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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29 23:43:19
Name 아마돌이
Subject [일반] [반픽션 연애스토리] 봄, 여름, 가을, 겨울 (1)
<이 이야기는 창작으로 지명, 인물등은 실제와 관계 없습니다.>

첫 번째 봄(1)

몇 년 전이더라?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 하지만 정확히 기억하려면 손가락으로 세어봐야 할 딱

그 정도 해 전에 나는 C대학교 토목공학과 신입생이었다. 토목공학과를 지원한 이유는 과학 중에서 물리를

유난히 좋아했던 나에게 취직이 어렵지 않고 전망이 나쁘지 않다는 담임선생님의 추천 때문이었다.

내 생일은 1월로, 흔히 말하는 빠른 생일이라 19살도 아니고 20살도 아닌 애매한 나이었다. 다른 평범한 신입

생들처럼 집에서 나와 생활해 본 적도 없고, C대학에 친한 친구가 같이 간 것도 아니었고, 내가 살게 된 기숙

사 근처에 도움 받을 만한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때 나는 아무런 걱정도 없었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개강 첫 날 나는 아직 익숙지 않은 지하철에서 환승 하려고 헤매다 지방에 급한

일로 내려가야 하는데 지갑을 잃어버려 곤란해 하던 말끔한 회사원을 만나 차비 30000원을 빌려주고 전화번

호를 받았다.

다음날에는 학교 지리를 익히려고 이 건물 저 건물 둘러보다 나를 불러 세운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와 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한 손에는 필요도 없는 TOEFL 테잎과 교재가 들려 있었고,

다른 손에는 한 달 용돈에 달하는 청구서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 달 동안 기숙사 밥만 먹어야 했다. 덕

분에 나는 학교 동아리를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신입생 오티에는 다녀왔기에 같은 학과 같은

분반 친구들과는 어느 정도 친해질 수 있었지만 하나 둘씩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고 곧 나는 혼자가 되었다. 사

실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성격이 썩 적극적이지 못한 탓으로 동아리 신입생 모집 기간을 놓쳐버린 영진이

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영진이는 본래 서울 사람이라 기숙사생이 아니었고 영진이가 집에 가면 나는 기숙사

같은 방에 사는 형들 외에는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형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10시 11시에

방에 들어오는 일도 드물었다. 알바를 해야 하나? 내가 생각했던 대학 생활은 이게 아니었다. 이제 겨우 한 달

도 지나지 않았는데 인생에서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친구 따라 뒤늦게 동아리에 가입하는 신입생들도

종종 있었고 나도 몇 번인가 권유를 받았지만 왠지 모를 자존심에 공개 모집 기간이 지난 동아리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들어가고 싶은 동아리가 없었다. 그렇게 3월이 지나갔

다. 개나리가 슬슬 지고 벚꽃이 피기 시작할 즈음 교양 수업 때문에 지나던 인문대에서 조그맣지만 흥미로운

벽보를 만났다.

‘C대학, E대학, K여대 연합 스쿼시 동아리 CIS 10기 신입생 공개모집.
자격제한: C대, E대, K여대 재학생이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4월 21일 토요일 오후 1시 C대학 인문대 대강의실. 사정상 시간에 맞추기 힘드신 분은 [회장: 011-xxx-oooo, 부회장: 017-ccc-vvvv]으로 전화 주세요. '  

연합동아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건 마치 나를 위해 누군가 준비한 선물 같았다. 스쿼

시라면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에서 쳐 본적이 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리고  연합동아리 라니까 혹시 그만 두게 되더라도 두세 군데 문어발식으로 동아리에 가입했다가 혼쭐이 나

고 있는 같은 분반 친구인 세호나 동아리 선배와 심하게 싸우고 강제 탈퇴 당한 후 그 선배의 동기인 우리

과 선배들과의 관계를 곤란해 하고 있는 한영이처럼 힘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강렬해 지면서 내가 한 일은 영진이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영진아 한번 같이 가주기만 해라. 그리고 스쿼시 몇 번 해봤는데 진짜 재밌다니까! 나 도저히 혼자는 못가겠어. 첫주만 같이 가주면 그 담부터는 귀찮게 안할게. 부탁이야.”
    
“아 난 그런거 하기 싫은데 진짜. 난 스쿼시 해본 적도 없고 동아리도 별로 생각 없다니깐. 그런거 해봤자 괜히 돈만 아깝고 시간만 아깝다.”

하지만 멀리서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학교 인데다 연합 대학에 K여대도 있다는 내 설득에 결국 영진이는 딱

한번만 이라는 조건부 승낙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주 토요일 인문대 대강의실에 들어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선 그날 모인 신입생들이 70명이 넘는 다는 사실에 놀랐고, 우리를 맞이하는 선배들이 또 그 정도

나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고, 70명의 신입생 중에 60명 가까이가 여자라는 사실에 마지막으로 놀

랐다. 당시 우리 분반 40명 중에서 여학생은 1명이었고 그나마 여학생이 없는 분반도 있었으니까. 그렇다! 세

상에는 여자가 이렇게 많이 있었던거다. 우리 학교에서 설명회를 한 이유는 시설 좋은 스쿼시장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튼 1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는 대강의실은 북적대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70명에 달하는 신입생들과 그에 맞먹는 숫자인 기존 회원들은 (준비를 위해 먼저 출발한 선배들도 있었고

신입생 중에 중간에 빠진 사람도 있었지만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하철로 근처의 스쿼시장으로 향했다.

대기실에서 선배 2명에 신입생 2명씩 4인씩 조를 편성해 기본적인 룰과 치는 법을 배우고 4인이 한 코트에서

선배들에게 배우면서 경기를 했고 뒷 조는 앞 조가 치는 동안 선배에게 배우면서 앞 조의 경기가 끝나면

교대로 뒷 조가 들어가 경기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특히 신입생들의) 시선은 맨 끝 방에서 정말

멋들어지게 공을 주고받는 두 남자 선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때는 순수한 동경으로 나도 저렇게 멋있고

싶었다. 폭풍처럼 2시간이 지나고 뒤풀이 장소로 이동을 했다. 다음 날 나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나는 술을 그다지 못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잘 마시는 편은 아니라는 사실.

둘째는 나는 많이 취하면 필름이 끊긴 채 활동하다가 거기서 더 마시면 기절해 쓰러지는 술버릇이 있다는 사실.  

셋째는 이 동아리의 약칭인 CIS는 어쩌구 저쩌구 스쿼시로 끝나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참이슬의 약자라는 사실.

다음날 나는 기숙사 근처 잔디밭에서 발견되었다.


덧' 1. 생각보다 글 쓰기가 훨씬 힘드네요. 앞으로 글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분들을 존경하겠습니다.  
     2.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실화 80%, 창작 20%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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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푼 카스텔
13/03/30 18:49
수정 아이콘
크크크 신입생의 어리버리함이 잘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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