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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05 07:18
글의 내용에 관한 거라면 불교적 관점으로 기독교를 설명하는 건 아무리 잘 포장해도 기독교인이 불교 믿으면 지옥간다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냥 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과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서로의 세계관을 존중해 주면 된다고 봅니다.
11/11/05 07:19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문장사이 엔터가 들어있어 글 읽기 더 좋았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사이에 생각해 볼 여유가 있었거든요
11/11/05 07:42
그냥 종교인들은 어떤 종교를 믿든 다른 종교를 존중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세금도 내고요.
종교가 뭐 그리 대단해서 세금도 안내는지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든 예수를 만나든 부처를 만나든 국민으로서 의무는 다 해야죠. 혼자 대한민국에서 사는것도 아니고..
11/11/05 07:59
글 간격 죄송합니다. 피자알에서 하도 오래간만에 쓰는 거라 여백 감각을 잃었나봐요.
딴 데 서서 복사하기로 붙여놓으니 이모양이되네요. 다음에 글 쓸 땐 여백 주의하겠습니다. 에...종교글 써서 죄송한 마음이 우선 들고요. 저도 늘 관심이 있는 주제여서 ..심심파적 정도로만 여겨주소서.
11/11/05 08:12
반야심경과 열반경을 대충 읽어봤는데 마음 편하게 사는데 참으로 도움이 되더군요. 저는 모든 기복이라는 행태가 결국은 자신을 다잡는 효과 이외에는 없다고 보고, 어떻게 보면 그것또한 수행의 하나로 볼수는 있지만 누가 그 기복을 듣고 들어주는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애초에 불교 자체도 기복으로 출발한게 아니고 불교의 정수또한 기복과 무관하다고 보는지라 현 불교계도 저는 탐탁치 않게 보네요.
11/11/05 08:25
한 호흡에 읽어 내렸습니다.
저는 무교이고 종교의 존재자체 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불교의 교리와 그 수행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m]
11/11/05 09:04
저도 잡탕입니다. 어머님은 천주교. 저는 교회에 나갔다가 절에 갔다가 성당 미사에도 가는 해괴한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삽니다. 대개는 구경꾼이고 더러는 기도합니다. 투반님은 왠지 공부하시면 대성할 자질이 보입니다. 성불하소서
11/11/05 09:24
한편의 시를 보는 느낌으로 잘 읽었습니다.
글을 담백하게 잘 쓰시네요. 내용도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바랑 비슷해서 추천의 덧글 남깁니다.
11/11/05 09:37
잘 읽었습니다. 불교에서 기독교를 바라본다는 맥락에서 혹시 이 글을 읽어보셨나 궁금하네요. 법륜스님의 "기독교를 말한다"라는 강연에 대한 요약 기사입니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47369 아 그리고 또 추천해드리고 싶은 글은 "불교가 종교인가?"라는 글인데요, 영어로 쓰여졌지만 기독교와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http://www.huffingtonpost.com/dzogchen-ponlop-rinpoche/is-buddhism-a-religion_b_669740.html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11/11/05 09:48
법륜스님의 기독교를 말한다를 읽었는데 불교입장에서는 저렇게 볼 수 있겠지만 기독교 교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의미없는 강연이네요. 한마디로 개소리입니다.(기독교 입장에서 말이죠)
11/11/05 10:16
기독교이며 현재 철학을 전공하면서 불가(교)를 접하고 있습니다.
매력이 있더군요. 쓰신글도 잘 풀어서 설명해주셨네요. 불교에서의 無는 정말 엄청난 글자더라구요. 세상 삼라만상이 무라니.
11/11/05 10:36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6절)
성경에 보면 위와같은 대목이 나오는데요. 결국 문제는 믿음을 무엇으로 보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믿음을 불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본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의 내용이나 리플에 링크걸린 법륜스님이 바라보는 시각은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것과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11/11/05 10:39
학교에서 신학과 교수님께 짧게나마 배우고 있는데,
그 분은 기독교가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로 성경을 '그대로 믿는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굉장히 함축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봐야지 문자 그대로 믿으려 하면 당연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괴리가 생긴다고요. 성경 자체가 당시의 과학, 문화, 사회 등 당시의 지식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빅뱅이니, 진화니, 몇백만년 전 인류니 이런것들을 다 담아내지 못한 것이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성서제일주의 였나 문자제일주의 였나 여튼 성서를 텍스트 그대로 믿는 게 가장 발달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은 항상 비판받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별개로 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에서의 세계관이 참 인상적이더라구요. 실험용 생쥐에게 인간들의 주말 연속극을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같은 세계에 사는 쥐와 인간도 그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인간이 어떻게 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뭐 이런 논지였습니다. 비슷한 말로는 과학은 종교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이런 말도 있겠네요.
11/11/05 10:44
개인적으로 전도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나가는 기독교인 붙잡고 말하는 거예요. "예수님 안 믿으시죠?" 이 때 믿는다고 하면 계속 쫒아가면서 말하는 거죠. 믿지 말라고, 그거 다 거짓말이고 시간낭비하는 거라고. 집에까지 쫒아옵니다. 예수 믿지 말라고 구원 못받는다고. 심하게는 지하철에서는 막 말하는거예요. 예수 믿으면 당신 인생망친다고 그거 다단계랑 똑같은거라고. 이러면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모욕받은 기분이 들고 귀찮고 화가 날까요. 전도라는 거, 확실히 방식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가지론자인 제가 기독교라는 게 참 좋은 종교다 라고 믿은것은 친한 친구중에 한명이 정말 신실한 기독교인인데 같이 시험을 보기 전날 주변에 교인들이 모두 전화해주시고 기도해주신다고 하셨다며 기운을 북돋는 모습과,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주겠다는 친구의 모습때문이었지요. 정말 따뜻하고 힘이되는 거구나 저 공동체는.... 싶었지요. 저런 사람들이 믿는 거라면 정말 하나님이 있는거구나 싶기도요.
11/11/05 10:51
저는 종교가 기독교인 일부 정치인들과 대형교회 목사들을 보면서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안하는진 몰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신은 100% 없구나 란걸 확신하곤 합니다
11/11/05 12:54
좋은 글이네요.
종교가 없는 사람인데, 불교에 관심가지게 만들만큼 잘 쓰셨습니다. 기독교 분들도 이런 글 좀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말도안되는 말장난은 그만 하시구요..
11/11/05 13:13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을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정작 기독교의 교리나 사상이 합리적으로 이해가 안된다고 싸그리 무시하는 말은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시네요 기분나쁩니다 [m]
11/11/05 13:35
아..암튼 글로 불쾌한 기분이 든 분들께는 미안합니다.
진심입니다. 정말 이건 본의가 아닙니다. 분란일으키고 좋아할 나이는 한참 전에 지나서요. 이건 제가 불교식 용어를 제 망상에 덮어씌운 글입니다. 결국 헛소리고 잡소리고 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유일한 가치라는게 있다면 이 시각 이런 짓을 행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 글을 쓴 것을 쓰는 동시에 후회하고 있고 또 생각은 바뀔 겁니다. 여전히 저란 이름으로요.
11/11/05 13:49
꽤 좋은글이라 생각하는데 다른종교를 가진 분들에게는 아닌가보네요.
불교입장에서 기독교를 평가한게 아니라 불교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 종교인가를 쓴글 같은데 격렬한 반응이 나오는것은 그것이 기독교의 세계관과는 다르기 때문일까요. 불교에 '觀'이라는 말 참 좋은말 같네요. 보고 보고 또 보라. 보는것은 사고행위에 연장선상에 있으니까 보는것은 곧 생각하는것이고 생각하는건 의심하는거겠죠. 끊임없이 의심하다보면 데카르트처럼 생각하는 나 자신은 부정할수 없음을 깨달을수도 있고 생각하는 내가 결국 나 이외의 것과 다를수 없음을 알게되는 몰아일체의 경지에 오를수도 있겠죠. 산 정상에 올라서 보면 어느 루트나 다 정상에 오기위한 길이니 같게 느껴지지만 막상 산 아래서 출발하는 이들은 각각의 루트가 너무나 다른길처럼 느껴질겁니다. 진리란 결국 그런게 아닐까요.
11/11/05 13:51
이 글에서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교리를 바꾼 것은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를 불교식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라는 것이지, 기독교 교리는 사실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한게 아니죠. 그런데 몇몇 분들은 예민하게 반응하시는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독교의 전도보다 이런 글 하나에 마음 이 이끌리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위의 나온 반야심경은 비종교인도 한번 읽어보면 좋아요. 교양서적 삼아 주석 달린 책을 봤었 는데 일단 재밌더군요.
11/11/05 14:11
좋은 글 편안히 읽었습니다.
어디서 뺨 맞고 화풀이는 여기에 하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뾰족한 댓글이 글쓴분을 찌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m]
11/11/05 14:45
기독교인들은 종교가 믿음의 영역이라고 믿고 논리적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사실 이런 논의에 참가해서도 안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일찍이 말했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m]
11/11/05 15:40
'그저 늘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갖은 망상과 틀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마음을 응시하는 수밖에요.' <-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좀 더 설명해주셨으면 좋지 않았나 싶어요. 앞의 無이야기와 함께, 왜 허무주의로 남지 않고 불교가 자기수련의 길을 제시하는지를 잘 말해주는 부분이 될것 같은데... 아무튼 잘 읽고 갑니다. (__)
11/11/05 16:24
뒤늦게 감상평을 쓰는 거지만 항상 느끼는 거지만 다른 종교도 물론 많이 어렵지만 불교는 정말 어려워서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뜬구름 잡는 소리도 아닌데 지식이 미천한지라 정말 이해하는게 너무 어려운 종교, 아니 학문으로 생각되네요.
11/11/05 16:41
이 글 논점에서는 좀 벗어나서요, 저는 종교인은 아니지만은 종교를 의지하고 싶을 때 의지하는 그런 존재로만 여기면 안될까요? 댓글 다시는 여러분을 보면 좀 안타까워요. 종교에 관한 논쟁에서는 꼭 소모적인 내용들이 등장하니까 서로 기분만 상하죠. 사람들은 종교를 너무 복잡하게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바라는 것 있으면 절에가서 불공 좀 드리고, 힘든 일 있으면 성당 찾아가서 고해성사나 좀 하구요. 서로의 '스타팅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개인적인 신념이나 믿음은 존중해 줬으면 합니다.
11/11/05 16:43
이견제시, 혹은 보충 하겠습니다.
제가 배운 바를 그대로 옮긴다고 옮기려고 노력했는데, 모르는 부분을 아는 척하고 쓴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제가 잘 못 이해하고 쓴 부분도 있을 겁니다. 이 점 참고 하시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무타무자, 너도 없고 나도 없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의 노력과 정성을 들여 수행을 한 후에 도달 할 수 있는 경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너도 없고 나도 없는 것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나 나라는 존재를 굳이 구분짓는 것은 의미가 없다쪽이 아닌가 싶습니다. @@ 흠. 글쓴분께서는 금강경의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었군요. 외출 다녀온 후에 이 부분 수정해보겠습니다. 2.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 영원한 것이 없다고 배웠습니다. 여래의 자리, 부처의 자리는 상대적이지 않은, 절대적인, 영원한 자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3. 부처님이 35세에 성불하여 80세까지 맨발로 인도전역을 돌아다니시며 설법을 하셨습니다. 불경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상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대가섭, 아난존자를 비롯한 부처님의 제자 및 아라한 경지에 오른 이들이 모여서 부처님 말씀을 모았지요. 그래서 경전들은 '여시아문'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로 시작합니다. 연꽃을 들어보이신 것은 법문이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경지를 넘은 이들에게 하신 법문입니다. 당시엔 가섭만이 그 법문을 이해하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자들은 언어로 읊어진 경전을 지표 삼아 수행정진해야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법등명 자등명'이지요. 그것이 부처님이 열반에 오르실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구요. 다만 모든 경전이 이렇게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차, 3차 결집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건 '경지에 오른 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입니다. 일반 중생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부처님 말씀을 일심으로 믿고 따라야겠지요. 언급하신 금강경 부분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시면 되지 싶습니다. 부처를 똥친 막대기라고 표현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불경은 석가모니 부처님 사후 200년 내에 3번에 걸친 결집으로 다 정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보이신 것에 대해 '퍼포먼스'라고 칭하심은 부처님에 대한 크나큰 결례 아닌가 싶습니다. 4. 사고체계...라기 보다는 의식수준이 좀더 알맞는 표현 아닌가 싶습니다. 그 경지를 극단으로 올리면 무상정등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최고의 의식수준을 이루게 되며 그 경지에 도달한 이끼리는 의식에 차별이 없게 된다고 배웠습니다. 의식수준을 높이는 것이 수행, 맞는 말씀입니다. 5. 불교에서도 천국(극락)과 지옥이 존재합니다. 다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도, 영원히 극락과 지옥에 머물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복을 지으면 극락에 가고 자신이 지은 복이 다하면 극락에서도 나오게 되고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고 자신이 지은 업보가 다 하게 되면 지옥에서도 나오게 됩니다. 인과응보는 칼과 같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켜진다고 배웠습니다.
11/11/05 20:02
제 윗댓글에 자고 일어난 사이 댓글이 많이 달려서 일일히 대답해 드리지 못한점 사과드립니다. 대충 다 취지는 비슷한 거 같으니까 한꺼번에 묵어서 답변드리면,
아름다운 돌 님의 말 속에는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하면서 불교는 이렇게 좋은데 기독교는 왜 그러냐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논쟁의 시작은 바로 이런 "비교"지요. 믿으면 천국, 안믿으면 지옥이라는 교리를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장난으로 치부할 정도로 단순화 시킬 수도 없는 겁니다. 이글에서 불교 교리를 설명한 거처럼 나름 스토리가 있고 그걸 폭력적인 전도 과정에서 너무 단순화 시킨 거죠. 그런데 이 글에서는 폭력적인 전도를 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돌님이 먼저 지레짐작 기독교인을 그렇게 가정하고 말도 안되는 말장난이라 비하하신 겁니다. 왜 기독교인은 자기 종교를 비하당해도 참아야 되는 건가요? 기독교가 하는 짓이 더럽고 부끄럽고 짜증나는 건 알겠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비하의 감정이 들정도로 종교를 비하하는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제발 현대기독교의 치부는 마음대로 폭로해도 되지만 기독교 비하는 하지 말아주세요. 왜 안티의 안티가 되려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11/11/05 20:18
흰코뿔소 님/ 보충으로 말씀드릴게요.
1. 너나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없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텅 빔. 무실 무허(있지도 없지도 않은 것)으로 보는 건 저마다의 의미를 떠나 본래 그렇다는 부처님 견해입니다. 2. 맞습니다. 부처는 보통명사이지요. 부처님이 그렇게 설한 것 맞습니다. 3. 모든 경전은 제자들 기억에 의해 편집되었습니다. 그것도 초기경전에 국한 된 것입니다. 후에 가면 율장론까지 섞여들면서 방대한 더미를 이루게 됩니다. 똥친막대기 제표현이 아니고 퍼포먼스도 제 표현이 아닙니다. 숭산 큰스님의 공안 화두집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선의 대가의 말씀이니 연구해볼만한 문구여서 인용했습니다. 4. 사고체계 의식수준 네. 다 좋습니다. 5 네 경전에 지옥언급 있습니다. 무간지옥에 대한 구절 여러번 나옵니다. 허나 지옥에 대한 언급은 뭇 스님들은 상징으로 이해달라고 말한 적이 많고 사실 지옥이 실재하는 것이이면 불교 교리는 전부 폐기처분해야합니다. 그것은 방편입니다. 육체도 개체성도 부정하는 불교에 개체성을 고문하는 특정장소가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업장의 골짜기를 따라 도는 것이죠. 심지어 교황 역시 1998년에 지옥은 상징으로만 이해해달라고 직접 말씀하셨죠. 이번 글에서 제가 지어낸 말은 없고 스님들의 견해를 옮겨다 적었습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11/11/05 22:02
1. 부처님이 보기엔 공하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눈으로는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업장에 가려서, 인식이 낮아서요. 업장에 가려져있고 인식이 낮은데도 스스로 업을 소멸하지 않고 머리로만 공하다 공하다 천만년 생각해봐야 공이 뭔지 알 수 없을겁니다. 인식 수준의 차이니까요.
5. 육체도 개체성도 불교가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은 다 업보이며 근본의 자리에서 보자면 공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합니다. 공즉시색이죠. 육체도 업보의 산물이며 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업보의 산물입니다. 업을 씻어내지 않고서야 '나'라는 인식을 천만번 깨려해도 깨지지 않죠. 업이 없어지지 않았는데 업보를 어떻게 깨겠습니까.
11/11/05 23:03
불교의 사상을 잘 모르지만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사실상 인간이 눈에 보이는것에 집착하고 욕정에 좌우되고 그러는 것은 생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런것인데요 즉 살기위해 먹고 자고 번식하죠 그렇다면 집착을 버리고 공으로 돌아가고 내 자신의 존재를 버리는것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죽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살하는 것에 대한 불교의 견해는 어떠한가요? 그리고 또한가지는 결국 불교 경전이 나오고 남에게 설파하고 이러는 것은 결국 자신이 얻은 것을 남에게 전수하고 싶다는 인간본연의 욕구와 혹은 중생을 궁휼히 여기는 인간의 감정으로 부터 발로한 것이라보는데 정녕 무념 무상 해탈의 경지로 가려면 이또한 버려야 할 감정이라 보는데요 이에대한 불교의 견해 역사 궁금합니다 [m]
11/11/05 23:26
Around30님/자살이라는 건 불교식으로 말하면 사고 인식의 오류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인데
자살로 그것이 해결되리라는 견해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자살은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이러저러한 속박과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마음을 불가에선 중생심이라고 하고 중생심이 바로 원인과 결과를 끝없이 짓는 인연의 고리. 윤회의 원반을 돌리는 힘이라고 봅니다. 자살은 죄도 뭣도 아닙니다. 불가에서는 죄도 없습니다. 죄는 자성이 없으므로 마음 바뀌면 죄도 없습니다. 죄라고 여기는 마음만 존재합니다. 그냥 행위이고 그 다음에 뭔가를 초래할 뿐입니다. 자살은 육신을 소멸시키지만 그가 지은 행업 자체를 없애는 힘은 조금도 없으므로 또다른 결과로 향해가젰지요. 부처는 나와 남의 경계가 사라지신 분이니 타인구제라는게 있을 수가 없지요. 금강경에도 나는 한사람도 구제한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처자리에서 보면 환영덩어리들의 이합집산이기에 깨어나고 나면 나와 남으로 나눌 수 없는 불성 하나만 오롯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게 우리 본래 상태고 지금 사는 세계가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나듯 깨치면 안다고 하십니다. 꿈에서 일어나는 일에 죄를 묻는 사람도 없고 꿈속의 등장인물에게 실체성을 부여하는 사람도 없죠. 꿈속에 빠진 사람빼고는.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로 남으로 나눈 것은 매양 환상의 세계고 가공의 세계고 에고의 경계고 사바의 경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물론 전 요원하네요. 그래서 비인부전.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면 전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거 같습니다.
11/11/05 23:38
덧글 달자면, 자살 자체만 두고 보면 죄니 아니니 말할 건 아닐 수도 있지만 시야를 넓혀서 상황을 보면
부모님이 낳으시고 키우시고 그리고 여태까지 가르쳐준 사람들, 지금까지 생에서 도움을 받은 모든 것들, 빚으로 남고 인연으로 남습니다. 물질뿐만이 아니라 사랑, 애정, 그 마음까지...그리고 자살함으로 남긴 주변 사람들 마음의 상처까지. 그 빚, 청산하지 않으면 해탈 못 하죠.
11/11/05 23:06
전 종교는 정신적 바이러스이자 인류의 정신적 흔적기관에 불과하다는 도킨스의 말이 가장 좋습니다. 종교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1人
11/11/05 23:44
뜬금없는 소리지만...어제 오늘 많은 댓글을 달면서 느끼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도 아는게 아니었네요. 불교 소개의 글을 저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죄만 짓지 싶습니다. ㅠㅠ
11/11/06 22:48
먼저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간만에 오온에 대해 새김질 해볼수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제게 있어서 무아를 받아들이는데 가장 장벽이 되는 화두는 다음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회의하여 나=오온이 허상에 불과하다는것에 도달하였다 한들 사실 무아라는 엄청난 주장과는 아득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비교하자면, 성경의 다른 교리를 모조리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속하여 죽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신자라 할수없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무아를 깨달았다 하면 도대체 무엇이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입니까? 무아를 깨달은 것 그 자체도 허상일진데.. 설사 부처는 똥친작대기라 하더라도 그 개체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 무아라는 엄청난 주장을 할수있단 말입니까?
11/11/07 00:01
김연아이유리님/ 그렇습니다. 무아의 경지는 문자와 언어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니 저도 몇생애에 걸쳐서 꿈에나 한번 느껴볼 수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수많은 천재들을 잡아 삼킨 대목이 그지점이고 몇천년간 내려온 모든 논쟁을 담고 있는 지점도 거기지요. 제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저서와 상태였습니다. 분명 그분들은 단 하나만 인정하더군요. 불성=참자아 그렇다면 우리가 ‘나’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참자아가 아니냐? 아니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니 무아를 증득했다고 여기는 마음은 참자아가 아닙니다. 혹은 무아를 얻지 못했다고 여기는 마음도 참자아가 아닙니다. 그것은 얻는 것도 아니고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이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무아라고 설하고 의심을 일으켜 내부로 향하게 하는 방편일뿐 글자 ‘무’와 참자아 상태로 머물며 개체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대목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차지이겠죠. 우리는 우주에 대한 글귀를 읽고 그런게 있구나 할 수 있지만 우주 속에서 떠다녀보기전엔 우주를 맛보고 느끼지 못합니다. 초등학생도 키스하는 배우를 볼 수 있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키스는 해봐야 알겠죠. 그느낌을. 그 행복한 기분은요. 무아의 발견 혹은 참자아로의 회귀는 말과 단어를 뛰어넘는 경지란 것은 어렴풋이 느낍니다. 그것은 세상 삶의 전면적인 혁명이기에 몇천년의 전통을 가진 불교계에서도 극소수라고 합니다. 그래서....직접 체험해보는 단계가 아니면 문자와 앎의 이해정도로는 가늠할 수 없는 상태라고들 하십니다. 성철 큰 스님 역시 불경은 처방전이니 불경 보지 말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아프면 약을 먹어야지 처방전 먹으면 되냐고 하시면서. 아는 것과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체험은 비교불가하다고들 하시니..전 이 말을 꾹꾹 집어넣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입니다. 사실 무아를 인식하는 주체가 무엇인가 하는 지점- 다시 ‘나’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의 대답은..결국 인연 있는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일 거 같습니다. 전 아직 맛을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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