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의 표정을 살폈는데 B는 조금 놀란 눈치였고 A는 바로 옆자리라 표정을 보지 못했다.
B : 야 너 정말? 좀 충격적인데?
A : 이야 너도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구나 크킄
B : 근데 너 생각보다 표정이 웃는상이야? 방금 헤어졌다며? 맞아?
“힘들때 웃는자가 일류잖아. 좌절하면 2-3류고. 한잔해.”
짠. 에일의 더러운 쓴맛이 캬아.
2. 2시간 전 대형 쇼핑몰의 한 커피숍
나 여기 분수대에 있어.
아.. 너 찾았어..
막상 만났는데 떨떠름한 표정이다. 아마 나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무슨 약속 있어? 어디 가야해?
응 지금 부모님 저녁 먹는다고 있고 나는 안 먹는다고 잠깐 나왔어. 아까 빵을 많이 먹어서...
평소 같았으면 빵 많이 먹는다고 놀렸을 텐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 그래. 이렇게 밖에 할 말이 없다.
어디 앉아서 차 한잔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오면서 보니까 사람이 무지무지 많더라고. 일단 아무데나 앉으면 감사해야해.
그래? 그래도 일단 앉아서 얘기해야 하는데....
그래서 처음 보는 듣보잡 커피 체인점에 들어갔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거짓말처럼 한가운데 우리를 위한 자리가 나왔다.
그녀가 가방만 자리에 두고 커피한잔 주문하려고 같이 나왔다. 주문하러 굳이 같이 가자고 하길래.
난 바닐라 라떼..
난 아메리카노.
언제나처럼 내가 계산하려고 하니(내 신용카드가 커피 전문점에 포인트 7% 적립이다)굳이 자기가 계산한단다. 막지 않았다.
오른손의 반창고가 눈에 띈다. 화상입은 상처인데 처음 봤을 때 큰 거즈보다 많이 줄었다.
반창고가 작아졌네?
응. 그렇잖아도 다들 그말 하더라.. 큰 반창고가 점점 작아졌다고..
처음 다쳤을 때 내가 좀 호들갑을 떨었어야지. 그날 강릉 갔다가 돌아올 때 약국까지 태워다 줬으니까. 다치고 일주일간은 손등의 그 상처로 대화 주제를 삼았지만 어느 순간 잊혀져 그 이후는 언급을 안했지만... 오랜만에 본 그 손등은 예뻤다.
처음 보는 커다란 반지를 꼈는데 대놓고 안 어울렸지만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귀걸이는 내가 사준 것과 비슷한데 더 큰 귀걸이였고 목걸이는 하지 않은 듯 했다.
화장을 뭐 했는지 지적해주면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신경 쓰이지 않았고 그래서 언급하지도 않았다.
각자 커피 한잔씩 들고 빨면서(아메리카노는 더럽게 썼고 빨대가 이상한지 빨아 올릴 때 공기가 섞여 나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녀는 바닐라 라떼가 맛있다고 했다.) 마주 앉았는데 뭔가 말하기 어색하기도 했다. 3주 넘게 안보다 만나서 그런가.
지난 한주 힘들었어?
응 그런데 생각보단 할만했어. 이번 주간만 기다리고 있긴 했지..
다음주 부터 어떡하게? 다시 힘들텐데?
버텨야지 뭐..
둘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본질에 근접한 대화가 아니다. 핵심으로 가기 위해서
물어 볼게 있는데.. 내가 그동안 연락하는게 부담스러워?
...응...
알다시피 내가 그동안 일하면서... 너무 여유가 없어... 그래서 연락도 잘 하기 힘들고...
집에 오면 마무리 하고 쉬고 자기만 해도 벅차...
그런데 너는 그런 동안 연락이 안돼서 스트레스 받고 있잖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
뭐?
....그만 만나자고...
사실 나 지난 3주 동안 바빴잖아. 그런데 그동안 널 못 봐서 그런지 막 보고 싶거나 생각나지 않더라고... 그동안 좀 멀어졌나봐..
예상 못한 건 아니다. 그러나
직접 만나서 이별을 통보를 당하니 표정관리가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힘들었던것이
그녀 혼자 나타났을 때 헤어지자고 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녀 특유의 어리버리한 분위기가 나를 편안하게 안심시켰으니까.
예전 즐겁게 만나던 때처럼.
아니 그러면, 예를 들어 네가 그렇게 힘든 상황이면 내가 더 연락줄이고 답장 안와서 잘 참고 그래서 내 연락이 부담 안 가게 내가 배려해주면 되잖아?
아니 그런데... 이미 나는 네가 연락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걸 알아버렸잖아. 그리고 이렇게 나는 일하는데 집중하고 너는 참는 관계가 얼마나 더 갈 줄 모르는데 그동안 너만 희생하는 꼴이잖아. 나는 당장 일 집중하는데 힘들고 연락 때문에 네가 스트레스 받는 것도 싫고 네가 스트레스 받는 것 때문에 내가 신경 쓰는 것도 싫어.
그렇긴 하고, 더 이상 할 말이 없긴 한데, 이게 전부는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헤어지는 이유로는 꽤나 황당하니까, 당연히 알 수 있다. 정말 좋아하면 연락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인데. 한번 속지 두 번 속나.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이를테면 하지 말아야 할 걸 했다던가, 아니면 해야 할걸 안 했다던가.
...아니 딱히 그런 건 없어...
그러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 그동안 만나고 나서... 그러니까 만나고 나서 내가 더 이상 매력이 없어졌단 거네?
...응...
확인사살이다. 어떻게 더 내가 할 말이 없다.
더럽게 쓴 아메리카에는 계속해서 공기가 섞여 빨려 와서 신경이 쓰인다.
뚜껑을 빨대와 같이 빼버리고 직접 들이키는데 쓴맛은 여전하다.
불편한 침묵이 30초쯤 지났을까.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주는데 지난번 내가 선물해줬던 목걸이 귀걸이 세트가 케이스 통째로 있었다.
...그래서 이건 이제 돌려주는 게 맞는 것 같아...
표정관리가 어디까지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순간은 안 된 것 같다. 2002년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 본, 김병지 선수의 드리블에 좌절하는 베어벡 코치의 표정과 제스처가 나온 것 같기는 하다. 제발 아니길.
그녀는 약간 홍조가 떠오르고 말을 천천히 띄엄띄엄 하고 울먹거리는 느낌이 묻어나긴 했지만 참는 듯 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마 서로 30초의 침묵은 울먹이는 목소리를 참기 위해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나도 나 별로라는 사람 만날 필요는 없긴 하지.
이제 바로 일어나 돌아 나오는 게 가장 쿨한 시나리오이긴 한데 막상 자리에 일어날 수 가 없다.
하긴 우리 처음 연애하면 커피 마시고 다 마시고 얼음이 다 녹을때까지 이야기 하며 일어나지 않다가 그녀가 이제 일어날까 하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뭐 하나 말을 섞을 주제가 없나 해서 머릿속을 굴렸지만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일어날까.
선물 케이스를 주머니에 쑤셔 넣는데 코트 주머니가 꽤 큰 편이기도 해서 꽉 끼어 들어갔다. 툭 튀어나 보이지 않는 듯하고
무엇보다 차인 마당에 돌려받은 선물케이스를 손에 들고 가는 대참사가 불가능해서 다행이다.
남은 커피 껍데기와 쟁반을 치우는데 바닥으로 던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녀가 내 눈치를 열심히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쇼핑몰의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서 마지막으로 한번 마주봤다.
혹시 나한테 말 안한 거 있어?
...뭐?... 없어 난 할 이야기 다 했어.
아 그... 아니야 알았어.
잘 살아.
잘 살아.
이제 마지막 퇴장이 나의 몫인데 정말 뒤돌아보기가 싫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한달 전 그녀 집 앞에서 헤어질 때 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고 약간 삐쳤던 그녀가 생각나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뒤돌아보면 지는 것이라서? 모르겠다.
3. 우리 동네 유일무이한 펍.
A : 이야 참 대박이네 크킄크 한잔해! 크킄크
뭐라 위로를 해야 하냐?
B : 괜찮아 지금 이놈한텐 우리가 옆에 있는 게 최고의 위로라니까 크크크
“아 씨벌... 팩트 폭력봐...”
B의 팩트폭력은 이어졌다. 이를테면 나와 그녀의 관계에 대한 조언과 분석, 스니커즈가 아닌 나이키 운동화, 셔츠 칼라가 스웨터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튀어나왔단 디테일.
B : 이런게 하나하나 모여 결정이 된다니까. 남자는 사귀고 나면 땡인데 여자는 사귀는 중에도 이 사람을 계속 평가한다고.
“그러니까.. 나는 얘를 사귀면서 참 특이했던게.. 만나면서 여지를 안주더라고. 뭔가 더 진도나가거나 관계를 발전시킬 여지가 없더라고. 그래서 얘를 사귀면서도 생각했지 얘가 나를 왜 사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지 이렇게 사귀는게 굉장히 신기하다고”
B : 원래 12월에서 1월까지가 가장 시려운 계절 아니겟어. 따뜻한 남자스웨터 필요한 계절이니까. 이제 한창때 지났잖아! 크크 이제 벚꽃 필 때 되면 다시 남자가디건 필요하지 않겠어? 크크크크 결국 그때까지 델리고 참고 있을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지 크크크
팩트 폭력도 있고 틀린점도 있었지만 말을 끊고 싶지 않았다.
B : 복수하려면 니가 빨리 다른 여자 만나는게 맞지! 그 니 여친도 이제 나이도 꽤 있고 하니까 결혼할 사람 찾는데 니가 함량 미달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야기는 사실 내가 그 정도 매력이 없다 라는 치명적인 주제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B : 나도 헤어지고 바로 새 여친 만날줄 알았지! 그러고 2년이 지났어! 크크
마찬가지로 여친이 없는 A,B 이기에 자폭성 개그로 이어졌다.
그 외에 쓸데없는 주제로 한병 더 두병 더.
밥을 안 먹고 맥주가 다량으로 들어가니 약간 피곤하다. 혹시나 폰을 확인해 보는데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
A : 야 애 맛탱이 갔나봐 크크크 뭔 생각해! 크크
“걔가 미안하다고 헤어지잔 거 취소라고 미안하고 보고 싶다고 카톡왔나 확인해봤다 크크”
A,B : 이 미친놈! 크크크
“야 오늘 내가 쏠게 가서 비싼거로 몇병 갖고와라”
A,B : 이야 이놈이 왠일이야 크크크
그러나 두놈 다 말만 많고 실제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4. 집으로 올라가는 길.
나에게 딱히 문제가 있었나? 없어보였다.
그녀에게 문제가 있었나? 뭐 사소한 문제는 있지만 서로 참고 덮어주면 배려해 주는게 연애 아닐까. 그게 나는 가능했는데 가능한데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아마도 집주소를 가르쳐 주니까 눼입원지도에 쳐보고 달동네 비슷하니까 기대를 접었나? 빌어먹을 눼입원. 그래도 우리집도 재개발 한방이면...
올라가며 여러 생각이 든다.
내가 다 맞춰줘서? 아니면 나이키운동화? 아니면 집이 꽤나 높은 곳에 걸어 올라가야 해서?
나는 그녀한테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결국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헤어지면서 서로 울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집에 오니 동생과 엄마가 고양이 먹방을 보고 있었다.챱챱챱챱챱
챱챱챱챱챱 한 기분이다.
5. 현실적 문제
코트에서 선물 케이스 빼는데 고생했어요 안빠져서 ㅠㅠ
그래서요 제가 한달전에 백화점에서 40만원대 18K 귀걸이 목걸이 세트 샀던걸 돌려받았는데요. 모델이 무려 피겨여왕...
일단 케이스 자체가 손을 좀 탄 것 같고 선물 즉시 매달아 봤는데...
이거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요? 환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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