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이어 야곱의 이야기를 계속 적어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제가 적는 글은 성경에 적혀있는 팩트 + 제가 임의로 상상하는 내용이 추가된 일종의 가공 소설이라고 봐도 됩니다.
야곱은 축복 사건 이후로 에서의 위협을 피해 도망을 갑니다.
이 사건의 주모자(?)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자신의 고향인 하란 땅으로 가서 자신의 오빠인 라반에게 피신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삭에게는 “에서가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해서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야곱도 여기서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하면 당시이나 나나 힘들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야곱을 하란 땅으로 보내서 내 오빠인 라반의 딸들을 아내를 맞이하게 합시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머니 리브가의 약간 치사한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이 문제 사건의 주모자입니다.
야곱은 분명히 이 축복 가로채기 사건을 반대했지만 어머니가 자신 있게 뭔가 잘못되면
자기가 다 저주를 받겠다고 당당히 말하며 야곱이 사기를 치게 부추겼습니다.
그렇다면 리브가는 이삭에게 자신이 이 모든 일을 꾸몄고,
자기의 믿음으로는 분명히 야곱이 에서보다 나은 후계자이니
지금이라도 야곱을 인정하고 에서를 타이르라고 말해야 합니다.
어찌되었던 에서를 진정시킬 사람은 가장인 이삭밖에 없으니까요.
이삭은 이때 눈이 먼 상태입니다.
어쩌면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확실히 몰랐을 겁니다.
(성경에는 에서가 심중에 야곱을 죽일려고 마음먹었다고 했고 그걸 리브가가 엿들었다고 했습니다.
즉 에서는 이삭 앞에서는 화를 어느정도 참았습니다.)
리브가가 주도적으로 이삭과 에서와 야곱을 중재해서 화해를 시켜야하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이 이 모든 것이 주모자임이 드러나게 되고 욕도 엄청 먹게 되겠죠.
결국 리브가는 야곱에게는 하란에 도망을 가라고 하고,
남편에게는야곱을 도망시키는 것이 아닌 하란에 결혼을 하러 보내자고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겁니다.
이 치사하고 책임지지 않는 리브가의 행동으로 인해 리브가는 결국 이후
다시는 사랑하는 야곱을 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리브가의 태도로 인해 야곱이 하란으로 가는 것은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가게 되었고 이것이 야곱의 삶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한편 리브가와 이삭은 왜 야곱이 굳이 하란에 가서 자신의 친족 오빠인 라반의 딸과 결혼을 시킬 생각을 한건가?
이때는 창세기 시절이라 아직 근친상간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던 시대임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앞전에 설명 드렸듯이 당시 가나안 땅은 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동네 였습니다 (최소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먼저 족보를 한번 더 보겠습니다. (제가 그림판으로 대충 만들었습니다)
밑의 그림과 같이 먼저 “데라”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 족보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히 설명해야겠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야곱이니 간단히 설명하자면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 아브라함의 아들이자 데라의 손자이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 데라의 증손녀입니다.
리브가와 오빠 라반의 할아버지 나홀은 아브라함의 형제입니다.
당시 아브라함 나홀,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데라는 모두 하란 땅에서 살고 있었지만
(또 다른 아들 하란은 일찍 죽습니다. 땅 이름 하란과 사람 이름 하란을 헷갈리면 안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가나안 땅으로 갔고
데라와 나홀은 하란 땅이 좋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란에 머무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늦게나마 100세에 이삭을 낳습니다.
하지만 이삭을 가나안 땅의 여인들과 혼인시키기 싫었고, 비록 믿음이 부족해 하란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자신의 친족들이 조금 더 상태가 좋다는 생각으로 아들 이삭을 나홀의 손녀와 결혼 시킬려고 합니다.
이때 자신은 너무 나이가 많아 하란에 직접 가지는 못하고 대신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종을 하란으로 보내어
자신의 친족들 중 좋은 여인을 데려와서 며느리로 삼으려고 했고 그게 바로 리브가였습니다.
즉 이삭과 리브가는 자신들도 이렇게 결혼해서 나름 잘 살았으니(??)
아들 야곱도 그렇게 똑같이 결혼하기를 바랬고
시기상 리브가의 오빠 라반의 딸들의 나이가 찼을테니 그녀들 중 배필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때문에 야곱은 하란으로 떠납니다.
앞서 말했듯이 목표는 1. 에서로부터 도망, 2. 결혼이지만
공식적인 목표는 아버지 이삭의 그때와 같은 “결혼”입니다.
아브라함의 종도 이삭의 짝을 찾기 위해 가나안 땅에서 하란으로 갔었습니다.
야곱도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가나안 땅에서 하란으로 가고 있습니다.
비슷한듯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고 오늘은 바로 그 차이를 살펴볼려고 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먼저 다시 지도를 보면 가나안 땅에서 하란은 거리가 매우 멉니다.
지금 구글맵으로 검색해도 육로로 1,000km정도가 나오고,
이 당시는 최단거리가 힘들었을테니 거의 1,500km 정도는 가야 했을겁니다.
너무나도 먼 거리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종은 낙타를 끌고 갑니다.
정식으로 구혼을 하러 가는 길이기 때문에 재물도 많이 챙기고 호화스럽게 하란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급하게 도망하는 신세였기 때문에 맨몸으로 1,000km 이상의 길을 떠납니다.
군대 행군했을 때 알겠지만 솔직히 포장 안된 도로에서 하루에 30km 이상 매일 이동이 가능할까요...?
거의 2~3달 정도 죽도록 걸어야 겨우 도착이 가능한 거리입니다.
더군다나 야곱은 이때 약 75살의 늙은 나이입니다.
물론 이때의 세계관은 약 150세 정도는 살았으니 지금으로치면 약 40~45살 정도의
체감 나이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절대로 젊은 나이는 아닙니다.
야곱은 길을 떠나면서 너무 서럽습니다.
자신은 분명히 믿음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비록 사기는 쳤어도
어쨌든 축복권을 가졌으니 그 뒤는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을까는 개뿔...
혼자 늙은 나이에 추위에 떨며 잠 잘 곳도 없어 길거리에서 돌 배게를 배고 잠을 청합니다.
야곱은 아마 심각한 회의감에 들었을겁니다. 하나님이 진짜 살아있다면 이럴수가 있나..
“자신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75살에 하란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왔는데,
나는 75살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세상의 땅 하란으로 도망가는게.. 진짜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인가?“
이런 생각도 하며 잠을 청하는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야곱을 마음을 알았는지 꿈속에서 야곱에게 나타납니다.
꿈속에서 천사를 보여주면서 아브라함에게 했던 그 진짜 축복
“
가나안 땅을 주고 많은 족속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를 야곱에게 직접 약속합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아브라함-이삭- 그 뒤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너무 기뻐 그곳에 작은 돌 제단을 세우며 이 곳을 벧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벧엘에서 서약합니다
“
내가 언젠가 평안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면 이곳에서 내가 예배를 드리며 십일조를 바치겠습니다!!“
(이 말을 잘 기억합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말조심 해야합니다)
야곱은 어찌어찌 하란에 도착합니다.
일단 목이 타니 물부터 마실려고 우물가로 갑니다.
예전에 아브라함의 종도 목이 타서 물을 마실려고 우물가에 갔었습니다.
당시 우물가에 많은 여인들이 물을 길러 오고 있었는데
1-1. 아브라함의 종은 이 여인들 중 누가 이삭의 배필로 좋을지 모르니
하나님께 먼저 기도를 합니다.
“내가 이 여인들에게 물을 달라고 할건데, 만약 이 여인들 중 나에게 기꺼이 물을 주고,
또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 낙타들에게도 물을 준다면 그녀가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은 이삭의 짝인줄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는 여인들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다.
대부분 여인들은 종에게 물은 줬지만 낙타에게는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종이 부탁하지도 않았고, 낙타는 물을 많이 마시는데 그 낙타의 물까지 우물에서 퍼올려면 너무 힘드니까 그렇겠죠.
비록 낙타가 먼 거리를 오느라 헉헉 거리고 있었을테지만 그건 자기들 알바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 중에서 유일하게 한 여인이 종에게 물을 주고, 종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도
그 여인은 낙타를 불쌍히 여겨 모든 낙타에게 물을 다 줍니다.
그리고 종이 그 여인의 이름을 물어보자, 자기는 데라의 증손녀이자 나홀의 손녀인 리브가라고 합니다.
바로 종이 찾던 여자였고 종은 기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리브가의 집으로 들어가서 리브가의 오빠인 라반과 아버지 브두엘을 만납니다.
1-2. 하지만 야곱은... 우물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찾아야하는 데라의 증손자이자 나홀의 손자인 라반, 그리고 그의 딸들이 여기에 사는지 수소문 합니다.
그리고 마침 라반의 딸인 라헬이 우물가로 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저 여자가 당신이 찾는 라반의 딸인 라헬이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기뻤습니다.
“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 예비해놓으셨네. 하란에 딱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나의 베필을 찾다니!
와~ 그런데다 저 여인 엄청 예쁘다....♥♥”
그래서 라헬을 만나자마자 일단 뽀뽀부터...(철컹!!) 합니다.
(뭐 물론 저 문화권에서는 성추행이 아니고 기쁨의 인사겠죠? 근데 라헬이 안이뻐도 처음 보자마자 뽀뽀부터 했을까??)
그리고 처음 만나자마자 기습 뽀뽀를 당해 당황하는 라헬에게 야곱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당신의 친족임을 말합니다.
라헬은 야곱을 자신의 아버지 라반에게 데리고 갔고 야곱은 라반을 만납니다.
※1번의 차이를 느끼셨나요?
아브라함의 종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여인을 고르지 않고 먼저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의 내용도 아주 합리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이러한 지혜로운 여인을 준비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맞게 리브가를 딱 준비해놓으셨습니다. 마침 리브가는 얼굴도 예뻐서 금상청화네요.
그리고 종은 이 모든 일 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반대로 야곱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여인을 찾았고 거기에는 기도도 없었고 지혜로운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딱 예쁜 여자가 왔는데 그게 라반의 딸 라헬입니다.
“와 바로 이 여자다!” 라고 생각하며 뽀뽀하고 기뻐했지만... 라헬은 과연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짝이었을까요?
야곱이 아브라함의 종처럼 신중하게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장면입니다.
2-1.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과 오빠 라반을 만나서
먼저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던 것을 증거하며
그 믿음의 집안의 며느리를 고르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왔다고 고백합니다.
브두엘과 오빠 라반은 믿음의 집안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완전히 안믿는 집안은 또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친족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축복 받는 것을 들으며 감동했고
기꺼이 자신의 딸(동생)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주게 됩니다.
2-2. 야곱은 라헬의 아버지 라반을 만나서 “자신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합니다.
설마 자기가 에서를 속이고 축복권을 가로챘다는? 라는 얘기까지는 안했을수도 있지만
어쨌든 집안의 오해가 있어서 하란에 왔고, 온김에 겸사겸사 삼촌의 딸들과 결혼도 했으면 하고,
지금 당장은 집으로 못돌아가니 잠시 삼촌집에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리고 라반은 야곱에게 “니가 공짜로 여기에 있을수는 없으니 여기서 일을 하면 내가 너에게 품삯을 주겠다.
근데 얼마를 주면 좋겠냐?” 라고 물어봅니다.
※ 2번의 차이를 느끼셨나요?
라반의 태도가 확실히 다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먼저 전합니다.
즉 믿음이 부족한 라반에게 전도 활동을 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라반은 이에 감동해서 바로 자신의 동생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거리낌 없이 바칩니다.
모든 것을 주고 받는 동등한 가족관계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 이삭에게 어떤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고
그냥 자기에 관한 얘기만 합니다.
즉 전도 활동이 없고 세상적인 얘기만 합니다.
그러기 아브라함 종 때와는 달리 라반은 야곱에게 자신의 딸들과 결혼해라고 선뜻 말하지는 않고,
그냥 야곱에게 너 여기서 얼마 받고 일할래?
마치 가족이 아닌 사장이 직원을 면접하는 듯한 갑을관계가 되어 버립니다.
만약 이때 야곱이 자신의 얘기가 아닌 먼저 하나님과 이삭의 은혜 얘기를 증거했다면?
훗날의 라반과 야곱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3-1 아브라함의 종은 당당히 리브가를 데리고 빠르게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동생이 갑자기 시집을 가게 되자 아쉬웠던 라반은 종에게 몇일만 더 머물다가 가나안 땅으로 가면 안되냐고 부탁하지만.
종은 단호하게 주인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면서 바로 가나안 땅으로 갑니다.
3-2 라반이 자신의 딸을 준다는 얘기는 없고 돈 얼마 받고 일할래?
라는 태도를 보이자 야곱이 먼저 라반에게 “내가 라헬을 좋아하니 삼촌 밑에서 7년간 일하겠습니다.
대신 7년이 지나면 라헬을 저에게 주십시오!“ 라고 제안을 합니다.
당시 라반에게는 딸이 2명 있었는데 “레아”와 “라헬”입니다.
레아는 성경에서 못생겼다고 표현하고 있고 라헬은 예뻤다고 표현합니다.
※ 3번의 차이를 느끼셨나요?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배필 리브가를 데리고 최대한 빠르게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하란은 세상적인 땅이고,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하란에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로 야곱은 자기가 자청해서 7년간 노예가 되어 세상적인 땅 하란에 머무릅니다.
오직 사랑하는 예쁜 여자 라헬을 얻기 위해섭니다.
라헬을 위해서라면 가나안 땅에 7년정도 늦게 돌아가는 것은 상관없다는 생각입니다.
(어차피 빨리 돌아가봤자 에서의 화도 안풀렸으테니 7년쯤은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려나?)
라헬과 함께한다면 세상적인 땅 하란에서의 삶도 행복하다고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야곱은 몰랐습니다...
자기는 7년만 있으면 사랑하는 라헬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금의환향 할줄 알았겠지만...
그게 무려 20년이나 걸리면서 비참하게 떠날줄은...
1,2,3번의 아브라함의 종과 야곱의 행동을 보면 같은 하란에 여인을 찾으러 가는 행동이지만 너무나도 큰 대조를 보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같은 상황인데 다른 인물들이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다른 결과가 나오는 장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앞전의 축복 가로채기 때도 말씀드렸지만, 야곱의 축복 가로채기나 위의 1,2,3번의 행동이 “죄악”의 행동은 아닙니다.
다만 확실히 부족한 잘못이기는 했고 이것으로 인해 야곱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야곱의 외삼촌이자 라헬의 아버지인 라반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을 만났을때의 라반은 하나님의 권세에 눌려 그냥 순종하는 순한 양이었지만
하나님의 권세 없이 세상적인 권모술수만 의지하는 야곱에게 있어 라반은 먹이를 노리는 이리와 같았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정말 사랑했나봅니다.
성경에 표현하기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라고 표현합니다.
연애하면서 7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라... 엄청난 로맨티스트 야곱입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 약 82살)
드디어 7년의 장기 연애 끝에 야곱은 결혼을 합니다.
먼저 라반은 즐거운 결혼식날 잔치를 하며 야곱에게 술을 엄청 먹입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늦어지자 라반은 야곱에게 방에 들어가면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합니다.
취한 야곱이 드디어 라헬과 합방을 합니다.
내가 이날을 위해 7년을 기다렸다~~ 나의 사랑하는 라헬~~ 이제 우리 행복하게 삽시다.
내가 앞으로 행복하게 해줄게~~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근데 일어나보니 예쁜 라헬이 아닌 못생긴 레아가 옆에 누워 있습니다????
야곱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이제 시련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