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전야에, 글 하나 올립니다. 페북에 적는 글인데 전부터 이 곳에도 올리고 싶었지만 글쓰기 버튼이 너무 무거워서 못 적고 있었습니다. 성탄을 핑계로, 어지러운 글이지만 마지막 편 하나만 피지알러들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읽어주실 분들께 미리 고맙다고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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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누구의 얘기를 쓸지 망설이느라 한참을 보냈다.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비난한다는 작은 증거와 큰 의심으로 내내 괴로워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렇게 유쾌할 수 없었던 아이에 대해 적을까. 공부에 열중하겠노라 다짐하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좌절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하겠노라 작정하고 얼마 못가 게을러진 자신을 미워하고 그러다가 반 년을 못 버틴 아이에 대해 적을까. 지금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오늘이 성탄 전야고 그래서 성탄의 축복을 꼭 받았으면 싶은 아이를 생각하고 글을 시작한다.
청우는 잘 웃었고, 말수가 적었다. 얼마나 말수가 적었냐면, 도대체 상담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공부는 할 만한지, 건강은 어떤지 등 내 모든 물음에 한 번 웃고는 말이 없었다. 뭐 그런 걸 물어보느냐는 뜻 말고는 어떤 속내도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면 그 웃음은 어땠는가. 한 번 ‘싱긋’ 웃고, 가지런한 이를 보여주고는 고개를 숙였다. 빙긋도 아니고, 빙그레도 아니고, 싱긋 웃었다. 적어도 내게는 ‘싱긋 웃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보여주고 싶은 표정이었다.
내일이 성탄절이고 혹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을 기억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죄를 짓고 떨어져, 구둣방 주인 세묜의 집에서 살아가는 천사 미하일의 세 번의 웃음. 그 웃음을 청우에게서 보았다. 청우는 미하일도 아니고, 아마 천사도 아닐 것이며, 무엇인가를 깨달을 때만 웃은 것은 더욱 아니므로 이 생각은 헛된 것일 테지만. 내게는 영락없이 그 웃음이었다.
청우는 열심히 공부했다. 첫 모의고사부터 지난 수능에 비해 꽤 높은 향상 폭을 보여준 성적은, 한 해 내내 약간의 등락을 거듭했지만 반에서 상위, 학원 전체에서도 중간 이상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청우가 바라는 학교의 바라는 과는 가뿐하게 붙을 수 있었다. 청우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려 했는데, 저렇게 말수가 적은 애가 자신을 남에게 표현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담임으로서 반 전체 아이들의 플래너를 매일 보고 간단히 코멘트를 적어주었다. 공부법이나 현재 상태에 대한 이야기나, 고민을 적어놓은 곳 밑에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긴 글을 써주기도 했다. 그리고 청우의 마음을 바로 여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서너 단어 이상의 문장을 입 밖에 꺼내지 않던 청우는, 플래너에도 길게 적지는 않았지만 의례적인 문장도 적지 않았다. 맘에 찰 만큼 공부하지 못한 자신의 하루에 대한 실망, 자신에 대한 실망과 자학, 비관적인 미래 등을 열 단어도 안 되는 문장 안에 잘 표현하곤 했다. 얼마나 잘 표현했냐면 읽는 내 마음이 아파서 쉽게 펼쳐들지 못할 지경이었으니까. 서글픈 내용이었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보면 잘 정제된 문장이었다. 간결하고, 적확한 단어를 사용했으며, 참신했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우의 이름이 박힌 책을 읽게 되지 않을까 설렐 만큼.
그런 면을 알고 나서도 나는 청우에게서 여전히 웃음 말고는 별다른 말을 듣지 못했다. 공부는 늘 성실했고 열심이었으므로 별달리 걱정할 일 없는 아이였다. 아주 가끔 보건소에 다녀오겠다는 것 말고는 시간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여름이 끝나갈 때쯤 종례 시간에 청우가 안 보여 물어보니, 배가 너무 아파 조퇴를 해야 하는데 담임인 내가 수업중이라 다른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웃으면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성실한 아이가 조퇴를 결심할 만큼 아픈데도 웃으며 인사했다니 청우답다고만 생각했는데, 맹장 수술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일 주일 가량 입원해서 학원에 오지 못했다. 회복 후에 처음 청우를 보고 ‘도대체 그렇게 아팠는데 왜 빨리 얘기를 안했냐’고 물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언제나와 같이 싱긋 웃으며 인사했으므로.
이 긴 이야기의 끝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이것이 내가 이 날에, 청우에 대해 적으려는 까닭이다. 수능이 가까워올수록 청우는 다른 아이에 비해 더 힘들어했는데, 나는 그것이 아마 긴장감 때문이리라 추측했고 가능한 대로 달래주려 했다. 그러나 청우와 한 해 동안 상담해온 나의 관성은 무뎌져 있었다. 얘기를 길게 끌고 갈 수 없는 채로 한 해 내내 지내온 관성이, 청우를 더 길게 달래주지 못하게 했다. 더 대화하고, 청우의 속내를 말이 아니면 글로라도 들었어야 했다. 끝났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도 차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수능이 일 주일 연기되었고, 나중에 다른 아이들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청우는 유난히 맘을 잡지 못하고 시간을 헛되게 보냈다. 학원에는 나왔지만, 자습으로 채워진 마무리 기간을 알차게 보내기는커녕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몇 번이고 전화와 문자로 청우와 얘기하려 했지만, 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청우의 성적을 모른다. 청우의 이름을 떠올리면 먹먹하고, 안타깝고, 미안하다. 그 마지막 일 주일에 차라리 수업이라도 해주었으면. 과제라도 내줘서 더 집중하게 했더라면.
미하일은 세 가지를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사랑이 있고,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마지막으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 믿고 싶다. 청우와 청우의 주변 모두의 마음에 사랑이 있고, 내게는 청우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힘 따위는 없고 그저 내가 해주고 싶고 해줘야 할 것을 해줄 뿐이며, 마지막으로 청우와 우리 모두가 사랑을 가지고 이 험하고 각박한 때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청우와 우리 모두에게, 부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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