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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7 13:43
근데 왜 관우가 불쌍하다는 걸까요. 그냥 자기 능력을 대단하다고 오판해서 무리하게 공격가다가 여러 문제점들이 다 터지면서 자멸한 걸로 보이는데요. 그냥 북벌 안했으면 잡혀 죽는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저 삼국지 연의라는 소설에 너무 감정이입해서 지나치게 촉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18/09/27 14:09
동아시아사에 평소에도 관심을 갖고 있어서 한 말인데요? 한국 고대사도 관심이 많지만 사료 부족이 심각하고 그나마 나도는 서적들도 환뽕맞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읽을만한 서적도 별로 없구요. 일본 고대사나 중국 고대사(상, 주, 춘추전국, 진, 한, 위진남북조, 수, 당)도 제 관심사 중에 하나입니다.
중국 삼국시대 관련 글도 이런 제 관심사 중에 하나여서 보는거지 딱히 연의에 과몰입해서 그것만 관심있어서 보는게 아닌데요. 지나치게 소설 속에 녹아든 촉한정통론이 저는 불편해서 하는 말인데 뭐가 문제라도 있나요?
18/09/27 14:17
글쓴분이 정성스레 쓰신 글에 엉뚱한 사람들이 싸움을 하고 있는건 예의가 아니니 길게 쓰진 않겠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주제의 어떠한 부분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는지 좀 더 잘 살피고, 거기에 맞는 방식으로 이야기 하세요. 예배중인 교회에 갑자기 쳐들어가서는 진화론을 설파하는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에요, 그냥 난동꾼일 뿐이죠.
18/09/27 14:17
결국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니가 불편한데 뭐 어쩌라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시각은 내 시각이고 니 시각은 니 시각이니 존중해줘도 아니고 내 시각은 이런데 니 시각은 왜 이럼? 이런 식이니 좋은 태도를 기대할 수가 없죠 물론 어그로 끄실 목적이라면 훌륭한 글입니다
18/09/27 14:14
불운에 불운이 겹쳐서 원래 자신이 넘을 수 있었던 난관을 넘지 못했던 영웅은 고래로부터 여러 문학 작품의 주인공이 될 정도로 이입하기 좋은 소재거든요
18/09/27 14:17
전 관우가 잡혀 죽은 것이 불운에 불운이 겹쳐서 그런게 아니라 자업자득이라고 봐서 관우에 이입되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안가네요. 미방, 사인의 배반만 하더라도 관우의 잘못이 크고 동맹국 군주인 손권을 모욕해서 오와의 관계도 악화시킨 고 것도 관우의 잘못이고 돌아올 타이밍을 모르고 양양과 번성 근처 포위하고 있다가 서황에게 깨지고 갈 곳을 잃고 방황하다 잡혀 죽은 것도 관우 본인의 잘못이라고 보거든요. 불쌍하게 볼 여지가 있나 싶습니다.
18/09/27 14:19
그럼 그냥 남은 그러려니 하세요
누가 님보고 감정이입 하라고 입에 쑤셔넣은 적은 없잖아요? 근데 대체 왜 님은 엉뚱한데서 남한테 따지는지 모르겠습니다
18/09/27 14:21
제 첫댓글이 이 글의 본문이나 남이 쓴 댓글에 대해 따지는 댓글이었나요?
그저 관우를 왜 불쌍히 여기냐? 라는 식의 제 감상이었을 뿐입니다. 이 댓글에 불편해 하는 분들이 많을 뿐이구요.
18/09/27 14:25
불편하라고 쓴 덧글이 아니었으면 정말 못쓴 글이고 파이어 나라고 쓴 글이라면 합격점입니다
글 쓰는 법을 배우라고 해야 할지 어그로 그만 끌라고 할지 잘 모르겠는데 뭐 필요한 대로 받아들이세요
18/09/27 14:31
그래요 뭐 그럼 내츄럴 본...이라고 정리하죠
악의없이 분탕을 만드는 능력이야(실제로 그런건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인터넷에선 흔한 거니까요 좋은 하루 되세요
18/09/27 14:44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만한 사람은 별 매력이 없죠. 오히려 모난 성격이 감정이입은 더 잘 되기 마련이죠.
관우는 누가봐도 자부심이 넘치다 못해 오만하지만, 패기가 넘치고 의로운 호걸의 상징 같은 인물이니까 팬이 많은게 당연합니다. 인물평이야 각자 마음속으로 하면 되는거고 어차피 정답은 없는 거지만 굳이 하나 오답을 찾자면 내가 맞고 니가 틀렸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요?
18/09/27 14:53
말씀하신 사항은 지금을 사는 지극히 안정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관점이고요.
당시 관우나 유, 조, 손의 입장은 결국 본인들이 천하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승산이 있다고 보면 바로 상대를 쳐서 이겨야 하는 상태였습니다. 본인이 양번에 싸움을 걸지 않았다면 언젠가 오에서 쳐들어왔겠죠. 여몽이나 육손이 들인 공을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조인을 그대로 내버려 뒀다면 오히려 양방치기 당해서 있는 땅을 빼앗기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었을 겁니다. 글쓴분이 먼저 쓰신 글들을 읽으셨다면 관우가 싸움을 건 이유를 당연히 잘 아시리라 봅니다.
18/09/27 14:59
관우가 싸움을 건 자체는 그럴만 하다고 보는데 유비가 같이 한중 방면에서 관중으로 치고나가며 양방을 동시에 공격하는게 아니면 애초에 승산이 없는 싸움입니다. 유비가 촉으로 돌아가려고 했고 이걸 알았다면 당연히 관우도 후퇴했어야 합니다. 유비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혼자 북벌을 했으면 당연히 관우의 실책입니다. 유비가 조조의 군사를 분산시켜야 그나마 할만한데 유비가 오히려 돌아갔다면 조조의 정예 장수와 정예 군이 관우 잡으러 쏠릴 건 뻔할 뻔자니까요.
18/09/27 15:08
저시절의 전쟁이 스타크래프트는 아니니깐요.
뭐 역사는 결국 결과론인건 맞고 관우가 실책을 했으니 진거겟죠. 잘했으면 이겼을꺼고. 그럼에도 역대 중국인들+동아시안들이 가장 많은 감정이입을 해온 인물이라는것은 부정할 수 없고 그럴만한 요소가 많은 인물이죠. 승자만 기억할거면 삼국지의 진 주인공은 사마씨겠죠 크
18/09/27 15:14
싸움을 건 자체는 그럴만하다 보는데 후퇴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무슨 뜻인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말씀하신 싸움을 걸 만한 상황이라면 승산이 높은 상태이고 그럴 땐 즉각적으로 걸어서 이겨야 하는 것이 당시 상황입니다. 그리고 관우가 싸움을 건 시기는 조조가 한중에서 깨지던 시기이고 유비의 성도 귀환에 대해서 본문에서 적어두셨지만 유비의 성도 귀환과는 별개로 이미 우금의 군대를 대파한 시점에서 양번 함락은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아니면 위의 원군을 맞아서 대치가 길어지고 물러났거나요.
오의 배신만 없었다면요. 오의 상태를 두고 경계했어야 한다고 보기에는 이미 익양대치를 통해서 서로간의 합의가 된 상황이고 명목 상의 동맹군인 오를 두고 상당한 힘을 쏟아 경계해야 한다? 오와 대판 싸운 이후라면 모를까 조약을 통해서 영토 갈라먹기까지 합의가 된 마당에 전면전을 벌여야 마땅한 위를 두고 어떻게 오 방향으로 힘을 쏟습니까.
18/09/27 15:26
손권이 조조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들이.형주를 공격할테니 비밀로 해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이 사실을 동소가 편지를 써서 번성안과 관우군에게 쏘았고 결국 손권이 형주를 공격하리라는 걸 관우도 알게 됩니다.
전 이때 당연히 후퇴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18/09/27 13:54
유비가 한중을 먹고 조조와 손권이 손을 잡은 이상 관우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관우가 유비가 성도로 돌아왔을 때에 맞춰서 형주로 돌아왔어도 손권은 뒤치기를 했었을 거 같아요. 유비는 명분상 형주를 손오에게 빌린 상태였는데, 익주를 먹는 것을 넘어서 한중까지 차지했으니 형주를 넘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관우가 철수를 했다고 해도 결국 형주는 넘기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18/09/27 14:01
유비가 돌아가서 객사와 보루를 성도부터 한중까지 지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유비는 내정을 다져야 할 타이밍으로 본거 같습니다. 관우도 이에 맞추어서 강릉으로 돌아갔다면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당장 눈앞의 공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니 돌아갈 마음이 들지 않았겠죠.
어쨌든 저는 관우가 3만 포로를 잡고도 그들을 먹여살린것을 정말 관우다운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18/09/27 14:03
아. 이 말이 진짜 와 닿네요. 맞습니다. '관우다운 행동'이었죠. 관우라는 인물의 머리 속에 다른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18/09/27 20:15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창천항로 마지막에 보면 관우를 의의 화신으로 표현하는데 관우는그런 사람이죠 그게 그의 현실적 굴레였고 그 굴레를 짊어짐으로써 신이 된 거겠죠
18/09/27 14:31
항우가 잡은 포로들과 저항한 성에 살고 있는 민간인들을 밥먹듯이 생매장하다가 민심 이반으로 죽었죠.
반면에 동시대의 조조는 포로들 다 죽이기도 한 만큼 당시에도 포로 죽이는 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식량 사정에 큰 차질이 생길 경우 고려는 해볼 카드는 맞았던 것 같습니다. 풀어주면 바로 적군에 합류해서 적으로 돌아올테니 이것도 문제구요.
18/09/27 15:09
관우가 생각외로 전과를 너무 거둬서 오버페이스를 낸것도 문제가 되었었나 보네요
그냥 칠로군을 박살낸 후 포로협상으로 시간 좀 끌고 남쪽의 손제리가 뒤치기 못하도록 잘 지켜서 본진의 유비가 정비될 때까지 기다렸으면 좋았을텐데요
18/09/27 15:15
관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한계가 있는데 그걸 오판한 것이 결정타였다고 봐야겠네요. 유비가 성도로 돌아갈 때 관우도 포로들 끌고 강릉으로 개선하였다면 안정적으로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겠죠.
18/09/27 15:52
이게 유비와 촉의 문제라면 문제일텐데
전군동원->도박수->대박or쪽박 전략을 언제나 쓰고 있습니다. 서주로 구원갈 때도 전군을 들어서 평원현을 비우고 Go서주 원술을 치러갈 때도 전군을 들어서 서주를 비우고 Go수춘 장판 후퇴때에도 전군을 들어서 신야/형주를 비우고 Go강하 그나마 형주에서 어느정도 기반을 쌓고 형남사군 정벌 때는 좀 힘배분 하나 싶더니... 처음으로 친정 전군 돌격이 아니었던 익주 점령전에서는 병이 부족해서 또 형주 군사를 모두 빼서 Go익주 한중 공방전때도 아직 안정되지 않은 익주를 놔두고 전군을 뽑아서 Go한중 장엄한 마지막인 Go이릉은 그말싫... 그게 유비 집단의 성격적인 부분(협객 출신)도 있는거 같고, 한 고조를 따라하겠다는 그런 부분같은게 있나 싶기도 하고, 라이벌이 조조라서 가지는 약간의 컴플렉스? 같은거도 있는거 같고 그래요. 사실 이렇게 전군을 뽑아서 돌아댕기는 영웅이다보니 소설화시키면 참 재미있기는 하지요 =_= - 진한/위진 이후의 중국 천통스토리(수/당/송/원/명/청/중공)를 아무리 소설로 만들어도 장사가 안되는 이유들 중 하나가 이런 "몰빵올인"-바꿔 말해서 모 아니면 도 같은 도박수의 매력이 없기 때문이지 않나 싶어요. - 사실 중공은 완전히 객관화하고 보면 재미있을거 같기는 하지만... 너무 현대인데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엮여있어서 좀...
18/09/27 16:26
사실 "버거운 적과는 적당히 맞춰준다." 라는 선택지도 있었습니다 =_=
서량의 마등, 익주의 유장, 강동의 손권처럼, 조조와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지내는 방법도 있었지요. - 마등은 아들놈 때문에 산통 다 깨지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유비는 반동탁 연합군 이후로, 정확히는 서주 학살전 이후로 사실상 단 한번도 조조와 타협한 적이 없었습니다 =_= - 여포에 쫓겨서 조조 밑으로 간거도 힘이 안되서 그런거지 계속 뒤통수 노리고 있었죠. 조조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절대악 조조에 맞서 싸우는 유비"라는 각으로 소설 소재가 빛을 발한다고는 생각합니다.
18/09/27 15:56
3만명의 포로 처우가 쉽지가 않았겠죠. 해방시키면 고스란히 다시 적군이 되버리고, 전부 죽여버리자니 민심도 민심이거니와 자칫하면 적군이 분기탱천하여 형세가 역전됐을 수도 있구요. 안 그래도 번성 함락에 차질이 생겨서 후방에 있는 병사들도 끌어모은 판국에 3만명의 포로를 데리고 있던게 어쩌면 관우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관우다운 선택이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있구요.
윗댓글에도 있지만 관우가 기세를 잡은 뒤에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것이 컸다고 봅니다. 물론 관우가 본문에 나온 모든 뒤통수 맞은 상황을 예상했겠냐만은 관우의 상황이 마냥 좋다고 보긴 힘들었다고 보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유비가 성도로 귀환했을 때 관우도 철수하여 3만명의 포로 처우도 천천히 결정하고, 후방의 상황도 다듬을 시간을 가졌어야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삼국지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관도 대전이랑 형주 공방전인데 참.. 생각할수록 손제리 네이놈...
18/09/27 23:26
득롱망촉이라는 고사성어를 남긴 광무제조차 자신의 말과는 정반대로 끝까지 GO를 외쳤던 것으로 볼 때, 그 적당히...라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일 듯싶습니다.
18/09/27 16:11
하지만 관우는 모든 난관을 이겨냅니다.
미방과 사인을 회유하고, 유봉과 맹달을 화해시키고, 촉나라 본진에서 지원을 받고, 손제리 공격을 완파하여, 형주남부까지 100% 정복하고 북진하여 조조 본대를 격퇴하여 낙양까지 점령하여 촉나라 통일 기반을 구축합니다! - 버츄얼 삼국지 -
18/09/27 16:44
제 기억에 전략삼국지의 경우 서주vs형주에서 서주는 평야라 언제든먹을수있으니 형주를 쳐야한다! 이런식으로 오에서 결론을 내렸었는데
물론 합비도 못뚫으면서 뭔 근자감인가싶지만... 합비/서주쪽에 진군하는것에 비해 형주를 차지하는건 어떤 점에서 더 매력적이었나요?
18/09/27 23:29
여몽은 장강을 이용한 긴 방어선을 구축하기를 원했습니다.
여몽전에 기록된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면 답이 될 것 같습니다. [여몽이 은밀히 계책을 진언하길 "정로장군(征虜將軍; 손교(孫皎))에게 남군을 지키게 하고, 반장(潘璋)은 백제(白帝)에 주둔하며, 장흠(蔣欽)은 유격병 1만 명을 거느리고 장강을 아래위로 순행하며 적이 있는 곳에 따라 대응하고, 저는 나라를 위해 양양을 먼저 점거하여 그렇게 된다면, 조조에 대해 걱정할 게 무어며 관우에게 힘입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 관우는 신하인데 사기와 힘을 존숭하여 거꾸로 뒤엎는 것(反覆)이 있으니, 마음깊이(腹心)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금 관우가 바로 동쪽으로 향하지 못하는 것은 지존께서 성명(聖明)하고 저희 등이 있기 아직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강하고 성할 때 도모하지 않는다면, 하루아침에 엎어질 것이니, 다시 힘을 펴고자 해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라 했다. 손권이 마음 깊이 그 계책을 받아들였는데, 또 애오라지 다시 그와 서주를 취할 뜻을 의논하였더니, 여몽이 대답하길 "지금 조조는 멀리 북방에 있어, 새로이 여러 원씨(袁氏)를 격파해 유주(幽州)와 기주(冀州)를 위무하고 안집(安集)하느라 동쪽(동오)으로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서주 땅의 수비병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가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세가 육지와 통하고, 날랜 기병이 달리는 곳이라, 지존께서 지금 서주를 얻는다 할지라도 조조가 후일 반드시 와서 쟁패를 벌일 것이고, 비록 7~8만 명으로 수비한다 해도, 오히려 응당 걱정하게 될 것입니다. 관우를 취해 장강을 모두 점거하여 형세를 더욱 늘릴 만 못합니다" 라 했다. 손권은 이 말이 더욱 옳다고 여겼다.]
18/09/27 16:51
제가 관우를 높게 보지 못하는 이유....
축구로 치면 지단 느낌. 분명 대단하지만 현재 받는 위상과 실력의 괴리가 느껴진달까... 차라리 홍수가 일어나지 않아서 대승이 아니였더라면... 하늘이 촉을 살린건지 죽인건지 모르겠네요..
18/09/27 16:56
어차피 형주 3군으로는 위오가 대놓고 협공하면 막을 수가 없으니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양번을 먹어서 양양-강릉에 의존해 방어를 하는게 그나마 남은 가능성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난이도가 너무 높은 타임어택이라 실제로는 실패했지만요.
18/09/27 18:14
저는 이게 여몽에게 가장 의문을 가지는 부분인데 당시 양번은 위가 통치하고 있던 지역인데 관우 타도를 위해 위와 연합을 하는 상황에서 양번을 뺐는게 어떻게 가능하다고 판단해서 이런 플랜을 구상했는지가 궁금합니다. 플랜을 짠 여몽이 형주 공방 이후 갑작스럽게 죽어버려서 그 의도조차 알수 없게 되어버렸지만요.
18/09/27 17:34
중국사 전체를 봐도 함락 난이도 끝판왕급인 양양의 함락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미방이 못미덥고, 여몽이 없다해도 오가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의형은 당분간 자신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양양이란 열매는 너무나 달콤해보였을 거 같아요.
경계하던 여몽도 없고 우금의 원군도 박살냈는데 타임어택만 성공하면 강릉과 무릉에 의지하던 반쪽짜리 형주를 크게 키우고 유비군에게 안정감을 더해줄 수 있다고 판단했겠죠. 관우의 생각보다 조조의 움직임은 빨랐고 설치류의 탐욕이 컸을 뿐...
18/09/27 23:31
관우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모 아니면 도, 모든 것을 건 도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도박으로 끝났지요. 성공했더라면 정말로 좋았겠지만요.
18/09/27 21:08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관우가 양양 공격에 성공하고 유비가 이후 친정으로 낙양을 함락시켰다면 우리는 관우를 무신으로 기억하진 않았겠죠. 드라마는 비극이 제맛입니다.
18/09/27 23:09
맞는 말씀입니다. 천하를 진동시킨 촉의 상장의 부지불식간의 몰락, 복수에 미쳐날뛰는 동생의 어처구니없는 횡사,꿈도 미래도 같이 불타는 이릉..
이세계로떠나는 남만여행, 그 남자의 출사표, 산이있기에오르는 산악인, 가을바람부는 오장원 정말 낭만 그 자체인 비극이에요.. 엉엉
18/09/27 23:33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사람들은 완전무결한 영웅의 승리담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가 고난을 극복하다 결국 실패하고 마는 이야기를 더욱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희극보다 비극이 더 오래도록 남기 마련이듯.
18/09/28 06:26
글 추천합니다
지난 번 가졌던 유비는 왜 회군하였는가 에 대한 의문점은 덕분에 해소되었으나, 더 큰 마음의 짐이...아 관공이여...!
18/09/28 13:04
이 글을 보다보면 이성계가 요동 뒤집어 엎다가 죽었으면(이성계급 장군이 아무거도 못하고 죽었을거 같진 않습니다.) 한국사 역대 원탑 레전드 장군이 됐을거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돌아와서 성공했기에 평범한 왕이 되어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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