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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6/06 23:08:06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역사에 대한 잡상 - (13) 대륙과 반도
뭔가 할 일 안 하고 쉬는 것 같지만 신경 쓰면 지는 겁니다. ( . .) 문득 생각이 들어 그 옛날 -_-; 역사에 대한 잡상이라는 이름을 다시 꺼내 봅니다.

반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꽤나 부정적으로 쓰이고, 아예 일제가 한국인들 무시하려고 새로 만든 용어라는 말도 있죠. 뜻 자체는 정말 객관적입니다. 반은 섬이라는 거죠.

식민사관의 골자는 "니네가 대륙을 잃었고 반도에 갇혔기에 정체됐고(정체성), 중국과 일본의 영향밖에 받지 못 했다(타율성)"는 것입니다. 이건 민족주의로 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구려, 혹은 발해 멸망 후 우리 민족은 한반도에 갇혀서 진취적인 기상을 잃었다, 이런 류죠. 신라와 조선을 비판하지 않으면 식민사관이라든가 자주적인 인식이 부족하다고 욕 먹은 게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도 이 얘기가 없어진 게 아닙니다. 일제시대 때는 식민사관으로, 해방 후에는 친일파 출신이든 독립운동가 출신이든 이걸 많이 외쳤습니다.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륙에 대한 환상, 저는 그 대신 한반도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간단합니다. 그 드넓고 좋은 대륙을 잃고 이 좁은 한반도에 갇혔다. 혹은 한반도를 나쁘지 않게 평가하더라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은 "원래 우리 땅 가지고" 시간 낭비한 것일 뿐이다는 거죠. 대표적인 게 장수왕이죠. 왜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어 대륙으로 나갈 생각하지 않고 한반도 내에서 치고박고 했냐는 거죠.

우리 역사를 다시 한 번 뒤져 보겠습니다.
고조선의 수도에 대해서는 요령 인근설, 평양설, 요령->평양 이동설이 있습니다. 조선시대까지는 거의 평양으로 잡고 있었죠. 저는 아무래도 이동설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만... 아무래도 이 글과 관련된 주관적인 판단이긴 합니다.
고구려의 경우 확실히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죠. 백제는 고구려에 인구적으로 거의 밀리지 않았습니다. 땅 크기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가죠.
고려로 가면 고토 회복을 외치긴 했지만 강동 6주에서 만족했고, 함경도 역시 거의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원명교체기에 한 차례 요동에 진출합니다만, 여러 사정으로 돌아오고 그 유명한 위화도의 회군이 있었죠.
조선으로 가면 4군 6진을 개척하는데도 애 먹었고, 세종 이후 의욕적으로 사민정책을 추진합니다만 한반도 북부지역으로 가는 건 많이들 꺼렸습니다.

고구려 고토 회복이야 많이 있었지만 만주에 대한 의욕은 많이 부족했던 거죠. 고구려 때는 오히려 만주나 중국 대신 한반도로 내려와서 뭇 사람들의 아쉬움을 낳습니다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요동까지의 확장이 완료된 후, 고구려는 그 서쪽으로는 위협용이나 약탈용의 공격만 합니다. 오히려 공격은 한반도로 집중됐습니다. 장수왕대에 한강을 완전히 점령한 후 절정에 이르렀고, 나제동맹에 의해 한강을 잃자 쇠퇴합니다. 인력이 국력이던 시절, 백제는 인구가 고구려에 밀리지 않았고, 후삼국시대에도 땅 크기에 비해 후백제는 대등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말을 잘 들었다 해도 신라 이후로 고려, 조선은 언제나 중국에 있어 1등 조공국이었습니다. 중국이 아무리 강성했던 시절에도 외왕내제는 계속 되어서 몽고는 30년간 지지고볶고 해서 겨우 "~조, ~종"을 "충~왕"으로 바꿉니다. 사대가 극에 달했다는 조선 때도 명도 청도 이걸 깨뜨리지 못 했습니다. 시호를 조, 종으로 쓰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건 천자국에나 가능했는데, 우리는 이걸 한 거죠.

반면 발해 이후 만주에 살던 민족들은 중국에 의해 깨지거나 중국을 점령하자 만주를 버리고 중국으로 갑니다. 지금 그들은 소멸하다시피했거나 소수민족으로 겨우 살고 있죠.

그렇다면 이렇게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요? 고구려는 만주보다 한반도가 더 살기 좋아서 한반도를 더 노렸고, 그 이후에도 만주를 다시 먹는 것보단 한반도를 지키는 게 더 좋았기에 그랬다고 봐야 되지 않을까요? 진취적인 기상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다른 나라를 공격해서 거대한 영토를 만든 나라는 중국 빼면 다 유목민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주로 원, 청) 은 자기가 살던 곳을 버리고 중국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뭔가 현대에는 유목민에 대한 환상이 생기지만, 그들은 제대로 정착하기도 힘들게 살았다가 농경민족을 약탈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야 될 정도로 살기 힘들었고, 그게 강력한 공격력의 근원이 된 것이죠. 이런 약탈식 공격이 아니라면 대외정벌의 경우는 거의 골칫거리 해결용, 방어선 확립용 등이었습니다.

실록에서 만주 및 거기에 살던 민족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랬습니다. 세종의 사군육진 정벌 때도 먹어봐야 이로울 것도 없으니 그냥 산맥을 방어선으로 하는 게 어떻냐는 반대가 많았습니다. 사민정책으로 남도의 백성들을 북으로 계속 끌어올렸지만 반대하고 도망가고 아예 자해까지 하기도 했죠. 농경으로 먹고 살던 이들에게 추운 북쪽의 땅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병자호란의 굴욕 중 하나는 우리보다 인구도 꽤나 적은 여진족에게 항복했다는 거죠. 순수 유목이나 반농반목으로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 비해 농경 쪽으로 부족했고, 인구도 적었습니다. 함경도는 그들의 공격이나 도적, 반란 등으로 제대로 확보하고 있기 힘들었구요. ( 임진왜란 북관대첩 얘기할 때 반란세력이 함경도에 판치는데도 북방군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고, 반란군도 이들을 건드리지 않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 특히 함경도의 경우 유지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강을 방어선으로 확립하기 위해서였겠죠. 나라의 근본이 된 흥왕지지임에도 함경도에 대한 대우는 이랬습니다. 물론 여러 반란 때문이었겠습니다만.
이 여진족들에게 보여주는 고려, 조선의 모습은 계속 말썽부리면 토벌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조공 바치면 받는 전형적인 중국의 외교 방식이었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많은 것조차도 일치하죠 -_-;

아래의 실록 기사가 그 때의 인식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것 같네요.

“백두산 정계(定界)에 대해서는 혹 부족한 곳이 없던가?”
하니, 윤용이 말하기를,
“토문강(土門江)에 목극등(穆克登)의 비(碑)가 있는데 여기서 바라보니, 모두 공활(空闊)하여 쓸모없는 땅이었습니다. 잃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겠습니다.”
영조 21년, 1745년 8월 14일자 기사입니다. 쓸모 없는 땅, 이 한 마디면 충분하죠 - -;

이랬던 모습이 바뀌는 게 조선 말입니다. 세금면제 등 혜택에도 불구하고 북쪽으로 가지 않던 백성들은 살기 힘들어지자 북으로 갔고, 강을 건넜고, 이 땅을 개간해서 정착합니다. 조정에서는 이들을 불러들이려고 계속 노력하다가 중국이 약해지자 간도를 먹을 시도까지 하죠.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말이 많지만, 한반도에 "갇힌" 이후 만주를 향한 제대로 된 움직임은 이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들고 약할 때였죠.

바꿔 말하면, 한반도는 굳이 다른 곳을 침략하지 않고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한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주의 기후나 농경에 대한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이런 것을 보면 만주는 점령해도 크게 얻을 게 없는 곳으로 생각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면서도 할거하는 민족은 많았고, 지키기가 어려웠구요. 고구려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요동방어선 때문이었고, 발해는 그 영토에 비해 너무나도 허무하게 멸망합니다. 그 이후의 나라들도 나라를 세우면 컸을지 몰라도 유지하는 데는 정말 약했습니다. 중국 역시 요동의 가치를 알고 있었고, 고구려 침략 때 볼 수 있듯 거의 제 1순위로 여겼습니다. 요동을 먹는다는 것은 중국에 맞선다는 거였고, 그럴 힘은 없었죠. 요동을 뺀 만주를 먹기에는 그 가치가 얼마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 몽골의 인구는 250만입니다. 영토야 한국보다 몇 배는 넓지만요. 만주족은 지금 자기 언어조차도 잃을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많은 한족들이 들어 온 만주는 지금도 중국에서 못 사는 지역입니다. 인구에 대한 연구야 서로 다르겠습니다만, 일단 연구에 의하면 만주의 인구는 1812년에 170만, 42년에 300만, 97년에 700만이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늘어난 것을 보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게 나중에 이루어졌거나 한족이 들어온 게 크겠죠. 일단 봉금이 풀린 건 700만이었던 1897년이었습니다. 한편 조선의 인구는 1810년 순조 때 750만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만주에서 행해지는 농업도 수확하기 좋아서 신의 작물이라 불리는 옥수수를 비롯한 밭농사죠. 만주의 가치가 높아진 것은 러시아의 침공과 농업보다 중화학 등의 공업의 중요성이 높아진 이후입니다.

진취적인 기상의 실체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각종 정벌부터 고구려의 영토 확장은 방어선 확립이나 살기 좋은 땅이나 요충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방어적 혹은 생존용이었죠. 그냥 무작정 땅 넓힌 나라 중에는 망한 나라가 한둘이 아니구요. 대항해시대부터가 오스만 투르크 때문에 다른 교역로를 찾기 위했다가 잡은 로또였고, 대항해시대의 문을 연 나라는 약소국이었던 포르투칼이었죠.

고구려가 남하에 큰 신경을 썼던 것, 고구려의 수도가 평양성이었다는 것은 곧 고구려의 중심지가 만주가 아닌 한반도 북부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게 아닐까요? 그 이후에 만주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적었던 것 역시 중국을 직접 상대해야 된다는 압박과 함께 한반도가 만주보다 가치 있는 땅이어서가 아닐까요? 영토가 곧 국력이 된 현대이지만, 그 땅의 넓이보다 가치가 더 중시되는 것은 현대에 들어서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만주를 잃은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건 넓고 좋은 만주를 잃고 좁고 안 좋은 한반도에 갇힌 게 아니라, 만주는 잃었어도 한반도는 지켜낸 게 아닌가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가치는 만주보다 결코 낮지 않았구요. 땅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순도 높은 노른자위는 한반도였습니다.

+) sungsik님께. 뭔가 이제는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모 사이트 어떤 게시판에 어떤 사람과 말 하는 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시다면 착시현상입니다. ( ..);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거기서 많이 놀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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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06 23:25
수정 아이콘
조공이라는 측면에 살을 덧붙이자면 중국입장에서는 삼국시대때부터 한반도의 이족은 골치거리였죠
조공이라고 가지고 오면서 자기들땅에서 안나는 것들을 사여라는 이름으로 3배는 뜯어가거든요
중국입장에서는 그래야 대국이라는 면모와 형국 혹은 부국이라는 인식을 대외에 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고려, 특히 조선은 이를 한껏 이용했죠
게다가 명나라때는 조공이 올때면 동창이 전력으로 자금성과 북경내 고급정보를 차단해야하는 수준으로 첩보전도 벌어졌었죠

호전적이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뿐(호전적인 성격의 지도자의 전쟁 발발은 눈시BB님의 임진왜란편에서 어떻게 본국과 상대국과 제3국에 결말이 나는지 드러났죠) 온전히 주어진 땅에서 최선의 대외정책, 외교를 해왔습니다
11/06/06 23:27
수정 아이콘
조공은 그냥 외교 거래가 아니었을지... 만주족에 대해서 이것저것 주면서 말썽부리지 마라...가 아니었을까요? 그 쪽이 더 경제적으로 이득이라서. 마치 햇빛정책처럼...

삼국시대의 고구려와 백제는, 냉전시대의 소련과 미국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올빼미
11/06/06 23:30
수정 아이콘
뭐 수천년의 대중관계가 한줄의 글로 평가될정도로 간단하지는 않았겟지요. 한반도가 보기보다 많이 가치있는 땅이라는것에는 동의합니다.
11/06/06 23:33
수정 아이콘
오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
지식부족으로 아련하기만 한 개념을 이렇게 잘 풀어서 써주다니..

하며 감탄하며 읽다가 마지막 줄 읽고 흠칫 했네요-_-;
사실 그 전에도 어렴풋이 설마...는 했었지만..
11/06/07 00:09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고대사에서 고구려 멸망에 그렇게 땅을 치고 슬퍼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첫번째 이유가 과연 당시 삼국을 한반도 내 분단국으로 봐야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흔히 신하가 당과 연합하여 '민족'을 배신하였다고 표현하지만 그 당시 동일 민족이라고 할만한 공통분모를 갖추었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이구요. 개인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민족으로서의 한국사의 시작은 통일신라 부터로 봐야하지 않나는 생각도 막연히 가지고 있구요.

저번에도 글쓴이님과 댓글로 잠깐 주고 받은 얘기지만, 왜 타국의 역사에 우리나라 고유의 역사를 끼워맞춰야 하는지 그 자체가 사실은 의문입니다. 굳이 백제가 중국 대륙에 직할 영토가 있으면서 남북조 국가들과 맞짱떴다는 기록으로 문명의 우수성이 입증되어야 하는 것인지, 광개토왕비를 현재의 민족주의적인 사관으로 바라보면서 대륙적 기개를 억지로 끼워맞추면서까지 자긍심을 억지로 세울 필요가 있는 것인지, 조선이 반드시 서구식 산업혁명을 이룰 맹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꼭 고려 금속활자를 구텐베르크랑 비교해야 하는 것인지 등등... 경제적으로 비교도 안되지만 강력한 문화의 힘으로 중국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우리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남과의 비교가 아닌 순수한 의미의 자긍심을 키울 수 있는 국사 교육을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나이트해머
11/06/07 00:46
수정 아이콘
고구려 강역의 인구에 대해서 추산해 보면 2~3세기 기준으로 대동강 일대 평야, 요동, 송화강 유역이 각각 20만~30만 사이 인구를 찍고 나머지 지역을 다 합처야 마찬가지로 20만~30만 인구가 나오죠. 땅넓이만 따지면 '나머지 지역' 이 다른 세지역을 합친 것보다 더 크지만 정작 인구 부양 능력은 뒤떨어지는 셈입니다.
사실 농업생산력을 빼고도 가치있는 부분(무순, 현도 일대의 철광이라던가 북만주 일대의 모피. 참고로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몽땅 다 먹어치운 이유가 저 모피 때문이라죠. 한창때는 국가재정을 사실상 지탱할 수준이였다는 말까지 있으니.)을 다 고려해 봐야되겠습니다만, 뭐 그래도 한반도 일대에 비하면 만주지역의 가치, 특히 '간도지방' 이라는 곳의 가치가 생각보다 높진 않다는 데 동감하는 바입니다.

ps. 그리고 조선의 인구 예상치는 1800년에 1,650만입니다.(출처: 근대 동아시아 경제의 역사적 구조) 파악인구는 절반이 채 안되지만 조선은 원래 그렇게 팍팍하게 인구를 파악하려 들지 않았지요. 잘 되었을 때도 보통 50% 미만으로 파악하니. 호패법도 매번 할때마다 '백성들이 힘들어한다' 는 반대의견에 부딪처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으니까요.
토스희망봉사�
11/06/07 00:57
수정 아이콘
만주 지역에 농사가 이루어진것도 기껏해야 몇세기 안쪽이니 그 전에 그곳 주변은 농사를 짓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농사가 가능해 진것도 끊임없이 품종을 개량하고 불굴의 의지로 개척을 계속했던 농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도 가능해진 것이죠 그때는 그런 품종도 없었을 뿐더러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옆에 자리 잡은 이민족 국가들과 매일 전쟁 해야 하니 벼농사라도 지을라고 폼잡으면 매일 같이 전쟁 한다고 왔다 갔다 해대니 쉽지가 않은곳이죠 발해 시절에도 농사는 일부지역에서 벼농사만 했던것으로 기록되어 있구요
명나라를 멸망 시킨 청의 기마 전력은 남자는 무조건 기마 전사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전투력이 뛰어나기 때문 입니다 인구의 반이 병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지요 이미 요동을 뺏긴 시점 부터 기마전력이 약해진 한반도는 사실상 만주에서 전쟁을 벌이기가 불가능해진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기병은 고대 시대 부터 무려 18세기인 최근 까지도 보병에게는 악마와 같은 상성을 자랑 합니다 기마 민족이 대다수인 요동과 만주등지는 광활한 평원이라 점령 하기도 어렵구요 고구려는 그걸 억제 할수 있는 개마기병 같은게 있었기 때문에 달렀던게 아니였던가 생각 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한민족이다라는 생각은 없었던 걸로 보이나 각종 서책에 "삼국" 등의 이름이 쓰였던걸로 보아 같은 공동체나 한뿌리등의 인식이 확실히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부분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죠
카서스
11/06/07 01:13
수정 아이콘
만주지역이 농업지대로 변한건 바로 일제시대떄 조선인들이 넘어가 일군게 8할은 된다고 하더군요. 그 지역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종자 대비 수확량이 월등히 높은 쌀이 제대로 자랄수 있는 지역도 아니거니와 겨울만 되더라도 혹한의 날씨를 보이는 곳입니다. 그 지역에 자리잡은 국가들, 즉 고구려부터 이어지는 국가들중 농업국가라 불릴만한 곳은 없었습니다. 고구려만 해도 약탈경제가 주류였으며 발해 역시 농업국가라 부르기는 어려울정도로 수확량이 떨어질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 외 기타 여진 등 이민족들은 말할것도 없고요. 예를들어, 조선시대 여진족과 거래한 품목을 보면, 농기구 등 도구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주로 그쪽에서 수입해 간 것은 다름아닌 식량, 즉 쌀이였습니다. 그네들도 농기구 등을 수입한 것을 보면 어느정도 농업이 이루어 진것 같지만 그 자신들이 자족할 정도의 식량 수확은 어려웠다는 뜻이겠죠. 또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수취 기준만 보더라도, 고구려가 농업생산량이 월등히 떨어졌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수왕이 한반도로 눈을 돌린것도 현명한 선택입니다. 광개토대왕떄 요동 지배권을 확립하고 요서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중국은 5호 16국 시대였기 떄문입니다. 그런데 북위, 북제, 북주 등 전역을 통일하지는 못했지만 고구려의 수십배의 영토를 가지고 있는 제국들이 등장하던 시기였죠. 게다가 당시 요서지역은 아직 개척이 되지 않은 지역이라 이 지역을 통해 중국 대륙내로 진출하기도 어렵습니다. 수, 당이 고구려를 침공할때 가장 어려움을 겪은것이 요서지역을 통한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였던것을 상기해 볼떄, 이 난점은 고구려에게도 적용된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남은것은 북쪽, 혹은 남쪽인데 저같으면 당연히 따뜻하고 농사가 잘되며, 인구도 많은 남쪽으로 진출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좋은 글이 올라왔군요. 잘읽었습니다. 눈시bb님 고생 많으십니다.
내일은
11/06/07 09:00
수정 아이콘
축척 등 쳬계적인 지도가 나오기 전에 지도를 보면 인구희박지역은 실제면적보다 작게 나옵니다. 물론 도시의 밀집도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지도를 그렸던 그 당시의 사람들이 가 졌던 그 지역에 대한 심리적인 중요도를 반영하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만주에 대한 무관심을 조금은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근대적 민족 개념은 아니었겠지만, 고려-조선 시대 통치계급들이 보기에 만주는 분명 이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지 '우리' 땅은 아니었을 겁니다. 따라서 변경지역으로 관리 대상이기는 했겠지만 '고토를 회복'해야 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wish burn
11/06/07 10:03
수정 아이콘
평소 궁금해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광활한 만주평원을 가졌다는 고구려가 왜 넓지않은 한강유역에 집착했을까?
만주가 당시기준으론 속빈 강정이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어느정도 해소가 됐는 듯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설원마을
11/06/07 10:21
수정 아이콘
눈시bb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요새 시간날때마다 눈시님의 연재물 읽는 재미로 삽니다..흐흐 [m]
11/06/07 10:22
수정 아이콘
다 떠나서
요동이랑 요서를 다 먹었다고 가정하면
군대 300만명으로 지킬 수 있나요 -_-?

'우릴 괴롭히면 쫓아가서 죽여버리겠어!'
는 할 수 있겠지만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는 영토 개념의 수준으로는
방어를 못할 것 같은데요-

아무리봐도 방어라인이 너무 없어보입니다.
거점.. 으로 삼을만한 곳도 별로 없구요.

커버리지로 나눠야 할 것 같은데
천명씩 나눠서 3000개로 나누면
한개 부대가 감당해야할 면적이 얼마일런지 -_-
루크레티아
11/06/07 14:34
수정 아이콘
지금에야 지하자원에 기타 부속 가치까지 칠 정도로 땅에 대한 열망이 크지만 인구도 적고 영토에 대한 관념 자체가 희박했던 고대에는 만주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고 봅니다. 춥고, 사람도 별로 안 살고, 뻑하면 도적떼나 출몰하는 만주가 그닥 곱게 보이질 않았겠지요. 그래서 요즘 간도가 우리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주장에 힘입은 티셔츠(진짜 봤습니다...;;)가 나온 것을 보고 있자니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11/06/07 18:08
수정 아이콘
한때 지중해제국을 건설한 이탈리아도 반도,고대문명을 꽃피운 그리스도 발칸반도, 한때 유럽을 휩쓴 바이킹의 노르만족 국가들도 스칸디나비아반도,한때 대항해시대 신대륙을 개척한 포르투갈과 스페인도 이베리아 반도
서주현
11/06/07 18:53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농업국가에게는 한반도가 만주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땅이었겠죠.
일단 쌀이 워낙 사기템이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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