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3/07/02 01:47
사실 총이 나오기 이전의 전근대시대에도 백병전에 의한 사상자 보다는 원거리 투사무기에 의한 사상자 비율이 높았지요.
양차 대전이전의 고대든 근대던 전쟁의 근간은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굴앞에 장사없다." 결국 자신의 화력을 얼마나 잘 투사하느냐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지요.
13/07/02 01:54
그래서 그토록 독일군이 "기동에 의한 포위 및 물리적 섬멸"을 추종했던 걸 겁니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부대가 대부대를 상대할 때 상대의 화력을 제한하고 아군의 화력을 극대화시킨다는 점에서 이만한 전술이 없었을 테니까요. 슐리펜도, 소 몰트케도 그래서 그토록 한니발에 집착했던 거겠죠. 다만, 세간에 알려진 "전격전"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독일군은 물리적 섬멸을 꺼리지 않았고, 오히려 극대화했다는 게 근대 전격전에 대한 인식과의 차이라면 차이랄까요(잔혹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 편이 독일군에게는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 되었을 겁니다. 배후에 적을 두고 그걸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독일군의 수가 여유있는 경우는 전 독일사를 통틀어서 없었으니 말이죠).
13/07/02 02:01
전격전이라는 게 기동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당한 운의 연속이었다는 점에서(게다가 전격전이라는 놈의 실체는 사실상 없다시피하죠),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씀 같습니다. 소모전에 목적을 두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동을 한 것이지 기동을 통해서 전략적 목표를 이루려다 보니 그 과정에서 소모전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긴 어렵거든요. 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거죠.
13/07/02 02:16
옙. 말씀하신 것처럼 소모전이냐 기동전이냐는 그 수행방식보다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에 있느냐에 있다고 보는데, 그 점에서 독일의 전통적인 방법론은 항상 소모전적이었다고 보네요. 저글링 펼쳐 쌈싸먹기에 이은 주병력의 각개격파는 빠르기만 하지 기동전이 아니니까..
13/07/02 02:26
병자호란인가 정묘호란인가, 병자호란 같은데 하여간 그 때의 임경업 장군이 지키는 의주를 청나라가 샥 피해간 것이 대표적인 기동전의 예가 되지 않을까, 마 그리 생각합니다. 임경업이 무서워서 피해갔다기보다는 빠른 기동을 통해서 방어선을 혼란에 빠뜨리고 최종 목표인 적국의 왕 - 물론 인조를 말합니다 - 을 잡는 데 있어서 그만한 전략이 없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13/07/02 02:27
등애의 등산 같은 것이 있습니다.(...)
위에도 썼듯이 목적이 무엇이냐에 주안점이 있다고 봅니다. 적 <병력>을 <섬멸>시키는 게 목적이냐, 그게 아니라 <거점>을 <점령>하는 게 목적이냐.. 스1의 서든데스 형식의 경기 같은 게 기동전의 극대화겠죠.
13/07/02 02:36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기동전이라면 수양제의 군대가 고구려의 요동 방어선을 무시하고 평양으로 곧장 돌진한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대실패로 끝나긴 했지만요)
기동전이란 말이 멋있긴 하지만 충분한 병참과 파괴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집단 자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기동"이란 그냥 빨리 움직인다는 것이 아니라 생명선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대가로 기동력과 유연성을 획득하는 것에 가깝거든요. (굳이 비유하자면 에반게리온이 전원공급 케이블을 끊어버리고 돌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시간 내에 사도를 쓰러뜨리지 못하면....죽죠;;;;)
13/07/02 10:32
2차세계대전 말기 소련군의 8월폭풍작전 같은 건 어떨까요? 종심기동을 위한 대전략이 짜여졌고, 그 전략 그대로 성공적인 작전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13/07/02 01:47
제가 일등이군요라고 썼는데 다른 분이 ㅜㅜ 인터넷에 글을 쓰는건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여긴 예외더라고요. 암튼 좋은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13/07/02 01:51
1.5초만에 팔랑크스 생각하고 들어왔더니 그 이야기도 있군요. 메인 스트림은 아닌 것 같지만.
전술적으로 상대방의 진형을 어떻게 깨부수는가가 어중간한 규모의 군사 운용에는 필수적인 고민이 될 텐데요(전략은 국가 단위 스케일이니 올바른 단어 선택은 아닐 것 같군요), 그걸 밥 먹듯이 해낸 게 고대의 한니발일 거고, 그래서 한니발이 명장으로 추앙받는 거겠죠. 하지만 그 정도 군략을 지닌 천재는 문자 그대로 불세출 수준이고, 그러니까 누구나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쓸 수 있는 진형이 일자장사진이니(더구나 복잡한 기동보다는 상대적으로 훈련도 쉽고 말이죠) 이런 요인도 장사진이 자주 쓰이게 된 한 요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형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어지는 시기가, 아마 포병의 등장 시기와 일치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뭉쳤다가 거기로 포탄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몰살이니), 맞는지 모르겠네요.
13/07/02 02:36
네 폭탄이 현재수준의 살상력을 가지기전에 기관총이 먼저 나왔죠..
원거리 무기 개량사에서 전술의 근본을 완전히 바꿔버린건 기관총이 가장 먼저일겁니다. 그전까지는 돌,창,활,총에 이르기까지 투사무기 자체가 근본까지 바꿔버리진 못했으니까요.
13/07/02 02:33
"진형"의 무력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는 프랑스혁명 이후의 장기적인 흐름에서 귀결된 면이 큽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의 병력이 산개전, 장기간 기동전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정예 상비군의 규율과 반복훈련에 의존한 진형은 점점 약화되기 시작했죠.
기관총이나 대포 등의 화기의 발전도 그 흐름에 기여한 측면도 크긴 하지만요.
13/07/02 01:53
이걸 개인성의 아이러니한 상실과 연결 짓기도 하죠. 로마군의 대형 전술이 아무리 체계적이었다고 한들, 18세기에 평평한 연병장에서 리드미컬하고 일사불란한 걸음걸이를 연습한 근대 상비군처럼 기계적이진 않았으며, 근육의 힘이 발휘되며 정형화되지 않는 전투 양상이 일어나던 당시의 특성상 근대의 상비군처럼 특정하게 몇 가지로 분류된 교범적인 방법론을 반복숙달 시키는 작업이 불가능했고, 병사들에게는 전투에 있어 자유도가 있었다고. 전통 사회에서의 개인들은 자기 삶의 전문가였지만 근대 이후의 분업화된 개인들은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기형적이고 불구적이며 무능력한 존재가 되었다...는 주장의 연장선이죠.
13/07/02 02:14
역시 과거의 인류가 지금에 비해서 절대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네요.
주어진 환경 하에서 언제나 인류는 최선의 선택을 해 왔네요.
13/07/02 02:39
지금에서도 특수한 상황에서 대열을 맞추는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통신장비가 아예 없다던가..
대열을 정확히 갖추는 이유는 전술의 원활성에 있으니까요. 군령이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데 전술을 펼칠수 있을리가 없죠. 지금도 잘 짜여진 대열은 군대의 훈련도를 상징하기는 한데 무기체계가 그걸 이미 뛰어넘어버려서 -_-
13/07/02 02:24
그리고 저 시기의 병과 간 밸런스, 곧 총병/포병/기병의 밸런스는 참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총병으로는 포병대에게 얻어터질 뿐이고, 포병대는 기병대에게 프리로 노출되면 학살당하고, 기병대는 의표를 찌르지 않는 이상 정면으로 총병대를 들이치기 어렵고..
전쟁 그 자체야 잔혹하기 짝이없는 것이지만 여하간 현대의 전투에 비해 이때까지만 해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고 보네요. 흡사 카드게임, 팻감 싸움 같은? 그런 느낌이 있죠.
13/07/02 02:42
어떻게 보면 고만고만한 병력으로 고만고만하게 싸웠던 중세-근대초기까지의 전쟁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크크크..
30년 전쟁은 그중에서도 백미... 월드워가 그래서 공부하면서 기분 나쁘게 느껴졌던걸까요...
13/07/02 02:47
그런데 당시의 전쟁들도 아기자기했다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이, 참전자 규모로만 보면 (세계대전을 제외하고) 역사상 최대급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혁명전쟁 당시 1794년의 프랑스군은 무려 75만명(!)을 동원합니다.
13/07/02 02:49
그건 프랑스 동원력이 넘사벽이라 그런거라고 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크크크크~
육군력으로는 스페인을 능가하고 투르크와 맞먹었던 나란데~ 비교대상으로 적은게 프랑스가 그나마 유럽최강국이 아닐시절이군요~
13/07/02 02:30
현재의 관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화려한 군복들도 전열보병의 시대에는 나름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해 채택되었습니다.
본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전열의 유지를 위해서는 극한의 규율과 조직력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화려하고 특색있는 색채의 군복과 휘장은 병사들의 소속감과 자부심을 고취시킴으로써 부대의 조직력에 기여할 수 있었지요. 지금까지도 유명한 영국군의 "붉은 코트"는 이 시대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물론 산개, 은폐, 엄폐, 후장식소총의 도입, 화기의 사정거리와 연사력 강화는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예전의 화려한 군복들은 병사들을 최적의 표적으로 만들어주었고 보어 전쟁에서 보어군의 저격에 붉은 코트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 군복 디자인에도 대변혁이 일어납니다.
13/07/02 02:48
다른말이지만, 김용 선생의 위대함을 알려주는것이 의천도룡기 마지막권의 무림고수 vs 원나라군대의 묘사일겁니다.
개인으로는 몽고병을 쉽게 척살하고 경공을 펼치고 내력으로 사람하나 죽이는게 일도 아닌 고수들이 잘훈련된 군대와 만나자마자 죽죽죽 밀리는 모습.. 전열함 하니까 갈레아차가 생각나는군요? 그래봐야 그시대 대양해전이 아니라 연안해전이면 해안포 버프받으면 필승에 가까우니.. 거함거포주의가 현대에 나온말이 아니지 말입니다~
13/07/02 03:07
군인과 민간인의 차이는 걸을때 옆사람과 발을 맞출 수 있느냐 하는 사소한 것...
피마새에는 이런 비슷한 말도 나오죠 아마.
13/07/02 09:45
현 군대에서 하는 제식 훈련이라는게 저 시대에나 필요한 구닥다리 훈련이라고 봐도 무방한 걸까요?
항상 제식한다 그럼 드는 생각이 "이렇게 일렬로 발맞춰서 종종종 걸어댕기면 싹다 긁혀 죽을텐데" 였습니다. 요즘 제식훈련은 머하러 하는건가요 진짜;;
13/07/02 10:39
제식훈련은 군기관련 문제때문에... 제식은 명령 똑바로 알아듣는 교육의 일부니까 아마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제식훈련도 점점 줄어들 예정이라고 하긴 합니다.
13/07/02 09:47
글 잘 봤습니다. 댓글들을 보니 소개하고픈 블로그가 생각나네요. 다음 토탈워 까페에 학생의 근세전쟁사라는 제목의 게시판으로 글을 연재하신 분의
블로그 입니다. http://blog.naver.com/ggacn
13/07/02 10:08
은근히 무시되는게 전쟁터 나가면 가장 살아 돌아오기 힘든 시대가 라인배틀 시대입니다.
몇만 씩 붙어도 손실률 60%~70%가 넘어 가는 건 대다수고 막장 스러운 전투는 80~90%도 찍습니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 나폴레옹 시대에 징집되는거보다 차라리 1차대전 서부 전선 병사로 징집되는거 더 살아올 확률이 높습니다. 사실 보기 보다 낭만적인 시스템은 아니라는 거죠.
13/07/02 10:16
거기다 전열보병은 전쟁나가서 죽는게 훈련보다 편하다는 소리가 있죠 훈련때 가혹행위에 구타에 갈굼에 어휴..나폴레옹시대 프랑스도 혁명의 열기가 꺼질 때쯤이면 청년들이 병역기피하려고 앞니뽑고 검지자르고 별짓 다했죠. 결국 사람사는데는 다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13/07/02 12:25
미국 역사상 D데이 이전 히루 최대 사상자를 낸 앤티덤도, 악몽이나 다름없는 프레데릭스버그의 살인기계도, 저 유명한 게티스버그의 피켓 차지도 그정도 손실은 낸 적이 없습니다만.
13/07/02 14:07
워털루 7만 중 5.8만 사상(프랑스군) 찾아보면 순수 사상만 30% 정도가 기본이고 보로디노도 50%를 넘깁니다.그리고 전역으로 따져 보면 이보다 더 큰 피해도 수두룩 하죠.
13/07/02 18:57
패군에 당연히 뒤따르는 전과확대의 영향일 뿐입니다. 영-프러시아 연합군은 매우 아슬아슬하게 이겼지만 사상자는 11만이 넘는 전체 군에서 2만 5천 정도였습니다. 오로지 패전한 군대의 피해만 놓고 따진다면 칸나에 전투 내지는 자마 전투의 예를 들어 고대의 전투는 사상자가 70퍼센트를 넘어간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13/07/02 12:05
제가 전열보병 중 한 사람이었다면 이라는 상상을 했을때 두 가지가 문제인데...
1. 현대전에 비하면 코방귀나오는 유효사정거리에 이를때까지 적에게 다가서야 하고 2. 통제가 있을때까지 총을 안쏘고 참을 수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걸 가능하게 하려면 훈련이 얼마나 가혹했을지...
13/07/02 12:27
아이러니네요. 총포의 등장으로 전문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엘리트 군인인 기사가 몰락했는데, 뒤이어 등장한 군대도 효율을 뽑기 위해 오히려 중세 기사의 개인적 수련의 영역보다 더한 집단 훈련을 받다니...
13/07/02 13:39
제일 위에 나오는 퐁트누아 전투 저때에는 머스킷 소총의 연사속도가 2발/분;;;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영국군만 실탄(!)을 이용한 훈련을 해서 타 국가 군대보다 연사력이 조금 좋았다고 하더군요. 타 국가는 그냥 나무조각(안습;;) 가지고 사격연습을 했다고 하구요. 그리고 유효사거리는 80~100미터 내외였습니다. 이걸 벗어나면 쏘나마나였죠 -_-;; 명중률이 안습of캐안습이라.. 그러니까 저렇게 서로 먼저 쏴라는 상황이 나온겁니다. 상대가 먼저 쏘면 재장전 할 무려 20~30초동안 이동해서 훨씬 더 근거리에서 화력투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시면 동시에 명령에 따라 한번에 쏘는데 이 이유는 마찬가지로 진형을 깨뜨리기 위함이었어요. 한발씩 단발적으로 공격을 받는 것 보다 상대가 한꺼번에 동시에 사격해 오기 직전의 공포감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기 때문에, 동시에 사격하는게 진형을 깨기가 쉬웠죠. 그리고 1차 대전때 미국 유럽원정군의 사령관이었던 퍼싱이 라이플(현대의 단발성 반자동 소총)로 무장한 보병들한테도 -0-;;무려 전열보병 형태의 전투를 요구해 어마어마한 피해가 나서 당시 사단장이었던 맥아더가 미친 짓거리 당장 그만하라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죠.
13/07/02 18:01
분당 2발의 저런 머스켓티어 2천명을 상대하기 위해 머스켓티어 2천명을 양성하느니 농민 2만명 불러다가 창 하나씩 쥐어주는게 효율적일 것 같아요 -0-
13/07/03 03:57
중국도 서양식으로 군을 개편한 뒤에는 똑같이 저렇게 싸웠습니다. 청나라쯤 되면 워낙 나라 자체가 문제여서 군사력도 제대로 동원 못 하는 수준이었고요.
13/07/03 04:38
아~주 예전에 잠시 취미 삼아 중세 배경의 소설(...)을 쓴 적이 있었던지라 중세~근대 전쟁 관련 자료를 제법 탐독했었죠. 그런데...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 몇 권으로는 어림도 없더군요. 마침 주변에 이쪽에 통달한 분들이 계셔서 온, 오프라인을 통해 귀동냥을 좀 했었는데 무척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아련한, 그리고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