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2/11/01 02:29:41
Name 그러려니
Subject [일반] 어느 부부이야기14
술 한 잔 했습니다 껄껄
두 가지 주절거리려고 합니다..

.
.
.



아버님 건강에 문제가 좀 생기셨습니다. 아내의 친정 아버님 말입니다..
몇 년 전 부터 전립선 쪽이 시원치 않아 종합 검진 수치 때문에 별도로 검사를 받으시더니
이번에 암 초기진단이 나와 로봇 수술을 받게 되셨습니다.
그제 결과가 나왔더랬죠.
나는 나름대로 우리 가족에 있어 중요한 얘기다 싶어 전화로 아내에게 어떤 얘기를 하는데,
아내 반응이 시원치를 않고 영 집중을 안 한다 싶었습니다. 몇 시간 지나서야 일이 그렇게 됐다고 카톡을 보내오더군요.
술 한 잔 하면서 그 얘기가 다시 나왔습니다.

"수술 자체는 미리부터 크게 걱정 안 해..
근데.. 평생 당신 자존심 때문에도 그렇고 가족 위해서 그렇게 애쓰고 열심히 사셨는데..
결국 때가 되니 어디든 병이 드는구나 생각하니까.. 인생이.. 참.. 너무 서글픈 거야.."

그제도 혼자 집에서 별의 별 생각 다 했겠죠..
자식으로서 속상하게 했던게 젤 많이 떠올랐겠죠.
아 그 때 내가 그렇게 속상하게 안 했으면 혹시라도 지금 이 병이 안 오지 않았을까.
지금 현재도, 아 내가 좀 더 속시원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혹 또 어땠을까.
이런 저런 생각 했겠죠.
그러면서 혼자 숨이 넘어가도록 울었을 수도 있었겠죠.

.
.
.


하루 하루 최선을 다 해 사는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조금이라도 가슴 아픈 상황이 왔을 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고 덜 가슴 치고, 덜 마음 아프기 위해서 말이죠..



딸 아이 얘기 하나 더 할까 합니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데, 이 녀석이 사춘기가 제대로 와 있는 상태입니다.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할 때죠.
복싱장에 가서 복싱도 배우고 줄넘기도 하고 프로그램대로 하면 다이어트에도 좋고 키 크는 데에도 좋을거다란 얘기를 한참 전에 해줬었고, 그래서 최근에 아내가 다이어트 복싱장에 둘러보러 갔었나 봅니다.
다녀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군요.
구체적인 얘기는 없었습니다만,
엄마로서 딸 자식 보내기에 만족할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었나 봅니다.
뭐 그런거 있지 않습니까. 아들 녀석이면 문제가 없는데 딸 아이라 좀 마음이 쓰이는.
그러고는 두어 번 더 딸 아이가 엄마한테 얘기를 꺼냈는데 단칼에 안되겠다, 그냥 수영을 하자 했나 봅니다.
그제 퇴근 후 딸 아이랑 수퍼를 다녀 오는데,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얘기를 먼저 꺼내더군요.

달리기를 잘 하려면 복싱을 하는게 좋아요 수영을 하는게 좋아요..?
(아내 골치 아프지 않게 거짓말을 할까 잠시 생각했습니다만)복싱을 하는게 좋지!.. 복싱장 되게 다니고 싶구나?..
네..
엄마한테 다시 얘기 해 봐.
엄마가 화 낼 것 같아요..

어제 낮에 아내와 통화하면서 그 아이가 그렇게 얘기하더라.. 전해 주었습니다.
퇴근해서 돌아오니 복싱장 등록하고 왔다고 아내가 얘기하더군요.
술 한 잔 하면서 또 얘기를 꺼냅니다.
"난 걔가 그냥 단순한 호기심에 들볶는 건 줄 알았었거든(들볶는다라.. 뭐 사춘기 소녀와 엄마 사이의 뭐 그런게 또 있는가 봅니다)..
근데 걔가 달리기 잘하려면 어느게 좋냐고 물었다는 걸 들으니 아 이건 당장 시켜줘야겠다 싶더라고.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야지."

딸 아이가 뭐든 잘 하고 싶어하는데, 누굴 닮았는지 운동신경이 좀 그렇습니다.
특히나 달리기 잘 못하는 거에 대해 많이 속상해 하고.. 자존심도 많이 다치고 했었죠.
아내도 늘 그걸 안스러워 했는데.. 달리기 잘 하고 싶어서 거길 다니고 싶어 한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겁니다.
어쨌든, 아이가 그렇게 원하면 시켜줘야 한다는 뜻으로 어제 얘기를 한거였는데, 한 방에 뜻이 통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
.
.


결국 늘 비슷한 얘기 또 합니다만..
저 같은 사람에게..
인생 별 거 없는 것 같습니다..

낳아주신 부모님 속 상하지 않게 애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식들 행복할 수 있게 최선을 다 하고,
언제 어디서든 어떤 내용을 가지고서든 서로의 뜻을 알아 줄 수 있는 내 단 하나의 사람에게 고마와하고..
뭐 더 바랄게 있겠습니까..

.
.
.


이제 좀 잘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 글을 보며 머리를 쥐어뜯겠죠. 이 일기는 뭐냐!! 하면서 말이죠.
그래도 오늘 일을 꼭 글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껄껄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그리움 그 뒤
12/11/01 02:42
수정 아이콘
저도 술 한 잔 마시고 밑에다 일기를 썼는데요...
딸 얘기가 저에게도 그대로 감정이입이 되네요. 제 딸도 달리기 못하는데...
장인어른 수술 잘 받기를 바랍니다.
전립선암은 초기에 발견되서 수술이 잘되면 재발 걱정 안하셔도 되는 암입니다.
로봇수술 받으시면 입원기간이나 불편감도 그렇게 길지 않으실 거구요..힘내세요
그러려니
12/11/01 02:4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아내도 어머님께 그렇게 들었고 저도 이것 저것 나름대로 알아보고 아내에게 같은 얘기 또 해 주긴 했는데..
다른 분에게 이렇게 또 들으니 너무 고맙고 또 힘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Tychus Findlay
12/11/01 07:22
수정 아이콘
맘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그러려니
12/11/01 12:0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혜정은준아빠
12/11/01 09:11
수정 아이콘
결국 늘 비슷한 얘기 또 합니다만..
저 같은 사람에게..
인생 별 거 없는 것 같습니다..
뚱뚱한아빠곰
12/11/01 09:20
수정 아이콘
딸이 사춘기인데 아빠와 저렇게 대화를 하는 것을 보아 성공한 듯 싶은데요... 부럽습니다...ㅠㅠ
아들만 둘인 저는 딸 있는 아빠만 보면 왜 그렇게 부러운지...

지금쯤이면 회사에서 이 글을 보며 머리 쥐어뜯고 계시겠지요? 크크크
오늘 하루도 화이팅입니다!
히히멘붕이
12/11/01 10:18
수정 아이콘
딸 입장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근데 달리기를 잘하려면 당연히 수영 아닌가요? 다리힘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폐활량에 있어서 장난 아닐텐데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0050 [일반] 어느 부부이야기14 [11] 그러려니3127 12/11/01 3127 0
40049 [일반] 아직 삶도 모르는데 하물며 죽음을 알 수 있을 것인가.. 격언 모음 [2] 김치찌개3821 12/11/01 3821 0
40048 [일반] 사랑일까? 情일까? [14] 그리움 그 뒤3436 12/11/01 3436 1
40047 [일반] 역사채널e 48 - 사라진 기억 [3] 김치찌개3296 12/11/01 3296 0
40046 [일반] 10대,20대에 꼭 해봐야 할 것들! [10] 김치찌개5432 12/11/01 5432 0
40044 [일반] 최근 1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작가 Top10 [21] 김치찌개5838 12/11/01 5838 0
40043 [일반] 내가 싫어하는 국회의원중의 한명 [47] 틀림과 다름6499 12/10/31 6499 1
40042 [일반] 여자분과 갈만한 식당을 몰라 고민하시나요? [38] Love&Hate12628 12/10/31 12628 0
40041 [일반] KBS-미디어리서치 7차 대선 여론조사(박근혜 35.5 문재인 22.9 안철수 23.9) [18] 타테시5951 12/10/31 5951 1
40040 [일반] 피지알러 여러분...수학 좀 하셨습니까? [91] Neandertal7855 12/10/31 7855 0
40039 [일반] [국내축구] 울산 현대, 2012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4년 연속 K리그 팀 결승진출) [22] lovewhiteyou4207 12/10/31 4207 0
40038 [일반] NBA 개막 [10] Je ne sais quoi3145 12/10/31 3145 0
40037 [일반] 새누리당이 문재인에게 한방 먹었군요. (먹튀방지법-투표연장법 관련) [51] 허느6274 12/10/31 6274 1
40036 [일반] 상식,진리에 대한 혐오 - 일베에 관한 단상 [28] Alan_Baxter5568 12/10/31 5568 3
40035 [일반] [국축] 무분별한 해외진출에 제동이 걸립니다. [41] ㈜스틸야드4591 12/10/31 4591 0
40034 [일반] 4명의 100승 투수, 그들을 기억하며<2>-박명환 [7] 밤의멜로디5288 12/10/31 5288 0
40033 [일반] 현관에서의 대토론? [84] sprezzatura5700 12/10/31 5700 3
40031 [일반] YOUNIQUE UNIT와 프라이머리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습니다. [16] 효연짱팬세우실4422 12/10/31 4422 0
40029 [일반] 똥의 힘 [33] 이명박6995 12/10/31 6995 7
40028 [일반] 부산대 교수, 조갑제 닷컴에 리포트 올려라 강요 [35] 타테시7635 12/10/31 7635 1
40026 [일반] 눈치 없는 인간 [22] 삭제됨4200 12/10/31 4200 1
40025 [일반] 가볍고 훈훈하며 즐거운 만화, 애니메이션 - 4 - [16] 화잇밀크러버10024 12/10/31 10024 1
40024 [일반] 왜 구미 불산노출사건인가? , 왜 대불산단 폭발사건인가? [23] 응답하라19985117 12/10/31 5117 2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