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의 외교의 목적은 프랑스를 빼고 유럽 열강 모두와 친구가 되는 것-
지금의 대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철과 피(血), 곧 병기(兵器)와 병력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란 유명한 연설문으로 유명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감수성쩔고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정치가가 초래한 사태에 대해
약간 말해 보겠습니다.
1차 대전에 대해 연재하면 알게 된건 독일이 어떻게 19세기 후반에 만들어놓은 외교적 우세를 한 바보가 망쳐 버렸는지에
대해서 였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엄청한 천재성으로 독일 역사에서 유래 없는 최고의 외교적 상태를 만들어 놓은 채로 카이저 빌헬름 2세에게
물려 주었습니다만... 이 바보가 완전히 모든 걸 망쳐 버렸죠. 심지어 독일 외무성 전체가 비스마르크가 짜놓은 유럽 질서를
이해하지 못해 카이저의 망상에 휘둘려 1910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영국-러시아 동맹 체제를 1914년에 이룩하는 공을 세우게
됩니다.
비스마르크의 목표는 최대한 신생 독일 제국의 적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는 많은 게임 참가자가 당시에
존재 했습니다.
일단 양대 축은 영국-러시아 였습니다. 이둘은 막으려는 자와 막고자 하는 자였기 때문에 융합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신생 독일 제국 입장에서 양쪽 한쪽의 편에 서는 건 둘다 리스크가 컸습니다. 일단 만약 러시아 편을 선다면 당장
영국은 독일을 견재하며 바다쪽에서 봉쇄할게 뻔했고 영국의 편을 든다면 러시아가 독일을 동프로이센 국경에서
압박할게 뻔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파생하는 몇몇 행위자- 영국은 이탈리아와 가까웠고 러시아는 발칸 반도의 슬라브계 그리고 그리스와
가까웠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터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프랑스는 절대 보불전쟁의 원한 때문에 독일 편이 되지 않을 터이니 프랑스-러시아 동맹만은 반드시
막아했습니다. 만약 프랑스-러시아가 동맹을 맺는다면 양면에서 독일을 압박할터였으니 말이죠. 하지만 프랑스와
러시아는 이시기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이는 독일 입장에서 막아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일단 러시아와 비밀 협상을 맺습니다. 이를 위해 오스트리아를 끌어 들이는데 이를 통해 삼제 동맹을
맺으면서 러시아의 내부문제가 발생하면 보수주의 동맹으로 도와주기로 하고 오스만 투르크의 일부를 먹어도 괘념치
않겠다는 의미었습니다. 오스트리아도 오스만 영토에 흥미가 많았거든요.
이래서 일단 독일-러시아 동맹이 달성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러시아와 사이 나쁜 영국과 오스트리아와 사이 나쁜 이탈리아 때문에 영국과 척을 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탈리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입니다. 여전히 이탈리아는 갖 통일한 이후 국내 문제에서 공화파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거기에 공기 같은 존재감을 독일이 회복시켜 준다는 약조를 하여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3국 동맹을
만들어 내죠. 경제적으로 영국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열강으로 대우해준다는 독일의 약속에 솔깃한 이탈리아는 독일에
손을 들어 줍니다.
여기에 영국은 식민지 사업에서 독일이 소극적으로 대하는 반면 프랑스와 계속된 충돌 관계에 있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여기에 더욱 확실히 독일은 식민지를 만들지 않는 대신 영국이 프랑스와 싸우면 영국편을 들어준다는
약속 하여 영국을 독일 편으로 끌어 들이죠.
이렇게 1880년대 당대에 말도 안되는 영-독-러라는 외교적 축이 형성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유럽 외교에서 완전히 고립되었고 독일은 엄청나게 외교적으로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독일 외무성 조차 이런 조약을 재대로 이해하는 인간이 없었다는 거 그리고 대부분 비밀 외교인지라
좀만 잘못 대처하면 독일이 쌓은 성과가 와르륵 무너진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1890년 이후 비스마르크가 실각하면서 부터 입니다. 일단 카이저 빌헬름은 식민지 팽창 정책과 해군 증강으로
영국의 불신을 샀습니다. 영국은 이렇게 떨어져 나갑니다. 대신 영국과 프랑스가 급격히 가까워지죠.
영국과 금이 가자 영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이탈리아와도 금이 갑니다. 거기에 카이저가 오스트리아에 너무
가깝게 접근하자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와 사이가 안좋았기에 점차 3국 동맹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러시아라도 잡았어야 하는데 계속된 카이저의 뻥카와 일관성 없는 외교적 행태 때문에 러시아는 점차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의 최대 투자자는 프랑스 였습니다. 프랑스가 보다 확실한 정치 경제적 약속을 하자 러시아는 바로
프랑스와 군사 동맹을 맺어 버립니다. 이에 독일은 러시아와 사이가 안좋은 오스만에 접근합니다. 그러자 오스만과 사이가
안 좋은 발칸반도 슬라브계 국가들이 일제히 반독 친러로 반독일 적 성향을 가져 버립니다.
이래서 1차 대전이 일어나자 독일은 오스트리아 편을 들고 이에 프랑스와 러시아의 동맹이 발동됩니다. 이에 원래
전쟁 당사자 세르비아를 빼고도 나머지 발칸 반도 국가들이 일제히 독일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여기에 군부의
주장아래 프랑스를 치기 위해 벨기에를 공격하자 가뜩히나 독일을 싫어하던 영국은 바로 프랑스 편에 붙고
여기에 친영계 국가들(이탈리아와 미국, 일본)이 최종적으로 연합군에 붙어버리게 됩니다.
애초 1차 대전의 승리와 패배는 여기에서 갈렸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