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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2/26 11:59:05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86년 멕시코 월드컵 - 첫 득점...첫 승점...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월드컵은 86년 멕시코 월드컵입니다. 시기상으로만 보자면 82년 스페인 월드컵도 어렴풋이 기억이 날 만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저희 집에 TV가 없었기에 제대로 중계를 본 것은 86년 월드컵이 최초였습니다. 마침 우리나라가 32년 만에 본선에 진출했기에 대중들의 관심도 대단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야 항상 강호 소리를 들었지만 세계의 강호들과는 본격적으로 싸워 볼 기회조차도 없었으니 이제야 말로 우리의 위치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였고 은근히 16강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본선 운은 그리 좋지 못해서 조 추첨에서 A조에 배정을 받았는데 같은 조에 전 대회 우승팀인 이탈리아와 동유럽의 강호 불가리아, 그리고 축구 천재 마라도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가 들어오는 바람에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조에서 싸우게 되고 만 것이지요.  

조별 예선 첫 경기는 아르헨티나하고의 경기였는데 한 마디로 마라도나에게 완전히 농락당한 경기였습니다. 그의 현란한 드리블에 한국 수비수들은 구멍 난 창호지마냥 슝슝 뚫렸고 마라도나의 발끝을 떠난 공은 마치 자석이라도 붙어 있는 듯 자기편 선수에게 정확하게 연결이 되었습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중학교 팀과 고등학교 팀의 경기 같았다고나 할까요? 전반을 2대0으로 끝낸 한국은 후반 시작하자 마자 또 다시 한 골을 허용하며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계의 벽은 너무 높았죠. 그래도 후반 막바지에 한국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쓰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박창선 선수가 중거리 슛으로 득점을 한 것이지요. 한국 팀의 월드컵 본선 첫 골이었습니다.



한국 vs 아르헨티나 하이라이트...


두 번째 경기는 불가리아와의 대전이었는데 객관적 전력으로는 물론 열세였지만 그나마 우리 조에서 불가리아팀이 비벼볼 언덕이었지요. 경기 당일 비가 억수로 쏟아져서 선수들이 진흙탕에서 축구를 하다시피 했고 이런 점이 오히려 앞선 기량을 가진 불가리아 선수들에게는 다소 불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전반에 골기퍼의 펀칭 미숙으로 인해 실점을 하게 되었고 경기는 밀고 밀리는 양상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이 경기만큼은 질 수 없다는 각오가 대단했기에 평소 기량의 120%를 발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후반 25분 비운의 축구 천재 김종부 선수가 뒤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정확하게 가슴 트래핑 한 후 침착하게 골문 구석으로 차 넣으면서 동점골을 이끌어 냅니다. 그 뒤로고 경기는 일진 일퇴를 거듭했지만 결국 무승부로 마무리 되었지요. 한국 팀의 월드컵 본선 첫 승점이었습니다. 비록 1점이었지만 소중한 점수라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한국 vs 불가리아 하이라이트...


마지막 경기는 전 대회 우승팀이자 역시 강력한 우승 후보들 가운데 하나였던 이탈리아. 이 경기가 한국의 본선 세 경기들 가운데서는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전반 17분 알토벨리 선수에게 실점을 하면서 역시나 어렵게 경기가 흘러갔고 여러 차례 추가 실점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지요. 하지만 한국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후반 67분 최순호 선수가 페널티 박스 모서리 부근에서 벼락 같은 중거리 슛으로 동점을 만든 것이지요. 정말 멋있는 슛이었고 나중에 86년 멕시코 월드컵 10대 골에도 선정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 한국은 여전히 수비 불안을 노출하며 두 골을 연달아 헌납하고 말았습니다. 후반 종료 직전 허정무 선수가 만회 골을 넣었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경기는 그대로 2대3 한국 팀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지요.



한국 vs 이탈리아 골 모음...(외국방송)


32년 만에 처음으로 나간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 축구는 우물 안 개구리였음이 증명되고 말았습니다. 세계의 벽은 높고 두터웠지요. 하지만 그 당시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나 악착 같은 면은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적어도 불가리아와의 경기는 대등했고 전 대회 우승팀인 이탈리아를 상대로 2골이나 뽑아낸 것은 평가를 받을 만 했다고 봅니다. 실질적인 한국 팀의 월드컵 본선 무대 첫 등장 치고는 나쁘지 않은 활약이었습니다.

86년 멕시코 월드컵 한국 대표팀
단장: 한홍기
감독: 김정남
코치: 김호곤
GK: 오연교, 조병득
필드 플레이어: 조영증, 정용환, 박경훈, 정종수, 김평석, 조민국, 유병옥, 김용세, 조광래, 박창선, 노수진, 허정무, 김삼수, 강득수, 이태호, 김종부, 김주성, 변병주, 최순호, 차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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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정미소년
13/02/26 12:41
수정 아이콘
저 때 초등학생이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경기를 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탈리아 전 마지막 골이 슬라이딩 하던 우리 수비수 팔 맞고 들어간게 두고두고 아쉬웠던..;;
그 당시는 2무였으면 16강도 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왜 Adobe Flash Player 동영상 안뜨는게 이렇게 많을까요;;
최신 업뎃도 다 했는뎅ㅠㅠ
은솔율
13/02/26 18:03
수정 아이콘
이탈리아전 마지막 골 허용때 손에 맞은 우리편 선수는 제 기억이 맞다면 조광래 입니다.

또 실지로 우리와 한 조 였던 불가리아가 2무로 16강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불가리아는 월드컵 출전 역사상 본선에서 한번도 승리해보지 못한 팀이였구요..그랬기에 불가리아 입장에선 월드컵 본선 첫승 제물로 대한민국을 노렸을텐데 우리와의 무승부는 정말 뼈아팠을 겁니다. 불가리아의 월드컵 본선 첫승은 94 미국 월드컵이었는데..8강까지 진출하더니 8강에서 독일(맞나?)을 꺽고 4강에 진출하여 최종 순위 4위를 차지하지만..98프랑스월드컵에서는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며 전대회 4강 진출국 중 하나는 차기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재연하기도 했습니다.
화잇밀크러버
13/02/26 12:44
수정 아이콘
오 우리나라의 월드컵 첫 득점 장면은 처음 보네요.
sprezzatura
13/02/26 12:59
수정 아이콘
그래도 저 대회에선 매 경기 득점하며 분전했네요.

거의 선사시대였던 스위스 월드컵을 제외하면, 가장 참담했던 월드컵은 90이탈리아 대회였지 싶습니다.
곡물처리용군락
13/02/26 13:22
수정 아이콘
90과 98이 헬이였죠..
98은 아시아 전체가 암흑 그자체였습니다만..(2002부터 아시아가 두각을 나타냈죠)
13/02/26 13:47
수정 아이콘
2002도 개최국 둘을 빼면 시궁창이었으니...
possible
13/02/26 13:43
수정 아이콘
첫 1승은 2002년 폴란드 전이죠?
1승하기도 너무나 오랜시간이 걸렸네요...
그리고 거짓말같이 4강까지....정말 이런날이 또 올까요?
Contax_Aria
13/02/26 14:00
수정 아이콘
중간에 그래도 차붐의 돌파는 확실히 움직임이 다르고 좋네요.

오랜만에 보는 치고 달리기의 일인자였던 변병주의 사이드 돌파도 감회가 하하..
주력이 정말 빠른 윙어를 보유하는건 한국 국대의 전통이었죠.
어설픈 뻥 크로스와 매끄럽지 못한 드리블 능력, 그럼에도 그때는 그렇게 그냥 빠른 선수를 선호했었습니다.
당시의 한국은 사실 윙과 포워드의 구분이 모호했던 그런 선수들로 넘쳐났죠.
지금이야 윙포워드라고 정의 하지만 그땐 그런 개념이 없었죠.

82년 월드컵은 당시 애초에 티비중계 자체가 안되었습니다.
스포츠 뉴스에 하일라이트만 나왔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살았었는데 운좋게도 집에 일본 위성방송이 있어서
그걸로 월드컵을 볼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던것 같은데...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의 저 시절은 그냥 차붐의 위엄이 정말 쩔어주던 기억이 나네요.
동네 아이들과 골목에서 동요에 차범근 이름을 넣어서 부르던 그런 시절요.
13/02/26 14:35
수정 아이콘
저도 그생각이 나더라구요.
2분 10초경인가 차범근이 돌파하는 장면보고 86년이면 거의 선수생활 말년이였을텐데도 저런 돌파가 되는구나...
13/02/26 15:18
수정 아이콘
몇경기는 해줬던걸로 기억납니다. 아버지와 같이 결승전을 새벽에 본 기억이 있네요.
honnysun
13/02/26 16:16
수정 아이콘
조병득 키퍼..
pk때마다 기도한다고 시간 무지 잡아먹었는데...
은솔율
13/02/26 18:04
수정 아이콘
86때 예선 세경기는 모두 오연교가 출전했습니다. 조병득 키퍼는..소속도 할렐루야였죠..
그리메
13/02/26 17:01
수정 아이콘
제가 티비로 본 첫 월드컵이군요. 마라도나의 잉글랜드 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였습니다. 신의손부터 6명 제끼고 넣은 신의 드리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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