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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7/16 22:20:36
Name 위버멘쉬
Subject [일반] 최근에 해본 독서방법에 관한 연구
0. 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가입한지 얼마 안 돼서 게시판 분위기 파악에 전념하고 있는 위버멘쉬라고 합니다. 회원분들 각자 역사, 과학, 정치, 예술 등 전공이라고 할만한 분야들이 있다, 특정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글이 많다, 댓글에서는 교양과정을 넘나드는 정도의 토론이 벌어진다. 이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상적인 허튼 글만 쓰다가 전공과 관련해서 뭔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없을까 생각해봤습니다. sky 아이비리그 출신 회원분들, 10년 이상 업계에 종사하신 베테랑 분들이 나타나셔서 개 쪽을 당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관심이 많은 책 읽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가볍게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1년에 천권 정도는 웃으면서 읽으시는 회원분들도 많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독서에 관심은 많은데 시작하지 못하고 계시는 분들이나 직장 다니시면서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저도 초보자를 간신히 벗어난 수준이라서 헤비 리더(?)분들 좋은 방법론이 있으면 댓글에 도움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1. 시작은 쉬운 책부터

군대에 있었을때 6개월 단위로 교대하는 격오지 파견 근무를 갔습니다. 사정이 변경되어서 11개월 동안 산속에 짱박혀 있었습니다. 할 일이 책 읽는 거 밖에 없었죠. 고등학생 때 국문학이나 인문과학, 사회과학 관련 추천서들을 약간 읽었던 터라 좀 더 본격적으로 독서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편지에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써서 집에 부쳤습니다. 파우스트, 신곡, 역사란 무엇인가, 자유론, 법의 정신, 제3물결,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것들이 기억이 납니다. 내용도 의미도 모른 채 어디서 좋다고 들어본 책들은 일단 다 부쳐달라고 했습니다. 제대하고 나서 어머니가 "너 책 사는데 2~3백 들었다" 하시더군요. 당연히 예상하셨겠지만 지금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저런 책들을 읽고 받아들이기에 제가 너무 미숙했던 탓입니다. 읽는 와중에도 이게 나중에 기억이 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읽어두면 다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읽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안 읽히는 책을 억지로 읽으려다가 눈에 쥐가 나서 하루 종일 고통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미련하고 비효율적인 독서방법이었죠.

도입부부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최근에 많이 보이는 언론사 추천도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xx 편, 유시민이 추천한 책 이런 것들 보면 입문자들이 읽기에는 너무 지루하거나 난해한 책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지성 작가 추천도서 1단계 입니다.
기본과정
유득공 발해고..소익호 옮김 홍익출판사 2000
최치원  새벽에 홀로 깨어.. 김수영 편역, 돌베개, 2008
이이 성학집요..김태완 옮김, 청람미디어 ,2007
사마천 사기본기//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10.
관중-관자- 김필수외 옮김, 소나무 2006
황견엮음 - 고문진보 전집- 이장호 외 옮김 을유문화사 2007
               - 고문진보 후집 - "
호메로스 - 일리아스- 천병희 옮김,숲,2007
헤로도토스 - 역사 - 천병희 옮김, 숲, 2009
탈레스 외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 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2005

심화과정
북애 - 규원사화- 고동영 옮김, 한뿌리, 2005

특별과정
유향 엮음, -전국책- 임동석 옮김 동서문화사,2009,
태공망.황석공 -육도 .삼략- 유동환 옮김, 홍익출판사, 2002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 - 군사학 논고 - 저토옹 옮김, 지만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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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독서 시작하는 초보 과정에 성학집요, 육도, 삼략이라. 이 목록을 보고 인문학 시장에 사짜들이 상당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학집요를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하은주 3대 + 논어 맹자 + 주희 정도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맥락 없이 읽어봤자 저처럼 돈 낭비, 시간 낭비, 체력 낭비가 되게 마련이죠.

어차피 저런 추천도서들은 단계적으로 반복해서 읽을 생각하시는 게 속 편합니다. 입문하시기에는 글자가 큼직큼직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지도, 그림이 많이 첨부된 책들이 좋습니다. 저도 어린이용으로 제작된 만화책이나 그림책으로 시작했는데 너무 쉽게 이해되고, 이해가 잘 되니까 너무 재미있고, 재미있으니까 계속 동기부여를 가지고 다른 책들을 찾게 되더라고요. 부디 시작은 쉬운 책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 추천드립니다. 우선 얇고 만화로 되어 있어서 읽는데 부담이 적습니다. 원문에는 시대적 상황과 저자 본인의 바이오그래피에 대해 설명이 없어서 본문과 외재적 요소들을 연결 짓기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모든 주제마다 책이 쓰인 역사적 맥락과 저자의 간단한 일생을 풀어주는 구성 방식을 취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아주 많이 됩니다. 비슷한 시리즈로 "지식인 마을 세트 " 40편이 있는데 두 가지 시리즈 중에서 흥미가 당기는 주제별로 하나씩 읽어보시면 입문서로서는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2. 기왕이면 역사와 철학부터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가 있으면 그것부터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책을 즐기면서 읽는 것이 입문자들에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특별히 관심 가는 주제가 없다면 역사와 철학부터 시작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독서량이 쌓이면 특정 주제를 역사라는 가로축과 철학이라는 세로축으로 기준을 잡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가령 프랑스대혁명의 경우 18세기 중반 루이 16세의 경제적 실정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몽테스키외, 볼테르의 계몽주의라는 철학적 토양을 x축, y 축 삼아 대강의 위치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거죠. 물론 세계사나 철학에 기본기가 있으신 분들은 군사적 관점, 심리학적 관점, 경제학적 방법론 등 흥미가 가는 주제 위주로 자유롭게 보시는 것이 좋고요.

역사의 경우 1권 내지 2권짜리 요약서를 우선적으로 몇 종류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저 같은 경우는 통 세계사 시리즈,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동양 편, 서양 편 이런 책들을 3~4회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한국사는 최태성쌤이 쓴 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 이거 읽었습니다. 사진과 지도가 많고 이야기체로 되어 있어서 엄청 재미있더라고요. 전체적으로 큰 흐름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 국가별로 쓰인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버린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만화 이런 식으로 말이죠. 좀 더 내공이 쌓이면 개별 시대나 역사적 사건을 다룬 존 키건의 1차 2차대전사,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사마천 사기 이런 책들 흥미 당기는 대로 읽으시면 좋습니다. (게시판에 역사 전공하신 분들 많으시니 댓글로 도움 주실 거라 믿습니다)

철학이 진입장벽이 좀 있어서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꽤 걸린 것 같은데 저 같은 경우는 하룻밤에 읽는 동/서양 사상, 일러스트 철학사전 같은 입문자용 책과 위에서 추천드린 서울대 추천도서와 지식인 마을 시리즈를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 다음에 버트란드 러셀의 서양철학사로 전체적인 흐름을 잡았습니다. 동양철학은 짧게 요약된 2차 서적 (최진기 선생님 동양고전에 빠져라)으로 시작해서 시경, 예기, 주역 빼고 사서오경 원문을 읽었습니다.

단번에 원문에 도전하시기 보다 큰 흐름 -> 개별 주제 -> 디테일 이 순서로 하시는 편이 재미도 있고 길게 봤을 때 기본기가 훨씬 빨리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철학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신 분들은 비슷한 방법으로 정치, 경제, 예술, 과학 등 다른 분야 책들로 독서 범위를 넓혀가는 방식인 거죠.


3. 책을 꼭 사서 봐야 하는가

구입할 여력이 있으신 분들은 구입하셔서 생각날 때마다 반복해서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책을 사서 보면 내용이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책 자체를 안 읽게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독서량이 늘어남에 따라 구입 액수가 점점 부담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까운 지자체 도서관에서 초벌로 빠르게 훑고 마음에 드는 책을 대출합니다. 반복해서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알라딘이나 인터넷 중고서점에 싸게 나온 중고책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위에 추천드린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도 작년쯤 중 x 나라에 17만 원에 올라와 있길래 구입해서 빠르게 2회독 하고 15만 원에 되팔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조금씩 속도가 붙습니다. 최근에는 서점에서 1~3권 정도 그냥 읽고 나오기도 합니다. (속독/통독에 대해서 언급을 하려고 했는데 글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나중에 나누어서 올려야 될 것 같습니다ㅠ) 빽빽하게 양장본으로 된 철학서를 서점에서 읽기는 무리가 있고 가벼운 실용서나 자기 계발서 위주로 빠르게 읽고 소장 가치가 있으면 인터넷으로 구입합니다.

그런데 일본 마이크로소프트 CEO라는 분이 쓴 초병렬 독서법이라는 책에서는 웬만하면 구입하는 방법을 추천하더라고요. 이분은 CEO가 되기 전에 자기 수입의 대부분을 책을 구입하는데 썼다고 합니다. 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서 가격 비교하고 그럴 시간에 그냥 사서 읽는 편이 낫다, 어느 정도 돈을 투자해야 책에 애착을 가지고 읽게 된다. 이런 맥락인 거 같습니다. 아예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시려는 분들은 독서량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돈을 좀 투자하셔서 약간의 강제성을 가지고 읽으시는 편이 도움 되실 거 같습니다. 독서량이 늘어남에 따라 도서관이나 중고서점으로 갈아타시구요.

4. 책을 하대하라

독서 관련 책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책이어도 한 권으로 그 분야를 커버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폭넓은 독서가 중요합니다.

'책을 하대하라'는 메시지에 담긴 또 하나의 포인트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억지로 읽지 않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읽다가 지루하면 흥미가 당기는 다른 책을 읽으면 됩니다. 아니면 재미없는 부분을 건너뛰고 바로 결론 부분으로 넘어가도 좋습니다. 심지어 이동진 씨가 쓴 이동진 독서법에는 책을 구입해서 표지만 보고 책장에 꽂아 두었더라도 그 책을 '읽은 책'으로 분류한다는 겁니다. 표지만 보고도 뭔가 느끼는 바가 있고 배우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1만 권 독서법이라는 책에는 책을 음악을 듣는 것처럼 읽으라고 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음 하나하나 곱씹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책도 그냥 배경음악처럼 흘러가듯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그냥 스킵 하기도 하면서 책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즐기면서 읽는 것입니다.

5. 습관, 동기부여

걸그룹 동영상을 틀어놓고 여자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책과 가까워지고 싶은 분이라면 컴퓨터나 핸드폰을 일상에서 격리 시키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대신에 손 닿는 곳에 책을 깔아둡니다. 소파, 화장실, 침대 머리맡에 한 권씩 깔아둡니다. 그리고 가방에도 그냥 기계적으로 한 권 넣어서 들고 다닙니다. 그러면 습관적으로 조금씩 읽게 됩니다.

그리고 재미없는 책을 읽다 보면 독서가 순수한 흥미 본위의 내재적 동기가 아니라 지적 허영 같은 외부적 동기 때문이라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완벽한 공부법이라는 책에 따르면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는 구별하기 어렵고 서로 상호작용한다고 합니다. 때로는 지적 허영이 지식의 폭을 넓혀주기도 하고 동기부여를 주기도 하고 흥미를 돋워주기도 합니다. 게시판에 1주일에 한편 정도 독서감상문을 올리겠다 이런 외부적 동기부여를 가지고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6. 마치며

글이 길어지다 보니 힘이 달려서 뭔가 용두사미로 끝난 것 같습니다ㅠ 사실 속독/통독에 대한 이야기도 하려고 했는데 체력이 후달려서 다음 기회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해보려고 시작했는데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독서 방법론 있으시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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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여삼추
17/07/16 22:2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따라해봐야겠네요
무무무무무무
17/07/16 22:30
수정 아이콘
김영사가 참 전혀 애들같지 않은 애들 책을 잘 내죠. 만화가들도 유명한 분들 모셔오니 내용은 물론 그림체 역시도 빠질 게 없어요.
서울대 인문고전 50선과(요새는 뒤이어 더 나오고 있더군요. 51권이 푸코였던가....) 제대로 된 세계대역사 시리즈는 좀 오버해서
아동만화의 정점을 찍은 명품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역사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 항상 추천하는 계몽사 역사만화 시리즈까지.
빼먹었는데 과학쪽은 역시 앗! 시리즈가 최고입니다. 어설픈 입문서보다 훨씬 낫죠.

그리고 저도 말씀하시는 부분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고전 한 권을 읽으려면 거쳐야 할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과정 다 빼고 그냥 목록 하나 달랑 내놓는 건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방기한거죠.
아예 대학 커리큘럼처럼 고전 한 권을 읽기 위해 그에 앞서서 단계별로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해주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흐흐.
위버멘쉬
17/07/17 00:56
수정 아이콘
사실 뭔가 책광고 하는거 같아서 약간 꺼려지긴 했는데 서울대 인문고전 50선 진짜 미운놈에게는 알려주고 싶지 않은 꿀아이템 같습니다. 원서 번역본 읽다가 저거 읽으니까 진작 이거부터 읽을걸 이런 후회가 많이 들었습니다.
17/07/16 23:07
수정 아이콘
경험에서 나오는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외국어의 달인
17/07/16 23:14
수정 아이콘
역사와 철학을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본다는 말에 책좀 읽을 신 분이구먼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관련된 책을 읽다보니 경제에 대한 벽을 느껴 경제쪽 서적을 읽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걸 읽다보니 세계경제가 정치와 엄청나게 얽혀있단걸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정치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정치철학이 있단걸 알게 되었고 정치란것이 인간심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다게 되었죠. 결국 제나름대로 세계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굴러간다는 결과를 내는데 까지 이르렀네요.
대학때 읽었던 이야기 세계사를 며칠전 부터 다시 읽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갖고 싶어서요. 하하하
위버멘쉬
17/07/17 00:57
수정 아이콘
뭔가 재야고수에게 인정받은거 같아서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
市民 OUTIS
17/07/16 23:17
수정 아이콘
독서의 시작은 쉬운 책이 아니라, 보통은 재밌는 책부터죠. 책 종류에 굳이 신분을 따질 필요는 없고, 만화책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독서의 끝을 어디라고 설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가 인문학자, 교수, 지식소매업자가 될 필요는 없죠. 밥벌이로 이용되지 않은 독서가 무가치하다면 그럴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겁니다. 책이란 자신을 즐겁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재밌는 책이 쉽기 마련이죠. 어떤 책이 읽기 어렵다는 것은 느리게 읽힌다는 겁니다. 즉, 재미없는 책과 어려운 책은 사실 같은 말입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재밌다고 말한 사람도 있죠. 연구자이자 번역하신 김종건 교수야 그렇다 쳐도 음란물 판결 담당 판사(유명한 미국 판결인데 해당책에 부록으로 보통 실림)도 그런 말을 했죠. 그 재미없는 걸 판결을 위해 어떻게든 빨리 읽겠다는 일념으로 독서한 결과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재밌는 걸 안 거죠. 그렇다면 본문과 같은 의견일 수도 있겠네요.
실상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 독서를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보통은 어떻게 독서가 이루어지는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단발성 독서가 아니라 이어지는, 습관성 독서는 재밌는 책부터 시작되며, 첫 시작의 책에서 확장돼 나가는 방향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이죠. 물론 같은 주제인 경우도 많지만 보통의 저자는 자신이 잘 아는 것을 쓰며 그것은 대개 같은 주제, 카테고리죠.
아다치의 H2를 읽으면 터치도 보고 러프도 읽는 거죠. 플라톤 향연을 읽으면 국가도 읽고 싶은 거죠. 재밌다면 말이죠. 재미없으면 독서는 확장되지 않습니다.
위버멘쉬
17/07/17 01:02
수정 아이콘
맞는 말씀입니다. 보리차 마시듯이 걸그룹 뮤직비디오 보듯이 독서가 생활에 녹아 있는게 제일 좋은것 같습니다. 이공계는 철학에, 인문계는 수학, 과학에 아무래도 진입장벽이 있다보니 도움이 될까해서 제 경험을 써봤습니다.
alphamale
17/07/16 23:33
수정 아이콘
좋은 독서법이네요. 이지성작가가 쓴 개소리보다 훨씬 더 좋은 내용입니다.

저는 역사,철학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시작은 가벼운 단편소설로 해도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유명작가들의 단편을 찾아서 읽으면 글이 짧게 구성되어있어서 읽기도 편하고 한권을 독파하기도 쉽죠. 김영하소설가의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 같은 작품으로 시작하는 것이죠.
문,사,철이라고 하니 당연히 역사나 철학도 결국 비중이 올라갈거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저도 시작은 xx학생도 읽는~ 시리즈가 좋다고 봐요. 심지어 고등학생들용으로 제작된 책들도 꽤나 깊이가 있어서 독서내공이 없으신분에게는 어려울 때도 있거든요.

독서는 습관이 아니죠. 쾌락입니다. -알쓸신잡의 정재승의 말처럼, 독서자체가 즐거워야 결국 습관화 된다고 봅니다. 우선은 취향껏, 그리고 되도록 '사서' 읽으면서 책에대한 애착을 키우는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버멘쉬
17/07/17 01:04
수정 아이콘
저도 중학교때 삼국지나 영웅문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책과 가까워 졌던것 같습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몇일전에 채식주의자 읽었는데 순문학적인 정취가 좋더군요. 앞으로 한국문학 좀 더 관심가지고 읽어볼 생각입니다
역전인생
17/07/16 23:5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17/07/17 00:32
수정 아이콘
한 때, 우리는 know(what) 이 아닌 know-how를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시대가 왔었고, 지금의 인터넷 시대라는 것은 know-where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 해마에 지식을 저장해 둘 필요가 아주 많이 필요없고, 상세한 내용은 인터넷 구글에 맡기면 되는, 우리는 그 내용의 '지표'만을 잡고 있으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위버멘쉬
17/07/17 01:17
수정 아이콘
저도 생각이 비슷했습니다. 최근에 책을 좀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식이 좀 쌓이면 야학 같은데서 학생들 한번 가르쳐 보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요. 전공과 관련해 강연같은것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구요. 그런데 지식이라는 것이 정말 결정적으로 필요한 순간에는 두뇌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경우처럼 검색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는 경우는 실제 사회생활에서 많지 않더군요. 회사의 명운이 걸린 협상 순간, 강연장에서 뜻밖의 질문을 받았을때, 인사 청문회에서 잘못을 질책받을때, 소개팅중에 재치있는 농담을 하고 싶을때... 핸드폰을 꺼내서 검색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진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은 그냥 머리에서 툭 튀어나오는 숙련되고 체득된 지식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17/07/17 11:19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많습니다.
뭐... 씁슬하지만, '많이 아는 사람' 이랑 '아는체 하는 사람' 이랑 차이로 구분되겠죠.
그럴 때에, 굿윌헌팅처럼, 또는 어린왕자에서 터반 쓴 천문학자가 겪은 것처럼,
그 사람의 어깨에 붙은 명칭으로 그 사람을 견주어 판단하려는 경향이 어쩌면 더 심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alphamale
17/07/17 01:31
수정 아이콘
그 검색이라는게 결국 그 사람의 지적수준에 따라 깊이가 천차만별이라... 결국은 중요하죠 지식의 깊이는
스테비아
17/07/17 08:36
수정 아이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서울대 인문고전50은 꼭 읽어봐야겠네요 흐흐
17/07/17 10:33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17/07/17 10:34
수정 아이콘
전혀 모르는 내용을 검색으로 알고 이해하게되긴 힘드니까 기초체력은 여전히 중요하죠
다만 옛날보다 좋은건
옛날엔 알았던거라도 까먹으면 없어져서 처음부터 몰랐던것처럼 되기 쉽지만
지금은 차근차근 잘 이해했던 내용은 혹시 까먹더라도 10초 검색으로 빠른 리콜 가능하다는 차이
네가있던풍경
17/07/17 14:59
수정 아이콘
최근에 본 글 중에 가장 도움이 되는 글이네요~

개인적으로 책에 쓰는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고 그렇게 쌓인 책이 많습니다만 이게 공간을 차지해서 좀 그렇더라구요.

이사할 때도 무겁고.. 다시 보지 않을 책들을 정리하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네요.
지직지직
17/07/17 15:55
수정 아이콘
그냥 도서관가서 책장 사이 이리저리 걸어다니다가 왠지 끌리는 책이 있으면 뽑아서 잠깐 읽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다른 책 찾고.. 이러는게 처음 관심유발에는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만화방에서 만화책 고르는거랑 똑같죠 크크 그러다가 관심있는 분야가 생기면 인터넷 서점에서 사서보면 되죠
여담으로 러셀저 서양철학사는 중간중간 나오는 러셀옹의 개드립(?)이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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