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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7/05 22:40:23 |
Name |
zeros |
Subject |
Mr.Waiting - 7 |
내가 첫 휴가에서 복귀하고 얼마 되지 않은 그 해 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전국의 여론은 들끓었고, 광우병 문제와 얽히면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켜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겐 그들의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위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우리의 잘못인지 시위대 측의 잘못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정해진 집회를 마치고 흩어지던 처음과는 달리 언젠가부터 얼굴을 빨간색 수건으로 가린 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과 만나게 된 첫 날 난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나 싶었다. 나와 나의 동료들이 당최 무슨 죄를 지었기에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그런 욕을 먹어야 하는지. 우리의 차량이 불타야 했는지.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새벽 6시쯤 돌아와서 다시 아침 9시, 10시에 출동을 나가야 하는 경력운용에 힘입어 우리는 점점 그들을 다른 사람이라기보다는 틀린 사람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우리의 편은 없어보였다. 당장 시위현장에 나가면 우리에게 날아오는 것은 욕설과 몽둥이, 밀침이었고 혹시라도 부대에서 TV라도 보게 되면 과잉진압과 폭력경찰이라는 비판과 질책뿐이었다. 정신과 육신, 그 어느 것도 의지할 곳이 없었다.
“야 앞만 뚫어라 이 새끼들아!”
“예쓰!”
그 날 밤은 부대에서 나온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시위가 거셌던 것은 이제 어제 오늘일이 아니었지만 이미 하룻밤을 새고도 부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나와 있는 경우는 그 날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바로 근처에 있는 시위대 앞에서 연신 소리를 질렀다. 두려움은 조금 가시는 듯했다. 광화문 역 근처의 골목길이었다. 이미 기대마 차량으로 길을 막아놓았고 그 좁은 틈 사이로 시위대들이 뚫고 들어오려고 하는 중이었다. 주변 건물 옥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다가 방송 조명까지 켜져 대낮처럼 환했다. 헤아릴 수 없는 욕설과 조롱이 우리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하이바는 그것들을 막아주지 못하였다. 대치상황은 계속되었다. 들어오려는 시위대들이 계속 밀어붙이는 바람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얼굴과 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었다. 상황이 더 나빠지진 않아 서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채 밀지도 밀리지도 않는 시간이 지나가던 중,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위대 측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xx놈들이!”
“이 새끼들 다 죽여야되!”
잠시나마 조용해진 것 같았던 골목길은 또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엉뚱하게도 예전 한 유명 밴드의 스탠딩 공연을 갔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이미 내 의지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밀고 밀리는 와중에 대열은 이미 흐트러졌고 휘청이는 탓에 힘을 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수십명의 사람들이 도미노 쓰러지듯 넘어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물결은 아주 빠른 속도로 내 쪽까지 밀려왔다. 뒤로 넘어지는 것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비규환. 마치 애벌레들이 한 데 뭉쳐 꿈틀거리는 장면인 듯 했다. 내가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명으로 환하던 시야는 그림자들로 암흑이 되어버렸고 옥죄는 듯한 어둠과 비명소리는 공포심을 만들어냈다. 일어서려 애썼지만 손을 짚을 공간도 없었다. 어떻게 한건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몸을 일으킨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중대 대원들과 섞여버린 대열 사이에서 후임 3명을 찾아 끌고 왔다. 중대를 찾는 일은 포기해 버렸다. 어차피 그런 상황에선 찾는 것도 무리였고, 중대의 구분조차 의미가 없어 보였다. 어디서 건너 온 것인지 모를 물이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쓰러지기 전에 있던 위치보다 훨씬 후방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그 때 역시 계속 버텨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 등 뒤엔 전봇대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몸을 돌려 전봇대를 마주하고 등으로 다른 대원들을 지지해 주었다. 좀 전의 사고에 잠시 멈칫하던 군중들은 또다시 우리를 밀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전봇대 위에 다리를 올려 버텨보려 했지만 나의 힘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순식간에 무릎은 꺾여버리고 눈 앞의 전봇대는 순식간에 커졌다. 나는 얼른 몸을 빼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오른팔은 전봇대와 이름 모를 타 중대원 사이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했다. 압박의 강도는 빠르게 증가했다.
“으아악!”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팔에서 우득거리는 낮고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빨리 팔을 빼내야겠다는 생각과 차라리 부러져서 맟 달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아아아!”
“야! 저거 얼른 빼내!”
“밀지마! 사람끼었어!”
곁에 있던 타 중대 대원들부터 멀리 있던 시위대에 이르기까지 팔이 낀 나를 발견한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려 소리를 질러댔다. 주변의 도움 덕에 간신히 팔을 빼냈다. 다행히 부러지거나 하진 않은 것 같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빠져 나갈 곳은 없었다. 등 뒤엔 누가 주인일지 모를 트럭으로 막혀있었고 큰 길로 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은 이미 시위대와 기자, 경찰들로 꽉 막혀있었다.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 때 누군가 내 뒷덜미를 잡았다.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숨이 턱 막혔고 몸을 질질 끌려올라갔다. 트럭 지붕 위엔 3명의 대원들이 올라와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닥치는 대로 트럭위로 끄집어 올리고 있었다.
“아저씨! 얼른 넘어가요!”
난 트럭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땅에 닿았을 때 오른팔의 저릿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아 준오야! 이리 와! 저 쪽으로 가면 다들 모여있어!”
이미 꽤 많은 대원들이 현장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모자를 잃어버린 사람, 방패를 잃은 사람, 운동화를 잃은 사람까지 모두 제각각이었다. 가관이었다. 그 날 밤 우리는 길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잠을 청했다. 한 여름이었지만 새벽녘 길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몸을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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