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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7/21 20:39:26 |
Name |
zeros |
Subject |
Mr.Waiting - 10 |
그런 나날들을 보내던 중, 그녀의 소식이 궁금해진 나는 그녀의 미니홈피에 접속해 보았고, 그곳에 적힌 짧은 유학날짜를 접하게 되었다. 그녀가 어디를 간다는 사실은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이미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 그리고 이미 세워진 그 계획을 나에게 말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아픔이었다. 도대체 우리가 한 약속들이 그녀에게 의미가 있기는 한 건지. 그녀의 입장과 나의 입장에 따른 경중의 차이를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화가 났다. 그녀의 출국을 얼마 남기지 않고, 난 정말 어렵게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나야.”
“응.”
“너 또 나가더라?”
“응.”
평소와는 다른 내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짧은 대답뿐이었다.
“왜 나한테 얘기 안했어? 너한테 전화는 꽤 많이 한 거 같은데.”
“그냥 거기에 써 놓으면 볼 사람은 다 볼 거라고 생각했어.”
“난 말이야. 너에게 나란 사람은 그런 일이 있으면 어느 정도 통보를 받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구나. 그래서 좀 실망스럽다. 겨우 이 정도인가 싶기도 하고.”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 정적동안 나의 화는 누그러져 버렸다. 이제 새삼스러울 일도 없는 일이었다. 날 얼마나 아프게 하든, 난 제대로 화조차 낼 수 없었다.
“뭐, 어차피 정해진거고. 잘 다녀와.”
“응.”
“야 근데 내가 너한테 이렇게 싫은 소리한 적. 전에는 한 번도 없지 않았니?”
“그래…?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그럼 내가 이러는 걸 보면 이번엔 네가 좀 잘못했나보다 싶은 생각 안 들어?”
그녀의 침묵은 재개되었다.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처음으로 그녀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당황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더 이상 얘기를 계속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튼… 끊는다.”
“잠깐.”
나는 수화기 속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연락 못한 거, 미안해. 그렇지만 네가 나한테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존재는 아니란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이번엔 못 만나지만, 다음이 또 있잖아. 그리고 나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다 먹고 살자고 공부하러 가는 건데, 네가 그렇게 화를 내면 어떻게 해.”
애초에 그녀의 유학 사실보다 그 사실을 제대로 말 해주지 않은 그녀에게 화가 났던 것이라고, 다른 사람 같았으면 네가 가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한마디 말도 없는 너 때문에 화가 난 것이라고 따졌을 나이지만, 그녀의 말 앞에서 난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도 화내서 미안.”
“아냐, 오늘도 근무 나가?”
“응. 이따가 나간대.”
“오늘 무지 춥다는데 고생이네.”
“그냥 뭐, 다 그런 거지.”
“그래. 다음에 만나 우리. 힘내!”
“응. 너 가기 전에 연락할게.”
“응. 안녕.”
전화는 끊겼다. 속도 없이 힘내라는 그녀의 한마디에 헤벌쭉 해지는 스스로를 보고 있자니 정말 멍청해보였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녀가 일본에 있을 때, 그리고 나중에 떠난 미국으로의 유학기간 동안 난 나의 파란 수첩에 그녀가 돌아오면 할 일을 적어 놓았었다. 지금 그 페이지엔 오직 한 개의 체크만이 남아있다. 사실 그 날이 우리가 계획한 날은 아니었다. 원래 우리의 약속은 그 다음 날이었다. 다른 이들과 함께 하던 나에게 그녀는 나의 한, 두 시간을 원했다. 약간의 긴장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옅은 불길함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외면하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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