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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27 10:51:30
Name 구밀복검
Subject [일반]  가리온 2집을 소개해봅니다.
미사여구를 늘어놓기 이전에 일단 한 곡 들려드리고 싶네요. 소음이다 싶으면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가리온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3이던 05년 경이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고, 제가 소개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1집 소개글을 읽고 찾아 듣게 되었지요. 물론 듣고 감흥을 꽤 많이 받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그렇듯이 당시에도 딱히 헤비 리스너가 아니었던데다가, 힙합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에 남기기는 했을지언정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진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유행했던 딱지치기 같은 것에 시일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무관심해지곤 하는 것처럼, 가리온 역시 제 뇌리에서 잊혀졌으며, 살아가면서 스쳐간 무수한 음악들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연속적인 관심을 두기에는, 딱히 신보가 나오지 않기도 했었고 말이지요.  
그런 상태로 수 년이 흘렀습니다. 대학과 군대를 거치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만치의 변화가 있었지요. 그 시간 동안 가리온은 한 번도 머릿속에 떠오른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게 보통이고 정상일 겁니다. 우리가 지금 접하는 것들 치고 향후 수 년 간 한 번 이상 심상에 떠오르게 되는 것들은 지극히 드무니까요.

그러다 지난 달 초, 우연히 가리온이라는 그룹이 아직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2집이 제가 공노비로 들어가 있던 재작년에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검색을 하는 것은 그리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손쉬운 일인지라, 유투브에 들어가 곡을 검색해보았지요. 그 때 처음 들은 곡이 바로 위에 올린 곡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두 달 동안 앨범을 재생하는 데에는 굳이 별도의 노력을 요하지 않게 되더군요.

1집도 처음 접했을 때 좋은 앨범이었다고 느꼈습니다. (최근에야 알았지만, 한국 대중 음악 100대 명반에도 선정된 바 있더군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연히 찾아본 앨범이 괜찮다는 정도의 인상이었지, 늘상 찾아듣고 싶다는 생각이 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2집은 달랐습니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마지막 곡을 들을 때까지 머리가 물통에 빠진 대걸레마냥 음악 속에 푹 젖어들더군요.
물론 저는 음률에 대해 조예가 있진 않으며, 특히 힙합에 대해서는 투팍과 같이 누구나 힙신으로 인정할만한 네임드들의 명곡이나 들어본 문외한에 가까운지라,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감상이 부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어떤 전문적인 관점이라든가, 가리온을 항상 주의깊게 살펴본 팬들의 입장과 같은 엄격한 잣대에 비추어보았을 때에는 미숙한 평가일 겁니다. 그리고 굳이 각 앨범을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고 싶지도 않고요.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어쨌거나 저에게 가리온의 2집은 장르를 불문하고 지금까지 들었던 여러 앨범들 중 한 손 안에 꼽을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단 한 곡도 망곡이라거나 버릴 곡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며, 특히나 7번째 트랙인 본전치기 이후에 영순위 - 판게아로 이어지는 구간은 지금 어떻게 묘사해야 밋밋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고민이 될 정도로 아름답더군요.






* 참고 삼아 곡 리스트를 올려봅니다.

1.         다만, 가리온           
2.         약속의 장소           
3.         산다는 게 (Feat. 선미)        
4.         복마전           
5.         객석 (Feat. 샛별)         
6.         수라의 노래           
7.         본전치기           
8.         영순위 (Feat. 넋업샨)         
9.         판게아 (Feat. P-Type)         
10.         술 푼 사슴                    
11.         그 날 이후 (Feat. 채영)         
12.         나는 소망한다           
13.         불가사리           
14.         생명수           
15.         소리를 더 크게 (Feat. Sean2slow)         
16.         12월 16일 (Feat. Lucy)         
17.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           



사실 아는 이는 어차피 다 알고, 모르는 이는 구태여 알 의욕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음악인데다, 딱히 신보도 아닌지라 소개하는 것이 상당히 저어됩니다만...특정한 대상에게 미감을 느꼈을 때 누군가와 이를 나누고 싶은 것이 원초적인 본능이고, 본능에 거역할만큼 완고한 사람은 드물며, 저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라, 한 번 소개글을 써봤습니다. 다행히 이전의 PGR 글들 중에는 가디언 가필패 같은 건 있어도 가리온은 가 字조차 언급된 적이 드물더군요 흐흐.

글을 돌이켜보니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과 영상 셋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점이 불만스럽네요. 설명력의 부족함이 절실히 느껴집니다. 하지만 요리사의 솜씨가 아무리 개판이라고 한들 재료가 정도 이상으로 좋으면 그저 굽거나 삶기만 해도 그럭저럭 맛볼만한 음식이 나오는 것처럼, 제가 늘어놓은 문장들보다는 영상들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줄 거라 믿습니다. 더불어 PGR의 견식있는 유저 분들의 코멘트가 이 스레드를 더 풍성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완성해주실 거란 믿음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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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7 10:57
수정 아이콘
저랑 비슷한 만남이시군요 가리온과 다만 전 이미 2년전에 만났다는 차이가 크크크
헤비힙합리스너들에게 1집 찬양을 들을때만 하더라도 나이도 어리고 너무 밋밋한 노래들에 별 흥미를 못느끼고 있었습니다
힙합이라봐야 DOC 5집으로 접해서 다듀나 찬양하고 있을 나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저도 2집을 접하고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2연재생을 했습니다. 무언가 쾅 맞은 기분
힙합으로도 이런 젖어드는 예술성을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죠(언니네 이발관 5집을 접했을 때와 유사하게)
모르겠습니다 설명을 하긴 어려운데 정말 명반입니다.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되네요
김성수
12/11/27 10:59
수정 아이콘
가리온 2집 정말 좋죠..
수없이 들었던 앨범중 하나인데, 아직도 '산다는 게'라는 곡을 들을때마다 뭉클한다는...
구밀복검
12/11/27 11:02
수정 아이콘
예... 앨범 초반부에 나오는 곡이 무슨 가사가 타이틀 곡마냥 무거운 무게를 주죠.
긍정_감사_겸손
12/11/27 11:08
수정 아이콘
가리온2집은 힙합플레이야에서 영순위가 가장 찬양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하스미세이지
12/11/27 11:13
수정 아이콘
산다는 게, 객석
이렇게 두 곡 정말 좋아합니다.
가리온 2집 하악하악....
구밀복검
12/11/27 11:20
수정 아이콘
본문에 트랙 17개를 다 올려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말 어떤 곡이든 버릴 게 없죠.
sprezzatura
12/11/27 11:24
수정 아이콘
뜬금없이 생각나는 cdppp의 펀치라인, "홍진호 베지터 나찰의 공통점은 2인자" 음..

제가 힙합을 처음 접한게 99~2000년 경인데 (주석, 일스킬즈 등이 득세하던)
그 당시에도 가리온은 큰형님 소리 듣던 팀이었습니다. 가히 힙합계의 화석이라 할 만 하죠.
뭐랄까 현대적인(?) 힙합의 잣대로 들이대면 빈틈이 보일지언정
이 형님들 특유의 감성만큼은 건드릴 수도 깔 수도 없죠. 2집도 그 결과물이구요.
12/11/27 11:29
수정 아이콘
소설이나 문학 쪽에 약간 연관이 있는 사람으로서 트랙을 역순으로 배열한 뒤 스토리를 풀어내는 방식은 참 흥미롭더군요
사실 가리온이 힙합계에서 크게 차지하는 위상만큼은 개인적으로 MC메타와 나찰의 랩핑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2집은 상당히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예전 이영도의 한국형 팬터지 논쟁같은 느낌마저도 났네요.
단순한 노래를 넘어서 자기의 어떤 무언가를 담아낼려는 시도가 보여서 재밌다는 느낌...

영순위가 가장 강렬하다고 느껴지고, 판게아는 한국형 라임의 선구자인 가리온과 P-type이 만나서 역시 좋더군요.
원래 영순위는Tiger JK와같이 작업하기로 했던 곡 이었다더군요 결과물이 워낙 훌륭하긴하지만 JK를 못봐서 아쉬운 느낌도 듭니다ㅠ
생명수나 불가사리 같은 트랙도 좋았고 복마전이나 본전치기는 정말 재밌는 노래죠 크,
시작하면서 동시에 마무리하는 약속의 장소는 판게아를 제외하고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세컨비마
12/11/27 13:48
수정 아이콘
가리온이야 말할것도없고 영순위에서 넉업샤니의 퍼포먼스가 최고죠
Thanatos.OIOF7I
12/11/27 14:19
수정 아이콘
뜬금없이 떠오르는 뿌리깊은 나무 백정......
12/11/27 14:40
수정 아이콘
가리온은 진리에요. 진리
No day but today
12/11/27 15:13
수정 아이콘
전 이상하게 2집에선 다만 가리온이 제일 좋더군요.
유재석
12/11/27 16:52
수정 아이콘
전 복마전이 참 좋던데요 흐흐흐
12/11/27 17:16
수정 아이콘
1번트랙인 다만가리온부터 전율이...더콰이엇의 비트인걸로 어디서 본것 같네요.
영순위는 넋업샨의 클래스를 들을수 있었던거 같네요.
12/11/27 18:19
수정 아이콘
다만가리온 더콰 비트 맞죠 흐흐
복마전은 도끼 비트

다만,가리온에서 그 서정적인 은율에 완전 꽂히고..
판게아까지 정말 완전 좋습니다~
저는 영순위 제일 좋아해요 흐흐 분위기 되면 노래방에서도 부르곤 합니다.

저는 1집에서 뿌리깊은나무, 마르지않는펜... 특히 옛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드라마 <뿌리깊은나무>에 가리온 노래 함 나왔으면 하는데 결국 안나오더라구요 흑흑 ㅠㅠ
가사랑 드라마 내용이랑 딱 맞는데...
엄의아들김명운
12/11/28 01:01
수정 아이콘
2집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왜 가리온이 가리온인지를 들려준 앨범'이라고 하겠습니다.
2010년들어 오버클래스가 대세가 되면서, 그리고 소위 말하는 어린 리스너들이 오버클래스 특유의 디스로 대변되는 스웨거에 빠지면서 1세대 랩퍼들을 까는 분위기가 있었죠. 허나 가리온은 이 앨범을 냄으로서 그 모든 까임을 증발시켜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은 두세곡만 듣는 걸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앨범 자체가 유기체가 되어 한곡처럼 흐르는 구성이다보니 꼭 전곡을 들어보는걸 추천하는 앨범입니다. 메타형이 역순으로 듣는것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하니 그런 식으로 듣는 것도 좋아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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