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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1/14 20:26:58
Name 리니시아
Subject [일반] 아버지의 뺑소니와 합의금. 그리고 영화 피에타
12월 중순 제 아버지는 뺑소니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야간 당직을 서기위해 지하철에서 나오셔서 신호등을 제 신호에 건너려는 차에,
퀵서비스를 하는 오토바이에 치이셨죠.

운전자는 내려서 '당신이 신호 위반하고 갑자기 뛰어나왔다' 라는 헛소리를 하자 뒤에계신 목격자가 '뭔소리냐 지금 파란불인데?'
라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버지의 미간쪽에서 피가 철철 흐르셨답니다.
그러자 운전자는 오토바이에 탔고 당연히 병원으로 대려다 주려는줄 알았는데 줄행랑을 쳤답니다.

아버지는 정신이 혼란스러운 그 상황에서도 오토바이의 4자리 숫자를 정확히 기억하시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근처 약국에 들어가 바로 그 번호를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겨우겨우 혼자 병원에 가시고 경찰서에 까지 가서 신고를 했습니다.


그 번호를 가진 오토바이가 우리나라에 1천대 가까이 있답니다.
번호가 정확한지도 경찰관들은 의심하였고, 번호 바꾸면 그만이라고 잡기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수사를 하겠다고 하셨죠.
'삼륜차와 번호 네자리' 딱 그 두가지 가지고 몇주정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전치4주 부상을 당하셨지만 사정이 있으셔서 어쩔수없이 택시를 타고서라도 직장을 가셔야 됐습니다.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당장 2월달 누나의 결혼식이 있는데 큰일 앞에 두고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저번주 월요일 1월 7일 범인이 잡혔습니다.
번호와 퀵서비스에 관련된 오토바이 그리고 삼륜차 라는 단서로 잡았다고 하시더군요.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가해자와 합의를 위해 만나서 법무소에 갔습니다.
첫 인상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전혀 사람 치고 도망갈 인상이 아니었습니다. 연배도 저희 아버지와 동갑이셨고 죄송하다고 연발을 하시더군요.
저도 너무 화가나서 만나자마자 진짜 윽박 지르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려고 준비를 했다가
나이도 드신분이 고개숙이면서 정말 죄송하다고 연발하시는데 한숨만 나오더군요.


합의서를 작성하는 도중 언성이 좀 높아졌습니다.
가해자가 분명 자기는 신호가 빨간불이 될떄쯤 사고가 났다고 어이가 없는 소리를 하시더군요.
그리고 합의금 외에 '후유증이 생길시 그에 대한 부담' 에 대해서도 봐달라는 투로 말씀을 하시더군요.
뭐 고성이 오가긴 했지만 원래 합의보기로 한대로 해결 봤습니다.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합의금' 이라는게 참 아이러니 하게 느껴졌습니다.
치료비와 그외 항목이 이사건으로 인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위해 주는 돈.
그리고 그걸로 끝.

너무나 씁쓸했습니다.
물론 자신이 잘못했고 용서를 비는 의미긴 했지만 '재수없게 돈만날렸네' 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리고 오늘 오랫동안 보려고 마음먹었던 피에타 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주인공이 사채업자의 하수인으로 정해진 돈을 못받으면 몸을 불구로 만들어서 그 보험금으로 빚을 매꾸더군요.

극중 여주인공이 돈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내립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지.. 사랑, 명예, 폭력, 증오, 질투, 복수, 죽음'

아직 사회의 발도 못 디뎌본 제가 오늘 느껴본 감정이었습니다.
합의금이라는 돈..



PS 1. 혹시라도 사고내시면 뺑소니 치지 마세요. 정말 당한 가족들 가슴 아픕니다.
          그리고 정말 악연입니다. 저와 저희 가족이 무엇 때문에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와 원수를 지고 싶겠습니까..
          정말 이 세상에서 두번다시 마주치고 싶지가 않습니다.

PS 2. 김기덕 감독 영화를 많이 보지만 피에타 만큼 강렬한 미장센을 연출한 영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관심이 가시는 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과 '아리랑' 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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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14 20:37
수정 아이콘
합의금은 뜯을수 있을 때 최대한 뜯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뼈랑 살은 좀있으면 다시 붙지만 화병은 진짜 오래가거든요.
리니시아
13/01/14 20:46
수정 아이콘
남들이 어느정도 받는 금액이다 하는 정도 이상 받아서 괜찮게 마무리 됐다고 생각됩니다.
그와중에 합의금으로 어떻게 아웅다웅 하려는 가해자의 모습때문에 참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흐콰한다
13/01/14 21:25
수정 아이콘
그저 부친께서 몸도 마음도 빨리 회복하시길 바랄 뿐이네요.
리니시아
13/01/14 21:5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다행이 범인도잡고 사건이 잘 마무리되어서 아버지가 안도하시고 마음 놓으시는 모습에 제 맘도 한꺼풀 내려가더군요..
흐콰한다님 아이디처럼 저희 아버지도 회복하셔서 얼렁 흐콰!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타츠야
13/01/14 22:09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습니다. 가족분들 모두. 위로의 말씀 드리고 그래도 큰 사고가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을 삼으세요.
힘내시고 앞으로 좋은 일들 많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고 살면 좋은 일들 많이 생깁니다.
리니시아
13/01/15 19:0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저도 꼭 우리가족에 좋은일만 생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타츠야님 가족도 좋은일만 생기셨으면 합니다~
이쥴레이
13/01/15 11:22
수정 아이콘
합의하고 합의금이 가장 깔끔하기는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가해자가 배째라는 식으로 와서 지금 소송중이고 골치가 아픕니다.

그래도 형사 민사 다 제대로 할려고 생각중입니다.
귀찮다고 지나가면 그사람 또 그런짓 할게 뻔하거든요.
리니시아
13/01/15 19:08
수정 아이콘
아아
괜히 저는 일 잘진행되놓고 뭔가 찝찝하다고 투덜대는 꼴 같아서 죄송스럽네요 ;;;
꼭 잘 해결되셨으면 좋겠습니다~
Lv1.크리미
13/01/21 16:47
수정 아이콘
아.. 저도 뺑소니 당했는데 그 때 부러진 발목이 아직도 느낌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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