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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9/18 02:06:53
Name 제랄드
Subject [일반] [단편] 비상의 노래 (Sogno di Volare) (下)

(上에서 이어짐)

비상의 노래 (Sogno di Volare)
(2017. 8)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함교 승무원들은 곧 있을 교전에 모든 집중력을 쏟을 태세를 갖췄다.

“현재 시각은?”
“12시 38분입니다.”

그로부터 수십 초의 시간이 지났다. 병사들 모두 숨소리조차 내고 있지 않던 그때, 선내 통신기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 후방의 강습전함 급속 상승 중! 고도 8.2km!
“거리는?”
- 770m입니다. 앗, 좌현으로 항로 변경 중! 좌현 1,300밀! 속도 상승 중. 현재 92노트!
“조타수, 급속 하강하라.”
“급속 하강!”

수직 조타수가 조종간을 당기자마자 함선이 즉각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몸이 들뜨고 있었다.

“좌현 전타. 4초 후 우현 전타. 5초당 2노트 감속.”
“좌현 전타!”
“감속! 현재 78노트!”
“현재 고도 7.3km!”
“속도 76노트! 계속 감속 중!”
“4초 경과! 우현 전타!”

수평 조타수의 보고과 동시에 오른쪽으로 쏠렸던 무게 중심이 반대로 쏠리기 시작했다.

“10초 후 침로 수평으로 원위치. 후방 상황 보고하라.”
-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안다. 최종 위치는?”
- 최종 확인 위치, 좌현 후방 1,500밀, 고도 9.8km.
“2등 비행사! 현재 본함의 위치와 적의 마지막 위치를 표시하고 보고하라.”
“완료! 추정 거리 3.8km 이상, 위치는 좌현 전방 850밀 위.”
“현재 고도 6.4km!”

그의 머리에 가로, 세로, 높이가 있는 공간이 펼쳐졌고, 제를락이 있음 직한 위치가 여섯 곳 정도 떠올랐다. 선택의 순간이 왔다. 상승해서 하나씩 확인하느냐, 아니면 일단 거리를 벌리며 기회를 엿보느냐다. 하지만 후자는 즉각 제외됐다.

“현재 고도 5.8km!”
“상승한다. 초당 20m.”

속도전에 최적화된 강습전함을 찾아낸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먼저 찾아내 우월한 위치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우월한 함포 공세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 모든 전투가 그렇듯, 공중전 역시 도박이 필연적이다.

‘어디냐?’

문제는 제를락에게 먼저 발견될 경우다. 이 경우 카란탁 반장이 발사각을 계산하기도 전에 제를락은 자신의 주특기대로 강습전함의 최대 속도인 107노트로 측면을 추월하며 포탄을 꽂아 넣을 것이다. 그 번개 같은 강습 공격으로 그가 2년간 격침하 함선 수가 총 64척이고, 반파, 혹은 기낭 파괴까지 더할 경우 그 두 배가 넘는다.

“전 함포, 발사각을 최대로 올린다. 적은 위쪽에 있다!”

물론 대공전함도 역전의 수가 있다. 기낭을 제외한 강습전함의 함선 길이는 208m로, 322m의 대공전함에 비해 화력이 부족했다. 특히 측면은 같은 180mm 함포를 사용하지만, 대공전함은 18문, 강습전함은 6문이다. 이는 강습전함이 먼저 발포했을지라도 즉각 대응사격을 개시할 수만 있다면 3배의 화력을 되돌려 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고도 5.4km에서 정지 후 천천히 상승한다. 초당 20m 상승! 조타수는 돛을 접는다!”

1등 비행사가 돛 전개 레버를 끌어당기며 마른 침을 삼켰다. 실로 과감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을 받아 전진하는 함선의 특성상 돛을 접는다는 건 제자리에 멈춘다는 것이다. 만약 재기동이 필요할 경우 다시 돛을 전개해야 하는데 바람을 충분히 확보하기 전에는 날 수 없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쾌청한 날의 경우 다시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돛 완전 전개 후 분 단위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이 상태에서 제를락에게 발견된다면 꼼짝없이 일격을 허용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상대 역시 본함의 위치를 예상하기 힘들다.

“풍속은?”
“남서풍 초속 4m!”

묻지도 않은 보고가 이어졌다. 병사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재기동 시 10노트 확보까지 32초, 20노트까지 47초 소요 예상!”
“남서풍 초속 3m, 12m. 남동풍 초속 5m. 풍향 변화가 심하지만 속도는 안정적. 하강기류 감지. 초속 3m.”
“언제든 완전히 전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상승 속도를 높인다. 초당 25m!”

위편에서 함장용 관측 망원경을 당긴 그가 렌즈에 눈을 붙였다.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리며 제를락의 예상 항적을 하나하나 머리로 그렸다. 하늘색 도화지에 수많은 곡선과 교차점이 생겨났다.

“침로 좌현으로 수정. 초당 2도 회전한다.”

오른쪽 돛이 3할 정도 펴지자 육중한 몸체답지 않게 함선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점차 가속이 붙자 비행사는 노련한 솜씨로 돛을 미세하게 접고 펴기를 반복했다.

“현재 고도는?”
“고도 6.8km!”
“계속 상승한다. 속도는 초당 30m.”
- 상단 관측병입니다. 함선 중앙 최상단에 구름들이 다수 포착. 거리 3.6km.
“정지. 적함 잠복에 대비해 상단 관측병은 계속 구름을 주시하라. 회전을 멈추고 천천히 전진. 속도를 10노트까지 상승시킨다.”

기낭이 달린 구조상 머리 위 상황은 함교에서 볼 수 없다. 그쪽 방면은 오직 기낭 최첨부에 위치한 관측병을 통해서만 전달을 수 있다. 이는 하단 역시 마찬가지다. 함선이 느릿느릿한 속도로 머리 위 구름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현재 속도 4노트. 가속 중.”

바로 그때, 스피커에서 급박한 보고가 터져 나왔다.

- 구름 속에서 기, 기뢰 낙하 중! 총 4개, 아니 5개! 본함을 향해 똑바로 떨어집니다!
‘기뢰?’

순간 막시미노는 전속 전진을 외칠 뻔했다. 누가 뭐래도 그대로 속도를 높이는 것이 최선의 수다. 하지만 그 순간, 그를 지배한 것은 상식이 아니라 직감이었다.

“현 위치를 고수한다. 기동 중지.”
“하, 함장님!”

본능을 거스르는 함장의 명령에 1등 비행사가 명령 수행을 망설였다. 하지만 돌아온 건 벼락같은 일갈이다.

“명령이다! 기뢰가 아니다! 급속 감속! 회전 중지! 상승 중지!”
“급속 감속! 회전 중지!”
“상승 중지!”

비행사들이 조타기와 조종간을 조작하는 동안 그가 연이어 명령을 내렸다.

“총 5개다. 전 함교원은 ‘그것’이 떨어지는 순서와 각도를 기억하라. 순서와 각도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좌측 창밖으로 검은색 철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곧이어 같은 방향에서 2탄이 떨어졌다.

“2탄! 빗나감! 좌측 전방 약 180m에서 낙하! 약 440밀!”
“앗, 3탄 발견! 빗나감! 좌측 전방 약 120m, 약 520밀!”

순간 뱀처럼 쉬익! 하는 소리가 함교 안까지 들렸다. 코앞에서 떨어진 4번째 철구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였다.

“4탄 빗나감! 좌측 전방 약 50m! 약 610밀! 위, 위험합니다!”
“함장님!”
“기다려!”

그때, 함교 스피커에서 절망적인 외침이 있었다.

- 여기는 상단 관측… 아악! 기낭에 기뢰 피탄! 기뢰 피탄! 아아악!

순간 함장을 제외한 함교의 모든 이들이 눈을 질끈 감으며 울부짖었다. 누구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통신기가 울렸다.

- 상단 관측소 보고! 죄송합니다! 기뢰가 아닙니다! 180mm 포탄으로 추정됨! 다시 알립니다! 기뢰가 아니라 포탄입니다! 불발탄 같습니다. 지금 기낭에 튕겨 우측으로 낙하 중!
‘불발된 게 아니다.’

과연 우측 창 가까이 둥근 철구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둥근 모양과 색깔 때문에 오인할만 했지만 그것은 분명 포탄이다. 함교원들이 멈췄던 숨을 일제히 내뱉는 사이, 일말의 동요 없이 냉정함을 유지했던 막시미노는 이미 다음 수를 생각해냈다.

“똑똑히 들어라. 이건 기만작전이다. 오늘 적함은 기뢰를 사용하지 않는다. 분명 제를락은 정면승부로 본함을 격침하려 할 것이다. 방금 그 포탄은 우리를 전진시키기 위한 술책이다. 우리를 전진시킨 후 하강 선회하여 본함 후미를 확보할 목적인 것이다.”

제를락이 기뢰 운용법을 모를 리 없다. 보통의 전투였다면 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쓰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인터라마에서도 스스로 말한 바 있었던 그의 지론을 막시미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터다.

“포탄 낙하지점을 통해 적함의 항적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기반으로 적이 최대 속도 107노트까지 가속했을 것으로 가정하여 예상 항적을 보고하라. 빨리!”

가까스로 함장의 말을 이해한 3등 비행사가 도판 위 방안지에 컴파스로 나선을 그리더니 선을 따라 숫자를 써 갈겼다.

“닻 최대 전개 완료! 현재 속도 7노트!”
“급속 상승! 현재 고도 7.3km!”
“항적은 아직인가?”
“항적 계산 완료! 예상속도 계산 시작!”
“이미 최대 속도에 도달했을 것이다. 항적부터 보고하라.”
“낙하가 확인된 첫 탄부터 5탄까지 약 2초 간격으로 좌측 전방 310밀에서 710밀 사이의 곡선을 그린바, 각각의 낙하점 차이는…”
“3등 비행사, 침착하게 결과만 말해라. 좌측인가, 우측인가?”
“우측, 적함 우측 전타입니다!”
‘우측 전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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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 간의 간격으로 보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예상됩니다! 분명 본함의…”

일일이 듣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모든 상황이 그려진 머릿속 지도에 드디어 점이 찍혔다. 눈에서 불꽃이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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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속도로 좌측 반전하라. 적함은 본함의 좌측을 노리고 있다. 반전하면 적함은 좌측 전방에 나타날 것이다. 함포병들은 들어라. 우측은 버린다. 우측 함포병들은 지금 즉시 좌측 함포열로 이동하여 지원하라. 좌측 함포병들은 연속 전탄 발사를 준비하고 우측 상단을 겨냥한다. 또한, 이후 포탄 교체시간을 28초로 단축하라. 전방 함포는 좌측 상단을 겨냥하라. 기관실, 기관실 나와라.”
- 네, 함장님!
“적함과의 고도차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지금 즉시 증기 터빈의 안전장치를 풀어라.”

기관병은 물론 함교의 모든 이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 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설마, 터빈 안전장치 말입니까?
“그래. 당장 풀어라. 터빈의 최대허용 rpm(분당 회전수)을 초과하는 것을 허락한다. 기낭이 터져도 좋다. 위험경보 발동 시에만 보고하도록. 알아들었나?”
- 아, 알겠습니다!
“비행사, 방금 명령 들었나? 늦으면 당한다.”
“네! 이미 최대 출력으로 상승 중입니다! 현재 고도 10.1km!”
“현재 속도 42노트! 반전 완료 8초 전!”
“맞바람 관측됨. 북서풍 초속 19m. 좌현 1도로 침로 수정!”
“덱핸드들 모두 들어라! 앞으로 2분 이내에 적함과 마주칠 예정이다. 이에 본함은 최대 출력으로 맞부딪힐 예정이니 모두 이에 대비하도록!”
“함장님!”
“뭐냐?”

창백한 얼굴의 3등 비행사가 입을 벌린 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함장님, 그게, 적함이, 여러 번 검산했습니다만…”

그 순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전방 관측병들의 찢어지는 외침이 터졌다.

“적함 발견! 적함 발견!”

눈을 휘둥그레 뜬 막시미노가 튕기듯 일어났다.

‘벌써?’
“적함, 좌측 384밀! 고도 14.3km! 본함을 향해 하강 중!”
“적함과의 거리 3.8km! 빠릅니다! 3.4km! 속도는… 맙소사! 142노트! 142노트!”
“뭐라고?”

귀를 의심하고 있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제아무리 강습전함이라 해도 저 속도는 말이 안 된다. 전방 망원경에 얼굴을 처박은 채 관측병들이 미친 듯 외쳤다.

“적함, 좌측 298밀! 고도 13.8km! ”
“적함과의 거리 2.7km! 속도 144노트!”
“저 미친놈이!”

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경탄이었다. 

‘처음부터 최대 고도까지 상승한 다음 선체 과부하 따위는 무시한 채 단 한 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선회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나를 발견한 순간 각본을 썼겠지? 내가 가짜 기뢰를 간파할 거라는 걸, 항적을 추적해 반드시 반전할 거라는 것도 다 계산에 넣었던 거다. 그리고 내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나타나 대응할 시간 따윈 주지 않고 결정타를 먹일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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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를락이 ‘인마, 오줌 지리게 해준다고 했지? 바지 괜찮냐?’라며 킥킥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제야 막시미노는 알았다. 함께 비상을 꿈꿨던 친구를 위한 마지막 작별인사로 제를락은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기량을 선사하리라는 것을. 이제 응답할 차례다. 막시미노가 이를 갈았다.

“긴급 상황이다! 현재 상황 보고하라!”
“본함 속도 58노트!”
“본함 고도 11.3km!”
“적함, 좌측 290밀! 고도 13.2km!”

터빈 안전장치를 풀어 최대 속도로 상승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충분치 않았다. 

“함장님! 적함과의 거리 4.4km! 속도 145노트! 유효사거리 도달 약 28초 전!”

아래에서 위로 쏘는 것과 위에서 아래로 쏘는 것은 사거리는 물론 명중률 자체가 다르다. 함포의 기본 수직 발사각 250밀(약 14도)에서 100밀씩 상승할 때마다 사거리는 2%, 명중률은 4%씩 곱연산으로 떨어진다. 상대보다 고도상 우위를 점해야 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기관실! 증기 터빈 상황 보고하라! 너무 늦다!”
- 현재 1,584rpm입니다!
“더 높여라!”
“현재 북서풍 초속 6m, 아니, 수정합니다, 초속 8m! 외부 기온 11도! FDC는 참고 바람!”
“FDC! 시간이 없다! 카란탁!”
“죄송합니다만 말 시키지 마세요! 함장님 친구 덕분에 계산이 꼬여 터빈보다 제 머리가 먼저 터질 것 같습니다! 등장부터 제국군 최고 속도기록을 경신했다고요!”
“모든 함교원들은 들어라! 1.5km 간격 도달 시 모든 위치 제원을 보고하라! 그 즉시 조타수는 우현 전타하고 FDC는 발사 제원을 산출한다! 이어서 관측병은 700m 간격 시 즉각 보고하라!”
“카란탁이다! 전방 및 좌측 함포병들은 들어라! 곧 불러줄 테니 대기하라! 시간상 한 번 밖에 못 불러준다! 귓구멍 활짝 열어라!”

좌측 멀리 작은 점이 나타났다. 막시미노는 알고 있었다. 불과 몇 초 후, 저 점은 팔뚝만큼 커지며 전함의 모습을 갖출 것이라는 걸.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최대한의 화력을 퍼붓기 위해 좌측으로 틀어 좌측 함포와 전방 함포를 한꺼번에 터뜨리리라는 것을.

“… 1.5km 도달! 유효사거리 17초 전!”

관측병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급한 목소리들이 터졌다. 

“유효사거리 도달 시 본함 예상 고도 11.7km! 오차 수정! 11.6km, 아니, 11.9km! 현재 상승 제한속도 초과!”
“본함 예상속도 63노트!”
“적함, 우측으로 급속 전타 중! 이어서 급속 감속 중!”
“우리도 선회한다! 우현 전타!”
“유효사거리 도달 시 적함 예상 위치 좌측 371! 오차 수정! 3…89밀! 389밀! 고도 12.1km!”
“적함 속도 131노트 예상!”

위치 제원이 발사 제원으로 변환되는 데에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미 양쪽 함선의 예상 항적을 바탕으로 산출했던 제원에 적함의 예상 항적을 반영하면 완료된다. 문제는 정확도다. 시간이 너무 없었다는 것은 관측병들과 비행사들의 이례적인 수정 보고로 드러났다. 수직통제병과 수평통제병이 거의 동시에 외쳤다.

“전방 함포 상향 37밀! 좌측 함포 상향 173밀!”
“전방 함포 좌향 690밀! 좌측 함포 우향 108밀!”

풍속 등을 반영하여 각 함포별 최종 발사 제원을 산출한 반장이 통신기를 부술 듯 움켜잡았다. 

“전방 함포! 상향 35밀, 좌향 679밀! 좌측 함포! 상향 168밀, 우향 103밀!”

막시미노는 여전히 창밖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를락, 너무 욕심부린 거 아니야? 너무 빨리 날아와서 진동이 심할 텐데? 너 설마 그것도 계산했냐? 정말 맞출 자신 있냐? 말해 봐, 이 자식아!’
- 전방 함포, 준비 완료!
- 좌측 함포, 준비 완료!
“… 700m 도달!”

기다렸던 순간이 왔다. 함장의 간명한 명령이 떨어졌다.

“전탄 발사!”
- 전방 함포 전탄 발사!
- 좌측 함포 전탄 발사!

하늘을 찢는 굉음과 함께 양쪽 함선에서 총 29발의 포탄이 발사됐다.

“적함 함포 발사!”
“충격에 대비하라!”

전방 함포에서 뿜어진 새까만 연기가 발사 후폭풍으로 덜덜거리는 조망창을 스치며 순식간에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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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함포 우하탄(포탄이 목표물 우측 아래로 빗나감)! 수평 120m, 수직 30m! 좌측 함포, 역시 우하탄! 수평 80m, 수직 40m! 전부 빗나갔습니다!”
“제기랄!”

카란탁의 짧은 외침이 있었던 그때, 창밖으로 쌕 하는 소리와 함께 포탄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함선 위로 날아들었다. 비명조차 지를 겨를이 없었다.

“저, 적 포탄 상탄! 30m 위! 수평각은 정확. 기낭 위를 스쳤습니다!”

제를락이 더 정확했지만 어쨌든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쉬기는 이르다. 

“전탄 재장전하라. 현재 상황은?”
“본함 속도 66노트! 우측 선회 중!”
“본함 고도 12.4km! 함장님, 상승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무시한다!”
- 적함, 후미에서 우측으로 선회하며 급속 상승 중! 속도 127노트, 고도 12.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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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낮다! 적보다 위를 확보하라! 상승을 멈추지 마라!”
- 함장님, 기관실입니다! 폭발 경보 발동! 위험합니다! 현재 1,703rpm!

과연 통신기 너머로 기분 나쁜 벨 소리가 일정 간격으로 터지고 있었다.

“기관장! 터빈에 물이라도 끼얹어라! 명령 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마라!”
- 안 됩니다, 함장님! 더는…
“함장님! 기낭이 팽창이 너무 심해 고정 로프의 장력이 한계입니다! 이러다간 끊어집니다! 기낭이 터질지도 모릅니다!”
“본함 고도 13.0km 돌파!”
- 적함 고도 13.2km! 지금 막 후방 관측소 시야에서 벗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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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없다. 고작 30m 차이였다. 제를락이라면 이번엔 분명히 명중시킬 것이다.’
“적함, 우측 520밀에서 선회 중! 예상 항로는, 또다시 본함 왼쪽입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두 번째 정면대결을 펼칠 참이다. 막시미노의 심장이 타들어 갔다.

‘물론 우리도 명중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칫 양쪽 모두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치르체를 넘어야 해. 구멍 난 함선으론 치르체를 넘을 수 없다.’
“적함과의 거리 5.6km! 적함 속도 122노트! 유효사거리 도달 약 40초 전!”
‘단 한 발도 허용하면 안 돼.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놈보다 우위인 점은 없다. 굳이 있다면, 고도? 아니야. 이대로라면 장담할 수 없어. 만약 더 높다고 한들 발사 직전 기준 고작 50m 이내일 거다. 겨우 그 정도 차이라면 놈은 맞출 것이다. 약간 더 높은 것으로는 의미가 없다.’
“본함 속도 68노트! 계속 우측 선회 중!”

순간, 번개가 머리를 때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를 움켜쥔 그가 이를 악물며 마지막 생각을 짜냈다.

‘약간 더 높다?’
“본함 고도 14.2km! 함장님, 기낭이 한계입니다!”
“적함 고도 14.3km! 적함 본함 정면으로 침로 수정!”
“유효사거리 도달 시 위치 제원은…!”
“사격 제원 계산 완료! 함포에 전달합니다!”
‘문제는 고도! 고도라면 방법이 있다. 그러나 정말 이게 옳은 판단인가? 정신 차려! 이들의 목숨이 네게 달려있다.’
“적함과의 거리 4.3km! 적함 속도 118노트! 유효사거리 도달 약 30초 전!”
- 전탄 장전 완료!

그때, 모두가 기다린 함장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그가 온 힘을 다해 외치기 시작했다.

“전 덱핸드들은 들어라! 내 명령을 정확히 수행하라! 시간이 없다! 침로 좌현 15도로 변경. 목표는 적함 정면. 별도 명령이 없더라도 침로는 적함 정중앙을 향한다.”
“좌현 15도!”
“고도는?”
“본함 14.7km!”
“적함 14.8km!”
“늦다!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

더욱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함포병들은 모두 함포 고정쇠(함포를 바닥에 고정한 쇠막대)를 제거한다. 15초 준다!”
“함장님, 적함과의 거리 2.9km! 적함 113노트! 유효사거리 도달 20초 전!”
“적함, 우측으로 급속 전타합니다!”
- 기관실 화재 발생! 기관실 화재 발생! 긴급 소화 작업 시작합니다! 함장님, 터빈 정지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더 버텨라! 함포병은 고정쇠 제거 즉시 양쪽 함포 해치 동시 개방을 준비하라!”

비행 중 함포 해치를 여는 건 단 하나, 함선 밖으로 함포를 버리는 경우다. 교전 직전 함포를 버리려는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뭔가 따질 틈도 없이 더 어이없는 명령이 이어졌다.

“주타수는 ‘2번 해치’ 개방을 준비하라!”

순간, 모두가 함장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반대로 몇몇은 그의 황당한 작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소리를 지른 건 후자에 속한 카란탁이다.

“와! 함장님! 2번이면, 그건, 그건 안 됩니다! 말이 안 돼요! 그게 가능할 것 같으세요?”
“질문은 받지 않는다!”

얼떨떨한 얼굴의 조타수가 조타 장치 옆 붉은색 손잡이를 길게 잡아당기더니 하단의 붉은 버튼을 눌렀다.

“2번 해치 개방준비 완료!”
“적함, 함포 겨냥 중! 전탄 발사 예상됨!”
“적함과의 거리 1.5km! 적함 속도 110노트! 유효사거리 도달 10초 전!”
“침로 변경! 좌현 7도! 목표는 적함 중앙부다! 목표를 유지하라! 고도는?”
“본함 15.4km!”
“적함 15.4km! 양쪽 함 모두 같은 고도입니다! 이대로라면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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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미노가 피를 토하듯 외쳤다.

“함포병 해치 개방! 함포와 포탄 모두 버린다!”

명령대로 함선의 좌우 해치가 활짝 열리며 낱알이 흩뿌려지듯 검은 덩어리들이 쏟아졌다.

“2번 해치 개방!”

조타수가 붉은색 손잡이를 힘껏 밀어 넣었다.

“개방!”

함선 뱃머리 아래 해치가 열리더니 그 속에서 쇠사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끝에 달린, 양 끝이 갈라진 갈고리 모양의 쇠뭉치가 떨어졌다. 닻이었다.

“적함 함포 발사!” 

강습전함의 옆구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발사된 검은 점들이 아슬아슬한 궤적을 그리며 막시미노의 함선 몸체로 날아들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제를락의 함포가 빗나갔을 리 없다. 단지 한계치를 뛰어넘은 막시미노의 상승이 예상 밖이었을 뿐. 

“적함 하탄!”
“와!”

안도의 함성이 잦아들기도 전에 함교원들은 다시 몸서리쳐지는 상황을 맞았다. 저 멀리 손바닥만 했던 적함이 순식간에 창 전체를 가릴 만큼 커졌다. 그야말로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추, 충돌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승 속도가 더 빨랐다. 막시미노의 대공전함이 케릭락의 강습전함의 옆구리를 스치며 기낭까지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리고 뱃머리에서 방출된 닻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적함 측면에 깊숙이 박히더니 상승하는 함선을 따라 솟아올랐다. 우두, 우두두둑! 닻이 흉측한 자상을 그리며 함선 몸체를 뜯어냈고, 내부가 드러나 보일 정도의 큰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더욱 치명적인 일격은 다음이었다. 그대로 솟은 닻의 갈고리가 케를릭 함선의 기낭을 아래에서 위로 찢어버렸다.

- 후방 관측소입니다! 본함의 닻이 적함 기낭을 타격!
“터빈 정지. 좌현 전타.”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았던 기낭이 팽창을 멈췄고, 큰 항적을 그리며 함선이 회전했다. 그리고 잠시 후, 까마득한 아래로 찢어진 기낭을 매단 채 위태로운 항적으로 하강하는 함선이 보였다.

“침몰합니다! 적함 침몰! 적함 침몰!”

모두의 뜨거운 함성이 터졌다. 그리고 그 함성이 터져 나온 순간, 기어이 적함의 기낭이 두 폭으로 분리되더니 제멋대로 뜯겨 날아갔다. 더욱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는 적함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함성이 더욱 드높아졌다.

“전 덱핸드들은 들어라.”

자리에 앉은 채, 떨리는 음성의 막시미노가 통신기를 쥐고 있었다.

“닻을 회수한 후 침로를 다시 치르체로 변경한다. 현재 위치 파악 후, 치르체 예상 도착시각을 보고하라. 고도는 8km까지 하강, 속도는 80노트를 유지하라. 기관실은 피해 상황을 보고하고, 후방 관측소는 계속 경계를 강화하라. 그 밖의 인원은 교대로 휴식을 취해도 좋다. 흐음.” 

목이 메는지 젖은 헛기침을 한 그는 말을 이었다.

“본관을 믿고 따라준 귀관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참으로 힘든 난관이었지만 귀관들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고, 결국, 승리했다.”

그답지 않게 발음이 부정확하다.

“하지만 더 큰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잠시 후, 치르체를 넘을 것이다. 물론 귀관들의 경험과 능력이라면 우리는 또다시 승리할 것이다.”

떨리는 몸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끝내 통신기를 쥔 손은 놓지 않았다.

“자유와 영광이 저 앞에 있다. 이제 머지않았다. 이상.”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한껏 바람을 받은 돛이 힘차게 휘며 더 깊은 하늘색 저편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 이튿날, 제를락 중령의 강습전함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그의 전공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사후 특진은 물론 장례식조차 거행되지 않았다. 

* 3일 후, 치르체와 시그니아 국경 사이 산악 지역에서 곳곳이 만신창이가 된 막시미노의 전함이 발견됐다. 하지만 며칠간 이어진 시그니아 군의 비공식 수색 작전에도 불구, 끝내 탈주병들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벨리트라이 제국과의 외교 분쟁을 우려한 시그니아 공화국은 그 사실을 숨기려 했지만, 소문이 산과 바다를 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시그니아는 몇 달이 지나고서야 훈련 중 추락한 자신들의 함선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물론 그 발표를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숱한 이야깃거리만을 남겼다. 여러 소문 중 하나로, 공화국은 막시미노의 전함이 착륙했을 당시 이미 그와 승무원들의 신병을 확보했으며, 인도적인 차원에서 제3국으로의 망명까지 도왔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소문이 늘 그러하듯 확인된 바는 없었다. 

* 이러한 사정으로 막시미노는 양쪽 국가 모두로부터 치르체를 넘은 최초의 함장으로 공식 기록되지 못했다. 그 영예는 그로부터 약 한 세기가 지난 후, 디젤 기관과 프로펠러를 적용하여 철갑함 비행을 성공시킨 어느 발명가에게 돌아갔다. 








비상의 노래 (Sogno di Volare)

-  THE END -
 
 




- 뱀다리


1. 제목과 서두에 영감을 준, 매우 유명한(?) 음악입니다.



2. 본작은 현재 활동 중인, 피지알21 글쓰기 소모임 '모난 조각(모임장 마스터충달)'의 25주차 주제 '스팀펑크' 때 썼던 글입니다. 

3. 글에 산술적 오류가 많습니다. 이과 출신이 아닌 관계로 계산이 너무 복잡해서 포기... 털썩... 부디 대충 넘어가 주세용. 굽실굽실 덜덜.

4. 과거 다른 글쓰기 동호회에서 활동했을 당시 모 회원 님의 '구름의 바다'라는 글에서 소재에 대한 영감을 얻었음을 밝힙니다. 본작의 최초 제목도 '구름이 바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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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18 08:59
수정 아이콘
소설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출근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네요.
제랄드
17/09/18 13:1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마스터충달
17/09/18 09:07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한 공중전함 전투와 마무리의 기가막힌 회심의 일격까지... 저는 올해 본 글 중에 이 글이 제일 재밌었어요.
17/09/18 10:01
수정 아이콘
와...진짜 숨이 막히는 글솜씨네요.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콘트롤 아티스
17/09/18 10:10
수정 아이콘
죄송한데 sogno 는 꿈, 상상, 몽상 이런 의미인데 한글 제목과 매치가 잘 안 되서요

그리구 정관사 il 을 붙이는게 어떨지
제랄드
17/09/18 10:48
수정 아이콘
제목은 하단의 문명6 OST 를 그대로 차용(어련이 맞겠지...)했는데 네이버 검색해 봐도 콘트롤 아티스 님 말씀이 맞네요. 일단 그대로 두고, 나중에
다시 퇴고할 일이 생기면 이탈리아어 제목은 지워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FlyingBird
17/09/18 12:14
수정 아이콘
와 멋집니다. 예전에 한번씩 전쟁소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긴박함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랄드
17/09/18 13:1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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