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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2/22 15:28:08
Name 누구겠소
Subject [일반] 성급한 일반화


일상의 순간에서 낭만을 찾으며 늘 새롭고 신나고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해서 스스로 만족할 뿐만 아니라 다른이에게 뽐냄으로서 마음의 공허함과 우울함을 덜어내는 것이었다. 그건 일종의 귀여운 허영이고 사치였다.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어도 불평하지 않고 늘 온존하는 평화를 즐기며 소박함을 자랑으로 여기는 남자도 있었다. 그는 온전히 스스로의 만족을 최선으로 여겼으며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것을 은밀한 성취로 여겼다. 말하자면 작은 오만이었고 매일의 훈련이었다.


둘은 비슷한 점이 거의 없었는데도 어쩌다보니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작은 공통점 때문에 그랬는데 둘은 첫째 가난했고 둘째 공허하고 허무했기 때문이고, 그건 누구나 그렇지만 그걸 남들보다 더 민감하게 자주 느끼며 스스로 적절하게 이겨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연애의 중심에는 허무가 있었고 그걸 둘러싼, 아름답게 포장된 사랑이란게 있었다. 정확히는 여자쪽에서 둘의 연애를 사랑으로 포장했고 그게 실제로 있다고 믿었다. 남자는 말은 안했지만 사랑같은건 믿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로맨틱한 것은 둘다 좋아했으므로, 그들은 그럭저럭 잘해나갔고 한동안 둘에게는 서로가 세상에서 유일한 사랑처럼 여겨졌다.


싫증내고 힘겨워하고 지루해하고 피곤해하고 불만족스러워하고 버거워하고 서로의 먹는 모습이 꼴보기 싫어지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들 안에 있는 허무가 점점 커져서 어떤 사치와 허영으로도, 어떤 절제와 오만으로도 구멍을 막아낼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여자는 결국 이세상에 완전한 내편이자 자기마음과 같은 사람은 없으며 인간존재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걸 인정해야 됐고, 남자는 돈 안들이는 사랑이란 불가능하며 본인이 결국 성욕과 사랑을 구별하는걸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는걸 마음에 새겨야 했다.


이제 둘은 서로를 떠올리면 역겨워하다가도 그리워하고, 미안해하다가도 섭섭해한다. 그리고 이내 잊어버리고 살다가, 잠 안오는 밤이면 또 이따금 떠올리는 것이다. 적어도 서로가 진짜로 닿아있었다고 느꼈던 그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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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터필러
18/02/22 16:07
수정 아이콘
창문 밖으로 소나기 소리,
사이렌 소리 섞여 들릴 때
그녀는 어린 어깨를 뉘고 숨죽여 울고 있었고
길들여져 버린 안식의 깨어짐,
서로 알고 있는 이후 순서를
권태가 우릴 초라하게 하기 전에
서로를 보낼 뿐이지




https://www.youtube.com/watch?v=E_7Gr3MJWlw
누구겠소
18/02/22 18:12
수정 아이콘
노래가 좋네요
프뤼륑뤼륑
18/02/22 17:34
수정 아이콘
자신 외의 모든 것을 온존히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인간은 외계를 관념화하는 습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성된 관념은 인간의 모든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유한하고 불안정한 것 같아요.

불안정성은 허무이면서, 자극이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허무해지고, 어떤 날은 집 밖만 나서도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설레이기도 하죠.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누구겠소
18/02/22 18:12
수정 아이콘
좋은 감상 고맙습니다.
마스터충달
18/02/22 17:4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와 걸작이네요;; 글을 완성하는 화룡정점은 제목이군요. 읽다가 '사람은 모름지기 케바케인데... 이건 인물들이 심하게 스테레오 타입인데?' 하고 생각했는데 제목이? 덜덜덜;;
누구겠소
18/02/22 18:14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이란게 지나고보면 뻔해도 그때만큼은 유일한 거겠죠
영수오빠야
18/02/22 19:51
수정 아이콘
저는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해하고 싶네요. 해석 달아주실 수 있을까요??
마스터충달
18/02/22 20:01
수정 아이콘
여기 적힌 한 커플의 이야기를 보며 '그래 사랑은 이런 거야. 인생은 저런 거야.' 한다거나 더 나아가 '여자들은 저렇지.', '남자들은 저렇지.' 한다면 그건 성급한 일반화라는 거죠. 사랑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한 발 더 나아가 글 속의 인물들처럼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한계짓는 것도 자신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고요.
영수오빠야
18/02/22 20:20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글을 그저 읽는게 아니라 생각하면서 읽어야 뭔가가 나올텐데... 감사합니다.
18/02/22 21:31
수정 아이콘
저 같은 경우에는 뭔가 저런 여자와 남자가 있구나라고 생각해서, 제목이 왜 그런 건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덕분에 이해했네요. 감사합니다.
칼라미티
18/02/23 16:54
수정 아이콘
우왕...이 글로 처음 뵙고 너무너무 좋아서 지난 글들도 쭉 읽어 보았는데 하나같이 느낌이 끝내주네요 ㅠㅠ 정말 잘 읽었습니다.
누구겠소
18/02/23 17:4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글쓰기에 큰 힘이 될거 같습니다.
18/02/24 22:15
수정 아이콘
단편 소설들로 출품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누구겠소
18/02/24 22:43
수정 아이콘
단편 소설로 출품하려면 분량이 이것보다는 훨씬 길어야 합니다.
보통 200자 원고지 70∼80매 내외인데요, 잘 쓰기가 힘들더라구요.
언젠가는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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