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여러 분열기와 난세가 있지만 게중 초한쟁패기의 대 혼란은 '초한지' 소설 등과 장기 등으로 인해 아주 유명하다. 항우, 유방, 한신, 장량, 소하, 번쾌, 팽월, 경포 등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이며 그들의 일대기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쟁의 승리자는 초나라 귀족 가문 출신의 항우가 아닌, 동네 건달 유방과 그 칭구들이었다. 유방이 어떠한 처지였는가를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유명한 사마천의 '사기' 에서는 정작 유방(劉邦) 이라는 말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기 고조본기에서는 "고조, 패풍읍중양리인, 성유씨, 자계, 부왈태공, 모왈유온" 高祖,沛豐邑中陽裏人,姓劉氏,字季。父曰太公,母曰劉媼 이라고 하여, 고조는 패현 풍읍 중양리 사람이고 성은 유씨며 자는 계다. 아버지는 태공이고 어머니는 유온이다. 라고만 나와 있다.
이후 유방에 대해서는 유계, 패공, 한왕, 황제와 같은 식으로만 언급이 되기에 실제 유방이라는 말은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국내에서 국역된 김원중 역 사기에서는 이 부분을 전부 유방으로 바꾸어서, 국역본을 봐서는 그 느낌을 알 수 없다.) 심지어 전한이 멸망하고 써진 반고의 '한서'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방이라는 이름은 후한 시대에서도 말엽 사람인 순열(荀悅)의 한기(漢紀)에서 언급되며, 주석에서 사기나 한서에 덧붙인 경우다(다만 유물 자료로 옳다고 간주된다.)
그런데 "유계' 라는 이름을 살펴보면, 이게 무슨 뜻이 있어서 이렇게 붙인게 아니라 그냥 백중숙계(伯仲叔季)로 연달아 붙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방의 형은 유백(劉伯)과 유중(劉仲)이다. 즉 유계는 따로 이름이 있다기 보다는 "유씨내 막내 아들" 정도의 어감이라는 편이 더 정확할 수 있다(다만 이후 유방의 동생이 하나 더 있기에 실제 막내는 아니다). 말하자면 제대로 된 이름 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 친구들도 직업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유방과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였고, 그 동료들은 소싯 적에 개고기나 팔아먹던 처지였다. 당연히 이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예법이나 관념에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예법이 강화되고 황제의 관념이 강력해지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훗날의 일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은 그야말로 중국 역사상 전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보통 피지배층이 지배층이 된다면, 오랜 시간 동안 지배층에 동화되는게 보통이다. 따라서 그들이 지배층으로 자리를 잡는다 해도 이상한 모습은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벼락 출세한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자면 정말 유쾌한 모습들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천하 통일을 이러낸 공신들이라면 그야말로 나라 안에서 최고의 인물들이고, 그 존귀함은 이루 말 하기도 힘들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존귀한 이 공신들의 행보는…
고제는 가혹한 진나라 법을 폐하고 복잡한 의례를 간소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군신들이 연회석 상에서 서로 공을 다투다가 심지어는 술에 취해 망동하며 검을 뽑아들고 기둥을 내려치는 자들도 있었다. 고제가 보고 매우 근심했다. ─ 유경 숙손통 열전
"내가 저 놈 보단 공을 더 많이 세웠지……"
"뭐라고? 넌 도망만 쳤잖아. 항우만 보면 오줌 지린 놈이 무슨……"
"뭐가 어째? 내가 소식적에 진나라 관리 놈들 얼굴 가죽 벗기던 솜씨가 아직 살아있는데, 한번 해보자는 게야?"
"그랴, 맞짱 한번 뜨자!"
이 역사적이고 한나라의 가장 존귀한 공신 대신들은, 연회석에서 술을 퍼 먹고 다투다가 이 놈, 저 놈 하고 싸우고 심지어 칼을 꺼내들어 기둥을 캉, 캉 하고 내려치는 판국이었다. 그 자리에 황제인 유방도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황제의 연회석이 아니라 시골 이장 생일 잔치라고 해도 이런 난리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유방 역시 아, 이건 뭔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예법을 강화할 요량으로 유학자인 숙손통을 불렀다. 그런데, 이 '천하강산을 평정하고 종묘를 수복하고 만백성을 평화를 가져다 준' 황제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무릇 유자들과는 앞으로 달려가 무엇을 빼앗아 오는 일은 못하지만, 수성은 할 수 있디. 신에게는 노나라에서 데려온 유생들이 있다. 신의 제자들과 함께 조정의 의례를 일으켜보고 싶다."
"만드는데 어렵지 않겠는가?"
"오제는 각기 다른 음악을 즐겼고 삼왕의 예는 서로 달랐다. 예란 시대와 사람들의 정서에 따라 간략하게 하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하다. 고로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의 예는 빼기고 하고 더하기도 해서 서로 중복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은 원컨대 고대의 예법과 진나라의 의례를 취해 한나라의 의례를 만들고자 한다."
"시험삼아 만들어 보라. 그러나 사람들이 쉽게 알게 하고, 내가 능히 행할 수 있게 하라."
"망할...그거 어렵지 않음? 나 어려운거 잘 모름."
"아니, 내가 좀 쉽게 만들겠음."
"나 어려운거 잘 모르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니까 좀 쉽게 만드셈. 내가 할 수 있을 정도로. 으응?"
상투적인 표현이라면 '무너진 예절을 회복하고 옛것을 정비' 해야 할 태조가 예법이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종갓집에 시집 온 며느리와 같은 모습이다.
이후 이를 시행해 보고 난 다음 유방의 반응도 걸작이다.
"야, 내가 드디어 황제 귀한 줄 알겠다."
무너진 법도를 정비하고...그런거 없다. 한번 해보니까 "황제라는것도 해볼 만 하네." 정도의 반응이고, 장엄하다기 보단 코믹할 정도다.
그리고 앞서 신하들의 행패를 이야기했는데, 상상 밖의 움직임을 하는것에 있어서는 유방도 다를 바 없었다.
주창이라는 위인은 힘이 세고 직언을 서슴치 않아 소하와 조참 같은 사람은 그를 두려워하여 멀리했다. 한 번은 주창이 고조가 연회를 열었을 때 일을 상주하려고 연회석상에 들어갔다. 그때 고조는 곁에 척희(戚姬)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주창이 보고 돌아서서 도망쳐 나오려고 했다. 고조가 뒤따라가 주창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가 물었다.
“ 나는 누구와 같은 임금이냐?”
주창이 고조를 우러러보며 말했다.
“ 폐하께서는 걸주(桀紂)와 같은 폭군이십니다. ”
고조가 웃으며 지나갔지만 그 후로는 고조는 주창을 매우 두려워했다.
─ 열전36 丞相張蒼外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유방은 연회석에서 술을 마시면서 흥이 올라 애첩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주창이라는 인물은 "에라, 못 볼것 봤네." 라고 하면서 나와 버렸다. 보통 일반적인 황제라면 흥 깨는 짓을 했다고 그를 면박하거나, 혹은 따로 공식적인 벌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방은 주창을 뒤따라가더니, (대한제국의 존엄하신 천자께서) 몸을 던져 덮쳤다! 그리하여 파운딩 자세를 만든 유방은 아래 깔린 주창에게 "야 임마, 내가 어떤 황제냐?" 라고 물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한 주창의 반응은 "너는 딱 하나라 걸왕하고 상나라 주왕이다 색야." 정도의 반응이다. 유방은 껄껄 웃고 물러났다.
전한 공신들의 출신과 더불어, 이들이 신봉했던 황로지학의 영향으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 을 국가 정책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공무원이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정부가 아무것도 안하고 논다는 것이다.
조참의 일화를 보자.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일을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좋은 사람들은 되려 내쫒아버렸다. 그리고 별 생각도 없거나 문서도 현란한 표현을 못 쓰고 질박하게 쓰는 사람들을 느닷없이 데려와 승상부(丞相府)의 관리로 임명했다.
정작 별 생각도 없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고 온 조참은, 되려 자신은 술만 디립다 퍼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이에 대해 따지러 온 사람들이 없진는 않았지만……
"자네, 대체 지금 왜 이러는건가? 고조께서 천하를 통일하시고 나라에 안정을 가져오신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벌써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인가?"
"자, 뻘 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드세!"
"아니, 지금 술이나 먹을 상황이..."
"마셔, 마셔!"
(....)
"야...이~~조차암~~이~~잉간아~~너~술 묵지 말..딸꾹! 씨바!"
이렇게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술을 먹여 인사불성을 만들어서 내보내서 보내니, 말도 못할 정도였다. 속 터지는건 어거지로 끌려온 승상부 관료들 뿐이었다. 승상부 관리들은 조참을 매우 미워했지만 따지기만 하면 술을 먹여대니 뒤에서 씹어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생각한 끝에 승상부 관리들은 조참을 아예 후원으로 나와서 놀게 하고, 이웃에 있는 관사에서 다른 관리들이 모두 술을 진탕 먹고 고성방가를 하며 놀게 했다. 이 모습을 보면 조참도 화가 날테니, 따지면서 자기도 술을 안 먹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조참은 오히려 술을 가져와서 그런 관리들과 고성방가를 하며 같이 놀았다
"아이고 좋다, 놀자, 놀아!"
"아, 아이고, 신나라...그런데 상국, 이래도 되는건지..."
"무슨 걱정이야, 자, check it out!"
"체, 체키 라웃"
이 세상에서 제일 속 편한 재상과 그 괴상한 정책은 성공을 가져왔다. 전국시대의 혼란과 진나라의 행패로 지칠대로 지친 중국은 회복세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런데, 보통은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자유방임 정책을 하진 않는다.
마지막 사례로, 황제와 명분이라는 측면을 보자. 황제라는것은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신성화된 정치적 명목의 집대성이다. 이에 맞서는 저항은 따라서 대단히 불경스럽고 무엄한 짓이기에, 반란군의 입장에서는 이 불경스러운 짓을 합당한 명분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보통 일반적인 반란의 명분은 대단히 미사여구가 많고 자기 합리화가 많으며, 여하간 곡절이 많다.
그런데, 이 막나가는 초한쟁패기는 어떠했을까? 후대의 사례와 초한쟁패기가 막 끝난 전한 초기의 사례를 한번 비교 해보겠다.
"너, 이자식! 대체 무슨 의도로 반역질을 했냐!"
原鎮甯山海關總兵官,今奉旨總統天下水陸大師興明討虜大將軍吳,檄告天下文武官吏軍民等知悉:本鎮深叨明朝世爵,統鎮山海關。一時李逆倡亂,聚衆百萬,橫行天下,旋寇京師,痛哉毅皇烈後之崩摧,慘矣!東宮定藩乏顛錇,文武瓦解,六宮恣亂,宗廟瞬息丘墟,生靈流離塗炭,臣民側目,莫可誰何。普天之下,竟無仗義興師勤王討賊,傷哉!國遠夫偈可言?
本鎮獨居關外,矢盡兵窮,淚幹有血,心痛無聲,不得已歃血訂盟,許虜藩封,暫借夷兵十萬,身爲前驅,斬將入關,李賊逃遁,痛心君父,重仇冤不共戴,誓必親擒賊帥,斬首太廟,以謝先帝之靈。幸而賊遁冰消,渠魁授首,正欲擇立嗣君,更承宗社封藩,割地以謝夷人。
不意狡虜遂再逆天背盟,乘我內虛,雄據燕都,竊我先朝神器,變我中國冠裳,方知拒虎進狼之非,莫挽抱薪救火之誤。本鎮刺心嘔血,追悔無及,將欲反戈北逐,掃蕩腥氣,適值周,田二皇帝,密會太監王奉抱先皇三太子,年甫三歲,刺股爲記,記名托孤,宗社是賴。姑飲泣忍隱,未敢輕舉,以故避居窮壤,養晦待時,選將練兵,密圖恢復,枕戈聽漏,束馬瞻星,磨礪警惕者,蓋三十年矣!
茲彼夷君無道,奸邪高漲,道義之儒,悉處下僚;鬥霄之輩,咸居顯職。君昏臣暗,吏酷官貪,水慘山悲,婦號子洋以至彗星流隕,天怨於上,山崩土震,地怨於下,官賣爵,仁怨於朝,苛政橫征,民怨於鄉,關稅重征,商怨于塗,徭役頻興,工怨於肆。
本鎮仰觀俯察,正當伐暴救民,順天應人之日也。爰率文武臣工,共襄義舉,蔔取甲寅年正月元旦寅刻,推封三太子,郊天祭地,恭登大寶,建元周啓,檄示布間,告廟興師,克期進發。移會總統兵馬上將耿(精忠),招討大將軍總統使世子鄭(經),調集水陸官兵三百六十萬員,直搗燕山。長驅潞水,出銅鴕於荊棘,奠玉灼于金湯,義旗一舉,回應萬方,大快臣民之心,共雪天人之憤。
振我神武,剪彼囂氛,宏啓中興之略,踴躍風雷,建劃萬全之策,嘯歌雨露,倘能洞悉時宜,望風歸順,則草木不損,雞犬無驚;敢有背順從逆,戀目前之私恩,忘中原之故主,據險扼隘,抗我王師,即督鐵騎,親征蹈巢覆穴,老稚不留,男女皆誅,若有生儒,精習兵法,奪拔瘓穀,不妨獻策軍前,以佐股肱, 自當量材優翟,無靳高爵厚封,起各省官員,果有潔己愛民,清廉素著者,仍單仕;所催征糧谷,封儲倉庫,印信冊籍, 解軍前,其有未盡事,宜另頒條約,各宜凜遵告誡,毋致血染刀頭,本鎮幸甚,天下幸甚!
원래 산해관을 방어하는 총병관으로서, 지금 지(旨)를 받들어, 천하의 수륙 군대를 통솔하여 명나라를 부흥시키고 오랑캐를 토벌하려는 대장군 오삼계는, 천하의 문무 관리와 군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리노라.
본인은 외람되이 대대로 명나라의 작위를 차지하여 산해관을 통솔했다. 그러나 갑자기 역적 이자성이 난을 일으켜 백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했다. 이어서 경사를 노략질하니 아프도다, 숭정 황제와 황후의 서거여, 참담하도다. 황태자와 여러 황자의 고꾸라짐이여, 문무가 와해되고 육궁(六宮)이 약탈되었으며 종묘가 순식간에 파괴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으니, 신민은 두려워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니 누구도 어찌할 수 없었다. 천하에 정의로운 군대를 일으켜, 황제를 보위하여 적을 토벌할 자가 없었으니 슬프다. 나라의 운명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산해관 밖에 머물면서 화살과 병력을 다 써 버려, 피눈물을 흘리고 마음속으로 애통해하면서도 어쩔 수없이 오랑캐와 혈맹을 맺고 번봉(藩封)을 허가했으며, 그 병사 10만을 잠시 빌려 스스로 앞장서서 입관했다. 이적(이자성)이 도망쳤으나, 돌아가신 선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불구대천의 원수를 값이 위해 반드시 스스로 적의 우두머리를 사로잡아 태묘(太廟)에서 머리를 베어 선제의 영혼에 사죄할 것을 맹세했다.
다행이 도적은 도망가고, 괴수의 머리를 베어, 황실의 후사를 세워 종사(宗社)를 계승하고 영토를 할양하여 오랑캐에게 사례하고자 했으나, 교활한 오랑캐가 하늘의 뜻을 거스르며 동맹을 어기고, 우리 내부가 허술한 틈을 타 연도(燕都 : 북경)을 점령하여 우리 선조의 황제의 자리를 도둑질하고, 우리 중국의 풍속을 바꾸었다.
바야흐로 호랑이를 막기 위해 승냥이를 끌어들인 잘못으로, 땔나무를 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오류를 범했으니, 본인은 심장을 도려내고 피를 토하며 끝없는 후회를 했노라. 이에 병사들을 일으켜 북벌, 오랑캐들을 소탕하고자 한다. 마침 주규, 전홍우 두 황친이 왕(王) 태감에게 비밀 명령을 내려, 선제의 세 명의 황자를 안고 도망하도록 했다.
나이 겨우 세 살로 넓적다리에 흔적을 내어 표시를 하고 목숨을 맡겨 종사를 잇도록 했다. 그러므로 눈물을 삼키고 인내하여 경거망동하지 않고 벽지의 빈궁한 곳에서 생활하며, 떄를 기다려 장수를 선발하고 병사를 훈련시키고 은밀히 회복을 기대했다. 창을 베개 삼아 빗소리를 듣고, 말을 단속하여 별을 바라보고, 조심하고 또 신중한 것이 30년이 되었다.
저들 오랑캐의 군주는 무도하고 간사함이 넘쳐서 도의의 유가들은 모두 하급 관직에 있고, 어리석은 무리들은 모두 높은 관직에 있다. 군주는 혼미하고 신하는 몽매하며, 서리는 혹독하고 관리는 탐욕스러워, 산하는 비통해하고 부녀와 자제가 눈물을 흘린다. 혜성이 떨어지니 위로는 하늘이 원망하고, 산이 무너지고 땅이 흔들리니 아래로는 땅이 원망한다. 관리가 관직을 매매하니 조정에는 사신이 원망한다.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니 향촌에서 백성이 원망한다. 관세를 무겁게 물리니 길에서 상인이 원망한다. 요역을 빈번히 일으키니 점포에서 공인(工人)이 원망한다.
본인은 위를 바라보고 아래를 굽어보니, 폭정을 벌하고 백성을 구하며 하늘에 순응하고 여망에 부응하는 날이 이제야 이르렀음을 알았다. 문무신공을 이끌고 모두 의거에 참여하여 갑인년 정월 원단 인각에 세 명의 황제를 추봉하여,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삼가 대보에 올라 주계(周啓)라는 연호를 세우고 격문을 반포하도록 했다. 종묘에 고하고 군대를 일으켜 길일을 택해 출병했다. 총통 병마 상장 경(경정충)과 초토 대장군 총통 세자 정(정경)에게 서신을 보내, 수륙 관병 360만 명을 모아 연산을 공격하게 하고, 노수로 말을 달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했다.
의로운 깃발을 올리니 사방에서 호응하여 신민의 마음이 크게 통쾌해하며, 천인(天人)의 분노를 같이 설욕하고자 했다. 우리의 신무(神武)를 진작하여 저들의 기운을 없애고, 증훙의 전략을 개발하여 맹위를 떨치며, 만전의 책략을 세워서 은택을 노래할 것이다. 시의를 잘 알고 있다면 바람이 불어도 순풍이 불고, 초목이 손상되지 않고 닭과 개도 놀라지 않는다. 감히 순리를 어기고 역적을 따르거나, 목전의 사사로운 은혜에 연연해하고, 중원의 원래 주인을 잊고 요충지에 거하여 우리 왕사에 저항하면, 철기를 독려하여 친히 소굴을 정복하고, 노유(老幼)를 남기지 않고 남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다.
만일 병법에 정통한 유학자가 있어 암곡에서 분발하고 우리 군에 책략을 제시하면, 재주를 헤아려서 우대 발탁하고 고관의 직과 높은 봉작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각 성의 관원들은 백성을 사랑하고 청렴이 두드러진 자는 그대로 임명한다. 징수한 양곡을 창고에 넣어 두고 인신과 책적(호적 및 토지장부)을 우리 군에게 내놓으라. 아직 다 밝히지 못한 사항은 따로 조약을 낼 것이니 각기 조심하고 경계하여 피를 흘리지 않게 된다면 본인에게도 매우 다행이고, 천하도 매우 다행일 것이다.
─ 청나라, 삼번의 난, 오삼계의 격문(1673)
"너 이자식, 대체 무슨 의도로 반란을 했냐!"
布曰:「欲為帝耳。」
경포가 말하길, "황제 한번 해보고 싶었다."
─ 전한, 경포의 난(BC 195)
이것이 바로 초한 쟁패기의 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