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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19 10:46:19
Name nickyo
Subject [일반] 뜨뜻한 방 안에 엉덩이를 지졌다.




난 가족복을 참 많이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은 친척이 있다거나, 어딘가 높으신 분이 있으신것도 아니다. 외가나 친가 모두가 인간답게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보기 힘든 끈끈한, 사소한것부터 서로를 배려하는, 네가 더 힘들다며 없는 사이에도 나보다 너를 더 위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렇다.




내 위치를 친가쪽에서 보자면 장남이다. 내가 비록 군자의 도를 얻으려 애쓰는 사람이라지만, 퀘퀘한 유교시대 풍습을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 근 몇년간 친가족 모임에는 얼굴을 꾸준히 비추었건만, 외가쪽 모임에는 얼굴을 비추지 못하였다. 꼭 일년에 몇 번 없는날에 피할 수 없는 일들이 겹치어 피할수 없음이 못내 안타까워 마음에 짐이 되었다. 언제 한번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고작 서울 안에서 움직이는게 쉬이 되지 않는다. 친구 만나러, 선배 만나러 술 한잔 꺽으러 가는 길은 그리 쉽게 움직이면서도 왜 이런건 잘 안되는지. 그래도 이번엔 운이 참 좋았다. 왠일로 딱 별일 없이 집에서 엉덩이나 철푸덕 지지며 주말을 보내야지 했는데 마침 외삼촌의 환갑식사(요즘은 누구나 환갑은 지낸다고 잔치라고는 안하더라)를 열기로 한것이다. 김치에 오징어젓갈 한 수저 얹어 찬밥 없앨 궁리를 하던 내게는 몇년만에 만나는 외가 식구들 만큼이나 반가운 자리였다. 심지어 사람당 4만원돈이 넘는 그야말로 '프리미엄'뷔페라니! 원래 무슨 식당앞에 '프리미엄'이니 '무농약유기농 웰빙'이니 '카리스마쉐프'같은 수식어는 '똑같은거 돈 좀 더 내라 그럴싸 하잖아 임마'라고 이해하던 나였지만, 식당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오, 그럴싸하다. 불가촉천민이나 다름없는 빈곤한 위에 기름칠좀 하게생겼다. 물론, 다 큰 어른인 나는 화려한 이탤리언 요리와 지글지글 구워진 두툼한 스테이크를 맘껏 먹는 것 보다, 오랜만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하며 어른들께 안부를 여쭙기위해 가는 것임을 잊지는 않았다. 앗, 침이. 후릅. 난 예의범절을 상당히 중요시 한다. 흠흠.






토요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드디어 시기가 도래했다. 시간은 흐르는 법이요, 배고픔은 더하는 법이니 그러나 무릇 군자란 얼굴에 빈색을 드러내지 않는 법. 내 비록 가진게 없어 도의가 추례하나, 몇년째 입는 단벌 코트 하나 세심히 다려 입었기에 고개를 당당히 들어 가족들과 함께 자리에 향했다. 고급식당은 과연 무엇이 달라도 다른것인가. 새로이 손님맞이를 할 준비를 위해 시간을 조금 앞당겨 간 우리 가족을 세워두고 '영업준비중'팻말을 세워두었다. 과연, 손님을 모심에 있어 한 점 모자람이 없도록 하기 위함인가! 나는 이들의 프로페셔날한 정신에 군자는 어디에고 있다는 명언을 떠올렸다. 음, 자못 기대가 되는구나 하는 사이 하나 둘 모이는 어른들을 발견했다. 어서 먼저 다가가 꾸벅 꾸벅 인사를 드리며 악수를 청하니, 하도 오랜만에 뵙는 분들이라 다들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시는 와중에도 '얘가 어디 누구아여..'하는 표정이셨다. 이름을 말씀드릴 때마다 '!!!'하고 놀라시는 얼굴들에 반가움이 더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반가워하던 찰나, 식당문이 열렸다. 야아! 천국문이 도래했다! 거 음식들 장만하는 소리와 풍악을 올리라하라! 기쁨을 쉬이 감추기 어려워 어린 동생놈과 시시덕대었다. 아직 군자의 공부가 덜 된 까닭이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요시 그란도 시즌 하나둘 셋이야' 를 몇번 외치며 셔플콩댄스를 추고있었지만. 군자도 먹고 사는 놈이다.







본디 나란 놈은 입에 비싼 음식보다 머리에 좋은 지식을 찾는지라.(는 뻘소리다 그냥 프야매만 주구장창한다.) 평소와는 다른 고급음식의 향긋한 내음에 위에서 위산이 마구 분비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어른들께서 환갑을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음식에 눈길을 줄 쏘냐! 시크하고 도도하게 고개를 전방고정하고 예약석으로 향했다. 마치 여기 놓인 산해진미들따위는 너무 먹어 질리기라도 한 듯 말이다. 미리 세팅된 자리에 앉아 자꾸 흐르려는 침을 삼키며 간단한 축사와 케이크 절단을 했다. 박수가 짝짝짝. 나도 짝짝짝. 일어나고싶어 들썩이는 엉덩이를 짝짝짝.







외삼촌의 간단한 감사인사가 끝나고 이제 다들 음식을 먹으려 일어나던 찰나, 문제가 발생했다. 본래 외가쪽은 워낙에 아이도 많고 친분도 두터웠기 때문에 차가 막혀서 조금 늦은 외숙모 내외와 형님들 가족이 오셨는데 앉을 자리가 없어 멀뚱멀뚱 서계시게 되버린 것이다. 20여석을 예약해놨는데 거의 30여명이 넘게 모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숙모께서 재빨리 스태프를 불러서 자리를 더 마련해 주길 원했지만, 원래 '프리미엄'이라는 곳이 그런데에도 깐깐하다. 난 군자의 품위를 지키기위해 들었던 접시를 잠시 내려놓고 추이를 지켜보았다. 분주히 뛰어다니던 스탭이 어떻게 8석의 테이블을 더 마련했지만, 아직도 형수님을 비롯한 네분이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하는 스탭과, 왜 이렇게 예약을 적게했냐며 타박하는 외숙모가 눈에 밟히었다. 으음.. 그때 작은 외삼촌께서 매형가족도 온다는데..하는 말씀을 넌지시 건네셨다. 28석에 8석은 더 붙여야 할 모양이다.







매년 참석도 안하던놈이 배때기에 기름칠 하자는 마음..이 아니라 안부를 묻고 축하를 드리러 왔더니 상황이 영 여의치 않다. 왠지 모르게 죄송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두자리는 의자를 더 붙였다. 그럼에도 형님과 형수가 아직 서서 계심에 아, 왠지 앉아있으면 안될것 같았다. 아, 이탈리안 파스타, 피자. 미디움레어로 스테이크, 스시, 사시미, 후식으로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아......머리속에서 가을날 한껏 사랑한 여인을 떠나보내듯 보내야 하는가 싶은 마음에 쉬이 자리에서 일어나지지않았다. 자리에 앉지못한 형수는 괜찮다며 아이들을 챙기었다. 이미 몇몇분은 맛있는 요리를 접시 한가득 담아오셨다. 이놈아. 이놈아 하며 스스로를 타박했다. 군자가 군자인 이유는 위아래를 알고 예를 알며 나보다 남을 중히 여길 줄 아는법. 잠깐 사이에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난 젊으니까 이런 프리미엄 음식은 언제든 또 먹을날이 올 것이다. 사실 저건 보기만 그럴싸하지 맛이 없을것이다. 조리명장이라는 말은 다 뻥일것이다. 제기랄 저 꼬마들은 왜 여기까지 따라온거야. 음 아니야. 조카들을 사랑하자. ...밉다. 니들이 미워 너넨 나보다 더 오래살거잖아!






그러나 군자가 언제까지 변명을 늘어놓을 수는 없는 법. 아 군자 때려치고 싶다. 오징어젓갈에 찬밥 아오. 하며 마음속 풍랑을 잠재우고 결심을 세웠다. 난 친척분들께 한분한분 인사를 드리며 있지도 않은 친구의 유학을 들먹이며 사실 저녁에 일이 하나 더 있다고 둘러대었다. 정말 죄송하다고, 오랜만에 인사만드리러 온 거라고(그럴리가 있겠냐 한달전부터 목을 빼고 기다린 날이다). 어른들께서는 아쉬워 하셨고 나는 재빨리 형수께 앉아서 맛있게 잡수시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정말 애절하게. 애달픈 눈빛으로 입에 넣지 못할 산해진미를 머리속에 그려넣었다. 향기만으로 먹은셈 치자며 통곡하는 내 위를 다독였다. 가게를 빠져나오며 사람 한명 가격에서 빼 달라고 언질을 하였다. 군자의 도리를 지켰다며 뿌듯함이 마음에 생겼지만, 허한 내 배의 굶주림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집에 오니 맛깔나게 붉은 오징어젓갈과 잘 익은 김장김치. 떡처럼 뭉친 찬밥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너희가 나와 영혼의 투톱이자 동반자이지.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하며 오늘은 조금 잘 먹자고 참치캔을 하나 따고, 구운김도 몰래 몇장 잘랐다. 찬 밥을 한숟갈 한숟갈 입에 넣으며 유럽풍 프리미엄 음식을 먹는듯 꼭꼭 음미했다. 그 맛은 마치 천상의 하모니는 개뿔 그냥 밥이었다. 그냥 찬 밥. 그냥 오징어젓갈. 그냥 구운김. 그냥 인스턴트참치. 그냥 밥이었다.. 그냥..그냥이었다. 너넨 그냥 저녁밥이었어.






밥을 다 먹고 뜨뜻한 방 안에 엉덩이를 지졌다. 군자의 삶이란 계획적이고 성실한 삶이다. 난 계획대로 주말에 엉덩이를 지졌으니 군자의 도리에 한껏 다가섰다고 할 수 있겠다. 맛있는 산해진미를 양보하였으니 더더욱 그렇다 하겠다. ...군자는 개뿔 돈벌어서 꼭 간다. 두번 간다. 두번가고 두번 더 간다. 꼭 프리미엄 음식 먹을거다. 나도 조리명장이 구워주는 고기 먹을꺼다. 고기 먹을꺼다. 하며 애꿎은 귤만 까 먹었다. 보일러가 들어온 방바닥의 따스함만이 날 위로해주었다. 싸면 다 같은 똥이라고, 그냥 그러기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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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티타임
11/12/19 10:55
수정 아이콘
아, 눈물이....
로렌스
11/12/19 11:42
수정 아이콘
뷔페에 "프리미엄"을 붙이면 어떨지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로 뷔페 방식 자체가 같은 가격대비 음식의 질이 떨어지는것 같은 느낌과
어차피 많이 먹지도 못하는 식탐으로 인해,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데

"프리미엄"을 붙이면 굉장히 고급스러워 지겠죠?
마치 대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호텔뷔페"처럼요.
11/12/19 14:16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워낙 못썼나 싶네요. 왜썼지.ㅠ.ㅠ
choryuhyang
11/12/20 08:19
수정 아이콘
아니에요 글에서 센스가 묻어나옵니다

저도 글을 잘 쓰고 싶어요... WRITE버튼이 너무나 무겁네요 ㅠㅡㅠ

댓글워리어나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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