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야곱 인생의 5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주제로 적는 “소설”입니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말이 안 될수도 있지만 너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성경 세계관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동감을 하는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시간 라반에게 당하기만 하던 야곱은 마지막에 라반을 거하게 먹이고 엄청난 양떼를 가지고 야반도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20년간 아내와 같이 살던 제2의 고향 하란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초에 하란은 야곱이 20년간 머물 곳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하란에 온 공식적인 이유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라헬이라는 덫에 걸려 무려 20년을 하란 땅에서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참다못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고,
야곱은 그것에 순종하면 됩니다.
근데 야곱의 아내들이 그것에 동의할까요?
아니 정확히 믿음이 없는 라헬이 이것에 동의할까요?
지도를 살펴보면 하란은 오리엔탈 문명 (나일강 + 메소포타미아)의 딱 중앙에 있는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중간에 직선도로가 거리는 더 가까울 것 같지만 그곳은 사막이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로 갈려면 무조건 중간의 하란을 거쳐야 했습니다.
때문에 이곳은 물자가 매우 풍부했고 상당히 발전된 도시였습니다.
(훗날 이집트와 바벨론의 오리엔탈 문명 패권을 결정하는 갈그미스 전투가 바로 이곳 하란 근처에서 일어났습니다)
라헬은 바로 그 대도시 하란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인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란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 곳 없는 동네입니다.
라헬의 조상이자 아브라함의 형제였던 나홀도 하란의 풍족함을 버리지 못해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서울 강남에서 귀하게 자란 여자가 신안 섬에 시집살이 가는것과 비슷한 비유일려나요? 지역비하는 결코 아닙니다 ㅠ.b)
야곱이야 벧엘에서 하나님도 만나고 했으니 그 조상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 갈 수 있겠지만
라헬도 과연 그럴까요?
때문에 야곱은 아내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야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일부로 악역을 만듭니다.
바로 그녀들의 아버지 라반이죠.
분명 라반은 20년간 야곱을 수없이 속인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라반에게 속아 재산이 한 푼도 없을 때 아내들을 설득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면 됐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라헬이 재산도 없이 가나안 촌 동네를 어떻게 가냐고 반대했겠죠.
그래서 야곱은 얼룩양 사건으로 라반을 속여 많은 재물을 얻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사실 야곱이 나쁜 놈이고 라반은 피해자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아내들에게 얼룩양 사건은 자신이 주도한게 아니고
나쁜 라반이 주도한건데 다행히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자기가 재산을 얻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아내들은 이 말을 믿었고 끝까지 사위를 속이는 아버지에게 분노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즉 아내들은 믿음으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게 아니고 라반에게 실망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라반이 늙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내들은 가나안 땅에 굳이 있을 필요 없이 풍요로운 하란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악역이 죽었는데 왜 누추한 가나안 땅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나요?
그런데 하란으로 돌아오면 다시 살 곳이 있어야겠죠?
그래서 라헬이 기를 쓰고 하란에서 도망칠 때 라반 집안의 상속권을 보증하는 우상
[드라빔]을 훔쳤던 것입니다.
즉 이 모든 비극은 야곱의
[작은 거짓말]에서 시작된거죠.
그리고 라반은 드라빔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야곱을 쫓아와 야곱 집안 모든 사람과 짐을 다 뒤집니다.
야곱은 열 받은 나머지
“만약 드라빔을 훔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
[부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모든 사람과 짐을 다 뒤져도 드라빔을 찾지 못한 라반은 라헬의 앞에 다가옵니다.
드라빔은 라헬의 낙타 안장 안에 있었고, 라헬은 낙타 안장 위에 앉아있었습니다.
원래라면 라헬은 부모님이 오셨으니 낙타에서 내려서 절을 하고 인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라헬은 그럴 수 없었죠. 그랬다가는 아버지가 낙타 안장도 뒤져 볼 거니까요.
그래서 라헬은 말합니다.
[아버지. 제가 지금 생리중이라 낙타에서 내려서 인사를 드릴수가 없습니다. 이해해주세요]
다시 강조합니다.
창세기에서는 진짜 말조심을 해야합니다.
라헬은 몰랐습니다... 이 생리가 그녀 인생의 마지막 생리가 될거라고는...
라반은 라헬의 말을 듣고 라헬의 낙타 뒤지는 것은 포기합니다.
결국 아무런 소득이 없이 야곱을 의심한 꼴이 된 라반은 마지막으로 야곱의 분노의 샤우팅을 한없이 듣고는
힘없이 야곱과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약조만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편 삼촌 라반과의 갈등이 잘 해결된 야곱은 이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나 더 해결해야할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형 에서와의 원한이었죠.
에서는 이때 이미 세일 땅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든 지방 토호였습니다.
에서 혼자만으로도 야곱은 무서운데 한 지방의 세력가가 되었다는 것은 야곱에게 매우 큰 두려움 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을 위로해주기 위해 야곱이 가는 길에 하나님의 군대를 환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천사 군대를 통해 지켜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에 매우 감동하고 자신감을 찾습니다.
야곱은 먼저 세일 땅에 있는 에서에서 사람을 보냅니다.
2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형이 아직 화나 있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형님. 형님은 나의 주인입니다. 형님의 종인 야곱이 하란에서 많은 재물을 얻어서 형님께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 그만 사이좋게 지냅시다” (축복 뺐을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형님은 나의 주인? 아부가 쩝니다)
메시지를 전한 사자가 돌아왔습니다.
근데 그 사자가 말하길 “에서가 아무 말 없이 장정 400명을 이끌고 당신을 만나러 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놀랍니다.
단순히 동생을 만나러 오는 거라면 400명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올 이유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병 400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야곱은 분명히 바로 조금 전 하나님의 군대를 두 눈으로 봤습니다.
하나님의 군대 vs 에서의 400명. 누가 이기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군대는 눈에 당장 보이지가 않고 에서의 400명은 곧 눈에 보입니다.
야곱은 두려워 떨었고 여기서부터 야곱의 개찌찔함의 진면목이 보이게 됩니다.
지도를 아래와 같이 보겠습니다.
야곱은 위에서 아래 얍복강 쪽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에서는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때 야곱은 사람과 동물을 좌 우로 나눕니다.
자신은 맨 뒤에서 관찰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만약 에서가 왼쪽을 치면 난 오른쪽 남은 사람과 동물을 데리고 도망쳐야지.
만약 오른쪽을 치면 왼쪽의 사람과 동물을 데리고 도망치면 되지.]
이게 4명의 아내와 11명의 아들들을 둔 아버지의 태도입니다...
아내들과 아들들이 에서에서 죽임을 당하던 말던 그것 둘째 문제입니다.
어쨌든 자기는 살고 싶고, 이왕 사는거 재산과 사람의 절반은 지키고 싶다는 찌질이 중의 상 찌질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최악의 상황 - 에서가 야곱을 공격한다는 것을 가정한거고,
최선은 에서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야곱은 다시 대책을 세웁니다.
야곱은 에서를 위해 엄청난 양의 선물을 준비합니다.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낙타, 암소, 황소 등등
그리고 이러한 선물을 세 떼로 나눕니다.
그리고 선물을 1차는 적게, 2차는 중간으로, 3차는 아주 많게 배치합니다.
이러면 에서가 야곱을 치러 오다가, 첫 번째 선물을 보고 조금 마음이 풀리고,
더 큰 두 번째 선물을 보고 조금 더 마음이 풀리고,
마지막 세 번째 더 큰 선물을 보면 마음이 확~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습니다.
한번에 10의 선물을 주는 것 보다 1,3,6의 비율로 시간차를 조금 두면서 선물을 주는게
조금 더 에서의 마음을 풀리게 하지 않을까? 하는 찌질이 다운 계획이었습니다.
예물을 보내고 야곱은 얍복강 바로 위에서 소식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야곱의 부하들로부터 소식이 없습니다.
아예 에서가 선물을 다 뿌리쳤다는 소식이라도 들리면 차라리 다 포기하고 도망갈건데 그건 아닙니다.
그냥 무소식입니다.
어쩌면 에서가 예물을 받고 야곱의 부하들과 하하호호하며 얍복강으로 올라오는 중이라는 희망회로도 돌려봅니다.
하지만 사실상 그것보다는 에서의 북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에서가 선물을 뿌리치고 공격을 하고 있다는” 전령까지
다 없애면서 매섭게 올라오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죠?
야곱은 얍복강을 건너기가 두려습니다.
성경에서 강을 건너는게 앞으로도 자주 나올텐데 꼭 스토리가 이런식으로 있습니다.
옛날 같은 교통 상황에는 강은 건너는 것도 쉽지 않지만 돌아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즉 이 강을 건너면 에서로부터 도망치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얍복강을 건너는 것을 주저하던 우리의 찌질이 야곱.
혹시 에서가 이미 얍복강 근처에 도착해서 매복한 후 내가 얍복강을 건너기만을 기다리는 것 아닐까?
그래.. 이미 선물은 다 실패한거고 분명히 얍복강 넘어서 매복하고 있는게 분명해...
근데 매복 안했을 수도 있자나?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찌질이 야곱은 먼저 그의 아내들과 11아들들을 먼저 강을 건너게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밤 늦게까지 혼자 남아 이 강을 건너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만 합니다.
[아니 아내와 아들들을 미끼로 던지고 뭐하는 거냐고 이 찌질이야!!!]
혼자 얍복강 위에 있던 야곱에게 어느 한 사람이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야곱과 심하게 다툽니다.
[성경에는 안나와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그 사람은 야곱한테
비겁한 찌질이라고 놀리면서 빨리 그 강을 건너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강을 건너기 싫었던 야곱은 그 사람과 다투다가 결국 씨름을 하게 됩니다.
강을 건너게 할려는 자 vs 절대로 그 강을 건너기 싫은 자의 한판 승부!!
근데 그 사람은 사실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자 = 하나님의 동급이며 하나님과 동등한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야곱을 설득시켜서 강을 건너게 하려고 씨름을 하는데...
세상에나 야곱이 승부에서 밀리지 않습니다.
거의 무승부가 나게 생겼습니다.
찌질한 야곱이라고 놀렸는데 잠재된 힘을 다 발휘하니 하나님과도 싸움이 됩니다??
(이 정도 무력이면 솔직히 에서 400명 군대는 그냥 혼자서 다 바르겠는데?)
강을 건너게 할려는 자 vs 강은 건너기 싫은 자의 싸움이 무승부라면?
결국 강을 안건너는 것이니 사실상 야곱의 승리가 됩니다.
안되겠다 싶던 하나님의 사자는 결국 반칙을 하는데 바로 손으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살짝 쳐서 부러지게 합니다.
그리고는 승부에 질린 하나님의 사자는 이제 그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이제 야곱이 난리가 났습니다.
허벅지 관절뼈 = 즉 다리 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러면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요?
나중에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쫓아올 때 야곱에게 가장 중요한건 튼튼한 다리입니다.
튼튼한 다리로 졸라게 튀어서 생명을 보전해야 합니다.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목숨은 살고자 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 중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라헬도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해도 역시 결국은 자기 목숨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런데 다리 뼈가 부러졌으니 이제 야곱은 에서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얍복강 위에 있더라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다리 뼈가 부러진 자신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야 얼마 안되고 에서는 곧 강을 건너 무섭게 쫓아 올테니까요.
야곱은 승부에서는 져놓고 치사하게 반칙으로 자신의 다리 뼈를 부러뜨린 그 사람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 찌질한 야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다음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