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대국의 심기는 절대로 거스르면 안 된다는 점. 명분이고 나발이고 힘과 이익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 중 일부는 도덕이니 명분이니 이런 말을 하는데 그것도 사실 굉장히 유교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국제정치는 가장 냉정하고 비정한 정글이고 이 살얼음판에서 생존하려면 힘을 기르고 눈치를 정말 잘 봐야합니다.

우리가 지소미아 카드를 쓴 셈법은 이해합니다. 형식상 한일간의 협정이지만, 사실상 미국이 걸려있는 지소미아를 이용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일본에 압력을 가하도록 하고 싶었겠죠. 일견 타당한 논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미국은 자국의 군사전략에 장애가 되는 행동을 하는 동맹국(이라고 쓰고 제후국이라고 읽음)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로 주일미군 문제 및 대외정책 문제로 마찰이 있었던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단칼에 날라간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눈치를 엄청봤어요. 열강 각국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동네깡패 정도의 힘을 얻었지만 조선에 대해 이권을 획득할 때도, 중국을 상대로 협상할 때도 항상 영국은 어떻게 나올까, 러시아는 어떻게 나올까 계속 계산했습니다.

이번 건은 우리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미국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일깨워준 사례로 차후 행동에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미국이라는 심판이 일본에도 어느 정도 압력을 행사한 모양인지 한국과 일본 양국이 어느 정도 체면을 차리는 상황에서 다시 협상해보라라고 시간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인가 싶기도 합니다.

추신. 물론 이번건을 계기로 우리가 만약 원만한 결과를 얻고 일본의 보복조치를 완전히 철회시킬 수 있다면 엄청난 gamble을 통해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고요. 다만 도박에 의존하는 전술은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