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딸이 좀비에게 물려 좀비가 되었다. 군인들에게는 좀비 감염자들에 대한 즉시 사살 명령이 떨어지고 좀비를 숨긴 가족도 국가로부터 처벌을 받는다. 그런 딸을 외딴 시골 마을에 숨기고 딸의 기억력을 되살리기 위해 남몰래 가르치고 혼내고 훈련시키며 목숨을 걸고 케어하는 아빠의 이야기. <좀비딸>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좀비가 된 딸이라니. 좀비들이 부산행 열차에서 난동을 부리고, 멀쩡한 아파트를 습격하는 등 별의별 설정들이 다 나오더니 이제는 딸까지 좀비로 만드는구나 싶었다. 이렇듯 영화 <좀비딸>의 설정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황당하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부성애의 정서와 슬픔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공감대와 슬픔이 이 황당한 설정의 영화를 현실로 끌어내려 발 디디게 만들고 관객들을 자연스레 몰입시킨다.
황당한 설정과 현실적인 정서
이 영화를 보고 생각난 다큐멘터리가 한 편 있었다. '휴먼 다큐 사람이 좋다 – 배우 박철민 편'. 이 다큐에서 배우 박철민은 치매로 인해 아들인 본인을 기억하지 못하고 아이처럼 변해버린 어머니를 돌보며 생활한다. 이 다큐 영상 중에 박철민이 어머니를 모시고 운전을 하는 장면이 있다. 박철민은 운전을 하며 뒷 좌석의 어머니에게 본인(박철민)의 이름이 뭐냐고 계속해서 묻는다. '박철민' 이라는 세글자를 듣고 싶은 그는 계속해서 물어보지만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이처럼 변해버린 그녀는 그저 아들이 하는 말만 똑같이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따라하기만 한다. 아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거의 유일하게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가요(칠갑산)만 신명나게 부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함께 웃으며 장단을 맞춰주다가, 자기도 모르게 숨죽여 오열하는 박철민의 모습. 이 다큐에서 느낀 슬픔의 정서를 영화 <좀비딸>에서 어렴풋하지만 비슷하게 느꼈다. 감정의 밀도와 깊이는 다를 지언정, 기저에 깔린 가족애의 정서에서 비슷한 결을 느꼈다는 얘기다.
즉, <좀비딸>은 이러한 현실적 가족애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좀비에 감염된 딸'이라는 황당하고 영화적인 설정으로 재미와 유머를 뽑아내고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시킨다.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몰입이 어려울 것 같은 관객들을 이야기에 몰입시키고 슬픔을 느끼게 만드는 장치는 그 감정의 현실성에 있다. 그러니까 <좀비딸>에서 좀비에 감염된 딸을 바라보는 정환(조정석)의 시선은 마치 치매에 걸린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치매에 걸려 모든 기억을 잃고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딸.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 채 한 마리의 신경질적인 작은 짐승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린 딸의 모습. 불치의 병이라 모두가 가망이 없다고 여기지만 딸이 나을 수 있다는, 기억이 되돌아올 거란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아빠의 시선. 투병 중인 딸의 하루 하루를 사진과 함께 일기책으로 기록하는 아빠의 마음. 그리고 이러한 아빠의 노력 속에 본능적인 기억을 조금씩 찾아가는 딸의 모습들. 극 중에서 정환(조정석)이 보여주는 모든 행동과 태도, 아빠로서 내리는 결정 하나 하나가 어색하지 않았던 건, 내가 그런 상황이었어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겠다는 공감대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의 단단한 힘이 있다.
뻔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영화 <좀비딸>은 따뜻하고 영리한 영화이다. 억지 신파네, 자연스러운 감동이네 다양한 의견과 많은 말이 오갈 수 있겠지만, 그 흔한 신파 하나도 제대로 구현해내고 성공시키지 못해 관객들의 눈물샘은 커녕 피식..하는 조소만 이끌어내는 영화들도 많다. 그래서 '신파'라는 구태의연한 프레임으로 굳이 이 영화를 폄하하거나 까내리고 싶지 않다. 만약 이 영화가 신파영화라면 말그대로 제대로 성공한 신파영화다. '나라도 저렇게 하겠다'는 가족애와 공감대 속에 관객을 몰입시키고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울리는 따뜻한 가족영화이다. 더불어 당초 제작 시 의도했던 목적과 소임을 충분히 달성하는 상업영화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좀비딸>의 흥행과 영화의 수준을 운운하며 한국 영화가 망조가 들었네, 어쩌네 폄하하는 목소리도 간혹 있는 것 같다. 나는 반대로 얘기하고 싶다. 영화를 만들면서 뭘 대단하고 그럴싸하게 치장하고 포장할 궁리만 하지 말고 이정도라도 만들어라. 그러면 우리 관객들은 넓은 아량으로 알아서 찾아준다. 그런 의미에서 <좀비딸>은 일견 뻔하고 평범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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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딸을 특별히 나쁘게 보지는 않았고 현재 좀비딸의 흥행에 딱히 불만은 없습니다만, 좀비딸 정도로만 만들면 관객들이 넓은 아량으로 찾아준다는 이야기는 헛웃음이 나오는군요. 보통은 좀비딸, 파일럿 같은 영화의 흥행은 "영화를 잘 만들면 관객은 알아서 찾는다"라는 명제가 잘못되었다는 반례로 주로 언급될 영화들이거든요. 애초에 잘 만든 영화가 무엇이냐 부터 많은 논란이 있을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저 명제는 잘못 되었다는 입장입니다만, 좀비딸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영화가 없어서 여태 한국영화가 흥행에 연전연패 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당장 가족애라는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흥행에 참패했던 보통의 가족이 좀비딸 보다 훨씬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좀비딸 재미있게 봤고 소재도 신선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올해 극장에서 본 한국 영화 중에는 좀비딸보다 완성도가 같거나 더 높은 작품도 분명 있었어요
그래서 이 정도면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다는 말에는 솔직히 물음표가 생겨요
좀비딸은 마침 영화 관람 정부 지원이 있던 시기에 개봉했고 그 덕분에 많은 최초 관객을 확보했죠
그리고 영화 자체도 괜찮았기 때문에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다고 생각하고, 그게 올해 다른영화와의 차이라고 봐요
그런거보면 좋은 영화가 흥행 확률을 높이긴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에요
반대로 완성도가 낮아도 우연히 흥행하는 경우도 많아요
마치 축구에서 빌드업과 전술을 완벽하게 갖추고도 계속 골대를 맞히거나
상대 골키퍼에 막히다가 세트피스 한 방에 실점해서 지는 경기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