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쓰려니까 기억이 엉망진창이네요.
이 사람과 만날때 얼마나 정신줄을 놓고 있었는지...?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 정도로 심하게 빠져버렸나봅니다.
원래는 과 특성을 살려서 과외 수업을 했는데, 여름은 비수기고-_-... 대학생 과외는 잘 안쓰는 풍조가 강해서
딩가딩가 놀다가, 8월 초에야 겨우 알바자리를 하나 구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토, 일요일 아침 8시부터 낮 3시.
다른 편의점에서 일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브랜드가 달라서 POS도 다르고... 버튼도 다르고...
첫날부터 혼자 두기에는 미안했는지, 선임 아르바이트생이 자기랑 친한, 다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불러다가
저를 봐주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8월 13일, 아침 8시 정시 출근해서 한두시간 가량 멀뚱멀뚱 있었는데 (워낙 손님이 적은 곳이라...)
10시 좀 안되서 였던가, 어디선가 훈훈 돋는 남정네가 오더니 생글생글 웃으면서 인사를 ...
어머나.
이 무슨 눈호강 시츄에이션.
그리고는 한 1시?정도까지 같이 있다가 가셨어요. 사람도 없는데 덕분에 심심하지는 않았죠.
제가 말 못 걸고 딴데보고 룰룰 하고있어도 먼저 말걸어주시고...
근데 그냥 흔하게 줄 수 있는 호의라고 생각했어요.
설레발치다가 아니면 쪽팔리잖아요. 흑흑.
근데 결국은 설레발 쳤지 말입니다.
한참 우물쭈물하다가 "오빠, 핸드폰 잠깐만요." 라고 하고 제 번호를 찍어줬습니다.
한번 보고 말 사이가 되기에는 좀 아쉽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으니까요.
...그래요 ㅠㅠ 전 좀만 잘해줘도 잘 넘어가는 가벼운 여자였던 것입니다... 팔랑팔랑~
그리고는 간간이 문자하면서 ... 두어번 정도 따로 만났던가...
하루는 둘이서 종일 시내 돌아다니면서 놀았어요.
스타 좋아한다고 하셔서, 같이 프로리그 결승전 직관도 갔었죠.
다만 이 사람은 프로토스 게이머 팬 (김택용, 송병구)... 저는 이영호와 KT를 응원했더랬죠. 헛...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토요일에는 오빠가 주말 편의점 야간아르바이트 하는 신세? 라서
저는 그 날과 그 다음날만 알바 시간을 3시~11시로 바꿔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가는 길이 많이 어두워서 혹시나 하고 오빠한테 전화해봤지만
바쁘다고,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집까지 잽싸게 걸어갔습니다. 으... 이 동네는 불빛이 너무 적어요.
집에 가고나서 12시쯤? 전화가 왔어요. 알바생이 둘인데, 자기가 2시 반까지 쉰대요.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는데...
"너 저번에 오빠한테 할 말 있다고 했잖아?"
"...네? 음... 그랬죠."
"여자가 먼저 하는거 아니라고도 했잖아."
"네."
"......너 오빠가 사귀자고 하면 사귈거야?"
"...네? 에? 잠시만요.(뭐야 갑자기 이게?!) "
그리고 잠시 둘다 할말 없음...
"음... 전화상으로 말해서 미안해..."
"에, 아 아니에요. ...그래도 얼굴 보고 말해주면 좀 ...더 기쁠거 같아요."
"그래? 알았어."
"................으하하, 전 이제 잘게요. 오빠도 일 열심히 하구요!"
"응, 그래."
...뭐야, 이 바보?!
하고 속으로 부르짖고 느지막히 잠이 들었습니다. 전 야행성이거든요. 훗.
그리고 다음날, 저는 외롭게 편의점을 지키며 '나는 가수다' 본방사수 하려 했지만 ...
아빠가 갑자기 오셔서는 일장 연설하고 가시고 -_-;;(결론은 공부하라는 것이었다며...오랫만에 딸만나고 한다는 얘기가...ㅠㅠ)
관우님 경연 노래 1절만 듣고 밀려오는 폭풍 손님에 결국 DMB는 꺼야했고...으아아아 소리없는 아우성 발사!
저녁 8시 넘어서 오빠가 와서는 같이 있어줬어요. 더 일찍오려했는데 자느라고 늦었대요.
그래서 제 할일을 막 떠넘기고 그랬다며...
그리고 11시에 칼같이 퇴근하고 둘이서 같이 집에 가는데,
참 분위기 없게 가는 길에 ...
"어제도 말했지만, 오빠랑 사귀자고 하면 사귈거야?"
...이 사람이 왜이럴까. 저는 바보를 넘어서 백치돋게 샐샐 웃으면서
"저는 괜찮은데 오빠가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왜? 너만 괜찮으면 난 상관없어."
라고... 음...
그 뒤엔 뭐라고 했더라.
"... 저 성격 되게 못됐어요. 남친 생기면 되게 못살게 굴고요... 엄청 이기적인데요?
제가 친한 애들, 거의 남자애들이라... 이전에 있던 남친은 제가 걔네들이랑
같이 있는거만 봐도 되게 싫어했구요... 어차피 걔네들 다 군대갔지만."
"학교에서의 일은 신경 안써."
"...그리고 오빠 성격 너무 좋아서, 저 말고 다른 여자들한테 잘해주면 엄청 싫을거에요."
"네가 사귄다고만 하면 그럴 일은 없어."
"...진짜죠?"
"응."
"... 전 그 말만 믿을거에요."
"그럼 승낙한거야?"
"...그걸 꼭 말해야 돼요?"
"말을 안하면 모르잖아."
"전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여자니까요. 이걸로 대신해요."
...뭘 생각하셨어요? 그냥 팔짱끼고 왔어요. 어색하게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느낌으로...?
집에 도착한 시간, 밤 11시 30분 경.
요 날도 새벽을 지새고 잤더랬죠. 이 죽일놈의 밤잠.
얼굴 잘생겼지(콩깍지 영향이 1000%), 키 180cm 안되고 (178cm...아슬아슬 세이프!), 군대도 다녀왔지, 성격도 착하지...
아, 정말 사람이 이렇게 단기간이 좋아질 수가 있다니. 팔랑팔랑~
어제 첫데이트 했어요. 만나서 제 핸드폰 바꾸는데 조언도 해주고 저녁도 같이 먹고 ...
하루종일 같이 다니면서 나눈 대화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오빠, 디시인사이드 알아요?"
"아니, 몰라."
...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전 디시인사이드 자주 가는데 ... 고정닉 ... 있어요 ... 물론 이 닉네임은 아닙니다. 후후.
...참고로 활동하는 곳은 갤러리 신설 갤러리입니다. 갤신갤. 나름 건전하게 갤러리 만들어달라고 징징거리고 있습니다...
아무튼 제 지인분들께 이 대화를 말해줬더니 남자가 청정수 1등급이라고, 꼭 잡으라고 하더군요. 넵, 잡을게요. 안 놓칠겁니다.
...뭔가 남녀 상황과 성격이 반대가 된 것 같지만 착각입니다!!
저도 나름 소녀다운 구석이 있...을까요?... 흑흑.
이번 가을, 적어도 겨울까지는 훈훈따뜻하게 보낼 생각에 야밤에 기분이 마구마구 들뜹니다.
...그리고 잠이 또 안오네요. 헤헤.
모두들 좋은 밤 되세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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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디씨를 알든 모르든, 하든 안 하든 상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셨죠. 디씨를 안 하면 '1급수남'이 되는 거고, 디씨를 하면 '나와 공통점을 가진, 통하는 남자'가 되는 거니까요. >(>.<)< (하지만 알고 보니 코갤러라면 어떨까?) 돌아올 수 없는 콩깍지의 강을 건너셨슴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