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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10/09 21:19:02
Name 유유히
Subject [일반] 아는척 메뉴얼 - 인지부조화 이론

근래에 웹상에서 인지부조화라는 단어가 자주 보입니다. 보통 아이돌 가수나 특정 정치세력에 부정적인 기사가 올라왔을 때, 이를 비호하는 세력을 비난하는 데 사용되곤 하는데요. 글쎄요, 그게 정확한 비난인지는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죠. 일단 '인지부조화'가 대체 무엇인지 아는척이라도 해봐야, 그들의 비난에 동감하든지 아니면 비판하든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 전공은 경영학입니다. 경영학에서 소비자행동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는데. 바로 소비자행동을 분석하는데 있어 매우 유용한 도구가 인지부조화 이론입니다.


인지부조화, Cognitive Dissornance, 認知不調和
사실 한자로 된 '인지부조화'를 들여다봐야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영어 Cognitive Dissornance를 그대로 옮겨놓은 단어이기 때문이죠.

Cognitive는 '인지하다'인데, 영어의 특성상 이 '인지'라는 단어가 좀 특별하게 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Cognitive는 '특정 외부자극이 뇌에 도달하여 인식되기까지의 과정'이라 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 말로 비슷비슷한 것들이 영어로는 다 나뉘어 있다 보니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Recognition, Perception, Awareness 같은 것들입니다. 간단하게라도 차이를 설명하고 싶지만 제가 더 헷갈릴까 봐 넘어가겠습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에 반해 Dissornance는 좀 쉽습니다. 말 그대로 뭔가 조화롭지 않은 상태,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상태입니다. 즉, 인지부조화란 '특정 외부자극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상태' 인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과 불협화음을 낼까요? 바로 우리의 신념, Belief입니다.

심리학, 특히 소비자심리학에서 Belief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정된 신념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신념의 예를 들자면, "전두환은 나쁜 놈이다" "스타2 재밌다" "구혜선은 예쁘다" "Gussi는 고급 브랜드" 같은 것들이 있겠군요.

그런데 신념은 관여도Involvement가 높을수록 굳건해집니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관여도란, 쉽게 말해 어떤 대상의 구매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입니다. 시장에서는 대부분 가격에 의해 결정되지만, 몇몇 특수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100만원짜리 핸드폰을 살 때, 누구나 깊게 관심을 가지고 이리저리 살펴보겠지만, 돈 많은 사람은 그냥 아무거나 사지 뭐 하고 살 것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어차피 난 저런 거 못 산다고 관심도 안 가질 것입니다. 스타크래프트로 설명하면, 저는 홍진호에 관여도가 높지만, 최가람에 관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셈입니다. (김국진저그 최가람씨.. 어디서 뭘 하실지..)

즉 제가 홍진호에 관여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홍진호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홍진호는 2등이야. 홍진호는 2와 천부적인 연관성이 있어. 콩은 까야 제맛이야(???)" 반면 홍진호에 별 관심이 없는 제 동생 같은 경우는 "홍진호? 걔 잘하잖아. 우승 많이 했지?" 라고 하겠죠. 관심이 곧 신념이 되는 시점, 바로 여기가 비극이 태어나는 시발점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스타리그 마지막 회차에 홍진호가 진출하고, 결승전에서 우승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가정해 봅시다.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승이라는 사건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인지Cognitive'이고, 말도 안돼, 이건 말도 안돼 하고 혼란을 겪는 것이 '부조화Dissonance'입니다. 인지부조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조화란 현상이 개인에게 상당한 충격인지라, 그 혼란스런 상황을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빨리 둘 사이의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신념을 바꾸던지, 사실을 바꿔야 합니다. 흔히 사실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분석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신념이란 정말이지 죽었다 깨나도 안 바뀌는 것입니다. 물론 별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는 쉽게 바뀌기도 하지만, 관여도가 깊을 경우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실을 바꿉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블리자드의 공인을 받지 못한 이벤트리그야. 이벤트리그라면 홍진호가 우승하는 게 당연하지. 하하. 역시 이벤트리그의 황제 황신이시다!"

그 이전에 블리자드 공인 없이 스타리그를 우승한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스타리그를 이벤트리그로 격하시킴으로서 홍진호의 우승이라는 충격적 사실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홍진호를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심하게 사실을 바꿀 수 있는 비극. 이것이 인지부조화 이론의 실례입니다.

마케팅에서 쓰이는 더 현실적인 사례를 찾아보자면, 제가 아디다스 브랜드를 좋아해서 아디다스 운동화를 샀는데, 사고 보니 얼룩 비슷한 것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칩시다. 인지부조화로 인해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겠지만, 역시 아디다스는 현대미술의 거장 잭슨 폴록 에디션을 내놓았다고 만족스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Brand Royalty, 상품 구매 후 충성도가 높아지는 현상의 대부분이 이런 경우입니다.

사실 인지부조화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성질입니다. 애초에 등장할 당시에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행동특성 중 우리의 상식과 맞지 않는 비상식적인 행동특성(Anormaly)을 분석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맨 처음에 언급한 '인지부조화'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은 리플은 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좌빨들의 인지부조화를 공격하는 사람이라면, 수꼴의 인지부조화를 이유로 공격받을 수도 있겠죠.

인지부조화는 저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Brand Royalty를 구축할 수 있는 이유이고, 사이비종교 및 각종 물품사기, 혹은 혼인빙자간음 등. 인간이 수많은 범죄에 당하는 이유 중 가장 강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역시 '열린 사고' 밖에는 없겠죠. 그래서인지 케인즈가 우리에게 남긴 말은, 역시 위인은 범인凡人과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줍니다.



사실이 바뀌면 난 생각을 바꿉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하십니까?
- 존 메이나드 케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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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09 21:30
수정 아이콘
제가 '난 솔로가 아니야. 다만 내 여자친구가 누구인지, 어딨는지 모를 뿐이야.'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걸까요? ..쿨럭.
10/10/09 21:22
수정 아이콘
재인식, 성찰.. 결국 메타 인지의 문제죠.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얼마나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가보다
정보는 '어떻게' 처리하나냐가 중요해지겠죠.
waterberry
10/10/09 21:41
수정 아이콘
본문의 중심내용과는 별 관련 없지만...최가람씨는 승부조작 법정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거물 두명만 기억하던 저도 잠시 잊고 있다가 법정에 참관가서야 다시 기억해냈습니다;;
비상하는로그
10/10/09 22:14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사실 이런 글 때문에 pgr에 옵니다..(겜게도 가면서!!!자게의 다른글도 읽으며 좋아하면서!!!)..

요즘 들어 인지부조화의 실례를 너무 많이 보고 느끼고 있어서..마지막 명언이 크게 다가옵니다~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웃는 옵세
10/10/09 22:3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질문이 한 가지 있는데요.
인지부조화 과정에서, 사실과 믿음이 일치하지 않을 때, 사실을 바꾼다기 보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을 바꾸어, 사실과 믿음을 일치시킨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요?
몽키.D.루피
10/10/09 22:43
수정 아이콘
결론은 어떡해서든 콩은 까이는 군요ㅠ
王天君
10/10/09 22:48
수정 아이콘
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지부조화가 정확히는 뭔지 모르고 있었는데 이 글 덕분에 그나마 아는척을 더 디테일하게 할 수 있겠...
개인의 인식과 현실이 조화가 안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로군요.
아리아
10/10/09 22:45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추천!!
10/10/09 22:45
수정 아이콘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읽다 보니 사람은 자신이 믿는 것, 바탕으로 하는 것을 지키고 올바르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군요...
과연 저는 사실이 바뀐 걸 인정하는 쪽일지, 인지부조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 버리는 쪽일지... 후후
유유히
10/10/09 23:02
수정 아이콘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인지부조화 이론이 1957년에 처음 나왔는데 그게 어느 사이비종교 사건을 분석한 것입니다. 사이비 교주가 세상이 멸망한다고 신도들에게 엄청난 헌금을 받았는데 당일이 돼도 결국 세상은 멀쩡했습니다. 당연히 엄청나게 낙담하고 있을 신도들을 취재하러 간 기자들은 상당히 당황했는데, 신도들이 웃고 떠들며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깨서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셨다' 라면서..

그 이전의 예를 살펴보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은 미군 포로를 잡으면 심한 고문을 하는 대신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말을 하게 한 뒤 사탕이나 담배 몇 개비를 주었습니다. 결과는 상당히 많은 숫자가 실제 공산주의자로 전향한 것입니다. 사탕, 담배 같은 하찮은 것에 자신의 사상을 팔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산주의자로 전향하기로 한 것이 자신의 결정이었다고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인지부조화란 말이 나오지 않았었지만, 중공군 장교들이야말로 인간 심리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_SilnetKilleR
10/10/09 23:16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유유히님의 길은 언제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0/10/10 00:40
수정 아이콘
아직도 황우석 박사를 믿고, 아직도 타블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죠...
인지부조화를 보이는 사람들의 가까운 예라고 생각합니다.
9th_Avenue
10/10/10 01:27
수정 아이콘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요즘 세태를 정확히 꼭집어주시는 글이네요.
4프로브더블넥
10/10/10 08:04
수정 아이콘
아하!그러면 자기합리화도 인지부조화의 하나인건가요? 장난으로라도 합리화를 잘하는 저는 빨리 습관을바꾸려고 노력해야겠군요.
스폰지밥
10/10/10 08:36
수정 아이콘
삐뚤어진 고정관념도 인지부조화랑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10/10/10 10:3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케인즈의 저 말은 허세라는 것에 100원 걸겠습니다 ^^;;;
사박사
10/10/10 11:13
수정 아이콘
유유히님이 지적하신 대로 본래의 뜻과는 많이 변형된 형태로 쓰이더군요.
사실 "인지부조화"가 Cognitive dissonance의 (제 생각으로는) 꽤 좋은 번역임에도 불구하고도 말이죠.
["인"이 "지"와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왜곡된다] 라는 의미가 함축된 경우에 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과 "지"에 괴리가 있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어 지지요.
단어 자체에 [ ] 안의 의미가 들어있지는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유유히님의 글을 보니 가려운 곳을 대신 긁어 주신 느낌이었습니다.
비슷한 예로써 Moral hazard도 있지요.
"도덕적 해이"로 번역된 후 그저 부도덕한 행위 또는 도덕 불감증 정도를 표현하는 데 쓰이더군요.
마지막으로 오타 하나만 지적하자면, 마지막 부분의 Brand Royalty는 Brand Loyalty로.
사박사
10/10/10 11:22
수정 아이콘
유유히 님// 인지부조화의 매우 적절한 예들이군요. 위에서도 비슷한 예가 나왔듯이, 사이비 종교에 빠진 후 교주가 사기꾼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교주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 지는 경우가 가장 적합한 예 같습니다.
10/10/10 11:49
수정 아이콘
임요환 선수의 GSL참가를 이벤트 대회 참가로 서술한 기사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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