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이야기.
오늘은 야곱 인생의 6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주제로 적는 “소설”입니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말이 안 될수도 있지만 너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성경 세계관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동감을 하는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야곱은 에서를 만나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찌질이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야곱이 만약 진정한 아버지이자 가장의 리더였다면 누구보다 먼저 얍복강을 건넜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치사하게 가족들을 먼저 강 건너편으로 보내고
자기는 이 강을 건너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밤새 고민하고 있었죠.
혹자는 이때 야곱이 씨름을 한 것은
“하나님의 사자에게 목숨을 걸고 힘을 다해 도움을 달라”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해석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 해석이 맞으려면 야곱은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하나님께는 있는 힘껏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불안해 할 줄 아시고 얍복강에 오기 전에
이미 마하나임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야곱을 지켜주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셨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무엇을 더 도와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위해 다 준비해 놓으셨지만 혼자 불안해 떨며 찌질한 모습을 보여준건 야곱 그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강을 건너기를 주저하던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을 도발했고,
그럼에도 강을 건너기를 싫어했던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자의 반칙(?)으로 인해 다리 뼈가 부러져서 이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오고 있는데 이제 야곱은 다리를 절게 되어 물리적으로 도망을 갈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제 야곱을 떠나려고 합니다.
다급한 야곱은 바로 방금 전까지 죽어라 싸우던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나를 축복하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보내지 않을겁니다]
(진작에 씨름 안하고 도움을 요청했다면 쉽게 풀렸겠다....)
야곱은 이때까지도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자인 것을 몰랐습니다.
황당한 이 사람은 야곱에게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답하자, 이 사람은 앞으로 너를 “이스라엘” 부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황당해 하는 이유 -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네놈이 고작 인간의 군대를 무서워해??]
야곱이 순간 당황합니다.
아니 나는 당신과 씨름을 했는데 왠 갑자기 내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거임???
그래서 야곱이 그 사람의 이름을 묻습니다.
그 사람은 “내 이름을 왜 묻는데?” 라는 말을 남기고 야곱을 축복하고 떠납니다.
아시다시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이름이 없습니다.
흔희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여호와는 이름이 아닌 단순한 호칭(애칭??)에 불과합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어느 대상에게 지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세상의 창조주이니 누가 하나님의 이름을 지어 줄 일이 없습니다.
즉 이름이 없다 = 하나님 이라는 공식이 나옵니다.
자신과 씨름하던 사람이 하나님임을 안 야곱은 하나님께 버릇없게 대한 것에 대해 순간 두려움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곧 용기가 됩니다.
이제 눈을 들어 앞을 보니 에서의 400명 군대가 오고 있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하나님과 맞서 싸워 이겼는데 에서가 뭐가 두렵겠습니까?
그래서 비겁하게 지금까지 맨 뒤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야곱은 이제 가족들
[맨 앞]으로 나가서 홀로 에서를 만납니다.
그리고는 에서 앞에서 7번 절을 하며 완벽히 복종하는 자세로 에서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다리를 저는 사람이 7번이나 절을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요?
에서는 분명히 야곱을 죽이려는 생각으로 400명의 대군을 이끌고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에서는 다리를 절며 힘들게 자신 앞에서 절을 하는 야곱을 보자 순간 감정이 복받쳐서 야곱을 껴안고 울며 화해를 합니다.
앞전의 엄청난 긴장감과 찌질함의 이야기를 본 것 치고는 너무 허무하게 갈등이 풀렸습니다.
[이 세상의 복잡한 원한과 갈등도 사실 알고 보면 이렇게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들 아닐까요?]
아직도 축복권을 가로챈 것에 대해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야곱은
이제 자신에게 많은 재물들이 있으니 이것을 에서에게 나누어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에서는 이미 야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세력권의 지도자 였습니다.
솔직히 에서가 이렇게 쉽게 야곱을 용서해준 것은 그가 이미 지난 에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공한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셋쇼마루가 자신의 검 폭쇄아를 얻고 더 이상 아버징의 철쇄아를 이어 받은 동생 이누야샤를 질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느낌?)
오히려 에서는 이 많은 재물을 군대 없이 위험하게 이끌고 있는 동생 야곱이 걱정되어
야곱과 같이 살 생각도 하고, 아니면 야곱에게 자신의 군대 일부를 줄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형님께 더 이상 폐 끼치고 싶지 않다면서 야곱과 에서는 이렇게 사이좋게 헤어지고 죽을 때까지 다시는 싸우지 않게 됩니다.
이제 야곱의 문제는 다 끝났습니다.
하란에서 아내 4명과 아들 11명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고
삼촌 라반과의 문제도 깔끔히 해결했고
원수였던 형 에서와의 문제도 깔끔히 해결 되었습니다.
분명 모든 문제가 다 끝났고 이제 야곱에게는 행복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는 아니고 이제부터 야곱의 진짜 고난이 시작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야곱 맛보기 고난의 인생 1/3이 종료되고 이제 진정한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야곱에게는 가장 큰 불안요소가 있었습니다.
앞전에도 설명한 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냐는 문제였죠.
야곱은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가족들은 아니었죠.
에서와 헤어진 야곱은 이제 어느 곳으로 가야할까요?
아래 지도를 보시면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던 “브니엘”에서 이제 정착할 곳을 찾아 가야합니다.
지금 이 지도는 모두 가나안 땅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이라고 다 같은 땅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독하다던 소돔과 고모라도 가나안 땅 소속이었습니다.
아니 엄밀히 따지만 가나안 땅은 당시 세상에서 가장 성적으로 타락하고 죄악의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들의 자손이 가나안 여자와 혼인하기를 원치 않았고 야곱도 하란에서 아내를 맞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믿음의 조상들이 살 곳은 지도 밑의 “헤브론” 이나 “브엘세바” 였습니다
헤브론 - 높은 산 고지대였고 그곳에는 진짜 할게 아무것도 없는 촌 중에 촌이었습니다.
브엘세바 - 여기는 헤브론보다 더합니다. 그냥 사막이고 일년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할 정도로 사람이 살기 힘든 곳입니다.
즉 이 두 장소는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살 수밖에 없는 척박한 땅입니다.
일단 야곱은 벧엘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무사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감사 예배를 드리고
헤브론이나 브엘세바에 가서 그의 조상들처럼 믿음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앞전의 글들에서 밝혔듯이 야곱은 도저히 가족들을 데리고
(특히 라헬 문제가 컸을겁니다) 그런 척박한 곳에 갈 엄두가 안났습니다.
또한 재산 문제도 컸을겁니다.
자기가 어떻게 고생하며 하란에서 벌어온 재산인데..
척박한 헤브론이나 브엘세바로 갔다가 이 재산들 다 잃으면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결국 야곱이 벧엘, 헤브론, 브엘세바 아무 곳도 가지 않고 비교적 발단한 도시 “세겜”에 가서 정착하게 됩니다.
그곳에서도 나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께 예배는 잊지 않고 드립니다.
야곱이란 인물은.. 분명히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으니 에서가 가볍게 여긴 축복권을 원했고,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사람의 꾀를 부리며 100% 순종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타협]을 합니다.
축복권을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람의 속임수로 빼앗으면 하나님께서 응원 하실까요?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세겜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하나님께서 야곱을 응원 하실까요?
세겜에서의 비극은 야곱와 레아 사이에서 낳은 딸 디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랜 시간 하란에서부터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면서 야곱의 가족들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습니다.
안 그래도 저 먼 거리를 걸어오면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것이고, 서로 으쌰으쌰하며 노래도 부르면서 즐겁게 와도 힘든 거리인데..
당시 야곱은 에서와의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는 밥맛도 없이 죽을 상이었을테니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들이 제대로 노래나 부르며 즐겁게 행군을 할 수 있었을까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하란에서 가나안 땅까지 겨우 왔고 이제야 평안히 세겜에 정착하자
딸 디나는 순간 이성을 잃고 감히 “여자의 몸으로” 혼자 동네로 놀러갑니다.
지금도 중동 이슬람 지방은 여자가 감히 밖에서 혼자 다닐수 없으며 반드시 히잡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합니다.
옛날 야곱의 시대에는 이런 성향이 더 심했으며 믿음의 집안 후손이던 야곱 집안에서는
여자 혼자 동네에서 논다는 것은 상상 할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디나는 동네로 놀러갔고 그만 어느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맙니다.
[근데 이 강간 당한 것이 좀 수상합니다]
디나를 강간(?)한 사람은 바로 세겜 땅의 우두머리이자 젊은 추장인 “세겜” 이었습니다.
땅 이름이 세겜이고, 추장 이름도 세겜입니다. 헷갈리지 맙시다.
근데 추장 세겜은 조두순이나 이런 범법자처럼 디나를 강간한게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면 세겜은 성경에 표현하기를 디나를 사랑하여 디나의 마음을 위로해 줬다고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을의 우두머리 남자가 여자를 강간을 했는데 남자가 여자를 사랑했고 마음을 위로해줬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현대식으로 이렇게 해석합니다.
집안에서 스트레스 받던 디나는 부모님 몰래 세겜 땅의 클럽에 놀러갔습니다.
목적은 물론 그곳에서 멋진 남자들도 보고 예쁜 여자들도 보고 신나게 즐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F4나 다름없는 멋진 추장 세겜님을 만납니다.
디나는 멋진 추장 세겜님과 아름다운 밤을 보내고... 아마 오랜만에 밖에서 술을 많이 마셨는지 순간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을 겁니다.
세겜은 술에 취한 디나를 데리고 모텔로 가서 당연히 원나잇을 즐겼을 겁니다.
(가나안 땅은 성적으로 매우 문란했다고 기록되있고, 이런 문란한 성생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 뭐 딱히 세상적으로는 이게 문란한가?)
근데 잠에서 일어나보니 디나는 당황합니다.
디나는 잠시 놀고 싶었던 것이지 그래도 믿음의 집안 야곱의 딸인데
이런 식으로 함부로 순결을 내놓는 헤픈 여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절대로 없었을 겁니다.
근데 어쩌다보니 이 남자로 인해 순결을 잃게 되었습니다.
(뭐 어쨌든 이것도 강간은 강간인데, 사실 요즘 미투 사건때도 자주 나오는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강간이죠?
우리나라도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게 죄 인줄 모르고 살았었고 특히 남자들은 이게 죄 인줄 몰랐으니까..
뭐 그렇다고 절대 잘했다는건 아닙니다)
디나는 펑펑 울었고 세겜은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릅니다.
그냥 나는 이 땅에서 사는 젊은 남녀들처럼 좋은 밤을 지낸건데 넌 아닌가??
그리고는 디나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녀를 위로하게 됩니다.
그녀를 위로하면서 세겜은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야곱은 난리가 났습니다.
이 딸이 혼자 겁 없이 동네에 놀러 나가다가 이런 꼴을 당하다니...
분노하면서 당황하던 그 찰나.
문제의 주동자 세겜이 야곱의 집안을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세겜은 이 모든 일은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고의는 아니었고,
자신은 디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디나를 아내로 삼고 싶다고 야곱에게 말합니다.
한 도시의 우두머리가 미천한 객지인에게 청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근데 여기서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성경 신명기 22장에는 강간에 대한 법률이 있습니다.
만약 남자가 결혼(혹은 약혼)한 여자를 강간하면 남자를 죽여라.
여자는 정말 강간을 당한거면 살려주고 만약 바람을 핀거라면 여자도 같이 죽여라.
---> 요즘의 법과 같은 합당한 법률입니다. (죽이는 것까지는 좀 과하지만 어쨌든 벌을 강하게 내린다고 해석합시다)
근데 만약 남자가 약혼 안한 여자를 강간하면?
이때는 남자를 죽이는게 아니고 그 남자와 여자를 강제로 혼인을 시킵니다.
대신 남자는 무조건 은 오십 세겔을 여자의 아버지에게 합당한 결혼금으로 지참하고 결혼을 해야합니다.
---> 이건 현대 법하고 많이 다르죠?
예전 90년대였나?
신문 기사에서 어떤 판사가 여자가 강간 당하자 어차피 더렵혀진 몸 그냥 그 남자랑 맺어 주는게 어떻겠냐고 말했다가
욕을 엄청 먹은게 기억납니다.
하지만 이건 이 당시의 여성의 인권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이야 여자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연애 결혼이 당연한 시대지만 이 당시 여자는 자신의 의사로 결혼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여자의 아버지가 남편감을 골라줍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여자를 데려와서 결혼하는게 정당한 풍습이었습니다.
만약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고 남자를 벌하면?
이건 여자에게 좋은 대처가 아닙니다.
순결을 강조하는 저 시대에 이미 더럽혀진 저 여자와 어느 남자가 결혼을 할려고 할까요?
결국 여자는 평생을 미혼녀로 살아야하고 이건 그 당시 여자들에게 가장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당시 여자 이름으로는 아무런 재산도 유산도 남길수 없으니
여자의 아버지가 늙어 죽게 되면 여자는 구걸하는 것 말고는 합법적으로 세상에서 살아 남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당시의 여자들을 기를 쓰고 결혼하고, 기를 쓰고 아들을 낳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야 자신의 노후가 합법적으로 보장되거든요.
어차피 이 당시의 여자는 남자가 싫더라도 부모가 명령하면 결혼을 억지로 해야하는 시대입니다.
즉 모르는 남자에게 강간 당하는거나 억지로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해서 성관계 하는거나 여자의 입장에서는 다를게 없습니다.
중요한거는 그 남자가 여자를 후에 어떻게 책임 지냐는 것입니다.
즉 당시의 법률로 따지면 아직까지는 세겜이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디나는 아직 결혼이나 약혼을 하지 않은 처녀였고
세겜은 단순히 죄를 안받으려고 디나를 형식적으로 책임 질려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로 디나를 사랑해서 결혼을 할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을 위한 예물도 단순 은 50세겔 따위가 아닙니다.
(은 1세겔 = 약 11.42g이니 현대 돈으로 따지면 은 50세겔 = 지금 환율로 약 500불?
뭐 이때 은의 가치과 지금 은의 가치가 다르니 그냥 참고만 합시다)
세겜은 이때 자신의 아버지 하몰과 같이 야곱의 집에 방문했는데, 하몰이 말하길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세겜 집안은 사랑하는 디나를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줄 마음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처음에 디나가 강간당했다는 듣고는 열이 받습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딸 디나를 위해서는 세겜과 혼인을 시키는게 좋을겁니다.
그래도 뭔가 이대로 순순히 허락 하는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집안의 딸을 강간해? 이걸 그냥 넘어가??
야곱은 이 집안의 가장입니다.
어렵지만 디나를 위해 자신이 결단을 할 때입니다.
하지만 찌질한 야곱은 자신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주저합니다.
그는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비겁하게 자신의 아들들에게 의견을 물어봅니다.
이것으로 인해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됩니다.
다음 시간에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