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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6/28 21:57:37
Name zeros
Subject Mr.Waiting - 6
웃던 지은이가 나에게 물었다.

“근데 너 그날 날씨나 이런건 알아보고 얘기 하는거야?”
“어… 맞다. 똑똑하다 너.”

평소엔 집 근처에 있어도 전혀 관심 없던 놀이공원이지만, ‘지은’ 이라는 변수가 내가 사물에 부여하는 가치의 경중을 변화 시키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었지만 4월 말의 따뜻함이 그 당시 나에겐 최고의 날씨였다. 내가 쥐고 있던 핸드폰이 어색했고, 짧은 머리카락 만큼이나 내가 입던 어느 옷을 입어도 영 모양새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귀엔 그토록 듣고파하던 음악이 있었고 누구하나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평온함이 있었으며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내가 품고 있는 그녀를 향한 마음 때문인지 그녀가 내게 하는 그 작은 장난들이 어떤 확신마저 들게 하였다. 그러나 2년 전 그녀가 나에게 남겼던 상처는 분명 깊은 것이었다. 상처는 나았지만, 흉터는 남은 것처럼.
몇 년 만인지, 헤아림 조차 어려울 만큼 오랜만에 타보는 놀이기구의 속도 만큼이나 시간은 빨랐다. 폐장시간은 다가왔고 우린 늘 하던 것처럼 항상 가던 그녀의 집 앞 포장마차에서 술을 홀짝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나 철통같이 지켜지던 통금시간을 30분이나 어기고서야 그녀는 들어갔고 난 또 과거에 늘 하던대로 20분 정도 걸리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 돌아왔다. 내 방의 나의 이불은 정말이지 놀랍도록 포근한 것이었다. 그 포근함에 놀란건지 내가 지냈던 꿈같은 하루에 놀란건지.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자고 깨고를 몇 번씩 반복하다 시계를 보니 4시 40분. 머리속은 새벽 공기 만큼이나 상쾌했다. 어두운 방안을 뒤적거려 이어폰을 찾아 귀에 꼽은 나는 1시간 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일어났어?”
“응.”
“학교가야지.”
“너 안잤어?”
“아 그냥. 잠이 안와서 자다 깨다 그랬지 뭐.”
“응. 일어날거야.”
“그래.”

전 날 포장마차에 있었을 때 그녀가 내일 1교시 수업이라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한다며 투정을 부리던 것을 기억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깨워주고 잠이 든 나는 얼마 후 깨워줘서 고맙다는 그녀의 메시지에 잠을 깼다.
다른 20대들도 하는 고민이겠지만 내가 항상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미래에 대한 계획의 문제는 놀랍게도 스스로 거의 버리는 시간이라고 치부했던 입대 이후의 시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 출동을 나가던 나날을 보내던 중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항상 가던 음식점, 가던 영화관, 가던 술집. 새로운 경험 없이, 폐쇄된 나만의 세상 안에서만 살던 내가 삶의 목표에 대한 질문이라는 큰 숙제 앞에 좌절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제야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우물 안 개구리’ 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이 이해가 갔다. 난 좁아도 너무 좁게 살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어디라도 가보려 해도 의욕만 충만할 뿐 막상 어딜 가야할지 감도 잘 잡지 못하는 상태였다. 막연히 인사동을 가보려던 나에게 한 친구는 삼청동을 추천해주었다. 분명 내 또래라면 한번 쯤은 가봄직한 곳이건만 나에게는 그저 어디선가 한두 번 들어보았을 뿐인 곳이었다. 친구는 혼자 가는 것도 좋지만 데이트 코스로 좋을거라며 지은이와 가는 것을 추천했다. 맨 처음 생각했던 그 거룩한 목표는 어디로 갔는지 나는 또 그 말에 혹해버렸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녀는 갑작스러운 나의 부름에 환히 응답해주었다. 나는 지은이네 학교 앞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웃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를 맞았다.

“왔어?”
“응. 모자 귀여운데?”

그녀는 나의 검정색 모자를 가리키며 웃었다. 다른 친구들 같으면 나 역시 장난으로 받아 쳐주었겠지만 그녀 앞에선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 안의 한 자리를 놓고 네가 앉느니 내가 앉느니 실랑이를 벌이다보니 어느새 경복궁역에 다다랐다. 인터넷으로 봐두었던 출구까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그녀도 나도 정확히 삼청동을 어떻게 가는지 몰랐던 것이다. 알만한 사람들에게 연락해 봤지만 둘 다 타고난 길치인덕에 무슨 얘기인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였다. 30분 정도를 갈팡질팡 하던 우리는 결국 택시를 타기로 했다. 뒷자리에서 목적지를 이야기 하는 나를 택시아저씨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삼청동까지는 5분정도가 걸렸다.

못말릴 정도로 방향 감각이 없는 서로를 보며 웃다가 길을 거닐기 시작했다. 날씨는 쾌청했고 풍경은 좋았다. 그러나 거의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무작정 온 탓인지 우린 여기서 가 볼 만한게 무엇인지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녀와의 시간을 남기고 싶어 생전 안 쓰던 카메라도 챙겨갔지만, 왠지 모를 쑥스러움에 가방 깊숙한 곳에서 꺼내지 않았다. 쌉싸래한 긴장감과 묘한 기쁨이 나를 두드렸다. 그녀나 나나 저녁엔 이미 선약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삼청동에서 우리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아쉬움과 즐거움이 뒤섞인 시간들… 나는 짧디 짧은 3박 4일의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p.s 안녕하세요. 글쓴이 zeros입니다. 연재를 시작한뒤로 처음으로 써보는 추신 이네요.
글과 관련된 말씀을 하려던 건 아니고, 요즘 여러 곳에 올라오는 멕시코만 석유사건.. 다들 아시죠?
참 그 사건을 접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저도 인간이지만 정말 지구상에서 인간이란 종이 다른 자연 동식물에게 얼마나 민폐스러운 종인가 부터 해서
옛날에 봤던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요원이 모피어스에게 '인간은 바이러스다' 라는 대사까지 이런저런 별의별 생각이 다 나더군요.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 이미 사건은 일어났고 이 시점에서 저같은 잉여양민이 그 사건에 직접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 앨 고어 가 출연하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마지막에 이런 메시지가 나옵니다.
우리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안쓰는 전등을 끄는 그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로도 우리의 지구를 살릴수 있다고요.
잉여양민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 여러분들 께서는 훨씬 더 잘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잉여양민입니다. 하지만 지구를 사랑하구요. 기적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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