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라는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80년 5월의 광주가 재조명 되고 있는 이때에
어릴적 에피소드가 생각나 적어 봅니다.
1980년대 초중반 소위 '광주비디오' 라는게 전국적으로 돌았다고 합니다.
미국 교민 사회에서 제작되고 복제되어 판매되었던 것인데 당시 전대갈 정부에선
북한에서 제작해 간첩들이 배포하는 불온선전물로 낙인을 찍고 소지하거나 상영을 하면
남한산성(안기부)로 직행하는 그런 물건이었죠.
당시 저희 동네에는 5여년을 리장으로 연임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워낙 일처리가 깔끔하고 인품 또한 빈틈이 없으셔서 동네 전체가 인정 하던 그런 분 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리장 자리에서 내려오시게 됩니다.
자진해서 그만 두시겠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은 리장 일이 고되서 그랬나 보다하고 넘어갔고
새로운 분은 리장으로 선출하게 됩니다.
뭐 다들 리장 자리는 귀찮은 일이 많다고 생각해서 꺼려했고 적극적으로 '내가 하겠소'
하는 분이 계셔서 '그래 니가 해라' 하고 투표없이 선출되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대략 10여년 후에 방학때 고향에 들렀다가 동네 어르신 한분이 돌아가시게되어
상갓집에서 도우미를 하던 중에 10여년전 리장 자리에서 자진해서 물러나신 그분과
또래의 동네 분들의 술자리 옆에서 밤참을 먹고 있던 중 리장 자리에서 자진하차 했던 사연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때는 1985년, 전대갈 독재타도 운동이 한창이면서 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봄날 이었습니다.
한밤 중에 그 리장님 집에 검은 잠바에 양복바지를 입고 워커를 신은 사내들이 처들어 옵니다.
막 잠이 들려는 찰라의 리장님 가족들은 혼비백산 하여 검은 잠바의 사내들은 맞이했고,
그들은 안기부 신분증을 보여주고 '안기부에서 나왔습니다' 라는 한마디와 함께 온 집안을 이잡듯이 뒤졌습니다.
리장님 가족들은 집안 마당 평상에 앉아 집안 집기며 옷가지들이 해쳐지는 광경을
대장인듯 한 안기부 직원의 눈치를 보면서 지켜볼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안 살림이 다 흐트러지고 더 이상 해쳐질게 없어 보일때 쯤 각 방에 들어갔던 사내들이 하나 둘 씩 나오면서
그 대장 같은 사내에게 무언의 눈길을 보내자 그 대장 같은 사내는 리장님 앞에서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같이 서로 가셔야 겠습니다.' 라고 했답니다.
'무슨일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라고 질문하는 리장님에게 그 대장은 '가보시면 압니다'
라고 했고 잠시 고민을 하던 리장님은 가족들에게 잠깐 다녀오마 하고 안기부 직원들과 집을 나서셨다고 합니다.
읍내 경찰서에 도착해서 경찰들의 인도로 취조실 까지 안기부 직원들과 같이 가셨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안기부의 무시무시한 행태는 찾아 볼수는 없었고 굉장히 정중하게 대우를 해줬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안기부 대장의 첫 질문은 이랬다고 합니다.
"광주 비디오 라고 아시나요?"
리장님은 자다가 봉창 두들겨 맞는 표정으로 '그게 뭔가요' 하셨답니다.
그러자 그 대장은 살짝 웃으면서 광주 사태(당시엔 그렇게 불렀습니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당시 '광주 비디오'로 불리며 북한에서 제작한 불온 비디오가 간첩들에 의해 돌고 있고
리장님이 그 비디오를 소지하고 동네 사람들 몇몇에게 보여줬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답니다.
대장의 말에 리장님은 극구 부인을 했지만 대장은 조사를 더 해봐야 하니 며칠 기다려 보자고 했답니다.
그리고 리장님은 경찰서의 구치소에 약 일주일여를 감금 되셨습니다.
리장님이 구치소에서 나오시게 되고 집으로 돌아오신지 며칠 후 열린 동네 반상회에서
리장님은 리장자리에서 자진사퇴 할것을 밝히셨습니다.
자진사퇴의 변은 '힘들기도 하고 오래 했으니 다른 분이 하셨으면 좋겠다' 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리장 자리는 자진 출마 하신 분에게 넘어갔습니다.
2년이 지나 학업에 정신 없던 와중에 새로이 리장을 맡으신 분에 대한 공금 유용 같은 몇가지 사소한 비리와
업무처리의 더딤 또는 지연에 따른 동네 분들의 불만이 누적되어서 새 리장님은 불과 2년만에 연임에 실패하게 되고
자진 사퇴했던 리장님이 다시 리장 자리에 추대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다시 리장 자리에 오르신 리장님은 대략 10년 이라는 장기 집권(?)을 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 10년 동안 저는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유학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그 전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 때 그 광주 비디오 있다고 신고 한 사람은 누구야?"
한분이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리장님은 허허 웃으시더니 '글쎄...' 하고 미소를 지으셨고 상 앞에 있는 술잔을 지긋이 바라 보고 계셨죠.
또 다른 한분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친구가 리장을 그만 두면 가장 득 볼 사람이 누구겠어?"
그 말이 끝나자 리장님을 비롯한 모두들 상갓집 임을 감안해 입을 살짝 막으면서 작게 웃음보들을 터트리시더군요.
다들 웃음을 그치자 리장님은 여전히 미소를 띄우면서 1985년 당시 구치소에 있던 시기에 면장과 군수까지 찾아와 면회를 했고
그들은 리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겠냐 하는 의견을 넌즈시 비쳤다고 합니다.
"아니 널 짜를려고 군수에 면장까지? 하긴 안기부 까지 왔으니..."
한분은 이런 말씀을 하시며 기가차다는 반응을 보이셨고 이내 술잔을 채우며 화제를 돌리셨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저녁을 먹으면서 리장님의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동네에서는 대충이나마
알음 알음으로 떠돌던 이야기 였습니다. '나만 몰랐네...' 하면서 계속 밥을 먹던 중 문득 전임 리장님 소식이 궁금해
어머니에게 여쭤보니 전임 리장님은 리장에서 물러난 후 1년여를 더 동네에서 살다가 읍네에 집을 사서 이사를 가고는
동네에 코배기도 안 비친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다음 말씀이 제 머리를 띵 하고 쳤습니다.
"동네 리장 몇년 해서 집 못 사고 땅 못 사면 바보라 하더라"
저는 그게 무슨 이야기냐 여쭤보니 당시 선거 한번 치루면 꽤 큰 돈이 시골에 뿌려지는데 대부분이 리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고 하시더군요. 그제서야 마지막 퍼즐 조각 하나가 제 머리에서 맞춰지더군요.
리장님이 안기부에 고발 당하신 것도, 군수며 면장이 찾아온것도, 자진 사퇴하신것도.
이게 다 누군가의 큰 그림이었고 때는 1985년 전대갈 정부의 마지막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는 것.
그 장례식장 이후 20여년이 지나 제 고향 동네는 절반 정도가 신 공업단지에 포함 되면서 6차선 대로를 기준으로
반은 공단으로 반은 예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동네가 되었습니다.
농지나 집이 공단에 포함되어 보상을 받으신 분들은 이제는 시가 된 예전 읍내 지역의 아파트 단지로 이주를 하셨고
남은 분들은 여전히 그 절반의 동네에서 살고들 계십니다.
그리고 20여년 전에 10년간 장기집권을 하시던 그 리장님은 아직도 집권 중 이시네요.
그 리장님이 땅을 사셨는지, 집을 사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실수로 본의 아니게 자르기 신공을 시전해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