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K1P를 보고 그 옛날의 4K가 생각났다면 당신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일게다. 그러나 행여 그렇지는 않겠지. 어쨌든 오늘 이야기가 그것과 직접 상관있는 것은 아니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소설깨나 읽어봤을 것이라 생각하고, 나를 좀 더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그럴듯한 작품 하나 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지레 짐작하고 있을 터이지만 어느 때부터 나는 소설 읽기가 적이 거북해졌다. 번역된 작품은 그나마 읽기가 나았다.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작가의 글을 읽기가 힘들어진 것은, 그것이 너무 개판이어서도 아니고 휘황찬란한 모습이 감당키 어려워서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그들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는 것보다 손을 부지런히 놀려 내 글 하나를 더 쓰고 싶은 충동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욕된 춘원의 글이든, 갓 건져 올린 신춘(新春)의 글이든 그들을 읽어나갈수록 자의식은 나를 자꾸 부채질했다. 공부라 생각하며 눈을 부릅뜨려 해도,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도저히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못나디 못난 내 마음 속 아이는 갈수록 달래기 어려웠지만, 나는 그럴듯한 작품을 쓸 것 같은 예감에 그다지 거슬리진 않았다. 그러던 또 어느 무렵이었다. 나는 3K1P, 네 명의 글을 만났다. 오랜만에 신이 난 눈동자였다. 그것을 다 읽고 난, 작품을 하나 쓰겠단 마음을 조금은 쉽게 접어버렸다. ‘고이’란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3K1P들은 비교적 젊은 작가들이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젊지도 않았다. 또 지금 시대에서 꽤나 칭찬받는 작가들이었으나, 지금 시대는 함부로 견줘지고 또한 폄하되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작가들이었다. 내가 그들의 소설을 읽고 나의 것 쓰기를 그만둔 것은 그것이 퍽 대단해서라기보다, 내가 어렴풋이 바라왔으나 아직 건져 올리지 못한 나의 그것과 너무 닮아있어서였다. 작가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짐작할까. 내가 직접 손 아파 가며 쓰지 않아도 쓰고 싶은 글이 기성품마냥 나와 있으면, 글쓰기는 가능할 것인가. 물론 내 깜냥에는 남이 웃을 이야기지만, 어떤 지향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게 나는 소설에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좀 더 쉬운 길을 선택한 것일까. 글쎄. 지금 내가 옮겨온 곳도 명절 때만 되면 친척들에게 조언깨나 얻어 듣는 '실속 없는' 곳이다. 내 것 쓰기를 그만둔 것은 그 길의 지난함 때문이라기보다, 어떤 염치의 문제였다. 3K1P가 아니라 300K100P라고 해도 나와 꼭 닮은 표정은 없겠지만, 그 차이에 집착하며 내 글을 보태는 것은 어쩐지 조금 부끄러운 일이었다. 물론 내 인생을 저당 잡혀 도박판에 낄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판돈을 꼭 쥔 채 망설이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꽤 솔직한 성격임을 깨달았다.
염치라는 것을 벗어날 때가 되면 나는 다시 시원한 토악질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글을 무엇보다 당당한 '소설'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니, 내 인생을 소설로 바꾸는 게 낫겠지. 그러고 보니, 정작 3K1P가 누군지 밝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니 이것도 넘어가기로 하자. 그들이 다 남자라는 것이 그나마 좀 신기한 일일까.
그것은 염치의 문제다. 사람은 시간을 바쳐 무언가를 할 수도 있고, 아니 할 수도 있지만 알면서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요즘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딱히 이유가 있다기보다 관성에 가까웠다. 같은 언어의 작가들은 읽기가 쉬었고 얼마만치 흥미도 생겼다. 그러나 번역된 글은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평론에 속하는 것은 더 고역이다. 날것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래서 길 잃은 아이마냥 서성이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간 죄책감으로 남았나보다. 이 역시 염치의 문제다.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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