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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1/10 00:03:32
Name 격수의여명
Subject [일반] 포스트모던적 멍청이
객관적인 진리와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믿음(모더니티)을 비판하며 등장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인 가치를 찾기 어렵고 이미지와 상징으로 가득한 포스트모던한 사회를 긍정하며 모더니티의 경직성을 깰 수 있다고 믿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중심이나 특권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원화된 세계에 대한 인식 불가능성을 주장하고 진리의 상대성과 다원성을 주장”하는 이념이다. 현대사회의 상대성과 가치의 다양성을 긍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식론적 불가지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설명을 보자마자 나의 정수박이에 들이박는 것처럼 ‘일베’라는 글자가 아로새겨졌다.

일베는 ‘일간베스트’라는 사이트의 줄임말이다. 인터넷 유머사이트이면서도 보수 편향적인 걸로도 유명한데, 정치적인 성향뿐만이 아니라 사이트 문화도 몹시 독특하여 하나의 인터넷 현상으로까지 취급된다. 기존 인터넷 문화의 권위적인 부분을 비판하며 또한 일반적인 가치 판단으로는 하기 어려운 유머조차 가치의 상대성을 일컬으며 유머소재로 삼는다. 나는 이 문화의 독특성을 ‘포스트모던적 멍청함’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다.
우선 일베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중심과 특권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크게는 정치성향에서부터 작게는 사이트 내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우선 크게는 인터넷에서 일반적으로 있는 반정부 성향이나 진보 성향을 혐오하며 ‘좌좀’(좌파+좀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또한 사이트 내에서도 일베 유저들은 어떤 훈계나 자신들이 즐기는 유머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을 싫어하며 ‘씹선비’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조롱하기를 즐긴다.
또한 인터넷 세계에 대한 공통 규범의 ‘인식 불가능성을 주장하며 진리의 상대성과 다원성을 주장’하며 일반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될 법한 극단적인 부분까지 유머의 소재로 삼는다. ‘노운지’(노무현 전 대통령)나 ‘최환희 개그’(최진실씨 아들)와 같은 고인 모욕적인 부분, ‘김치녀’나 ‘보슬아치’(여성성기+벼슬아치의 준말)와 같은 성차별적 용어, ‘5.18 광주 폭동’, ‘~~랑께’같은 지역을 차별하고 역사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는 식이다. 이러한 부분에 공격이 들어오면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건지”라는 말로 넘어가는 식이다.
사실 이것은 일베의 문화 중에서 얌전한 것을 챙겨 온 것이지만, 이 용어들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아마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일베의 일종의 ‘포스트모던’한 논리가 사실은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감정으로 바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인 권위의 해체와 다원성의 존중을 통해 소수자의 억압, 환경문제, 소외등의 현대 사회 문제 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절대적인 권위의 해체와 모든 논리의 무차별적인 존중은 상대방의 정당한 비판을 모두 차단하는 ‘불통의 논리’, 자신의 행위를 다원성의 잣대로 정당화하는 ‘합리화의 논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익명 인터넷 사이트라는 법이나 사회적인 제제가 어려운 일종의 포스트모던한 환경에서 생겨난 일베라는 ‘포스트모던한 멍청이’들은 나의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일베라는 유머사이트를 일종의 포스트모던 정신에 비추어서 해석했을 때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긍정적인 시각보다 그에 비판적인 시각들이 더 옳아 보인다. 유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권위에 대한 부정, 가치에 대한 부정은 유연하고 평등한 문화를 낳았다기 보다는 극단적인 행동에 대한 합리화와 극단적인 불통성을 낳았을 뿐이다. 이성적인 논리와 합리적인 가치의 다수에 의한 강요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탈권위와 탈중심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어느 정도의 공통된 가치와 도구적인 합리성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적어도 일베라는 사례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한 이론보다는 그를 비판하는 이론에 따라 공통의 합리성을 구축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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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3/01/10 00:10
수정 아이콘
포스트모던을 정의한다는거부터가 멍청이스러운거긴한데 포스트모던신봉?자쯤되면 저처럼 멍청이라고 불리는것도 맞는거같긴해요

일베는 포스트모던적이라기보단 파괴주의 반달리즘 느낌이구요 제게는
Star Seeker
13/01/10 00:1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추천 꾹
13/01/10 00:29
수정 아이콘
홍세화선생이 똘레랑스라는 개념을 유행시킨지 한참 되었죠.
'내 생각과 다른것에 대해서 동의하진 않지만 다르기 때문에 차별받는것에는 같이 저항한다.'
요즘들어 틀림과 다름을 구별해야하고 다른것에 대해서는 가치관의 차이기 때문에 존중해야한다고 많이들 말하는데요.
하지만 선생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극우는 극단적이기 때문에 항상 엥똘레랑스를 불러오고 똘레랑스가 엥똘레랑스에게 똘레랑스를 보일수는 없는 법입니다.

"광신주의자의 열성이 수치스러운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된다" - 볼테르
그들 스스로 틀림과 다름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깨닫게 해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스터충달
13/01/10 09:46
수정 아이콘
후배중에 일밍아웃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가 일베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본문과 어느정도 통하는 면이 있네요.(이놈은 같은 이유로 성재기를 옹호합니다)
"현재 인터넷과 젊은 층은 극좌 성향이다. 따라서 일베와 같은 극우성향이 존재 하여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 자신이 일베를 지지하는 것은 전체적인 균형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제가 여기에다 대고
"그럼 가난한 사람이 부자돈 훔쳐서 쓰는 것은 부의 균형을 맞춰주니 괜찮은 거냐?"
라고 반문했죠.

포스트 모더니즘 까지는 아니어도 현대사회는 다원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봅니다. 허나 이러한 맥락속에서 조화와 균형이라는 목적때문에 옳고 그름을 간과하는 모습들이 종종 보여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짜 옳은 것이 무엇이냐? 그 마저도 상대적인 것 아니냐?'고 한다면 결국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답없는 싸움으로 귀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몸을 가진 존재라면 인명중시, 자유와 같은 인간 안에서 규정할 수 있는 절대적 선(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도스도전기에 보면 회색의 마녀라는 존재가 등장합니다. 영생의 주문을 통해(스포가 있으니 자세한 방법은 생략한다) 고대시대부터 그림자 속에서 역사를 조종해오는 존재이지요. 그녀의 목적은 로도스의 평화이고 그를 위해 로도스에 절대적인 균형을 유지하려 하지요. 그리고 그 와중에 일어나는 전쟁, 살육 등은 작은 희생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일베인 후배가 자신은 좌좀에 치우친 인터넷 세상에 균형을 가져온다는 말을 할때 회색의 마녀가 떠올랐습니다. 조화와 균형을 위해서는 양심마저 짓눌러도 된다는 발상은 파시즘과 다를 바가 없게 느껴지더군요.

물론 조화와 균형은 중요합니다만, 한쪽에서 똥을 만든다고, 반대쪽에서도 똥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생각해보면 서로 적으로 마주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 목적은 우리 사회의 발전인데 말이죠;;

탑에서 똥싼다고 봇에서도 똥싸면 안되는거 아니겠습니까? 둘은 결국 한팀인데 말입니다.
아이군
13/01/10 12:04
수정 아이콘
요새 말로 하자면 돼박?
13/01/10 11:38
수정 아이콘
글쓴이께선 결국 일베랑 포스트모더니즘을 모조리 묶어 비난하고싶으신것 같습니다. 우선 자주 운영진분들께서 특정 사이트를 타겟팅하고 펌하하는 이야기는 하지말라는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에 일베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고자 합니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을 의미있게 보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바보로 만드시는거 같아 약간의 변호를 하고싶습니다. 애당초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일종의 운동 경향을 하나의 코드로 해석하기도 난감합니다만, 글쓴이분께서 언급하신 탈권위나 해체만 두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탈권위, 해체는 절대로 방종을 추구하지도 않고, 방종된 상태로 만든 주범도 아닙니다.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게 포스트모더니즘주의자라고 언급하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생각 전부라고 성급한 일반화를 하고계시는거 같아 상당히 불편합니다. 간단하게 가장 유명한 해체주의자인 자크데리다만 언급해도, 그는 해체를 통해 모든 것을 방종상태로 두고자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절대성의 해체를 통해 모든 주체 사이에 설정된 위계질서를 재정립하고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타협'을 강조했습니다. 특정 사람들이 다원성을 자신의 가치를 표방했다고 해서 그 점만 묶어 포스트모더니즘과 동일하다, 봐라. 그러시면 과연 올바른 비판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장어의심장
13/01/10 12:34
수정 아이콘
그냥 그 사이트 자체가 이해가 불능입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자기들에게 남는건 뭘까요?

그렇게 해서 자기들에게 이득이 되는것도 아니고

겨우 그깟조롱하면서 사회 낙오자로 찍히면서까지 거기서 그러는 이유가 궁금해요.

뻔히 지들 인생 망하는거 보이는데 말이죠
무플방지위원회
13/01/10 12:37
수정 아이콘
안타까운 건 지들이 정치적 성향 때문에 비난받는 줄 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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