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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11/28 14:43:55
Name 글곰
Subject [일반] 출근하는 길에 김성근 감독님을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글곰입니다.

일요일인데도 사무실에 나가야 하는 서러운 팔자를 한탄하며 출근하던 중이었습니다. 점심으로 먹을 맥도널드 햄버거 봉지를 움켜쥐고 덜덜덜 떨면서 보도를 걸어가던 차에 반대편에서 어떤 노인분이 걸어오더라고요. 단정한 검은 양복에 가죽가방을 어깨에 멨는데, 검버섯이 조금씩 드러나는 얼굴은 예순이 족히 넘어 보였지만 곧은 허리에 발걸음도 정정해 보였고 머리카락은 마치 군인마냥 짧게 깎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지 익숙한 인상이었습니다. 누구지? 곰곰이 생각하며 서로 차츰 가까워지며 곧 스쳐 지나가려는 찰나, 누군지 알겠더라고요.

SK 김성근 감독?

놀라서 눈을 큼지막하게 뜨면서 얼굴을 빤히 쳐다보니, 김성근 감독님도 당황했는지 저를 흘끔 쳐다보며 가시더라고요. 생각보다 왜소하지 않은 체구였고 정말 정정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덩치 산만한 젊은이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얼굴을 쳐다보았으니 내심 놀라기는 하셨을 듯. 뒤늦게 사인이라도 받아볼까 했지만 날도 춥고 해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사무실이 한국일보사(일간스포츠) 바로 근처에 있는데 그쪽에 일이 있어 오신 건가 싶었지요.



SK는 한국프로야구에서 거의 압도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강팀이지요. 그 강력함의 요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김성근 감독의 존재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저는 사무직 직원인데, 김성근 감독 같은 상사라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매일 야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항상 7시 출근 23시 퇴근. 업무량은 그야말로 폭증. 그러나 반발하기도 난감한 것이 팀장은 항상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 게다가 자타공인 가장 유능한 팀장으로 꼽히죠. 그러다 보니 우리 팀의 성과는 항상 압도적인 1위. 당연히 각종 성과급과 기타 보너스도 우리 팀이 독점하다시피.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는 타 부서의 반발에 사장은 다른 부서에도 성과급을 나눠주면 안 되겠냐고 은근히 압력을 넣지만 팀장은 일언지하에 거절. ‘성과급 받고 싶으면 우리 부서만큼 성과 내라고 하십시오. 아니면 저는 그냥 관두겠습니다.’라는 말에 사장도 할 말 없음. 그 외에도 외부의 압력이 여러 모로 들어오지만 모두 팀장 선에서 팀원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처리해 버림. 결과적으로 우리 팀은 항상 팀장의 쪼임을 당해 몸이 힘들어지고 업무 내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부가적으로 다른 팀들의 질시를 한 몸에 받게 됨. 그러나 업무 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고 항상 최고의 실적을 거두게 되며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 승진이 빨라지고 지갑도 두둑해짐.  

적고 보니 역시 ‘극단적으로 평가가 나뉠’ 팀장님 타입이군요. 실재로 김성근 감독 역시 극단적으로 평가가 나뉘는 편이지요. 특히 자신이 이끄는 팀의 선수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지켜 주는 모습이 참 좋지만, 그 반대로 다른 팀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 반감을 사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가 길어지면 또 논란이 생길 테니 그만하는 게 좋겠습니다. 다만 저는 기아와 롯데의 팬이고 이 두 팀은 공히 비룡의 맛있는 끼니가 되어버리곤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김성근 감독님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좋은 리더란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때가 종종 있거든요. 특히 올해 인터뷰에서 페넌트레이스 후반에 자신이 너무 초조해했다면서 실수를 인정했을 때가 그랬습니다. 실수를 인정할 줄 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러나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발전하게 되지요.

하지만 저는 저런 상사 밑에서 못 버틸 것 같아요. 하핫.

오늘 길을 가다 우연히 김성근 감독님을 보고서는 반가운 마음에 몇 줄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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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28 14:58
수정 아이콘
저같으면 쫓아가서 사인 받았을 겁니다 크

김성근 감독님 예전 인터뷰때 그러더군요
"나 선수할때 나같은 감독 안만나서 다행이다"
구국강철대오
10/11/28 15:02
수정 아이콘
저도 그래서 김성근 감독을 미워합니다. 대신 롯데 감독으로 오신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만요.
10/11/28 15:06
수정 아이콘
롯데팬이라 굉장히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게 된 분이셨는데
승승장구를 본 후부터 인간적으로는 참 매력적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뻥치시네
10/11/28 15:06
수정 아이콘
저랑 똑같이 생각하신분 만나니까 반갑네요^^

저도 제 입장에서 생각 해봤습니다.

김성근 교수님.... 밑에 저라면...

매일같이 아침 일찍 출근 날밤까는건 기본(교수님이 항상 계시기에)
조금이라도 나태함을 보이면 날아오는 채찍...
그러나 존경할만한 안목과 식견, 그리로 쏟아지는 실적(논문)
여기서 해내기만 하면 탄탄대로일것 같은 내 앞길과 쌓여가는 내 커리어...

그러나 저는 못합니다. 못버팁니다. 행복하지 않을것 같아요
SK 선수들은요 크크크
F.Lampard
10/11/28 15:08
수정 아이콘
저같으면 쫓아가서 사인 받았을 겁니다 크 (2)

업무시간에 관해 코맨트를 하자면 지인이 문학경기장에서 알바를했던관계로 듣자면 훈련시간(근무시간)은 9회에 결정적 에러를 해서 펑고를 한다던가 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닌한 여타팀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할당된 훈련시간은 정말 빡빡하게 돌아간다고 하죠. 저런식으로 연장근무하면 소는누가키워...가아니라 가끔 훈련나올때 여친을 대동하고 오시는 선수라던가 시즌중 연애를 하며 결혼하는 선수들, 로데오에 가면 종종 볼수있는 sk선수들의 모습은 도플갱어겠죠.
결과적으로 SK모습은 연장근무보다는 정시출근 정시퇴근이지만 업무시간만큼은 정말 빡센 거죠. 야생마와의 일화나 안샘등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면 일견 엄격해보이지만 한편으론 가장 자유로운팀이 SK고, 선수의 사생활을 가장 잘 보호해주는 감독님이라는걸 알수있구요.

게다가 연봉, 성과급등은 계속오르고 학연지연 신경쓸필요없이 일만 열심히하면 알아서 대우를 해주니. 사실 적이아닌한 같은상사로서는 최고의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가득염선수였나요? 퇴물인 자기의 미세한 투구폼 수정을위해 모든 코칭스텝+감독님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한일화도 있고말이죠.
내일은
10/11/28 15:15
수정 아이콘
비유가 좀...
업무시간은 다른 회사보다 잔업과 휴일근무가 좀 더 한다고 봐야겠고
무엇보다 다른 것은 다른 회사에서 짤리거나 입사할 때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직원이 좋은 팀장을 만나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업계 전체에서도 대우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봐야 할 껍니다. 그러니 팀장이 잔업 좀 시킨다고 불만을 안가지는거죠.
Han승연
10/11/28 15:20
수정 아이콘
엘지프런트..
페타지니
10/11/28 15:20
수정 아이콘
밖에서 지켜보는 팬들의 입장에선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의 감독이지만, 선수들에겐 두말할 여지 없이 최고의 감독일겁니다.
땅콩박사
10/11/28 15:36
수정 아이콘
그냥 야신입니다.
코큰아이
10/11/28 15:52
수정 아이콘
"매일 야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항상 7시 출근 23시 퇴근. 업무량은 그야말로 폭증."
직장생활 하면서 이런거 시키는 상사들 많이 봐왔죠. 이건 어느 상사 누구라도 다 할 수 있습니다. 나도 차장 부장이 된다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팀장은 항상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 게다가 자타공인 가장 유능한 팀장으로 꼽히죠. 그러다 보니 우리 팀의 성과는 항상 압도적인 1위. 당연히 각종 성과급과 기타 보너스도 우리 팀이 독점하다시피.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는 타 부서의 반발에 사장은 다른 부서에도 성과급을 나눠주면 안 되겠냐고 은근히 압력을 넣지만 팀장은 일언지하에 거절. ‘성과급 받고 싶으면 우리 부서만큼 성과 내라고 하십시오. 아니면 저는 그냥 관두겠습니다.’라는 말에 사장도 할 말 없음. 그 외에도 외부의 압력이 여러 모로 들어오지만 모두 팀장 선에서 팀원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처리해 버림."


비극이지만 위의 사항을 실행하는 상사는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본 적도 들어본 없었습니다.
늦게 퇴근하는 상사는 있었어도 일 안하고 뭉개지고(여직원 퇴근하면 야동보고 시간 때우고) 타부서와 업무 갈등시는 한 발짝 뒤로 빠지는 상사, 성과가 꽤 괜찮게 나오면 지탓인줄 아는 상사, 지가 지시한 내용이 잘못되면 아래사람 닥달하는 상사놈,
사장이 아니라 담당임원한테 지 목소리도 못내는 팀장......... 여러분은 많이 겪어보시지 않으셨나요?

저도 김성근 감독님 같은 상사를 만나면 힘들고 불평하겠지만
감독님 같은 상사 한번 만나보고 싶은것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앞으로 감독님같은 상사가 되고 싶지도 않고^^ 될 수있는 능력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10/11/28 16:07
수정 아이콘
예시에서 하나 빠진 게 있네요. 직원들은 그 성과와 성과급을 절실히 바란다라는 것.
직원들이 원하지 않는데 강요한다면 사실 저런 상사는 의미가 없지요.
다만 SK 선수들은 당연히 그 무엇보다 팀의 우승을 바랄테이고 그 바람을 가장 잘 이루어주는 분이 김성근 감독인 거 같습니다.

한화에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인식 전감독님하고도 친하신데...ㅠ.ㅠ
어진나라
10/11/28 16:36
수정 아이콘
앗... 전 오늘 산 타다가 권영길 의원 만났는데;;
10/11/28 17:19
수정 아이콘
일반 직장이면 모를까, 프로스포츠이기에 선수들이 따르고 의지할수밖에 없는거겠죠. 일반 직장이야 어떻게든 붙어있기만 하면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연봉이 무자비하게 깎여버릴 뿐더러 고작 8개 구단에 한정된 자리에 붙어있기도 힘드니까요. 대게 선수생명 짧은걸 감안하면 가뜩이나 돈벌 기회 자체도 제한적인데..
yonghwans
10/11/28 18:39
수정 아이콘
글쓰신 분 비유가 아주 적절하시네요 크크크
아무튼 앞뒤 다 짜르고 SK V4 gog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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