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와서 처음으로 복학하던 학기의 일이다. 나는 육군병장 만기전역후 뭐든 할수 있다는 각오로 열심히 공부를 해봐야겠다며 수강신청을 했기는 개뿔.. 할머니의 병환으로 1년을 더 쉬었기때문에 간만에 복학하는 학교가 다소 두려웠다. 그래서 그전 까지는 하지 않던 소위 꿀교양으로 수강신청을 도배하기로 결심했다. 널럴하고 후한 학점을 준다는 교양으로 나의 시간표를 빼곡히 메웠다. 전공을 한두개정도 들을 생각이었지만 일단 교양으로 전부 신청을 한 뒤에 첫시간을 들어보고 듣지 않을 강의를 결정하고 그 자리에 맞는 시간대의 전공을 넣어볼 생각이었다. 전공이야 설령 다 차있어도 초안지만 넣으면 해결이니깐. 그리고 계획대로 일찍 일어나서 수강신청에 모조리 정말 퍼펙트하게 성공했다.
그렇게 수강신청에 성공했으나 당시 18학점 즉 6과목을 넣었었는데 웬지 독점하는 기분이 들어 찜찜하고 미안했다. 내가 누군가의 수업을 들을 기회를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런 찜찜한 기분으로 학교 사이트에서 놀던 중에 누군가가 내가 신청한 과목을 급히 구한다는 글을 올려놓았다. 꼭 듣고 싶다고. 그날은 수강신청 마지막 날이었다. 그것을 보고 더욱 마음이 찔린 나는 그 과목을 양도하고 그 자리에 전공을 그냥 듣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제가 수업을 양도해 드리겠다고.
나의 문자를 받고 연락을 해주신 그 분은 생각보다는 매우 귀여운 목소리의 여자분이셨다. 그때 시간이 오후 세시 반쯤이었는데 학교의 수강신청은 다섯시까지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자신이 지금 본가에 내려와 밖에서 일을 보고 계시다고 하셨다. 수강신청 양도는 두명이 동시에 접속해서 한명이 빼자마자 다른 사람이 넣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지금 급히 근처의 피씨방에 갈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나는 당시 학교에 전산실과 열람실이 함께 되어있는 건물에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있던중이었고 괜찮으니 근처 PC방에 가셔서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오후 네시 반쯤에 난 그녀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게 된다.
지금 시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PC방에서 수강신청사이트에 접속이 되지 않는단다. 다른 PC방에서도 그랬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은것이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침착하게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했다. 전산실이 있는 층으로 내려와보니 학교에서는 접속이 가능했다. 그리고 일단 별거 아닌 일이니 진정하시고 학교에서는 접속이 가능하니 학번과 비밀번호를 알려주시면 제가 컴터 두대를 각각 로그인해서 신청을 대신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울먹임을 그치고 "진짜요?"라고 물어본뒤에 자신의 성적을 보시면 안된다고 말했다. (수강신청시 직전학기 성적이 뜬다.)나는 그녀의 학번과 비밀번호를 듣고 그녀가 이제 2학년에 올라가는 그녀에게 목소리만큼이나 귀여운 학번이라며 긴장을 풀어주었고 "어.. 보지말라고 했는데 봐버렸네요. 제 눈이 문제네요.3.6정도면 우수한 학생인데요~우와 잘했네요~?" 라며 너스레를 떨고는 무사히 수강신청 시켜주었다. 고마워서 밥을 사겠다는 그녀에게 본가에 내려가셨으니 부모님께 효도하시라는 이야기로 거절을 대신하며 그날의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녀는 나를 줄기차게 귀찮게 했다.
내가 그녀의 답례를 거절한건 지금보면 별것 아닌 학번차이인데 그당시 나이대에서는 일단 학번이 많이 위였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얻어먹는게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며, 하나의 귀여웠던 약간의 해프닝정도로 본 사건을 남겨두고 싶었던 마음때문이기도 했다. 귀여운 동생같은 그녀와의 추억이 실제로 얼굴을 보고 깨어질수도 있으니깐. 그리고 다른 목적 그러니깐 인연의 상대로 생각을 해도 당시 여자친구는 없었지만 나는 좀 성숙하고 키가 큰 스타일의 여성을 선호하기에 목소리가 귀여운 그녀가 내 스타일이 아닐거라는 생각을 한 것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녀는 서울에 올라오기전까지 줄기차게 하루에 한번 꼴로 문자를 보내며 뭐하는지 물어보고 꼭 답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밥사겠다고. 거절을 하면 안된다고 사야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학교밥이나 한끼 사라고 했더니 그것도 안된단다. 큰 신세를 졌으니 밖에서 갚겠단다. 뭐가 그렇게 큰 신세인지 모르겠지만 정그러면 나는 모르는 사람이랑 밥 먹는거 싫어한다고 술이라면 생각해보겠다고 그랬더니 자기도 술 좋아한다고 우리 술마셔요! 라고 이야기했다. 동생같은 귀여운 마음에 그만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능숙하게 곤란함을 해결하던 나의 모습이 꽤나 맘에 든 듯 보였다. 날짜는 서울에 올라오는 바로 다음날..그러니깐 한시라도 빠르게 그녀는 답례를 하고 싶어했다.
자. 이야기를 빠르게 마무리해야겠다. 그렇게 만나게 되었던 그녀는 내 생각과는 달리 그리고 목소리와도 달리 키도크고 늘씬하고 대학교 2학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성숙하고 그리고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이었다. 내가 두근거릴 만큼. 그리고 밥대신 자기도 술을 좋아한다던, 나에게 술을 사겠다던 그녀는 갑자기 속이 안좋다며 술대신 밥을 먹자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식사를 끝내고 빠르게 사라졌다. 내 생각보다 그녀의 속은 훨씬 더 불편했었나보다.
- 예전에 피지알이 잠시 날라갔을때 같이 날라갔던 글인데
제가 백업을 해두지 않아서 언젠가는 복원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화제로 다시 썼어요~
- 아 물론 실화입니다. 재미를 위한 약간의 과장 이런것 조차도 없는 담백한 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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