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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6/06 12:50:12
Name 고구마줄기무��
Subject [일반] 적법성과 정당성에 관한 가벼운 생각.
*글 작성의 편의상 경어는 생략합니다.

근래에 이슈가 되고 있는 등록금에 관한 시위처럼

굵직굵직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인터넷 상의 공론장은 뜨겁게 달궈지곤 한다.

심도 있는 토론부터 수꼴이니 좌빨이니 하는 원색적인 비난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일견 가장 중립적으로 보이는 말이 있다.

'집회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불법적인 집회는 안된다.' 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여다보면

'집회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이는 정당성에 관한 부분이고

'불법적인 집회는 안된다.' 는 적법성에 관한 부분이다.

이 담론이 확장되었을 때 나오는 결론이

'뭐가 어찌되었든 불법적인 것은 일단 잘못이다.' 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적법성이라는 기준으로 그 외의 여러가지 요소들에 대한 논의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에 관해 생각해보기 좋은 사건 하나를 살펴보자면

일전에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강간을 당하던 가해자가 남자친구와 공모하여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존속살인죄가 인정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다.

그녀의 행위는 법적인 구성요건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적법하지 않은 불법행위지만

여러가지로 생각해 봐야할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방법의 미흡함에 관한 토론.

가정폭력이 심각해지는 상황속에서 존속살인죄의 무거운 형량에 관한 토론.

가정폭력피해자의 심리적 상황에 대한 토론.

이와같은 토론들은 적법성의 여부와는 별개로 이루어져야하고 이와 같은 담론을 가로막는

적법하지 않으니까 일단 잘못한거지 와 같은 태도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을 것이다.

적법성에 대한 심사는 엄격한 법적인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사자들은 甲과 乙로 객관화되어 해당 사건에서 누가 어떤 위법행위를 행하였는지가 문제되고

사건의 배경과 이슈가 될만한 내용들은 다루어지지 않는다.

다음은 4대강에 관한 판결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그러나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들이 대운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한 이 사건에서,

홍수예방과 수자원확보라는 사업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이를 위한 사업수단의 유용성이 인정되는 만큼,

사업시행에 따른 문제점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사업시행의 계속 여부, 그 범위를 판단하는 문제는 사법부에게 버거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사법부는 적법성 여부를 심사하는 데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경험과 판례의 축적으로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

적절성 여부를 심사하는 데는 구조적, 경험적 한계를 가지고 있고, 설령 사업시행의 적절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 및 행정의 영역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대안을 찾는 것이 사법의 영역에서 일도양단 식으로 해결하는 것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4대강 사업을 진행하는 피고측이 승소하긴 했지만

판결문에서 이는 위법하지 않다는 판단일 뿐 법원이 사업계획의 적절성을 확인해준 것은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위에서 나온 내용처럼 법원은 적법성의 판단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와 반대로 인터넷상의 공론장은 '정당성' 의 판단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적법성의 판단에 있어서는 고도의 법적 지식이 요구되지만

정당성은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과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타협해 나가는 도중에

도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몰론 적법성도 정당성의 구성요소 중 주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토론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것처럼 공론장에서 까지 적법성의 잣대를 최우선으로 하여 다른 담론의 생산을 막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생산적 논의를 더욱 발전시켜야 할 공론장에서 적법성의 기준에 따라

전경이 누굴 쳤느니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졌느니 마니 하는걸로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부분의 판단은 법원에 맡기면 된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큰 파급력을 끼친 집회와 시위들.

이들이 법적인 구성요건에 완벽하게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수는 없다.

참가자들중 누군가 한명이라도 바닥에 침이라도 뱉었다면 경범죄처벌법에 위배될 것이니까.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주가되어

광우병파동에서 미국과 국민주권과의 관계.

용산참사에서 철거민들의 열악한 환경.

등록금집회에서 현재 대학생들의 처지.

이러한 법이 말해주지 않는 요소들에 대한 논의가 등한시 된다면 아마 그것은 '그들' 이 바라는 것일 것이다.

공론장은 어찌보면 매우 어수선해 보인다.

의견통합은 제대로 되지 않으며 때로는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기도 하고 굉장히 감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공론의 확산' 이다.

삼국지의 화웅이라는 장수는 닭잡는데 어찌 소잡는 칼을 쓰느냐고 했다.

우리는 가장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칼을 닭을 잡는데 쓸지 소를 잡는데 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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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06 14:35
수정 아이콘
무플방지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안타깝네요.
나름 이야기해볼만한 꺼리가 없이 당연한 소리라 댓글이 없는 모양입니다.
사실 아래 글과 연계되어 그래도 법을 지키는 것이 우선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만
제목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조회수 자체가 떨어져서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 그렇다고 자극적인 제목달기를 추천할수도 없고...
차라리 "등록금 시위를 통해 바라본 적법성과 정당성"이란 제목을 다셨으면 조금 더 후끈 달아 올랐으려나요. ^^
Judas Pain
11/06/06 16:24
수정 아이콘
법 판결의 핵심은 사건의 형식에 대한 판단이라고 봅니다.
정당성이란 말은 제 생각엔 사건의 윤리 차원에서 다룰 문제이고 제기하신 문제는 '경제적 합리성 내지 정치적 타협' 혹은 정치경제적 적합성이 더 어울리겠지요.

서구식 근대사회의 외곽을 지탱하는 법의 제한을 뛰어넘을 유이한 방법 중 하나는 정치적 의사표시입니다.
이 법의 형식적 제한과 정치의 가치적 돌파 사이의 까다로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냐가 서구적 근대사회의 내부역량을 가늠하는 잣대일 수 있는데

한국사회는 중산층을 필두로 하는 시민들이, 스스로에게 정치적 판단-개입을 떠난 순수성을 요구하는 것 및 법의 형식적 판단에 대한 의존이라는, 착한아이 내지 모범생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사춘기적 근대시민의 정체성을 이겨낼 때가 온게 아닌가 합니다. 군사독재정권이란 강하지만 간단한 정치적 문제를 타파한 후 시민들은 다시 정치적 판단에 대한 책임을 손에서 놓고 각자의 경제 활동에 몰입했지요.

이런 국민성이 형성된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보수-기득권 본디 법으로(법의 제정이 지배자 자의적이라면 근대 이전) 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제한하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고 민주주의는 여기서 대중이 엘리트를 정치적으로 컨트롤하는 체제인만큼 한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제 생각에 인터넷인프라와 촛불을 보면 알수 있듯, 한국에서 공론 형성의 장은 이미 충분합니다. 문제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느냐와 그에 대한 책임을 시민들이 질 수 있느냐 없느냐겠지요. 결국 정치적 결과 창출과 그에 대한 책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다음아고라식 음모론의 재생산에서 멈춘 2008 촛불시위의 반동이랄 수도 있는데, 지배층이 아니라 시민 그 자체의 내부에서 착학아이로의 회귀 요구가 종종 일어나는 것은 이 둘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 이 둘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고 바로 이 둘의 방법론이 한국 시민사회의 주요쟁점이 되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에선 주체성을 법에 대해선 존중을.
11/06/06 16:5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은연중에 구분하지 않고 있던 부분에 대해 잘 지적해 주셨네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불법은 안된다"는 말이 왜 위화감을 주는 건지를 알 것 같군요.
정당성의 문제에 천착하기보단 적법성의 문제로 결론 짓는 것은 어쩌면 모범 답안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 아닌가 합니다.
11/06/06 17:52
수정 아이콘
합법성만으로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까지도 현행 법체계 내에 분명 합법인 불법과 불법인 합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합법(정당한)이지만 현행 법 체계 내에서 불법인 것은 무조건 불법인걸까요?
불법(정의롭지 못한)인 법은 법인가요?
합법적으로 수권한 정당인 나치는 합법일까요?
합법적으로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는 -적어도 독일 국내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법철학사적으로 볼 때 이미 수 백년 아니 수 천년의 기간동안 법실증주의자들과 자연법론자들이 이 문제에 관해 싸워왔지만 아직도 명쾌한 해답이 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각자 자신이 믿는대로 행동하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의회에서 날치기 한 예산이든, 어느 독재자의 평생임기를 보장하는 독재헌법이든 일단 법이면 지켜야한다는 논리의 틀에서만 생각하고 - 소위 MB식 법치국가 이론이죠 - 그 잣대에서만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평가하는 것은 -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걸겝니다.
구름을벗어난달
11/06/06 20:54
수정 아이콘
지당하신 말씀이네요. 가끔씩 보는 불법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글입니다.
11/06/06 21:30
수정 아이콘
시위가 정당한지 여부는 목적보다는 수단에서 갈립니다. 목적이 나쁜 시위는 별로 없습니다. 촛불시위, 등록금투쟁, hid의 시위, wto의 농민시위도 목적은 정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투쟁의 수단이 정당한가 입니다.

자신의 의견이 머리속에만 있으면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겠지만, 밖으로 표출되어 시위 등의 형태로 나타나면 다른 법익과의 일정한 한계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한계가 법입니다. 위법과 적법의 문제는 타인과 국가에 대한 존중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위법한 행위는 일응 부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법률에 위헌의 소지가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법적안정성도 합헌성과 함께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큰 축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규범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법을 지키면서 시위를 해야한다는 것만으로 극단적 법실증주의자로 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어떤 법률로 인해 명백하고 중대한 기본권 침해가 있다면, 그 법을 어긴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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