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 예(埶, 藝)의 원래 뜻은 '식물을 가꾸다'이고, 이 뜻이 아직 남아 있는 낱말이 원예(園藝)다. 물론 藝가 기술의 뜻으로 쓰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식물을 가꾸는 원예 활동에서 중요한 작업이 풀을 깎는 일인데, 이를 예초(刈草)라 하고, 이 작업에 쓰이는 도구로 예초 가위나 예초기(刈草機) 등이 있다.
이 예초에 쓰인 한자인 벨 예(刈)는 칼 도(刀)가 뜻을 나타내고 깎을 예(乂)가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다.
왼쪽부터 乂·刈의 갑골문 1, 2, 3, 4, 5, 금문 1, 2, 소전, 혹체. 출처: 小學堂
깎을 예(乂)는 벨 예(刈)의 원형이기도 하며, 풀을 깎거나 다듬는 데 쓰는 가위의 모습을 본뜬 한자다. 《설문해자》에서는 刈를 乂의 혹체로 수록했는데, 현재는 刈가 乂와는 독립된 글자가 되었다.
갑골문 1은 소전의 乂의 형태와 유사한데, 갑골문 2, 3은 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추 시구이가 허물 건(䇂)의 갑골문으로 여겨진 2, 3이 乂의 초문이라고 주장한 것에서 비롯한다. 4, 5는 풀이나 곡식을 䇂 모양의 도구로 손질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금문 1, 2 역시 䇂에서 파생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乂는 원래는 가위로 풀을 베고 깎는 것을 가리키는 한자인데, 원예에서 예초하는 것이 곧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는 방향으로 인신되어 다스리다, 편안하게 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베다는 뜻은 파생된 刈가 담당한다. 더 나아가서, 다스리고 편안하게 할 만큼, 남들과는 다른 빼어난 재능이 있는 준걸이라는 뜻도 인신되었다. 준예(俊乂)가 바로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위나라 장군 장합(張郃)의 자가 바로 이 준예다. 보통은 자를 지을 때 이름의 한 글자와 자의 한 글자가 호응하게 하는데, 장합을 전사하게 한 제갈공명의 이름이 제갈량, 곧 밝을 량(亮)으로 자인 공명(孔明)의 밝을 명(明)과 호응한다. 그러나 장합은 이름과 자가 호응하는 구조가 아니라 자만으로 완결된 의미를 지니게 했다.
:
乂의 상고음은 정장상팡 기준으로 *ŋads로 재구하는데, 공교롭게도 藝의 상고음 *ŋeds과 모음만 다른 비슷한 음이다. 어쩌면 식물을 가꾼다는 말이 이 자른다는 말에서 비롯했을지도 모르겠다. 乂의 어원은 STDET와 쉬슬러에 따르면 원시중국티베트어에서 다듬다, 자르다, 수확하다의 뜻이 있는 *r-ŋa-p로 보며, 티베트어 རྔ་བ (rnga ba), བརྔས (brngas)와 동계어로 본다.
깎을 예(乂, 보예(保乂), 준예(俊乂) 등. 어문회 준특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乂+刀(칼 도)=刈(벨 예): 예초(刈草), 조예(早刈) 등. 어문회 준특급
乂+艸(풀 초)=艾(쑥 애): 애로(艾老: 쉰 살의 늙은이), 소애(少艾: 젊고 예쁜 여자) 등. 어문회 2급
乂에서 파생된 한자들.
쑥 애(艾)는 쑥의 흰 털에서 따 머리가 센 연장자를 뜻하기도 한다. 지금은 쉰 살이면 늙은이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수명이 짧은 옛날에는 쉰 살만 되어도 늙은이라 했다. 또 삼국지 얘기를 하면, 험한 산길을 타고 촉을 정벌한 삼국지의 두 등산왕 중 하나인(나머지 한 등산왕은 산에 올라서 전쟁을 망친 마속) 등애(鄧艾)가 이 한자를 이름으로 쓰는데, 자가 사재(士載)이므로 이 艾는 나이가 많다는 뜻이다. 載에는 '싣다'라는 대표 뜻 외에도 '해'라는 뜻이 있다.
등애는 50살만 살아도 장수한 것으로 여기고 이름을 지었는데, 실제로는 70살 넘게 살아 삼국 시대의 한 축을 무너트리기까지 했으니 대단한 노익장이다. 비록 그 결말은 권력 다툼에 말려 들어가 비참하게 죽는 것이었지만. 촉 정벌의 주력군을 이끈 총대장 종회(鍾會)에게 모함을 받아 군권을 빼앗기고 수감되었고, 종회가 모반을 일으켰다 죽으면서 부하들의 도움으로 해방되었으나 종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위관(衛瓘)에게 위험한 인물로 찍혀 자신도 죽고 말았다.
그런데 쑥의 모양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艾는 아름다움을 뜻하기도 한다. 《맹자·만장》에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사람이 어리면 부모를 사모하고, (성적으로 성숙해) 호색함을 알게 되면 젊은 미녀를 사모하고, 처자를 얻게 되면 처자를 사모하고, 임금을 모시게 되면 임금을 사모하고, 임금을 얻지 못하면 속이 불탄다. 큰 효는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하는 것이다. 50이 되어서도 사모하는 사람으로, 나는 위대한 순을 보았도다.
여기에서 젊은 미녀를 표현하는 말이 바로 소애(少艾)다. 맹자는 순이 요의 두 딸과 혼인하고서도 근심을 잊지 못했고, 부모에게 순종하고서야 비로소 근심을 잊을 수 있었다면서 순을 효성의 예로 들고 있는 것이다. 맹자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순과 혼인한 요의 두 딸이 미녀였나 보다.
한편 艾는 刈, 乂와 서로 통하여 쓰일 수 있다. 지금은 刈를 예로 읽지만 조선 시대에 출간된 《훈몽자회》에서는 훈음을 '뷔 애'라고 해 艾와 음이 같다. 한편 중국어에서는 艾는 ài, 乂와 刈는 yì로 서로 다르게 읽는데, 艾를 乂, 刈의 뜻으로 쓰면 음이 yì로 바뀐다. 한국 법원의 인명용 한자 목록에서도 艾를 '애'와 '예' 양쪽에 모두 수록했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艾를 '쑥 애, 다스릴 예'로 풀이하고 있다. 일본 코에이테크모 사의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 장합의 자가 艾를 쓴 준예(俊艾)로 나오기도 하는데(최신작인 8 리메이크도 그렇다), 준애로 읽지 않는 한 틀린 게 아닌 것이다. 일본어에서는 乂와 艾가 모두 음독이 ガイ로 같기도 하다.
요약
깎을 예(乂)는 풀을 깎거나 다듬을 때 쓰는 가위의 모습을 본뜬 상형자다.
乂에서 벨 예(刈)·쑥 애(艾)가 파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