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어느분이셨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스타리그 방송중 인상깊었던 말이 있다.
"정석은 어느 상황에서도 안정적이고 강하기 때문에 정석이다"
5년간의 계약직 근무후 다시 재계약 통보를 받은 나에겐 가장 아픈 말이기도 하다.
24살에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 이제 갓 공익근무를 마친 나는 어머니,여동생과 함께 먹고살 궁리를 시작한다.
적진 않지만 크지도 않은 수중의 돈으로 커피숍을 해보고자 강남 상권을 안다녀본곳이 없다.
그럴듯한 포장으로 취업컨설팅업체의 추천을 받은 매장이 알고보니 저번달에 본 매장임을 확인하고 커피숍의 계획을 접어버렸다.
진작에 지금의 레드오션을 예상했다기보단 , 장사를 할 배포는 없이 뭘해도 망할것 같다는 겁부터 집어먹으니 창업이 될 턱이 없었다.
일단은 복학을 하자, 남은 몇개월동안 풀타임 알바라도 해야겠다, 싶어 그당시에 개념도 잘 몰랐던 저축은행에서 일을 하게 된다.
대학졸업장도 없는 내게 공채나 본사계약직은 언강생심, 위촉계약직을 통해 전국의 고객을 직접 만나 서류를 접수해주는 일을 했다.
하루만에 부산을 왕복하거나, 감기에 잔뜩 걸린 채 진주에서 밤 9시에 시내버스를 타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며, 오늘안으로 집에 들어갈수는
있을지 걱정했던 기억도, 내 몰골을 보고 일단 카페에 가서 유자차라도 한잔 마시자고 말해주던 고마운 분도 생각난다.
그렇게 내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몇개월 일하다보니, 수입이 나쁘지가 않다. 약간의 메뉴얼을 익히고, 몸만 축나면 되는(...)일이었기에 적응도 금방 되었다.
물론 내 월급의 절반은 항상 고등학생 동생을 둔 집의 생활비로 들어갔지만, 그쯤에서 고민을 시작한다.
지금 복학을 해서 음악쪽일을 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나은 여건이 될 재능과 열정이 있을까?..
그렇게 나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학점은행제를 시작한다.
일단은 금융계니까 , 똥밭에 굴러도 황금똥밭에 굴러보리라.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은 뒤로는, 순탄해보였다. 학점은행제로 경영학 학사 학위를 진행하며 , 신용관리사와 은행자산 관리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다.2년을 일한 뒤 다른 저축은행으로 이직을 하며 더이상 일주일에 한번씩 가던 지방을 전전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근무
할수 있게 되었다.위촉계약직에서 본사계약직으로 변경되었고, 회사에서 배려를 해준 덕에 야간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가까스로
다닐수 있었다. 여기서 2년정도 일하면 정규직 전환이 될수도 있고, 안되더라도 그때는 대학원 학위를 가지게 되니 뭐라도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고, 내가 다니던 회사도 영업정지를 당하게 된다. 어느 신문에는 내가 고객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사죄
하는 사진도 찍혔다고 하는데, 실제로 본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 일선에서 고객들에게 캠페인띠를 두르고 사과를 하는걸 왜 계약직위주로
줄줄히 나서서 해야하는지 의구심이 들 새도 없이, 오천만원 이하는 원금을 보전해드리니 기다려주시라는 말을 되풀이 해야했다.
애초에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 전환을 시켜줄꺼란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법적으로는 계약직을 2년하면 반드시 정규직을 전환시켜
줘야한다고 알고있었는데, 법망을 그다지 요리조리 피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계약직 연장은 쉽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직의 풍토가 그러하듯, 직장을 다니며 소위 "점프"를 뛰는것과, 망해서 파산재단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의 그것은 판이하게
다르다. 더군다나 최근 2년간 망한 저축은행이 한둘이 아니기에, 시장의 인력은 그 어느때보다 넘쳐나기 시작한다.
영업정지 당시 보았던 모 캐피탈 면접에 뽑힌사람이 우리회사 공채출신 같은 부서 대리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시장에 나온
인력중 내 경쟁력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것인가에 좌절하기도 했다.
우여곡절끝에 파산재단 저축은행에서 탈출해 모 저축은행에 입사한다. 이번에도 물론 계약직. 자리를 알아봐주신 분들의 배려로
연봉은 해마다 소폭이나마 인상된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알고봤더니 이 회사,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연봉이나 직급, 복지등 계약직이라고 차별을 두는건 거의 없었고, 그때문인지 1년을 채운 계약직 직원이 수시로 정규직 전환되는 게시물이
그룹웨어에 등록됐다.
돈의 차이가 없더라도, 아니 연봉이 내년에 동결되더라도 일단 정규직 전환이 되고 싶었다.
최초에 근무를 할때 위촉계약직이라 출입카드키가 없어 , 사무실에 들어갈때마다 전화로 문좀 열어달라고 했던 기억들,
친구들이 공채로 하나둘씩 입사할때 진심을 백프로 담아 축하해줄수 없었던 나의 졸렬함 등이 사무쳐 어떻게든 정규직 이름이라도 달고
싶었다. 나중에 이직을 할때 정규직 위치에서 점프를 하는게 도움이 되는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나도 이제 이바닥에서 5년을 굴렀고, 일반적인 대학을 나오지 않아 그걸 만회하고자 자격증도 따고, 학사도 취득하고, 이제 두달 다니면
대학원도 졸업이다. 정규 공채의 치열한 경쟁을 뚫은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이제 정규직 한자리정도는 가질 자격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보름전에 모처럼 가진 캐피탈 경력직 면접에 탈락했을때도, 채용된 사람이 저축은행 공채출신이라는 것에도 (물론 아쉬웠지만)
크게 연연하지는 않았다. 일단 여기 있어도 곧 전환이 될테니..
어제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받은 내용은, 팀이 아직 사정이 어려우니 계약직 1년 연장, 대신 연봉은 원래 동결이지만 어떻게든 소폭인상
시켜주겠다는 말이었다.
전환이 된다고 해서 연봉이 오를것도 아니었다. 금전적으로는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오년간 일하면서, 이쪽계열에 발을 담근것을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후회를 하게 되었다.
내가 구른것이 과연 황금똥밭이었을까 아니면...
뭐랄까, 정석이었던 포지더블넥을 시전하진 않았지만 , 원게이트 빌드로 시작해서 초반 질럿견제로 드론 몇기 잡고, 커세어로
오버로드 몇기 잡고 , 발업질럿을 대동해 상대방 앞마당에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주었는데 , 결과적으로 저그는 앞마당과 일꾼을
지키고, 나는 이제 앞마당멀티를 시도해야 하는 , 나름 열심히 찔렀는데 결과적으로는 불리한 , 그런 스타한판을 하는 느낌이다.
다른점은 스타는 10분만에 일어날 일이 내 인생에서는 5년에 걸쳐야 상황판단이 되었다는것?
망한 날빌은 다음판에 다시 해도 되고, 정석빌드를 타도 되지만 인생에 있어서 스팩의 빌드는 새로 시작할수가 없다.
하지만 죽이되든 밥이되는 나는 직장에 있어서 사파빌드,소위 날빌을 시전했고, 불리하긴 하지만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가능하면 당당하게 정규직 전환 혹은 채용이 되서 이곳에 글을 남기고 싶었다.
아직 , 당분간은 , 사파의 길을 또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