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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6/09 16:27:51 |
Name |
zeros |
Subject |
Mr.Waiting - 1 |
지은이와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난 사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방학. 내 인생에 보습학원이라는 것이 최초로 등장한 시기였다. 학원 창문을 열면 넓은 길에 내려다 보였고, 쌓인 눈 위의 발자국들이 더러웠다. 지은인 겨울임에도 목이 다 늘어진 반팔 티셔츠와 츄리닝 바지를 입고 다니던 나를 보고 웃었다. 난 그 웃음이 좋았다. 그 해 겨울 방학이 끝나고 우린 같은 중학교로 진학했고, 가깝게 지냈다.
당시 우리가 다니던 학원 교실엔 네댓명 정도의 친구가 더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웃음을 좋아하는 아이는 나 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는 나와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다른 친구들은 승낙한 상태였다. 이미 나의 감정은 그다지 중요한 상황이 아닌 듯 했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 줄 알았다. 얼마 후, 친구는 자신의 바람을 이루었고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였다. 난 웃었다. 당시 유행하던 틴에이지 드라마의 한 편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이 후엔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때 나는 우리의 인연이 거기서 그냥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고등학교 첫 해 가을,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나는 졸업앨범 뒤편에 적혀진 지은이의 집 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게 되었다.
"여보세요?"
"..."
혹시나 폐가 될까 하루에 한 번 밖엔 할 수 없는 나의 다가섬엔 언제나 그녀의 어머니만이 응답하셨고, 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어머니에게 그녀를 바꿔 달라는 말까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데는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여보세요?"
오랜만이었지만, 그녀임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지은아. 나 준오야."
"뭐? 야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어어. 나야 잘 지냈지."
"으응. 근데 웬일이야?"
그렇게 난 그녀와 만났다. 단 둘이 학원이나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만난 것은 그 시절이 처음이었다. 우린 자주 영화관을 찾았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난 너무 어렸고, 미숙했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의 대화는 길지 않았고 공감 없는 무미건조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뿐 이었다.
그 만남들이 그녀에게 의미가 있기는 했을까.
혹자는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도 했지만 마음대로 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였다. 처음 그녀의 집에 전화를 걸던 용기는 어디로 가 버린건지 그녀에게 내 맘을 제대로 보이지도 못한 채 언젠가부터 대답이 줄어드는 그녀에 마음만 아파하다 포기하고 말았다.
포기가 고통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긴 했다.
그것이 시간의 흐㎰� 따른 자연스런 치유인지 내가 고통에 적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리움은 고통의 선명함과는 상관이 없어보였다.
재회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2년 반 남짓한 시간동안 그 만큼 서로 성장하며 단절된 시간을 보내오던 우린 내가 재수를 하던 해의 어느 여름 날,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예전 초등학교 시절 그 학원에서 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들과의 자리였다.
그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긴장한 마음을 숨긴 채 친구들을 맞았다. 지하철 역 앞에서 도착하지 않은 그녀를 마냥 기다리기엔 날씨가 너무 더웠기에 우린 지하철 역이 바로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있었다.
군것질을 하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내 눈에 그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많은 인파 속에서도 한 번에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보라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내 앞에 있을 때 내가 느꼈던 느낌은 2년 전 가을의 전화통화에서 그리고 그 해 겨울 그녀를 만날 때 느꼈던 바로 그런 두근거림이었다. 그녀에게 다가서려 했던 나의 모습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공부할 책이 들어가 있어야 할 책장에는 연애지침서가, 데이트 코스들이 적혀있는 연습장이 자리한 나의 독서실은 당시 나의 숙원사업을 위한 전초기지였다
* 박진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6-1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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