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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0/29 17:32:55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고려의 마지막 명장 - (완) 조선의 첫 번째 왕

1. 아버지와 아들
"우리 집안은 본디 충효로써 세상에 알려졌는데, 너희들이 마음대로 대신을 죽였으니, 나라 사람들이 내가 이 일을 몰랐다고 여기겠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경서를 가르친 것은 그 자식이 충성하고 효도하기를 원한 것인데, 네가 감히 불효한 짓을 이렇게 하니, 내가 사약을 마시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성계는 대노합니다. 왜 자기 말도 어기고 멋대로 대신을 죽였냐는 거죠. 이방원은 참 당당했습니다. 잘 못 하면 망할 수도 있으니 부득이하게 한 것이고 이게 곧 효도라는 거죠. 무슨 말이 더 오갔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때 이방원이 찍히기는 했을 겁니다.

이성계가 화를 낸 게 단지 내숭이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어쨌든 정몽주에게 힘은 없었고, 힘을 쓸 수 있는 것을 지금껏 참아 오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정도전 등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면 모르겠지만 자기가 개경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공양왕은 주저하고 있었구요. 정몽주에 대한 개인적인 정도 있었고,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도 컸습니다. 정몽주가 자기를 지지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었는데... 아무리 적이 됐다 하나 그걸 아들놈이 멋대로 없애 버린 거죠.

거기다 그 방식도 참 거창했습니다. 당연히 반대할 것을 알고도 허락을 받으려 했고, 안 된다고 하자 자기 주변인들을 다 끌어모아서 동네방네 소문을 냈으며, 외진 곳도 아니고 큰 길에 있는 선죽교에서 마치 보란듯이 해치웠죠.

최영까지 죽인 상황에서 정몽주까지 죽인 상황, 이성계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겁니다. 누가 실행했든 명령은 이성계가 내렸다고 소문 나겠죠. (... 왜 깜빡했는지 모르겠는데) 공양왕도 이걸 이용했습니다. 이색을 죽이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했던 그는 우왕, 창왕을 죽이는 건 이성계가 말려도 밀어붙였습니다. 자기 자리에 대한 안전을 확보함과 동시에 죽여도 이성계가 죽였다고 생각하게 될 거라는 계산이었겠죠.

반면 이방원은 해 될 게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손에 칼을 묻힌 아들, 그 추진력 등이 돋보이게 된 거죠. 이렇게 다섯째 아들에 불과했던 이방원은 쟁쟁한 공신 중의 하나로 거듭나게 됩니다.

뭐 이 때부터 이 둘 사이의 금이 확실히 생겼다고 봐야겠죠.

2. 마지막 몸부림
어찌됐든 찾아 온 기회였습니다. 이성계는 남은 정몽주파를 모조리 탄핵하라는 명을 내렸고, 공양왕은 한 타 정도는 막은 듯 한데 결국 따릅니다. 정도전 등이 그들을 죽여야 된다고 하지만... 이성계는 일단 한 발 물러섭니다. 살생을 싫어하게 됐다고 했지만, 더 이상 죽이는 건 무리라고 여겼다고 봐야겠죠.

뭐 그렇다고 더 기다릴 생각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이후 이성계는 병과 분노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후의 일들은 모두 이성계의 본심이 아니었다는 거겠죠? +_+)

막다른 길에 몰린 공양왕, 그는 이성계가 아프다 해서 그의 집에 직접 방문하기도 하는 등 마지막 안간힘을 씁니다. 그 마지막에 다다른 것이 바로... 동맹이었죠.

"내가 장차 이 시중과 더불어 동맹하려고 하니, 경 등이 내 말로써 나아가 시중에게 전하고, 시중의 말을 듣고서 맹서를 초하여 오라"

왕과 신하의 동맹, 참 어이 없는 발상이었습니다. 이 때 부른 것이 이방원이었죠. 이런 적이 없다는 조용의 말에 분명 옛 고사가 있을 거라고 우기며 니들은 그냥 글만 쓰면 된다고 강요했습니다. 갈 때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왕위를 줄 순 없었죠. 지난 200년간 남의 뜻에 따라 바뀌었던 왕이었지만, 그래도 왕조 자체는 존속했습니다.

이 때라도 그가 순순히 왕위를 내놓았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뭐 그래도 전조의 왕이니 위험부담이 컸겠지만, 그래도 살 확률이 조금은 더 높았겠죠.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려 했습니다. 동맹이라는 어이 없는 방법까지 쓰면서요.

허나... 그에게 더 이상의 시간은 없었습니다.

3. 역성혁명
"신묘일에 왕이 왕위를 사양하고 원주로 물러났다. 얼마 후에 간성군으로 옮기고, 공양군으로 봉하였다. 왕은 그 후 3년 갑술년에 삼척부에서 훙하였다. 후에 공양왕으로 추봉되었다"

고려사절요는 이 일을 이렇게 간단히 적고 있습니다. 고려사를 마지막까지 수정하려고 했던 세종이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절대 손을 대지 않은 것 같네요.

허나 실록에는 그 때의 과정이 잘 적혀 있습니다. 역시 실록이네요.

공양왕은 이성계와 동맹의식을 준비하며 치를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이성계파는 모두 왕대비에게 달려갑니다.

"지금 왕이 혼암하여 임금의 도리를 이미 잃고 인심도 이미 떠나갔으므로, 사직과 백성의 주재자가 될 수 없으니 이를 폐하기를 청합니다"

공민왕의 비였던 안씨, 우, 창, 공양왕을 세우는 뭔가 절대권력 같은 모습을 보인 그녀는, 그렇게 고려의 마지막 왕을 폐하였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죠. 이성계파의 명분대로 따라줬을 뿐... 조선이 세워진 후 의화 궁주로 봉해지고, 한 많은 삶이나마 어떻게 살았던 모양입니다.

이성계파가 그녀의 기분을 알아줄 상황이 아니었죠. 교지를 받아낸 그들은 곧바로 공양왕에게 달려갑니다. 임금보다 높은, 대비가 임금을 폐한다는 말은 되지만 말도 안 되는 교지. 공양왕은 마침내 엎드려 그 명을 받습니다.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불민하여 사기를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린 일이 없겠습니까"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차라리 후련하지 않았을까요. 죽을 가능성이 높다지만, 고려를 지키지 못 했다는 멍에는 그 두려움보다 훨씬 컸겠죠.

물론 신하들은 그 마음을 알아 줄 상황이 아니었죠.

그 후 4일 동안 왕좌는 공석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기다렸다는 듯 백관이 모두 이성계의 집 앞으로 달려가서 왕이 돼 달라고 소리치죠. 이성계는 덕이 없다면서 뺍니다만... 당연히 그냥 물러날 수 없죠. 밖에서 소리만 치던 그들은 잠겨 있던 대문을 박살내고 마루에 국새를 놓고 계속 청합니다.

이에 이성계는 "어쩔 수 없이" 수락하며 이렇게 말 합니다.

"내가 수상이 되어서도 오히려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직책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어찌 오늘날 이 일을 볼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내가 만약 몸만 건강하다면, 필마로도 피할 수 있지마는, 마침 지금은 병에 걸려 손·발을 제대로 쓸 수 없는데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경들은 마땅히 각자가 마음과 힘을 합하여 덕이 적은 사람을 보좌하라"

만세 소리가 그의 집에서 울려퍼졌고, 이렇게 그는 왕이 되었습니다.


4. 조선의 왕
그 무게감 때문일지, 아직도 조심스러워서일지, 그냥 내숭이었는지 그 뒤의 행동도 신중하긴 했습니다. 궁에 살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하기도 했고, 고려의 이름을 바꾸지 않았죠. 뭐 결국 바꾸게 됩니다만.

훈요십조로 대표되는 숭불이었던 고려, 하지만 조선은 태어나자마자 억불을 강하게 외칩니다. 무학대사를 왕사로 했지만 그건 고려의 도선대사의 대체제일 뿐, 왕사는 그것으로 끝나죠. 정도전도 태종도 아낌 없이 불교를 탄압합니다. 그들에게 뺏은 재물과 토지로 별 어려움 없이 공신들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있었던 걸로 봐서 부패가 대단하긴 했던 모양입니다.

대신 기득권으로 새롭게 떠 오른 신진사대부들. 이렇게 조선은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는 유교 국가로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첫 번째 족보 조작이 일어나기도 했죠. 애초에 신진사대부들은 권문세족 밑에서 잡일을 하던 이들, 좀 있어보여야 했으니까요.

이후 조선은 고려와 여러모로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숭불과 숭유, 화려함과 소박함 등으로 대표되죠. 고려와 달리 완벽하다 할 수준의 중앙집권을 했고, 유학사상을 백성들에게까지 퍼뜨리며 그걸 강화했습니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 하면 양반으로 남기도 힘들었으니 고려에 비한다면야 신분 상승도 쉬웠죠. 작은 정부를 지향했고, 과거와는 달리 큰 적 없이 초강대국 명이랑만 친하면 됐으니 군대도 소규모, 게릴라전에 맞서는 형태로 축소됐습니다.

고려에 비해 좋아진 부분이 많습니다만... :) 이후의 역사는 그것대로 재밌게 흘러가죠.

이후 남은 왕씨와 여전히 남아 있던 정몽주파를 최대한 축출합니다. 특히 이숭인 등 정몽주의 제자들을 그대로 둘 순 없었죠. 정도전은 정몽주가 자기에게 하려 했던 방식을 그대로 씁니다.

"곤장 1백 대를 맞은 사람은 마땅히 살지 못할 것이다"

이를 통해 유배됐던 정몽주파는 일소되고, 당연히 욕 먹지만 그렇다고 벌을 받은 것도 아니었죠. 정도전은 이런 식으로 이성계의 협조 아래 조선을 하나하나 설계해 갑니다.

뭐 그렇다고 이런 구세력들을 그냥 내칠 수도 없었습니다. 권문세족들이야 이미 망했지만, 길재 등 지방에 있는, 여전히 고려에 충성을 바치는 신진사대부들을 끌어들여야 했거든요. 이성계는 이색을 잠시 귀양보낸 후 풀어주면서 여러 가지 혜택을 줍니다. 실록에 보면 이색도 그걸 여러 차례 감사했지만, 끝내 조선에 충성을 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의 죽음에 이성계가 죽였다는 음모론이 약간 있긴 하지만, 까기만 하던 실록에서 그가 죽을 때는 칭찬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도 권력 지향적이었던 것 같고, 친불, 친원 등 제자들과는 달랐던 인물이지만 어쨌든 신진사대부의 뿌리, 소홀히 할 수 없던 사람이었던 거죠. 이후 사림들이 집권하면서 그 평가는 더욱 좋아집니다.

"망국의 대부는 보존하기를 도모하지 못하오. 다만 마땅히 나의 해골을 가져다가 고산에 묻을 뿐이요"

자기를 따라 줄 것을 원하는 이성계의 말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태종은 정몽주를 영의정으로 올리며 그를 신격화 합니다. 정도전에 대한 반대의 의미였겠지만, 그만큼 그의 위치가 대단했다는 거겠죠.

이외에도 길재 등 조선이 따르지 않은 이들이 있었고 두문동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여 두문불출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만, 이런 정책들을 통해 이들은 얼마 안 가서 다시 조선의 정계에 진출합니다. 길재만 해도 자기는 고려에 충성했으니 자기를 따라 조선에 충성하라고 말 했으니까요. 재밌게도 고려를 지키려 했든 이들의 후계자가 조선을 세운 세력을 밀어내고 마침내 조선의 권력을 잡으니, 이들이 사림파입니다.

왕씨들은 숨도 못 쉴 정도로 탄압하고, 권문세족은 옛날에 몰락했으며, 신진사대부들은 어찌됐든 조선의 편을 들게 된 상황. 여러 차례의 대마도 정벌을 통해 왜구의 침략이 없어졌으며, 명나라와의 관계 개선으로 북방도 큰 걱정이 없게 됐죠. 토지 개혁까지 완료되면서 백성들도 조선을 받아들이게 됐고, 계속된 중앙집권화로 고려의 흔적은 빠르게 사라져 갔습니다.

생각보다 출혈도 크지 않았습니다. 권문세족이나 다른 무신들도 공민왕이나 최영 때 여러 차례 숙청됐으니까요. 최영과 정몽주, 결정적이긴 하지만 조선을 세우는 과정에서 묻은 피는 그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준비가 치밀했고, 고려가 수명이 다 됐다는 거겠죠.

그래도 아직 갈등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조선이 안정돼 가는 과정에서 또 피가 흘렀죠. 그 주인공은 이성계가 아니었습니다. 야망과 힘을 가지고 참고 있던 그의 아들이었죠.

이렇게 근 500년을 끌어 왔던 고려는 망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명장은 조선의 첫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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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고려의 마지막 명장 시리즈를 마치겠습니다. _-)/~

... 속편 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죠?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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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랑나랑
11/10/29 18:16
수정 아이콘
왕자의난 써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예요ㅠ [m]
호리병
11/10/29 23:30
수정 아이콘
잘 보고 갑니다 ^^
물여우
11/10/30 00:16
수정 아이콘
크크 또 하나의 완결!! 수고하셨습니다.
Je ne sais quoi
11/10/30 02:1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시리즈별로 묶어서 책 내야겠습니다~~
11/10/30 10:20
수정 아이콘
언제나처럼 잘 읽었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명장은 조선의 첫 번째 왕이 됐다는 게 왠지 의미심장한 하네요 흐흐
코큰아이
11/10/30 11:57
수정 아이콘
와 재미있다 으크크크크 필력이 대단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책하나 내시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승리의기쁨이
11/10/30 22:00
수정 아이콘
버젼2가 되시더니 글이 더 좋아지신거 같으신데요 잘읽었어요 ^^
pgr에서 글쓸께 없으실때쯤이시면 책한권 내시겠어요 ^^
항상 좋은글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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