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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1/24 19:51:24
Name 로즈마리
Subject [일반]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고민되는 이야기 한번 해볼까 합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입이 매우 짧습니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삼겹살도 못먹었을 정도였으니까요-_-;
주로 밀가루음식을 즐겨먹고, 찌개류나 국도 잘 못먹었구요.
달콤하거나 느끼한것을 좋아하고 맵고 짠걸 정말 싫어했었어요.
지금 다니는 회사를 다니기 전까지는 말이죠.

회사근처에 1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밥집이 있습니다.
회사건물 지하에 구내식당이 있고, 사내식당보다 밥값이 두배이상 비싸지만
(사내식당이 지나치게 저렴하긴합니다. 한끼 1700원에서 2000원꼴이니..)
점심시간이 되면 회사사람들로 북적이고 반드시 줄을 서야 먹을수 있는 그런 밥집이죠.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때 선배 손에 이끌려서 처음 가보았었는데요.
아침, 점심시간에는 메뉴가 없습니다. 무조건 그날 준비되는 메뉴로 통일되어 나옵니다.
(저녁엔 술집으로 변신하구요.)
물론 메뉴는 매일매일 바뀌지요. 밑반찬도 김치를 제외하면 매일매일 바뀌구요.
처음 갔던날 메뉴는 콩비지찌개였습니다.
태어나서 단한번도 먹어본적 없는 음식이었죠.
김치와 된장이 첨가되어있는 콩비지찌개였는데
보는순간 술집거리에서 자정 이후에 종종 볼수있는 과음한 분들의 토사물-_-;이 떠올라서
비위가 확상하더라구요. 그래서 밥만 깨작거리면서 먹고 있었죠.
그렇게 먹고 있는 저에게 선배님이 콩비지찌개를 한숟갈 푹 퍼서 밥 위에 놔주면서
팍팍좀 먹어라, 복나간다...이런식으로 말씀하셨던것 같아요;
(평소에도 많이 듣던 말이라..;)
신입이었기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표정에 변화가 있지 말길 바라며
입안에 침을 최대한 모아 삼킨후 콩비지찌개가 얹어진 밥을 최대한 목구멍 가까이로 밀어넣었죠.


정말 맛있더라구요.
된장찌개는 짜서 싫어하는데 된장과 김치를 심심한 콩비지찌개에 넣어 끓여놓으니
감칠맛이!!!
오리지널 초딩입맛이었던 저에게는 상당히 충격이었습니다.
그후로는 선배를 졸라서 아침까지도 먹으러 갈 만큼 매니아가 되어버렸습니다.
먹지못하던 동태찌개(를 비롯한 모든 생선요리), 닭발, 돼지껍데기, 곱창전골, 콩자반
청국장까지도 잘 먹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오셔서 한번 식사하고 가셨을 정도예요. 도대체 너로 하여금 청국장을 먹을수 있게 해준 식당이 어디냐!!고 하시면서요.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 끼니를 때우는 문제가 녹녹치 않은데
지금 다니는 회사에 와서는 한번도 식사로 뭘먹을까, 어디서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한적이 없는것 같아요.


그리고 작년12월에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아주머니께서 떡을 한봉지씩 나눠주시더라구요.
자녀분께서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진심으로 축하해드렸죠.
그때는 정말 별생각없이 그냥 축하만 해드렸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돈을 받지 않으시고 봉투만 하나씩 나눠주시더라구요.
봉투안 a4용지의 내용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지금의 자리에서 밥집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녀분의 진학으로 세식구가 서울로 올라가신다고..
서울에서 개업을 하게되면 꼭 회사로 알려드릴테니 혹 서울에 올일이 있으면
꼭한번 들러달라, 따뜻한 밥 한끼 제공하겠다,는 말과함께
저희회사사람들이 밥을 맛있게 많이 드셔주어 자녀를 공부시킬수 있었고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와서 고맙다는 말도 덧붙이셨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맛있는 식사 하게 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했는데 말이죠..


자녀분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고, 마침 일이 잘풀려서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신것도
정말 기뻐해야할 일이지만
이제부터는 아주머니,아저씨께서 해주시는 맛있는 식사를 못한다는것,
내일부터 당장 어디서 어떻게 점심을 먹어야 할지 고민되는것은 너무 슬프네요.


왠지 이런 기분은 내일 출근하면 잊어버릴것 같아,
피지알에 오랫만에 쓰는 글로 남겨봅니다.
내일부터 다시 많이 춥다고 하네요~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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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asax_ :D
13/01/24 19:57
수정 아이콘
웃프네요?
그래도 기분 좋은 글입니다.
13/01/24 20:03
수정 아이콘
아 자취하는 입장에서 이런 밥집 주위에 하나만 있으면 좋겟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DarkSide
13/01/24 20:04
수정 아이콘
저와는 정반대의 식성이시군요 ...

저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는 적절하게 짠 맛이 들어있어서 좋아하지만
역으로 가장 못 먹는 음식이 비지찌개와 미역국이라서 ....


물론 저도 초딩 어린애 입맛이라서
달달한 거나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아직도 가장 좋아합니다.

애초에 술,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고 앞으로도 입에 댈 생각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식성이 애들처럼 굳어지게 되더군요 ...
13/01/24 20:32
수정 아이콘
술, 담배와 식성이랑 관계가 있나요. 전 그냥 아무 음식이나 주면 주는대로 잘 먹는데...
Star Seeker
13/01/24 20:06
수정 아이콘
아..우리학교 근처에도 이런 밥집있었으면 매끼니가 그렇게 괴롭지 않았을 텐데
실버벨
13/01/24 20:16
수정 아이콘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4월이야기
13/01/24 20:30
수정 아이콘
훈훈하군요....그러나 저러나 작성자님의 식생활이 걱정되는데요~~!
13/01/24 21:37
수정 아이콘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고 떡을 돌리고
마지막 영업이라고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고
식당 주인분의 의식이 참 인상적입니다
함께 나누고 감사할 줄 아시는 분이시니 그런 분이 내 놓는 음식은 믿음도 더 갈 것 같아요
13/01/24 21:38
수정 아이콘
진짜 훈훈한 글이네요^^
유리별
13/01/27 01:40
수정 아이콘
아 정말 안타까운 글입니다. 식당 주인분의 의식이 정말 멋지네요.^^ 경사스러운 일에는 떡, 마지막 영업에는 무료로 음식 제공,
게다가 저렇게 봉투에 일일이 넣어 편지까지 주시고 말이에요. 믿음가는 정감있는 이모님이었을 것 같아요.
훈훈합니다만.. 점심이 걱정스러워지네요.
초딩 입맛 바꾸기 정말 쉽지 않던데, 대단하신 분이신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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