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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02/09 01:09:52 |
Name |
글곰 |
Subject |
광통령, 그리고 어느 반란군 지도자의 이야기 |
“이거 놀랍군. 솔직히 자네가 반란을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네.”
“뜻밖의 기책(奇策)은 본래 당신의 장기가 아니었습니까. 저는 단지 보고 익혀 따라했을 따름입니다.”
청년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해맑기까지 한 매력적인 미소였다. 온 몸에 뒤집어쓴 누런 전장의 흙먼지도, 그의 수려한 외모에는 별다른 악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남들보다 뛰어난 면이 있어 크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이 정도였던가. 그는 기묘한 감탄에 잠겨들었다.
끊임없이 앞으로만 전진하던 그의 부대는, 수도에서 날아든 뜻밖의 소식에 덜컹 멈춰서 버렸다. 수도에서 국경까지 엄청난 거리를 주파해 온 전령의 몸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보고를 끝낸 전령은 탈진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휘하 장수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거나, 혹은 새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만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졸린 듯 반쯤 감은 눈. 무덤덤하게 살짝 말려 올라간 입술꼬리.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말이 없었다. 주변의 뭇 사람들이 긴장하여 바짝 굳어갈 때쯤, 그는 담담하게 내뱉었다.
“돌아간다. 준비해라.”
“이 자리가 탐나던가? 뭇 사람들의 위에 서 있다 하여 그렇게 좋은 것만도 아니네.”
“그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웅지 있고 포부 있는 이라면 어찌 당신의 자리를 탐내지 않겠습니까? 당신 휘하의 충성스런 장수들 중에서도 그 자리를 탐하지 않는 이는 없었을 겁니다. 단지 능력이 부족할 따름이지요. 마침 제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고, 또 하늘이 그럴 기회를 내려주신 겁니다. 그뿐입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전의 마지막 전투에서 다친 오른팔이 아려 왔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태평스럽기까지 한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가. 하기야 결과적으로 나를 물리쳤으니 자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는 없겠군.”
수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군중에 퍼졌다. 장수들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고, 병사들은 공공연하게 술렁였다. 그들의 지도자. 능수능란한 용병술과 종교적이기까지 한 카리스마. 행성 아이우에서 비롯되어 전 우주로 퍼진 프로토스 종족을 이끌어가는 자. 대통령 날라Nalra. 그 내심이야 어떠했든 간에, 적어도 그에 대한 반발심이나 적개심을 겉으로 드러내는 자는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지속적으로 전쟁에 나섰고, 얼마간의 패배와 그보다 훨씬 많은 승리를 프로토스에 안겨 주었다. 그의 전쟁은 성전이었노라. 어느 음유시인은 그렇게 노래했다. 그는 뭇 프로토스의 영광을 한 몸에 받든 존재였고 모든 프로토스 인들이 숭배하는 대상이었다. 광통령 각하.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것은 여태껏 존재했었던 모든 프로토스 지배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이에게 바쳐진 칭호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전쟁을 치르러 수도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했습니다. 저 하늘의 카카루를 보십시오. 그들은 먹잇감이 줄어들면 바로 서식지를 옮깁니다. 한 곳에 머물러 있어서는 결국 굶어죽을 수밖에 없지요. 물론 저는 당신의 위대함을 알고 있습니다. 마치 꿈을 꾸는 듯 뛰어난 당신의 용병술은 언제나 저를 감탄케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약해졌는지도 모릅니다. 한때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프로토스였던 당신이, 이제는 제 공격을 막아낼 수도 없을 정도로.”
“그래. 그랬을지도 모르네. 아닐지도 모르고. 그 누가 알겠는가? 내가 약해진 게 아니라, 어쩌면 단지 자네가 상상 이상으로 강해졌는지도 모르는 일일세. 그 가능성을 몰라본 건 내 불찰이겠지.”
그는 약간의 쓴웃음을 띠고 말했다. 그러다 문득 그는 맞은편에 선 청년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청년이 흠칫하여 안색을 굳힐 정도로 형형한 눈빛이었다.
“궁금하군. 나를 누르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으니 이제 무얼 할 셈인가?”
반란군 대장은 불과 약관을 갓 넘긴 젊은이였다. 비수BISU. 짧지만 날카로운 검이라는 이름답게, 그는 광통령의 휘하에서 활약하는 소장파 장수들 가운데서도 뛰어난 편이었다. 어떤 이들은 빠르게 명성을 얻은 그를 질시하여 얼굴로만 먹고 사는 기생오라비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그의 용모가 수려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가 거둔 전공 역시 그 용모만큼이나 대단했다. 특히 프로토스의 영원한 숙적 저그를 상대로 하여 그가 거둔 전공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까닭에 광통령이 전장에 나가면서 특히 비수를 발탁하여 수도의 수비를 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반란을 일으키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야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동요의 빛을 보인 것도 잠시, 비수는 다시금 평소의 태도를 되찾아 명쾌하게 대답했다.
“당신의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치러 갑니다. 당신의 성전은 제가 이어받겠습니다.”
“그들이라 하면?”
광통령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마에스트로, 혹은 화신. 필경 그들 중 하나겠지요. 그 둘이 저그와 테란의 명운을 걸고 곧 격돌할 거라 들었습니다.”
황급히 돌아온 광통령의 군대는 들판에서 비수의 반란군과 대치했다. 진두에 서서 군을 지휘하는 비수의 모습은 당당했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광통령의 마음에 불현듯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어쩌면 자신이 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나도 이제는 늙은 건가. 그는 중얼거리며 오른팔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그는 나이가 많았고, 비수는 젊었다.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그는 부러 크게 외쳤다.
“공격하라! 반란군을 제압한다!”
비수도 외쳤다.
“공격! 프로토스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건 우리다!”
마에스트로. 광통령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저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프로토스에게는 가장 치욕스러운 이름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손에 희생된 질럿이 몇 천이며, 그 손에 박살난 드라군이 몇 만이던가. 역사상 전무후무한 광통령의 칭호를 받은 날라마저도 그와 격돌하면 으레 패하기 일쑤였으며, 그 휘하 장수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행성 프링글스에서 마에스트로에게 당한 뼈저린 패배는 아직도 광통령의 꿈속에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화신. 테란의 짧은 역사에서도 가장 저그의 약점을 잘 파고든다는 이름. 마에스트로에게 압살 당하던 테란 종족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름이 바로 화신이었다. 그들이 서로 선전포고를 마치고 곧 격돌한다는 소식은 광통령 역시 들은 터였다. 그리고 그 승부는 그조차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둘 중 누구든 상관없다는 말인가. 날라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비수가 싱긋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기왕이면 마에스트로를 만났으면 합니다. 우리들은 그에게 빚이 많으니까요.”
전투는 너무나도 일방적이었다. 머나먼 국경에서 수도까지 회군하면서 피로에 지친 광통령의 군대는 애당초 반란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거기에다, 비수의 전술적 운용은 너무나도 뛰어났다. 광통령의 강한 곳을 피하고 약한 곳을 찾아 찌르는 공격은 날카로웠고, 이쪽을 혼란시키는 병력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반란군의 리버 부대를 공략하기 위해 출동시켰던 비장의 드라군 연대가 어처구니없게도 엉뚱한 적을 공격하다가 전멸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광통령은 자신의 패배가 아주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그리고 적의 다크템플러 부대가 광통령의 본진을 향해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대가 마에스트로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대가 패배한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네!”
광통령은 소리쳤다. 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뒤엉켰다. 그러나 누구도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다. 한참 동안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그리고 비수는 대답했다.
“저는 저 자신을 믿습니다.”
광통령은 반란군에게 붙잡혔다. 그걸로 프로토스의 수도에서 벌어진 내전은 끝났다. 반란군은 광통령의 부대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제는 더 이상 반란군이 아니었다. 비수는 프로토스의 새로운 지배자였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 그를 능가하는 이는 없었다. 광통령은 밀실에 연금 당했다. 연금이라고는 하나, 비교적 괜찮은 식사가 제공되고 침대도 푹신했다. 패배한 노장에 대한 배려라는 건가. 광통령은 침대에 누워 쓰게 웃었다.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욱신욱신 쑤셔왔다. 그 때 갑작스레 방문이 열렸다. 문 밖에는 방금 전에 그를 물리친 청년, 비수가 홀로 서 있었다. 그는 싱긋 웃으며 광통령에게 말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비수가 방을 나선 후 광통령은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절뚝이며 창가로 다가갔다. 멀리, 도시 외곽에 모여 있는 프로토스의 군대가 보였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그가 지휘했었고, 지금은 새로운 지도자의 지휘를 받고 있는 프로토스의 병력들. 또다시 마에스트로와 맞닥뜨린다면 이기든 지든 간에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러나 기왕이면, 광통령은 이미 눈앞에 없는 비수를 향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대가 이기길 바란다네.
오로지 프로토스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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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8일.
곰TV배 MSL 4강전 김택용(P) 대 강민(P) 경기 감상문.
* 퍼플레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2-0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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