말 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크리스마스 같은 날을 홀로 보낸 적은 없었다. 그는 매 해 겨울이 즐거웠고, 가끔씩 지난 여자들과의 데이트를 떠올리며 아, 그 땐 그런 일이 있었지 라고 회상하며 포근하게 웃었다.
20대 중반이 넘어가자 사는 게 귀찮아졌다.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취업에 매달렸고 개중에는 번듯한 직장에 취업한 친구도 있었고 또 고시 공부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남자는 조금씩 부모님께 손 벌리는 일이 창피하게 느껴졌지만 애써 내가 직장만 다니게 되면야 이 정도 쯤 이라고 생각하면서 일부러 더 당당한 척 굴었다. 엄마, 나 2만원만.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한 남자는 언제부턴가 부모님의 집에서도 나왔다. 서울 모처의 어딘가 자그마한 원룸을 얻었고 최소한 월세만큼은 그래도 내가 내야지 않겠나 싶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술 취한 손님과 멱살잡이를 하고 나서는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사는 게 귀찮았다. 내일이라는 단어가 실감나지 않았고, 오늘은 뭐하지 라는 말이 더 현실감 있게 와 닿았다. 옷을 사 입는 것도 귀찮아 인터넷에서 구입한 회색 츄리닝 바지에 싸구려 오리털 파카를 꺼내입고 늘 그 차림새로 집 근처 편의점에 가서 소주를 사오곤 했다. 그리고 가끔은 그도 술에 취해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에게 욕을 했고 멱살도 잡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숙취로 인한 두통과 토악질 뿐이었다.
20대 중반이 넘어 후반, 그리고 이제 30대 초반이 되었다.
친구들은 대개 결혼을 했거나 취업을 했거나 혹은 외국에 가서 연수를 받는다고도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친구들은 연락이 안 된다. 20대 때만 해도 주변에 있었던 여자들은 그가 20대 후반이 되자 연락이 뜸해졌고 서른이 되자마자 마치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연락을 뚝 끊었다. 그래도 그녀들을 못됐다고 욕하지는 않는다. 그는 여자들이 자기에게 연락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이상 티브이에 나오는 어린 애들처럼 잘 생기지 않았고 부지런히 멋을 내지도 않았다. 한 때는 무슨무슨 화장품이 남자 피부에 좋다느니 하는 정보 하나 허투루 흘리지 않고 심각하게 미래를 위해 피부과에도 가볼까 라고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한겨울에도 찬물에 얼굴을 벅벅 씻고 면도는 어쩌다가 한 번씩, 비눗물에 300원짜리 하늘색 면도기로 했다.
그저, 그는 사는 게 귀찮았다.
"그깟 직장, 나는 사실 직장에 다니면서 상사들에게 고개 숙이고 거래처 사람들 비위 맞추고 소소하게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월급 봉투에 한 달간 힘들었던 일 싹 다 잊고 기뻐할 그런 사람은 못 되지. 그냥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게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뭐, 산 사람 목에 거미줄 치란 법 없잖아. 다 각자 사는 방식이 있는 거야.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건 또 어때서? 너는 죽고나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가루 안 될 것 같니?"
며칠 전에 만나 함께 술 자리를 가진 아가씨가, 오빠는 혹시 직장 다닐 마음은 없어요? 개인으로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직장에서가 더 좋을 것 같은데 라고 무심코 한 번 물어봤을 때 남자는 저렇게 말했다. 아가씨는 얼굴 한 쪽을 찡그려 이상한 미소를 지은 채로 아… 네에 라고 대답했고 남자는 그녀의 반응이 답답하다는 듯이 계속 이어 말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니, 시장경제, 코스피, 한미FTA 등등. 티브이가 집에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른 짓을 하고 있어도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노라면 가끔씩 귀에 콕콕 박혀 들어오는 전문 용어들을 슬쩍 훔쳐다가 쓰면 마치 자신이 고급 양복을 입은 듯한 착각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소주 잔을 연거푸 비웠다. 남자도 알고 있다. 자기가 토해내는 말은 말이 아니라 배설물인 것을. 뉴스 속 아나운서가 자연스럽게 남발하던 전문 용어들이 남자의 입 밖으로 나올 땐 그저 가래침을 카악 퉷 하고 뱉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아마 이 앞에 앉아있는 아가씨도 그 것을 알까봐 자꾸만 빙빙 돌려서 말했다. 그 자신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어 썼고 그 것은 남자에게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자존심의 무게는 가벼웠다. 그가 담배를 피우며 연신 카악 퉷 하고 뱉는 가래침 만큼이나.
아가씨는 몇 안 되는, 남자한테 한 번씩 종종 연락을 해오는 고등학교 동창이 소개시켜주었었다. 동창은 남자의 원룸과 그닥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그래서 그 둘은 가끔씩 소주 한 잔이나 하자 라면서 서로를 불러내곤 했다. 마주 앉아 소주 잔을 기울이며 동창은 때로는 너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라면서 남자를 타박하기도 했고 때로는 아, 씨팔. 거리면서 직장, 연애,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다시 주제가 너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로 돌아왔을 때 동창이 남자에게 말했다.
"야, 내가 아는 애 중에 진짜 괜찮은 여자애가 하나 있는데 너 줄까? 만나볼래? 야, 그래도 너가 임마. 어? 사람도 좀 만나고 연애도 좀 해봐야 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거지 새꺄. 아, 씨팔. 그 여자애 진짜 아까운 애다. 근데 걔도 요즘 좋은 사람 어디 없냐고 하도 나한테 볶아대니까. 진짜 한 번 만나볼래? 너가 임마. 그래도 너가 나쁜 놈은 아니잖냐?"
남자는 생각했다. 아, 난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니구나. 나쁜 놈이 아니면 착한 놈이었구나.
"야, 얼굴도 이쁘고. 진짜로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지금 여자친구 없었으면 내가 들이댔을 건데. 널 보니까 임마, 너한테는 이런 여자가 안 어울려. 그래서 더 이런 여자를 만나봐야 해 임마. 아, 씨팔."
동창은 핸드폰을 꺼내 아가씨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꾹 누르고, 곧장 너 내 친구 만나볼래? 라고 물었다. 그리고는 언제? 어디서? 알았어. 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남자는 순간 자신이 착한 어린이가 된 것 같았다. 어른들 말씀에는 대꾸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하는 착한 어린이는 20년이 지나서 매운 닭발 안주에 소주를 마시고 상스러운 욕을 하고 고등학교 시절의 동창에게서 예쁜, 그리고 남 주기 아까운 여자를 소개 받았다. 동창은 마지막 소주 잔을 기울이면서 남자에게 말했다.
"근데, 너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남자와 아가씨는 술 집을 나와서 조금은 취기에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었다.
번화가가 아니라서 휘황찬란한 간판의 네온사인은 없었지만 주황색 가로등 빛이 드문드문,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술을 마신 탓인지 숨이 조금 가빠져와 잠깐 저 벤치에 앉고 싶다라고 생각을 했고,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남자와 아가씨는 굳이 그 벤치에 앉았다. 길에는 가로등의 갯수만큼 사람들도 그 정도만 걸어다녔다. 그들은 모두 발걸음이 부지런했다. 각자 자기는 이만큼의 속도로 삶을 산다고 말하는 듯 했다. 남자는 그 발걸음을 보면서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는 게 빠른 걸까, 아니면 저들이 걷는 속도가 빠른 걸까.
"춥다."
말 하는 아가씨의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
"오빠, 내일은 뭐해요?"
내일은 뭐해요. 남자는 갑자기 술이 번쩍 깨는 기분이 들었다.
"내일은, 내일은… 내일도 일 해야지."
"아 그렇구나."
"응."
아가씨는 호옥 , 하고 한숨을 쉬었고 한숨 속에서 남자는 함께 마신 그녀의 소주 냄새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녀는 동창의 말대로, 말 하자면 남 주기 아까운 여자임이 틀림없다. 미모나 세련된 옷차림 등은 그렇다 쳐도 남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를 만나는 게 안 창피한가? 가끔씩 그는 그 스스로가 창피했다. 컴퓨터가 부팅되기 전 까만 모니터 화면에 비친 자신이 창피했고, 화장실 벽에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이 창피했고, 소주 잔에 비치는 자신이 창피했다. 그래서 여자들이, 친구들도 내게 연락을 안 해 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창피함도 늘 한 순간이었다. 남자는 항상 사는 게 귀찮았고 그깟 사람들이 날 좀 안 찾아오면 어떤가. 어차피 죽을 땐 누구나 혼자인걸 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나면 금방 기분도 괜찮아졌다. 그래,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도 나쁘진 않아.
그래서 남자는 자기가 봐도 창피한 자기와 함께 앉아 있는 이 세련된 아가씨가 사실은 그 동창 녀석의 사주를 받고서 불쌍한 사람 한 번 구제하는 셈 치고 나와준 것은 아닐까 하는 불순한 상상까지도 했다.
"오빠."
"응?"
"오빠는 외로울 때 뭐해요 주로?"
외로울 때 뭐해요. 남자는 두 번째로 술이 깨는 기분이 들었다. 글쎄, 라고 말 끝을 흐린 후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외로울 때 내가 뭘 하더라. 그냥 컴퓨터 하고 티브이 보고. 그냥 매일이 똑같으니 차라리 하루에 하나씩 뭐 특별히 하는 일은 없나요? 라고 묻는 게 더 속 편할 것 같았다. 가만, 그러고보니 요즘 외로운 적이 있었나? 외롭다는 감정이 자신의 생활 속에서 존재했던 적이 벌써 언제인가 싶어 생각해보니 까마득하다. 남자는 외롭지 않았다.
"난 외로운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에이, 사람이 어떻게 안 외로울 수가 있어요. 게다가 오빠는 만나는 분도 없고 혼자 지내시고 일도 혼자 하시잖아요. 그럼 더 많이 외로움 타지 않아요?"
"아니야. 나는 외로운 게 뭔지 기억도 잘 안 나는데… 너무 오래돼서……"
남자는 그 순간 진심으로 외롭지 않았다.
외로운 게 무엇이던가? 그랬던 적이 있기는 했나? 그저 사는 게 귀찮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냥저냥 살았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외로움의 자리는 없었던 것 같았다. 매일 반복된, 퍽퍽한 하루 하루들을 견디어 내고 종내에는 드디어 사는 게 귀찮아도, 그렇다고해서 죽기는 싫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외로웠던 기억이 없다. 아가씨는 정말 외로운 적이 없어요? 라고 재차 물었다.
"외로운 적이 정말 없던 것 같아. 내가 살면서 외로울 일이 뭐가 있겠어. 난 어린 애도 아니고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 할 줄 아는 성인인데. 게다가 나는 애인이 없다고 해도 외롭지 않아. 오히려 구속 받지 않으니까 훨씬 자유롭고 좋지. 어차피 사람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거라는 말도 있잖니.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사치야. 컴퓨터를 켜도 온갖 메신저들이 있고 주머니 속엔 핸드폰이 있고 그러는데 외로울 틈이나 있겠어? 외롭다는 건 다 상대적인 거거든. 외롭다 외롭다 하면 정말 외로워지는 거구. 나는 정말로 외롭지 않아……"
남자는 말을 하면서 세 번째로 술이 깨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아, 라고 말할 때 말끝을 흐렸다. 더 이상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호옥 하니 뽀얀 입김과 소주 냄새에 섞인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그만 가요."
남자도 엉거주춤 일어나 찬 데 앉아 있느라고 시렸던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걸었다.
남자는 발걸음을 일부러 아까보다 조금 빨리 했다. 꽤 마셨는데도 벌써부터 술이 깬 기분이 들어서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집에 가면 컴퓨터로 연예 뉴스도 보고 따뜻한 방바닥에서 누워도 있고,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이불 속에서 잠도 푹 자야지. 가는 길에 만화책이라도 빌려다볼까. 아니다. 만화책 빌리는 돈으로 담배를 한 갑 사고 집에 가서는 영화를 다운 받아 보자. 아가씨도 부지런히 그의 발걸음을 쫓아왔다. 그러다 길가에 다다른 남자는 재빨리 손을 흔들어 지나가는 빈 택시를 잡아 세웠고 또 재빠르게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미처, 아가씨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작별 인사를 고했다.
"잘 가."
"오빠두요."
아가씨는 남자를 뒤로 한 채 택시를 탔고, 택시는 곧 부웅 하는 소리를 내며 목적지로 출발했다.
남자는 오늘도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났다.
오후 세 시인데도 불구하고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흐리다.
슬슬 배도 고프고 라면이 있나 싶어 주방을 기웃기웃 하다가 마지막 라면 한 봉지를 찾아냈다. 아, 라면도 다 떨어졌고 또 라면 사와야겠네. 이번에는 다른 라면을 사와 볼까. 남자는 냄비 하나를 대충 물에 헹구고, 새로 물을 담고,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다. 멍 하니 가스레인지의 타닥타닥 타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주머니 속으로 윙 하는 진동소리가 느껴졌다.
- 오빠, 뭐하세요?
그 아가씨다.
모처럼 온 소중한 문자 메시지에 남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남자는 그 날 집에 돌아와서 소원대로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한 갑 샀고, 컴퓨터로 연예뉴스를 뒤적거리다가 방바닥에 누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오후 느지막지한 시간에 일어났을 때도 늘상 그랬듯이 오늘은 또 뭘 하나 싶어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자신은 일을 하고 있노라고 말하기가 어쩐지, 괜시리 꺼려졌다.
새삼스럽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아닌 것 같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냥…….
남자는 그냥 할 말도 없는데 일한다고 말할까 라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자꾸만 내키지 않았다. 그 순간 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남자는 라면 봉지를 뜯어서 스프를 뿌리고 면을 넣고 다시 3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뿌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남자는 뭐라고 답장을 할까 고민했다. 일하는 거 말고. 뭐가 있을까? 운동을 한다고 할까, 그냥 밥 먹는다고 할까, 뭐가 좋을까아아아아아…….
남자는 한동안 핸드폰을 쥐고 고민하다가 문득 주방의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은 여전히 흐린 하늘이었다. 남자는 뭔가, 평소와 달리 풍경에 이상한 점이 있음을 깨닫고는 답장 대신 그 이상한 점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냄비의 라면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익어가는 라면 냄새가 주방을 흘렀다. 라면의 뿌연 김이 창가에 서려 있었다. 문득 남자는 그제사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겨울이구나……"
남자는 멍 하니 창가에 서린 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핸드폰 버튼을 꾹꾹 눌렀다.
- 난 라면을 끓여.
***
안녕하세요.
사실 이 글은 이전에 써서 올린 글입니다. 다만 피쟐이 완치된 이후에 글들이 사라진 그 기간에만 제 글들이 있어,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리게 되네요.
그간 한국에 있느라고 글을 전혀 쓰지 못 했고 또 피쟐에도 좀처럼 시간을 내어 들어올 수가 없었네요. 하지만 이제는 그래도 시간이 좀 나게 되어(라고는 해도 이제 또 곧 전투를 치뤄야 해서 아주 막막한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흑흑) 글을 올려봅니다.
이 글에 이어서 두 번째로 썼던 글인 <밤이 환한 세상> 까지만 다시 올려보렵니다. 세 번째로 썼던 글은 줄이고 줄여서도 세 편이나 되는 데다 어쩐지 올리려다보니 껄적지근한 기분이 드네요.
다시 만나 뵙게 되어서 참 기쁩니다. 좋은 밤 좋은 새벽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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