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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9 18:21
이글에서 심히 공감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연하자가 어른인 연장자에게 존대하는 게 당연한 일이듯 연장자도 연하자를 존중해야 하는데 당연한 듯 하대 합니다." 사실 유교는 본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일방적으로 의무만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도 아래사람에게 지킬 것은 지키는 쌍무적인 특징이 있다고 전공 수업때 배웠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씁쓸할 뿐입니다. p.s. 그런데 유교가 종교인지 아닌지는 제 입장에서는 더 고민해야할 문제인것같아요;
11/12/29 19:22
제가 보기엔 유교는 종교고 기독교, 이슬람교는 샤머니즘으로 보입니다.
내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교는 세상 전체를 아우르는 가르침, 그리고 인간이 살아갈 길을 알려주는 가르침이라고 보는데 유교는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지요. 성리학이나 양명학 등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많은 분들이 유교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교의 파편, 혹은 변질된 유교를 유교 자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구요.) 괄호부분을 수정하면서 지웠는데 이에 대한 댓글이 달려서 비슷한 뉘앙스로 살려봅니다.
11/12/29 23:03
말씀하신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샤머니즘과는 다릅니다. 학술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상위 개념은 유일신앙(Monotheism)이고,
샤머니즘은 그 모노데이즘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종교학 내에서 정의된 샤머니즘의 핵심사상은 샤먼이라는 사제적 존재를 통해서 진행되고 계승되는 자아초월의 과정,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엑스터시의 체험입니다. 이런 샤머니즘 특유의 종교적 의례를 중심으로 천상-지하라는 공통 세계관을 가지는 몽골, 알타이, 극동아시아, 아메리카 인디언 등지에 나타나는 토착종교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 샤머니즘입니다. 학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서구의 유일신 신앙과는 별개의 것이며, 그 기원도 파생도 전파도 많이 다릅니다. 유교의 경우는 유교에서 파생된 유학과 그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하는 문제인데, 원시유교(하은주-춘추전국시대)는 분명하게 종교적 요소들이 강하게 살아 있었다는 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교를 학술적으로 종교로 분류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갈리는 부분입니다
11/12/29 19:26
전통이란 것은 옛날 부터 해왔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해왔던 것들 중 지켜야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묶어서 이어가는 것이죠. 본문에 많은 동감 하고 갑니다.
11/12/29 19:38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종교'라는 단어는 불교에서 나왔습니다. 어떤 경전에서 나왔는지 메모해둔 적이 있는데 지금 그 메모가 없네요.
어쨋든, 그 후로 동양에서는 최고의 가르침, 으뜸가는 가르침을 종교라 칭하였고 유교, 불교, 도교 등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일본에서 religion이라는 단어를 번역을 해야했습니다. religion의 어원은 re-union으로 신에게 돌아가는, 신과 다시 합쳐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에서 relgion을 종교로 번역을 해서 기독교, 이슬람교 등이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실 religion과 종교는 같은 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애초에 종교는 유교, 불교, 도교 등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기독교, 이슬람교 등을 유교, 불교, 도교 등과 같이 종교라 칭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입니다.
11/12/29 19:38
일단 유학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샤머니즘에서 기원햇습니다.
유(儒)는 비를 부르는 주술사에서 관료로 바뀌엇고 기독교 이슬람교는 전파 과정에서 지역의 주술사의 역할을 사제가 대신하게 되죠 같은 샤머니즘에서 출발했지만 오히려 유학은 철학적인 요소가 강해졌고 기독교 이슬람교는 종교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에도 적었지만 이미 유교는 한나라 동중서때 유학으로 발전했습니다. 유교라는 종교는 이미 오래전에 발전적 해체를 한거죠. 현재 유교는 없습니다. 다만 유학안에 유교적인 요소가 녹아잇는거죠
11/12/29 20:44
글쓰신 분은
"공자는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 ‘사랑할만한 사람’을 규정지었습니다. 공자가 옹호한 ‘녹위세습제’와 ‘예치’를 통해 신분제사회를 인정하였고 여기서 ‘사랑할만한 사람’은 피지배층이 되지 못합니다." 라고 적으셨는데 이건 다소 공자를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자는 분명 차등애를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사랑하지 않는 차등애가 아니라, 사랑하는 정도의 차이인 차등애입니다. 나와 충효, 의로 엮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지 지배층이냐 피지배층이냐에 대한 차별은 아닙니다. 공자는 인의 철학자입니다. 이 인은 각자의 명분(역할)과 서로간의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발화되지만 누군가에게는 해당되고 누군가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논어를 보면 공자가 백성을 이야기하는 구절을 많이 찾아볼 수 있지요. "백성을 대할 때는 큰 제사를 대하듯 하라." 라고 말한 구절도 있고요. 공자의 철학이 신분제를 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자의 사상은 질서의 수호를 위한 것이지 지배층을 정당화하기 위한 내용은 아닙니다. 공자는 시대적인 혼란의 원인을 사람들이 자신의 명분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질서로 돌아가기 위한 이야기들을 했을 뿐입니다. 어떤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사상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라도 그 시대를 '완전히' 뛰어넘진 못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유학만의 사례가 아닙니다. 칸트만 하더라도 공자에 비하면 현대에 가까운 철학자이지만 그의 일화를 하나하나 펼쳐보면 황당한 부분도 굉장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여자라는 존재는 지나치게 음란하고 망상만 한다라고 했지요. 저도 한때는 유학을 매우 고루하고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군요. 수많은 철학자들이 칸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칸트의 여성관까지 답습하지 않았듯이, 우리도 유학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유학을 공부하면서 놀란 것 중 하나는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어도 인간의 삶을 꿰뚫는 커다란 지혜는 지금도 유효하구나라는 부분이었습니다. 글쓰신분의 비판에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글쓴분은 유학을 겨냥하고 있지만 이 화살은 태초의 유학이 아닌, 현재 남아있는 왜곡된 유학의 잔재에 돌리셔야 했습니다. 이 리플은 위에 제가 직접 따온 한 구절에 대한 비판이지만, '예'에 대한 언급은 완전히 틀리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유학에서의 예는 정말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고 공자 이후에도 유학자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갑론을박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유학에서의 예가 정치적인 논리나 사상의 난해함 때문에 허례허식으로 변질된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글쓴분의 비판은 이러한 허례허식 그 자체나 허례허식으로 바뀐 과정을 향하셨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11/12/29 21:43
종교에 관해 서양적인 의미가 바로 내세관과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신의 존재 유무 이고, 동양에서는 인간의 삶에 큰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사전에 찾아보면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서양과 동양이 다릅니다.
따라서 유교나 도교 같은 경우 서양적인 종교개념으론 설명못하는 거지요.. 그리고 또한 원시불교 역시 내세관을 상정하지 않고, 부처 역시 절대적인 존재로 파악하지 않죠.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파인 조계종은 선종의 하나로 '부처를 만나면 부처까지 없애라' 할 정도로 깨달음을 강조합니다. 불교사상에 관해서 보면 종교보다는 심오한 철학이죠. 쇼펜하우어 철학이 불교의 철학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할정도로.. 불교는 종교적인 측면보다는 사상적인 측면이 깊습니다. 또한 글쓴이 분이 쓰신 예는 공자가 회화후소란 말에서 설명하였듯이 내면적 도덕성인 인 (사람다움)을 실천하는 외면적인 형식입니다. 내면적인것과 외면적인것의 중용을 강조하였죠.. 무조건 예의 형식성을 강조한것이 아닙니다. 주례를 본따서 사회적 외면적인 규범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 안에는 인이 바탕이 꼭이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덧붙여 맹자는 더더욱 예의 형식성보다는 내면적 도덕성인 인의를 강조합니다. 님이 말씀하신건 후에 원시유교의 변질된 사상을 말하는것 같습니다. 또한 위엣분이 설명하셧듯이 분명 피지배층보다는 지배층을 강조하였던 것이 공자지만 피지배층 역시 사랑하지말라고 한것은 아닙니다. 구심원적으로 효에서 시작하여 제 등등 차례차례 차등을 두면서 커져가는 사랑을 강조합니다. 지배층은 예로서 다스리고, 피지배층은 법으로서 다스리는 것을 주장하긴 했지만 글쓴이님의 말은 잘못된듯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자 이전부터 3년상 제사지내는 것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사에 관하여 철학을 만든것이 바로 공자와 후의 사상가들이죠. 공자는 귀신은 섬기되 멀리하라 하였고, 제자가 물었을때도 당연히 인간이라면 부모가 죽으면 자식이라면 마땅히 슬퍼해야하는 것이라는 요지로 제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우상숭배 그런것이 아니라 부모의 죽음에 대한 자연스러운 슬픔을 표현한것이 바로 제사입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챤들이 제사를 안지내는 것에 대해 이 이유때문에 반대합니다. 덧붙이자면 제사에 꼭 3가지가 오르는데 대추와 밤과 감입니다. 대추는 자식번성, 밤은 조상, 감은 군사(교육)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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