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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2/26 01:08:09
Name 화잇밀크러버
Subject [일반] 해를 맴도는 지구, 지구를 맴도는 달
아주 오래된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정도로 옛날, 신이 훗날 태양계라 불리는 우주를 만들었을 때이다.  우주가 만들어졌고 수없이 많은 별들이 우주 안에 생겼났으며 그들 중에는 해와 달 그리고 지구가 있었다. 가까이서 태어난 그들은 곧 친해져 친한 친구사이가 되지만 그 친함은 시간이 흐르면서 애정으로 변화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는 크게 변한다. 해와 달이 동시에 지구를 사랑한 것이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별들의 법 때문에 지구는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만했고 그에 따라서 해와 달의 사이도 점점 멀어졌으며 급기야 서로를 질투하고 시기하기 시작했다. 신은 사랑때문에 갈라져버린 그들의 우정을 안타까워하며 셋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해와 달에게 말한다.

"너희 둘 다 지구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구가 누구를 선택해야할 지 고민 중인 사이에 너희는 너무 멀어졌구나. 절친했던 둘이 원수지간이 되어버린 것을 보자니 내 마음이 아프다. 지구가 언제 결정을 내릴 지 모르니 난 너희 중 하나가 그를 포기하는 것이 좋을 듯 싶구나."

"전 그를 포기할 수 없어요."

달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해는 고심을 담은 복잡한 표정으로 신을 바라보았다. 그런 해를 보며 신은 제안을 했다.

"지구를 포기하는 별에게는 여러 별을 거느릴 수 있는, 이 우주에 강력한 힘을 지닌 별로 만들어 주겠다. 그래도 계속 지구만을 원하느냐?"

신이 말을 마치자 해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를 포기하죠."

신과 달은 그 대답에 화색이 돌며 기뻐했다. 신이나 달 모두 태양이 그렇게 쉽게 지구를 포기할 지 몰랐는데 예상외로 순순히 지구를 놓아준 것이 놀라웠다. 그러나 태양에게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태양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이 그렇게까지 지구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종의 위기의식이라고 해야할까. 달이 지구를 차지하면 혼자남게 될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던 것이다.

달의 사랑을 깨달았을 당시의 태양은 무척 화가 났다. 셋인 체 그대로 서로 균형을 맞추면서도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는데 지구를 독차지하여 자신을 홀로 남기려고 한 달에게 분노를 느낀 것이다. 그런 달에게 지구를 내주고 자신만 혼자가 된다면 자신조차 용서치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태양은 지구를 원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분명 사랑의 감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그만큼의 추억이 있었까. 그러나 그 사랑은 자신에게 주어질 강력한 힘의 매력을 막아낼 만큼 두껍지 않았고 저울질을 해보니 추는 지구를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었기에 힘을 선택한 것이다.

태양이 지구대신 힘을 선택했기에 지구와 달은 자연스레 연인이 될 수 있었다. 본래 지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간절히 그를 갈구했던 달은 지구에게 헌신적이었고 자신이 깍여지고 빛을 잃을 지언정 지구를 위해서라면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지구는 보다 나은, 아름다운 별이 되며 찬란한 빛을 발했지만 달은 작고 추레해져만 갔다.

지구는 아무리 그를 돌봐주다가 볼 품 없어졌다지만 빛도 미약하고 크기도 작아져버린 달에게서 사랑의 감정이 식기 시작하고 대신 그를 버리고 힘을 원한 것도 모른 체 강렬한 빛을 발하며 은하를 비추는 태양에게 마음이 기울어져버린다. 달은 언제나처럼 지구를 위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받쳤지만 지구의 시선은 우주 중심에 위치해 이글거리는 태양에게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잘못된 방향으로 삐뚤어져버린 그들의 관계를 신이 곱게 볼 리 만무했다. 바보같이 지구에게만 집착하며 자신을 망가뜨린 달에게도 짜증났고 그런 헌신적인 사랑을 받고도 태양에게 눈이 돌아간 지구에게 화가 났다. 간단하게 사랑을 버리고 힘을 택한 태양도 좋게 보이지 않았다. 만약 지구와 태양이 맺어진다면 그 결과에 대한 분노로 둘을 박살낼 지도 몰랐기에 차라리 신은 셋을 영원히 갈라버려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셋이 일정거리 안으로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 때문에 지구도 달도 사랑하는 님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계속 사랑을 못잊어 그 주위를 빙빙 돌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지구는 태양 주위를, 달은 지구 주위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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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26 01:12
수정 아이콘
어제 밤에 아들에게 사과는 지구로 떨어지는데 달은 왜 떨어지지 않는 지 한참 설명했는데, 역시 이런 게 이과와 문과의 차이군요.
화잇밀크러버
13/02/26 01:14
수정 아이콘
제게 과학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하면 달은 원래 빙빙 돌면서 도망가려고 하는데 지구가 널 잡고 있듯이 달도 잡아서 계속 빙빙 돈다고 밖에 못할 겁니다. 흐흐.
13/02/26 01:19
수정 아이콘
과학에서는 그걸 좀 자세히 풀어쓰긴 하니만, 사실 말씀하신 것이 정답입니다.
좋아요
13/02/26 01:18
수정 아이콘
오~ 명문이네요.
13/02/26 01:2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문과적 관점으로 보면 이런 상상도 가능하군요...
공대생인 저는 그냥 mv^2/r만이 생각날 뿐입니다. 넵. 흑흑.
몽키.D.루피
13/02/26 02:22
수정 아이콘
태양과 달의 겉보기 지름이 거의 같은 건 참 신기합니다. 태양의 1년과 달의 1년(12번 공전)이 엇비슷한 것도 신기하구요. 덕분에 해/달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고 양력/음력도 생겼고 태양을 숭배하는 종족과 달을 숭배하는 종족이 생겼고 국기에 태양이 있는 나라와 달이 있는 나라도 생겼고 밝은 역사(정사)와 어두운 역사(야사)가 생겼습니다.
인간의 정신 세계에 이원론이 생긴 이유는 어쩌면 낮/밤, 해/달의 극명한 대립에 의한 자연스러운 정신 현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글링아빠
13/02/26 03:04
수정 아이콘
신이 잘못했네...
태연O3O
13/02/26 03:24
수정 아이콘
으앙 ㅠ
아이유인나
13/02/26 04:05
수정 아이콘
역시, 신은 어디에 나오든 참 쪼잔한 양반입니다.
절름발이이리
13/02/26 09:27
수정 아이콘
굿
설탕가루인형형
13/02/26 09:49
수정 아이콘
사랑의 감정이 식어가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거군요...
13/02/26 22:41
수정 아이콘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이럴 때 적절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해몽이라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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