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KF-21 초도 비행 기념 T-50/FA-50 이야기1
https://pgr21.co.kr/freedom/96056
2편 T-50/FA-50 이야기 2편 - 개발사1
https://pgr21.co.kr/freedom/96244
3편 T-50/FA-50 이야기 3편 - (개발사2) 탐색 개발로 가는 길
https://pgr21.co.kr/freedom/96248
편의상 본문은 반말체임을 양해 부탁 드립니다.
[왜 초음속기인가?]
탐색 개발 예산이 일괄 승인 됨으로서 드디어 본격적인 T-50 고등 훈련기 개발이 시작 되었다.
1992년 10월 에서 12월에 걸쳐 엔지니어들이 미국으로 떠났고 록히드 사와의 공동 개발이 시작 되었다.
탐색 개발은 군의 요구 사항에 맞추어 고등 훈련기를 어떤 사양으로 만들지 개념적으로 결정하고 설계하는 단계였다.
그러나 사실 공군의 요구 사항은 사실 단순했는데 그냥 한국판 호크기를 만들어 달라는 정도였다. 이렇게 갔으면 사실 간단했겠지만 전박사의 생각은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단순히 공군의 요구를 따르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기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개발 완료까지 10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변화할 상황을 고려하고, 무엇보다 한국 공군의 훈련기 수요는 고작 7-80여대에 불과 하므로 이대로는 도저히 경제성을 맞출 수가 없었다. 따라서 한국 공군은 물론이고 세계 시장에도 통할 만한 기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따라 과거와 현재의 모든 전투기, 훈련기의 성능과 제원을 분석하고 특히 F-22가 등장하면서 대두 되는 미래 5세대 전투기 시장에 맞춘 훈련기는 어떤 것이야 할지 고려해가며 연구를 했다.
각종 자료 조사 등으로 도출 된 결론은 미래 훈련기는 기동성과 전자 장비가 중요할 것으로 생각 되었다. 기동성 측면을 더 자세히 보면 당시 F-22는 강력한 엔진에 추력 벡터링(Thrust Vectoring)까지 도입하여 차원이 다른 기동성을 보여 주었고, 다른 최신예기인 라팔, 유로 파이터, 수호이 27 등도 강력한 기동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사실 이 예상은 F-35 때문에 지금 보면 약간 안 맞는 면도 있지만 당시로서는 적절한 분석이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 하자면 F-35 역시 절대 기동성이 떨어지는 기체는 아니다. 기본 이상의 능력이 있으며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기동성을 강화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오해가 좀 있다.)
아무튼 연구팀은 기존의 아음속 훈련기들과 최신예 전투기들의 기동 성능의 중간값 정도로 요구 성능을 설정하였으며, 이러한 목표치에 대해 추력 대 중량비 등을 감안하면 T-50은 초음속 기체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한 연구팀은 이러한 과정 속에 중요한 정보를 입수 했는데, 원래 F-16 개발사인 제네럴 다이나믹스가 록히드 사에 합병 되기 전, 미 공군의 차세대 훈련기 요구성능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이 결과로 미 공군은 차세대 훈련기로 초음속 기체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미 공군은 오래된 초음속 훈련기인 T-38 탈론(F-5의 원형)을 수십년 째 운영 중이었으며 노후화가 심각해 2000년대 초반이면 교체 시기가 도래 할 예정이었다. (1편 참조)
원래 미군은 훈련기 정도는 자체 개발을 하지 않고 해외 기종을 국산화 하는 경우가 많다. (미 해군도 호크기를 훈련기로 사용). 따라서 지금 초음속 훈련기를 개발한다면 미공군의 훈련기 시장을 노려 볼 수 있고, 이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수량일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노릴 수 있다.
또한 기술적으로 초음속기는 개발이 더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록히드의 기술 이전을 받을 수 있는 이 기회에 단번에 초음속 기 설계 기술을 익힌다면 기술 수준 발달에서 수십년을 당길 수도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제 개인 의견입니다.)
전박사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여러가지 이유로 T-50은 초음속 훈련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으나, 정작 소요군인 공군은 아음속 훈련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작(?) 350억의 탐색 개발 예산에도 그 난리를 겪었는데, 조단위 사업비가 투자되는 체계 개발 문제도 골치가 아팠다. 아직 3, 4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지만 체계 개발을 진행하려면 지난번 국방부 정도가 아니라 재경원, 국회까지 설득 시켜야 했다. 결국은 최고 결정권자를 움직여야 승산이 있을 일이었다. 여기에 기술적 난이도가 더 해지면 체계 개발을 진행하는데도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전 박사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박사는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물러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록히드를 끌어 들이자]
전박사는 앞서 열거한 이유로 록히드를 반드시 고등 훈련기의 사업 파트너로 끌어 들여야 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파트너란 현재 기술 선생님 노릇을 하는 파트너가 아니라 business partner, 말 그대로 같이 고등 훈련기를 파는 장사를 같이 하는 파트너를 의미한다. 아예 록히드가 고등 훈련기 사업에 투자를 하게 함으로서 운명 공동체가 되는 걸 뜻했다.
많든 적든 록히드가 투자를 하면 세계 굴지의 업체가 그만큼 고등 훈련기 사업의 시장성을 좋게 본다는 뜻이고, 체계 개발을 진행 하기 위해 한국 정부를 설득 하는데 그 보다 더 좋은 이유는 없을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사실 록히드로서는 잠재적 경쟁자를 키우는 기술 이전을 열성적으로 해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고등 훈련기 사업으로 록히드 역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술 이전에 적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결정한 후 록히드와 한국 정부를 설득하기 위한 개발 계획과 시장 조사를 진행하였다.
먼저 공군을 설득할 논거가 필요한데 초음속기를 개발하면 이를 이용해 경공격기나 전투기로도 쉽게 개량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노후화 되는 F-5 및 F-4 시리즈를 대체 할 수도 있다.(현재의 FA-50) 또한 초음속 훈련기는 성능이 우수하므로 레이더나 항전 장비만 보강하면 고등 훈련 과정 이후 전술 까지 가능한 고등 전술 훈련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현재의 TA-50)
이런 식으로 앞으로의 훈련기 시장의 변화를 예측 해 보고 다음과 같은 결론들을 도출하였다.
1. 한정된 군수 예산 등으로 고등 훈련기 겸 경전투기종 선호가 예상 됨
2. 첨단 차세대 기종(F-22, 라팔, 유로파이터 등)의 훈련을 위해 초음속 훈련기가 불가피
3. 한국 공군의 low 급 F-4, F-5 시리즈의 대체
4. 2000년대 초반 미공군의 훈련기 대체 수요가 400에서 500 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 됨.
5. 또 한 전세계 적으로도 미국과 한국을 제외 한 호크기 등 노후 훈련기 교체 수요가 2010년까지 3000여대에 달 할 것으로 예상 되는데 이 중 300여대의 교체 수요만 확보해도 모두 합해 대략 1000여대의 생산이 가능할 것
이러한 분석 결과를 록히드 측 T-50 개발 파트너이자 총 책임자인 루머스 박사(Dr. Lummus)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도움울 구했다. 루머스 박사는 이 계획에 기본적으로 굉장히 호의적이었고 전박사는 루머스 박사에게 록히드의 총회장인 텔럽(Daniel M. Tellep) 박사를 초청 해 줄 것을 부탁한다. 록히드 사의 회장에게 이러한 전략을 직접 설명하고 투자를 권유하기 위해서였다.
루머스 박사는 동의를 하였다.
이 단계에서 전박사는 결국 이 사업은 초음속 기체로 가야 한다고 최종 결심하고 연구원들에게 사업적인 부분은 본인이 해결 할 테니 초음속기로 설계를 진행하도록 주문한다.
[록히드 회장과의 면담]
록히드 회장과의 면담 일정이 잡히기 전 전박사는 록히드 포트워스의 사장과 부사장인 잉글랜드(Mr. England)와 앤더슨(Mr. Anderson), 그리고 록히드 항공 부분 사장 카네스트라(Mr. Cannestra)에게 앞서 언급한 내용을 보고 했는데 이들의 반응은 대단히 좋았다. 이에 용기를 얻은 전박사는 총회장과의 면담을 학수고대하였다.
드디어 1993년 4월 7일 면담 일정이 확정 되었다. 초음속 훈련기, 체계 개발, 성공적인 기술 이전 이 모든 것들의 성패가 이 면담에 달려 있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지만 며칠 동안 브리핑 내용을 달달 외우다시피 연습하며 성공적인 브리핑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드디어 면담일 당일, 총회장 텔럽과 참모진을 맞이한 전박사는 준비한 내용을 열과 성을 다해 브리핑 하였다. 특히 미 훈련기 교체 사업과 국제 무대에서 T-50의 사업성과 전망이 대단히 좋음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록히드 측이 이 사업에 투자 해 줄 것을 건의 하면서 이 사업으로 한국, 미국 공군의 소요 충족은 물론 세계 시장까지 석권 할 수 있음을 강조 하였다.
브리핑이 끝나자 총회장과 참모진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텔럽 회장은 브리핑 내용에 동의 하면서, 사업성이 좋게 보이지만, 지금 당장 Yes or No를 답을 줄 수는 없고, 참모진에게 구체적인 검토를 해 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웃으며 전박사의 어깨를 톡톡 치며 아주 훌륭한 브리핑이었다고 말하고는 돌아갔다.
전박사는 긴장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호의적인 반응에 일단 한 숨을 돌렸다. 검토 과정은 한 달 정도 소요 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전 박사는 속이 타 들어갔지만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나온 록히드 측의 검토 결과는 전박사의 브리핑과 거의 일치했으며 록히드 측은 투자를 결정했다.
물론 구체적 투자 조건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이후 정확한 투자 의향서를 보내겠다고 전해 왔다.
어쨌든 전 박사로서는 본인의 예측에 대해 록히드가 사업성이나 시장성에서 확신을 한 것이기 때문에 더 할 나위 없이 기뻤다. 또한 앞으로 기술 전수 역시 순조로울 것이 확실 해 졌기에 더욱 더 기쁜 마음이었다.
[한승주 주미 대사 초청 브리핑]
아직은 몇 년 남아 있지만 전박사는 언제나 탐색 개발 이후 체계 개발을 어떻게 진행 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조단위 개발비가 필요한 체계 개발은 결국 국가적 사업이 될 수 밖에 없으며 대통령을 비롯 한 주요 정책 기관, 재경원 등의 의지와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T-50은 국방부에서나 일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뿐, 그 외 사람들은 이름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업일 뿐이었다.
전박사는 어떻게 해서든 이 사업을 정책 결정권이 있는 사람에게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었고 마침 주미 대사관의 공군 무관으로 근무하는 박열 대령의 도움을 받아 한승주 주미 대사를 초청 할 수 있게 되었다.
전박사는 심혈을 기울여 열과 성을 다해 T-50 개발의 중요성과 당위성 그리고 현재 탐색 개발 상황 및 체계 개발 등 앞으로 남은 과업들에 관해 브리핑 했다. 한승주 대사는 진지하게 들었으며 전박사는 한승주 대사에게 앞으로 어느 곳에 근무하시던지 이 사업을 잊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 드렸다.
얼마 후 한승주 주미 대사는 한국으로 돌아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다.
이 외에도 업계나(삼성항공 부회장), 국방부 인사 등이 방문 할 때 마다 전박사는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하며 이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기 위해 노력했다. 나중에 체계 개발이 실행 되려면 한 사람의 도움이라도 더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조근해 공군참모 총장 방문 - 1993년 9월 12일]
탐색 개발은 초음속 기로 진행 되고 있었지만 공군의 요구사항은 호크기와 같은 아음속기였고 공군은 요지 부동이었다. 공군에서 파견 된 관리관들을 몇 번 설득 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공군은 비싸기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초음속 훈련기는 원하지 않았다.
전박사는 속이 타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조근해 공군 참모 총장이 미국의 설계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조근해 총장은 89년 KTX-2 프로젝트가 시작 될 때도 큰 도움을 주신 분이어고(2편 참조)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인 공군의 총수이기도 했다. 전박사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전박사는 다시 열심히 준비해서 브리핑을 했으며 특히 록히드 항공사의 투자 의지와 초음속 훈련기의 시장성에 많은 부분을 할애 했다.
"총장님, 이 사업은 초음속기로 개발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공군에서 하루속히 초음속기로 정해 주시고 이 사업이 체계 개발까지 수행 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전 박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고 있네"
그날 저녁 전박사는 참모 총장과 록히드 경영진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록히드 경영진들에게 초음속 훈련기의 필요성과 사업성을 강력히 주장해 달라고 부탁 했다.
전박사는 총장에게 확답은 받지 못 했지만 총장이 이 사업에 기본적으로 호의적이라는 생각에 나름 큰 힘이 되었다.
[끝장 토론]
1994년이 되도록 공군은 초음속 훈련기에 동의를 하지 않았고 전박사는 결국 귀국을 결심한다. 국방부로 찾아간 전박사는 공군본부에 사업 진행 현황을 보고하고 요구도에 따른 토론을 건의하여 허락을 받는다. 회의에는 참모 차장 이하 각 참모 부장들이 참석했으며 전 박사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토론에 참여했다.
각 항목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으며, 전박사는 초음속기 항목에 대해
1. 차세대 전투기들의 기동성, 전투기동은 대부분 마하 0.8 ~ 1.2 사이에서 일어나는 점
2. 미 공군 차세대 훈련기를 비롯한 세계 시장의 전망
3. 아음속 기 개발시 이미 기존 업체들로 포화된 시장에서 경쟁이 어려운 점
등을 논거로 줄기차게 설명을 한 끝에 토론 분위기를 초음속기로 이끄는데 성공 할 수 있었다.
결국 1994년 7월 공군참모총장이 초음속 훈련기 개발 및 탐색 개발 팀이 제안한 요구도에 대해 최종 승인을 함으로서 T-50은 초음속 기체로 확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