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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1/11 17:41:13
Name Farce
Subject [일반] 햄버거 패티 예찬
* 조너던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과 "빗자루에 대한 명상"을 읽고 쓴 풍자글입니다.
* 가끔, 이제 세상이 너무 발달해서 어느날 다른 사람 모두가 사라져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현대 문명의 이기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것이 무엇이냐고 생각하십니까? 아담하고 반짝거리는 최신 기계부속들은 우리의 발전된 사회를 논하기에 너무나도 사소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배운 사람들로서 보다 본질적이고도 관념적인 문제를 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신박하고도 정교하게 아름답기까지 한 것은 바로 햄버거 패티입니다. 햄버거 패티야 말로 현대 문명의 정수요,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이상향입니다!

정신적으로 무궁무진한 우리들은 육체의 감옥에 갇혀서 사소한 것들을 고민하는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해야하는 사소한 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기분 나쁜 사실을 알려주는 건방진 고깃덩어리들이 있었죠! 소고 돼지고 닭이고 밥통과 염통과 갈비를 달고 다니는 것이 전능하신 인간님 아버지와 같으니, 얼마나 만물의 영장에게 기분 상하는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치킨을 다 발라버려서 동그랗게 뭉쳐버렸고 무식한 소고기도 전부 뭉개버렸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기술적인 진보이니, 볼지어다. 패티는 항상 둥글지어다! 어린이와 노약자들에게도 인기 만점인 햄버거 요리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미개한 문명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극도로 세련된 광경이지요. 이게 얼마나 발전된 모습입니까? 뼈보다 살이 먼저 존재해도 된다니, 이제 자연의 이치라고 하는 것은 인류에게 존중될 필요가 있는 만큼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소가 네발로 걷는다는 것은 대표적으로 인간이 허락하기에 존재할 수 있는 과거의 잔재입니다. 살충제를 고기에 먹이듯이 이제 인간에게 편한 것만이 세상에서 존재할 가치를 가집니다. 스마트폰의 정지 화면 속에 들어있는 소의 모습을 보세요. 색깔도 다양하고 덩치고 다양합니다. 검색을 해보시니 이제 소를 다 이해하신 것 같죠? 하지만 그거 아세요? 이거 다 합성입니다. 가짜뉴스입니다. 잘못된 검색결과입니다. 소는 네발로 걸은 적이 없습니다. 두 발로 걷죠. 소의 색깔은 원래 분홍색입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이게 바로 현실에 존재하는 소라는 생물체의 생김새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걸 직접 본적이 없죠. 봐도 그게 크고 자라서 새끼치고 똥을 지리는 모습을 끝까지 본적도 없잖아요. 나는 다 봤고 소가 혼자 있을 때는 두발로 걷는다는 것도 다 안 답니다. 거기에다가 사실 여러분은 평생 소를 보지 않고 사셔도 별 지장 없잖아요. 사실 보는 것도 꽤나 힘들어요. 요즘 누가 집 주변에서 배려심도 없이 소를 기른 답니까? 냄새나고 축축하고 벌레 꼬이는 살덩이를요?

하지만 햄버거 패티라고 하는 것은 비위생적인 소의 살점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웃어주는 태양의 형상과 더 가까운 존재입니다. 똑같이 둥글고 생명의 원천을 담고 있지요. 패티에는 고통도 없고 갈등도 없습니다. 귀찮고 정치적으로 논쟁 많은 맥락조차도 없습니다. 과거에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우리에게 편리한 것만 선택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를 어떻게 갈라서 짓이기지는 모르셔도 됩니다. 분뇨고 털가죽이고 쇠뿔이고 없고 단순히 우리가 이룬 업적의 가격표만이 달려있을 뿐입니다. 공장이 아무리 더러워도 여러분은 가볼 필요 없습니다. 알 필요 없습니다. 상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계가 더러운 걸 만지는데 왜 사람이 신경을 써준다는 말입니까? 이 가격표가 순결한 종이로 되어있음은 공장에 있는 투덜거리며 입김을 내뱉고 땀을 흘리며 공용화장실의 더러운 변기 위에서 엉덩이를 비비는 인간이라는 요소를 모두 없는 척 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기호와 상징이 줄줄이 적혀있는 서류더미와 결합해 종이 위의 팬 자국으로 바뀌어버린 순수한 인간의 지능과 영혼 그 자체인 관료들을 종이로 만나는 것이, 못 생겼을 것이고 못 배웠을 것이고 알고 싶지도 않으며 말을 한마디도 섞기 싫은 농부와 서로 침을 튀기며 마주하는 것보다 기분 좋잖아요.

여러분, 햄버거 패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부의 척도입니다. 단순한 상품 하나가 아니라 그 엄청난 시스템을 통째로 쓸 권리가 있다는 선언이라고요! 여러분 바깥의 세상은 아무런 해도 여러분에게 끼칠 수 없습니다. 돈만 낸다면 다른 사람이 존재하던 알 필요도 없고요. 그 어떤 맥락에서도 자유롭게 앞뒤 이야기도 없이, 역사도 없이, 친구도 없이, 부모도 없이, 돈만 있다면 필요한 맥락만 만들어서 우리가 제공해드릴게요. 모든 것은 자르고, 섞이고, 뭉치고, 가공되어서 당신이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도 포함해서 팔립니다. 우리가 모든 이유와 느낌을 드릴게요. 우리의 상품 디자인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말아주세요. 그건 무례하니까요. 느낌적인 느낌만 막연하게 느끼시고 아무것도 생각하지마세요. 생각은 불필요한 과거 맥락의 잔재에요. 유인원의 땀내 나는 유산이에요. 우리는 그보다 더 발전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지배합니다. 세상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패티도 없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네요. 정말 혐오스러운 노폐물로 가득 찬 육체의 비효율적인 작동구조 같으니라고! 기술이 발전하는 한, 언젠가 우리는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간의 불완전한 살점의 충동적인 소동을 다 죽여 버릴 수 있을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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됍늅이
18/01/11 17:56
수정 아이콘
버거킹에서 와플세트 먹다가 댓글답니다.
Zoya Yaschenko
18/01/11 18:00
수정 아이콘
이 글 보고 맘스터치 먹으러 갑니다.
eternity..
18/01/11 18:16
수정 아이콘
맥날 불고기버거가 갑자기 당기네요... 이글 보고나서 생각난건 아닙....읍... 읍...
及時雨
18/01/11 18:34
수정 아이콘
오늘은 새우버거가 원쁠원
덱스터모건
18/01/11 18:40
수정 아이콘
아...치즈버거먹고싶당...
글루타민산나룻터
18/01/11 19:45
수정 아이콘
한줄요약
아이돌도 똥 쌉니다
18/01/11 20:45
수정 아이콘
요즘 세상에 사람이 진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실존인물을 재구성한 허상들은 전자유흥으로 넘쳐나고 알아서 돈을 벌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역사고 맥락이고 아무도 상기시켜 주지도 않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안다고 해봤자 싸움거리만 되고.... 이것 또한 지나가고, 이것 또한 이겨낸다면. 아마 세상이 사람들을 다 부숴버리는 결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니면 제가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꿍시렁이 늘은 것이겠죠.
글루타민산나룻터
18/01/11 21:36
수정 아이콘
진짜가 뭔지 맥락이 뭔지 이런 걸 아는 건 시간 머리 마음을 상당히 소모하니까 그럴거에요. 피곤하잖아요. 사람인 이상 항상 피곤하게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저 뒤에는 뭐가 있을지 찜찜하긴 하지만 그런 느낌은 무시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찝찝한거 치우고야 싶지만 너무 피곤할 것 같단 말이죠.
직접 송아지 키워서 고기 먹을 거 아니면 패티 하나에 담긴 오만가지 역사에 대해선 무시하는게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좋지 않겠습니까 일일히 신경쓰기 시작하다 보면 어디 패티에만 신경쓸수 있겠나요
근데 이렇게 골치아픈거 피곤한거 쳐내다보면 이것참 사람이 사람되게 하는 것도 쳐내게 될것같은데 이건 맞는 느낌일지 모르겠고 거참 알수가 없는데

쓰다보니까 저도 사는게 힘들어서 궁시렁대고 있는 것 같네요
18/01/11 21:38
수정 아이콘
하고 싶은 말이 막연할 때는 글을 쓰고, 다른 분께서 정리해주신걸 읽는 것만큼, 원하던 문장을 얻어내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흐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8/01/11 23:17
수정 아이콘
근데 현실은 저런 식으로 일반 대중은 멍청하고 패티 회사는 전지전능에 가까운 것도 아닌 듯 해요. 패티 회사도 그냥 돈 벌려고 이것 저것 근시안적으로 시도하는 거고, 자기들도 큰 그림은 모르죠. 사실은 애초에 큰 그림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보면 인간 사회나 개미집이나 비슷한 점이 참 많아요.

그래도 개미들은 백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데 우린 계속 달라지니까 우리가 좀 더 재미있는 종이라능.
18/01/12 00:07
수정 아이콘
엘리트들 만이라도 '인간으로서' 살아남는다고 생각했으면 전 엘리트주의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들이 지금 세상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전문가 사회에서 이제 학교에서 사람을 십년 이상 잡아놓고는 쓰레기 버리는 것도, 밥 만드는 것도 다 돈으로 처리하는 무능력자나 찍어내는 놈들이 음모론자처럼 엘리트들이 타인을 도태시키기 위한 일종의 노예제도를 꾸미고 있다고 가정하면,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당당한 인류는 엘리트들을 통해서 남기라도 하겠지요. 그런데 사람 전체에게 실망하기 시작하면 결국 스스로를 좀 먹게 되더라고요. 관념적으로 생각하지말고 기준치를 낮추자. 순간적인 것만 생각하자, 라고 다짐하다가 어느날 속이 너무 쓰렸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책 '언더그라운드'를 읽으면서 부터 입니다. 공리주의에서 매번 나오는 논리입니다. '어떤 컬트가 여러분을 죽여서 무한히 행복할 수 있다면 행복하지 못한 당신들은 죽어도 되지 않습니까?' 나중에 한번 정리해서 여기에 글을 올리고 싶긴하네요. 아직 이 답글처럼 좀 심정적으로 횡설수설하는지라 깔끔해지려면 좀 시일이 걸릴 듯 합니다.

트럼프만 봐도, 일루미나티와 프리 메이슨의 큰 그림은 없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게 '현실'의 '현상'이라는게 이제 정설이고요. 아즈텍인들이 행복하게 심장을 뽑아서 제사 지내다가 머리에 납탄을 맞고 죽은지가 어연 500년이네요. 세상은 머리 속이 아니라 머리 밖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우리 주변에서 자연의 법칙은 인간신의 법칙이 아니여서 사람을 늙어죽이고, 지반을 무너트리고, 뜬금없이 소중한 걸 불 붙입니다. 그건 이해해 줄 수 있어요. 인간이 지표면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어느날 초신성의 방사능 세례가 쏟아지고 모든 세포막이 녹아내린다고 누구를 탓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세상을 머리 속에 넣기로 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멍청하게 주입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알고 방관하는 것에 가깝죠. 예를 들어,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 그나마 그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믿지는 않지만요. 수천년의 맥락을 가진 이 신념체계 발명품이 저를 더 이상의 무의미에서 어느 정도 안식처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인터넷 방송에 돈을 집어넣으면 방송인의 언급을 통해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요. 가상의 인물을 재료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심미적인 감각을 살려서 전자적으로 만들어낸 영화, 소설, 만화도 즐깁니다.

그런데 이렇게 머리 속에 있는 세상은 '진짜'가 필요없는 세상입니다. 아즈텍인들의 인신공양 신화랑 똑같이요. 차라리 '알겠지만 이거 다 기분좋으라고 만든 허구야'라고 솔직해지면 좋지만, 결국 소비자 쪽에서 과잉몰입자가 등장하죠. 아니면 공급자 쪽에서 '약빨'을 올려주려고 과잉몰입을 장려하던가요. 대표적으로 연예인들은 가면을 이용한 사기꾼들이지만 전지전능한 배후자들은 아닙니다. 큰 그림에서 춤추는 큰 그림의 일부이지 그림쟁이가 아니고요. 재미있긴 합니다. 그런데 너무 끔찍해요. 저는 지쳤습니다. 세상을 머리에서 어디에 둬야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밖인지 안인지 되는 대로 우리집 고양이처럼 자극에만 반응하면서 살지. 무엇이 인간인지. 인간이 아니여도 살기만 하면됬지 무슨 배부른 소리인지.
18/01/12 02:02
수정 아이콘
인간에게 실망할 거야 뭐 있나요. 인간은 원래가 이 정도의 생물인데 우리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으아니 나는 인간이 100 미터를 0.2 초에 주파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10초나 걸린다고? 이런 절망스러울 일이 있나!' 라고 실망할 이유는 없잖아요. 오히려 모르던 걸 알게 되었으니 좋은 거죠.

대중 종교나 대중 문화는 말씀하신 대로 '과몰입' 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보고, 그래서 과몰입 안 하려고 노력합니다. 근데 그것들이 꼭 기분 좋으라고 만든 허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정말 그런 수준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싸구려 문화도 많지만, 상당수의 예술작품은 뭔가 성취하려는 노력이 있지요. 제가 그런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와 별도로, 예술은 그것으로 자기 할 일을 충분히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싸구려 문화나 종교에 과몰입하는 사람들까지 걱정해줄 여력은 없네요.... 근데 끔찍하지도 않아요. 애초에 그런 사람들하고 저하고 친구인 것도 아니고, 유전 정보를 일정 정도 공유한다고 해서 서로간에 대단한 도덕적 책임을 지는 사이도 아니니까요.

약간 원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저는 철학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거지, '진리를 찾는다' 같은 말은 허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작 깊이 있게 인문학 전공하는 양반들은 저런 이야기 잘 안 하죠. 애초에 진리라는 말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낸 말인데, 그 말이 함축하는 개념이 말이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xx 에 대한 진실' 정도라면 모를까, '세상 전체에 대한 진리' 같은 말은... 이젠 그런 말 하는 사람을 보면 제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근데, 적어도 인간은 뭔가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하잖아요. 그 정도만 해도 합격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전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로 육체를 버리는 날이 오면 그것 꽤 재미있는 일이지 끔찍하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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