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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1/26 21:32:25
Name 삭제됨
Subject [일반] 사도 바울과 복음서의 예수
작성자가 본문을 삭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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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바꾸다
20/01/26 21:43
수정 아이콘
(수정됨) 뭐 역사적으로 예수라는 존재 자체는 있었을거라는게 기본적으로는 주류에 가깝지 않나...흐음...
물론 그가 신의 아들이니 실제로 기적을 일으켰는지는 알 순 없지만...
솔직히 십자가형을 당해 죽은 예수라는 존재가 없는 존재라면 솔직히 그걸로만 공격해도 초기 기독교의 근본부터 공격이 가능할텐데...
아무리 고대시절이라고해도 중형으로 죽인 사람에 대한 행정기록을 안할리도 없을뿐더러 당시 예루살렘에서 있던 사람이 없었다고 말만해도 그냥 근본부터 박살낼 수 있죠...클클...
아니아니
20/01/26 22:14
수정 아이콘
1세기에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를 언급한 기독교인은 한명도 없습니다.

공격이 없었던 게 아니라 언급 자체가 없었던 거죠.

그리고 행적기록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0/01/27 00:2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복음서의 형성시기가 빠른편으로 아는데 최소 복음서의 기록대로 유월절 전후에 빌라도에게 이 사람 죽여달라는 소요가 있어서 십자가형으로 죽인 사람이 있었다면 그걸 기억할 정도의 사람정도는 있었을걸요...당시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져살던 유대인들도 일부라도 와있을 때가 유월절 전후인데...
근데 만약 가상인물이라면 그런 건수를 알고도 유대교쪽이나 그런데서 그걸로 공격을 안한게 이상하죠...
아니아니
20/01/27 00:46
수정 아이콘
그걸 기억한 사람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1세기에 복음서가 쓰였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마가복음이 ad70년경에 쓰였다는건 가능한 가장 빠른 시기로 추정한거죠.
로즈 티코
20/01/26 21:43
수정 아이콘
맨 프럼 어스
그린우드
20/01/26 21:47
수정 아이콘
예수의 실존은 인정하는게 주류 역사학계인걸로 아는데 맞나요? 글의 의견은 소수파인거고.
아니아니
20/01/26 22:14
수정 아이콘
물론 제 개인적은 의견이에요.

몇가지 이유로 저는 성서학자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여수낮바다
20/01/26 21:56
수정 아이콘
역사적예수의 존재까진 인정되는게 주류학설인줄 알았는데요
사실 이천년전 인물이라 주류건 비주류건 확신하긴 어려울듯요
20/01/26 22:37
수정 아이콘
동시대의 모든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할수있다면 모르겠지만

(진격의 거인?) 그게 가능할리가 없잖습니까

창천항로의 조조-제갈량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크크 보신분들은 무슨말인지 아실듯
아니아니
20/01/26 22:46
수정 아이콘
동시대의 증인이 없어요.
20/01/26 22:50
수정 아이콘
동시대 사람들이 전부 바보도 아니고, 그럼 그런거 없다 하는 사람들 (아니아니 같은분)이 그시대, 혹은 그시대 약간뒷시대에는 없겠습니까?

모종의 이유로 그사람들이 죄다 제거되었다 이런말 하시진않겠죠?;;
아니아니
20/01/26 22:59
수정 아이콘
그 사람들이 누구를 말하나요?

언급 자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해 논할게 없습니다.
20/01/27 00:02
수정 아이콘
내말이 맞아. 왜냐하면 내말이 맞으니까.

이런수준이신데요;;;

뭐 더 드릴말씀은 없는것 같군요
아니아니
20/01/27 00:18
수정 아이콘
님은 아무 의견이 없습니다.

우리는 논할게 없어요.
20/01/27 01:06
수정 아이콘
저는 의견이 있어요..
20/01/26 22:53
수정 아이콘
그럼 글쓴이께서는 사도행전 초반부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당시에 이미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설파하고 다니던 인물(ex.스데반을 비롯한 몇몇 집사들과 사도들)이 있던 상태에서
바울이 해당 인물들을 박해하다가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체험(사도행전 9장)을 한 뒤, 기독교 박해자에서 열렬한 기독교 전파자로 바뀐 이 내용이요.

사도행전은 글쓴 분께서 이미 아실 것 같지만, 전통신학에 따르면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럼 누가가 바울이 가짜 인물이었던 예수를 전도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사도행전 초반부도 가짜로 기록했다는 것인가요?

거기에 더불어 사도들 중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요한 이 세명이서 짜고서 바울이 예수에 대해 설파한 내용을 절묘하게 짜깁기해서
복음서를 만들었다 생각하시는 거 맞나요?

요약하자면, 결국 신약 전체를 부정하고 싶으신 건가요?

제가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비꼬는 거 아닙니다. 정말로.), 위 내용들이 흥미로워서 그런데, 위에 쓰신 내용들이 본인이 직접 연구하신 내용들인가요,
아니면 영향을 받은 선행 논문이나 저서들이 있는 건가요? 번거로우시더라도, 참고하신 서적들을 좀 알 수 있을까요?
아니아니
20/01/26 23:2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확인된 유일한 증인을 다뤘습니다. 바울이죠.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저자도 모르고, 날짜도 모르고, 전형적인 신화적 이야기로 가득한 종교문헌 입니다. 무엇보다 바울 서신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방법론에 의하면 이미 망한거죠. 성서학자들은 사도행전(+복음서)이 소스 비평을 견뎌내는 것처럼 취급합니다. 그것이 문 밖에서의 특별한 탄원이라는 것을 무시합니다.

저는 사도행전이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도행전은 바울 서신을 열심히 읽은 기독교인의 타협입니다.

위 내용은 스스로 생각한 겁니다. 아시겠지만 관련 논문이나 서적은 없죠. 굳이 말하자면 일부 가필 구절에 대한 의견은 http://earlywritings.com/forum/viewtopic.php?f=3&t=2456, 또는 로버트 프라이스의 사이트를 참고로 했습니다.
강미나
20/01/26 23:42
수정 아이콘
밑에 hey! 님이 링크 걸어주신 나무위키에 다 나와있는 내용들이니 참고하시면 될 거 같네요.
반박이나 논의까지 다 달려있으니(역시 갓무위키) 읽어보시면 재미있으실 겁니다.
20/01/26 23:22
수정 아이콘
https://namu.wiki/w/%EC%98%88%EC%88%98/%EC%97%AD%EC%82%AC

이 문서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니아니
20/01/26 23:40
수정 아이콘
그 나무위키 문서와 관련해서 제가 다른 곳에 썻던 글이 있습니다.

보시죠.


1.불가지론 성서학자 바트 어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 비기독교인을 막론하고 모든 학자들이 예수의 실존 사실에 동의한다."

- 이 주장은 학문적으로 사실이 아닙니다.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려면 성서를 연구해야 합니다. 바트 어만 본인 말에 따르면 실제 학문적으로 기여하는 비기독교인 성서학자의 수는 10명 이하라고 합니다. (제가 알기로 그보다는 많습니다.)그렇다고 성서학 외부의 학자들이 딱히 예수의 실존문제를 연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서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연구하지 않기에 의심이 없는 현상은 학문적 동의가 아닙니다. 문화적 지식이죠.

바트 어만은 위 발언 이후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 책(2012년 발매된 "Did Jesus Exist?"를 말합니다.)을 준비하기 전까지 예수 신회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정교하고 방대한지 알지 못했다. 다른 학자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놀란건 이제까지 예수는 실존인물로 가정되고 그에 반대하는 주장은 정당한 이유와 상관없이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나는 예수의 역사성을 방어하는 최초의 학자이다."

- 실제로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가 실존인물 이라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지며, 전제에 대한 도전은 학문을 파괴하려는 시도입니다. 허용되지 않는 질문이죠.



2. 바트 어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적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에 대한 증거는 그 시대의 어떤 사람보다 압도적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적도 있습니다.

“예수 시대의 이교도 저자들은 예수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흥미의 표현도 없고, 과한 비난도 없고, 지나가며 언급하는 것조차 없다.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우리가 1세기 전체를 다룬다고 할지라고 예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나는 당대의 수많은 문서를 갖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시인들, 철학자들, 역사가들, 과학자들, 공직자들의 저술뿐만 아니라 돌에 새겨진 생생한 비문, 파피루스에 남겨진 개인 서신, 법률 문서 등. 현존하고 있는 이 엄청난 기록들에서도 예수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 뒤에 숨어있는 근원들(그리고 바울 서신)을 통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수많은 독립적인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와 같은 증거는 고대의 인물에게 매우 놀라운 것이다."

- 따라서 바트 어만이 말하는 압도적인 증거란 성서를 말합니다. 그는 바울 서신, 마가 복음서, 요한 복음서, Q문서(마태,루가가 공유하는 가상의 사료), M(마태 복음서에서만 발견되는 구절), L(누가 복음서에서만 발견되는 구절), 도마 복음서(외경), 베드로 복음서(외경)등을 모두 독립적인 증거로 간주합니다.

물론 근거는 없습니다. 모두 가설이자 논쟁거리 입니다.

확실한 사실만 말하기로 합시다.

위 댓글에서 말했듯이 복음서는 역사 비평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충복하지 못합니다.

일단 저자를 모릅니다. 후대의 복음서는 표절로 드러낫습니다. 그리고 날짜도 모르고, 출처도 모르고, 외부 사료와 교차검증도 안되고, 다양한 오염이 확인 되었지만 원본 사료에는 접근조차 불가능하고, 전지적 작가시점의 전형적인 신화적 이야기로 가득한 종교문헌 입니다. 일반적인 역사적 방법론에 의하면 이미 망한겁니다.

예수의 실존은 그런 부정직한 방법으로 방어되고 있습니다.




3.예수의 실존을 증명하는 비기독교 사료들.

- 일단 요세푸스의 "유대인 고대사" 외에 고려할만한 비기독교 사료는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인들만이 그 외의 사료들을 과장하여 증거라고 주장할 뿐입니다.

유대인 출신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대인 고대사(ad 93년경)에는 "플라비우스 증언"이라 불리는 예수에 대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이때에 인간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현자라고 말해야 할 예수가 있었다. 그는 놀라운 일을 행한 일꾼이었고,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스승이었고, 수많은 헬라인들과 유대인들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 였다. 본디오 빌라도가 우리 가운데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고귀한 사람들의 고소 때문에 이 사람을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 처음부터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죽은 지 사흘 만에 생명으로 복귀된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났다. 왜냐하면 신의 예언자들이 이러한 일과 셀 수 없는 많은 놀라운 사건들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들 이라고 불리는 부족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 기록에 가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요세푸스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거나, 부활을 긍정할리가 없다. 그리고 4세기 이전까지 기독교인 누구도 이 기록을 인용하지 않았다는게 그 이유입니다. 20세기 초까지 대부분 학자들은 이 기록 전체가 가필이라는데 동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세기 초중반 이후로 일부 진실한 기록이 있다는 가설이 대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요? 실제로 일부 진실함의 근거를 살펴보겠습니다.(나무위키 예수/역사 문서 참조)


1."문맥, 즉 글쓴이의 입장이 일관되지 않는다. '현자', '놀라운 일꾼', '부족' 등은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썼다고 보이는 객관적 표현이나, '그리스도였다' '그의 진리를...' 및 '부활에 관한 확언' 등은 그리스도교 입장이다. 즉, 두 사람 이상이(요세푸스 + 기독교인)글에 손 대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 본문은 언어적 특성이나 문법의 차이로 가필부분을 가려내는게 불가능합니다. 텍스트 증거가 없다는 뜻이죠.

이 주장은 본질적으로 "유죄인 부분을 모두 들어내면 무죄다" 라는 비학문적인 주장입니다. 이미 오염이 확인된 문서에 대한 부적절한 접근방식이죠. 비기독교인 저자를 흉내내는 글의 일부가 비기독교인의 서술처럼 보이는건 그냥 당연한 겁니다.

심지어 객관적인 표현이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거나, 의미가 없습니다.

"현자"는 객관적인 표현이 아니라 요세푸스에게서 나올수가 없는
예수 찬양입니다. 그는 현자라는 표현을 솔로몬, 다니엘, 엘리사 세명에게만 사용했습니다. (솔로몬은 위대한 유대인의 왕, 다니엘은 구약 성서를 썻다고 간주되는 전설적인 선지자, 엘리사는 기적의 예언자였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들과 동등하게 놓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정작 예수를 솔로몬과 비교하고(마태 복음 12장 42절),예수의 지혜를 칭찬한 건 기독교인들 이었습니다.(누가 복음 2장 46~52절)가필범으로 확실시되는 유세비우스 또한 예수를 "지혜로운 사람" 이라고 부른적이 있습니다.

"부족"이란 특정한 민족을 가르키는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일반적인 용어를 평범하게 사용하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놀라운 일"이 비기독교인의 객관적인 표현이라는 주장은 단순히 바보입니다. 요세푸스는 명백한 찬양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문맥을 봅시다.)학자들이 "놀라운 일"을 진실한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객관적인 표현과는 무관합니다. 그들은 "놀라운
일"이 기독교인 입장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 이라는 모호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가필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정작 가필범인 유세비우스는 "놀라운 일"을 항상 긍정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근거가 될 수 없다는건 마찬가지죠.


2."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빌라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유대인의 입장이다. 이런 입장은 랍비 자료와도 일치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죽음의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지운다."

- 요세푸스는 예수 죽음의 책임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 주장은 요세푸스에 대한 기독교 중심의 무례한 접근방식입니다.

심지어 본문은 딱히 빌라도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3."오리게네스는 그의 책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요세푸스가 믿지 않았다고 했다. '예수의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내용이다. 그렇다면 오리게네스가 본 요세푸스의 책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었을까? 요세푸스와 예수를 연관지었으므로 오리게네스가 본 요세푸스의 책에는 틀림없이 예수를 언급한 구절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요세푸스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지 않았다.'라는 내용을 남겼음은, 반대로 누군가가 '요세푸스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은 요세푸스가 적은 원본에 예수가 언급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우리는 추측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오리게네스의 기록을 가져와서 읽으면 됩니다. 그는 요세푸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다는 걸 두번 언급합니다.

[유대인 고대사를 쓴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처형함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에 따라 큰 불행을 겪었다고 말했다. 훌륭한 것은 ●요세푸스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는 않았지만● 야고보의 의가 너무나 위대하다는 증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야고보 때문에 그러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마태 복음 해설,10권,챕터 17 ―

[●요세푸스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는 않았지만●성전의 파괴의 원인을 찾는데 있어서 예수를 대적하는 음모가 백성들에게 닥친 재앙의 원인이었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진리와는 그리 멀지 않지만 유대인들에게 닥친 재앙이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처형함으로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 셀수스에 대한 반박 ,1권,47장 ―

- 두개의 언급 모두 플라비우스 증언이 아니라 유대인 고대사 20권에 쓰여있는 야고보의 처형에 대한 언급입니다. 여기서 그는 요세푸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언급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서술법을 사용하는 겁니다.

플라비우스 증언과는 완전히 무관합니다.


4."기록인용 시기가 늦었던 것은 이유가 있다. 초기교회와 비기독교도 사이의 논쟁의 초점은 '예수가 있었냐'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신인가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예수의 존재를 가지고 논쟁하지 않았으므로 요세푸스가 당초에 적었을 예수에 대한 비그리스도교적 구절은 인용할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예수의 신격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그를 사람으로 부른다면', '그는 그리스도였다.' 및 '다시 살아났다.'는 구절을 가필함으로써 주장자의 논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에우세비우스의 발언 또한 예수의 '신성'에 대한 '증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시에도 역사서를 가필하는 것은 비판받을 만한 행동이었으니, 이러한 내용을 순순히 떠벌릴 리가 없으므로."

- 고대 기독교인들은 눈만뜨면 예수의 신성문제만 가지고 논쟁하던 기계가 아닙니다. 다양한 맥락에서 플라비우스 증언을 언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거기에 써있다는 이유는 어떨까요? 플라비우스 증언은 1세기에 예수 이야기가 언급된 유일한 비기독교 사료입니다. 게다가 긍정적이죠. 그리고 요세푸스는 가장 인기있던 역사가입니다.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죠.

그러나 약 230년 동안 기독교인 누구도 플라비우스 증언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동안 요세푸스를 언급했지만 플라비우스 증언을 언급하지 않은 인물들로는 안디옥의 테오필루스, 이레네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테르툴리아누스, 마커스 미누시우스 펠릭스, 히포폴리투스, 줄리어스 아프리카누스, 오리게네스, 키프리아누스, 아나툴리아누스, 아르노비우스, 메토디우스, 락탄티우스 등이 있습니다. 물론 이 목록은 요세푸스를 언급한 게 확인된 기독교인들만 제시한 것이며,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은 요세푸스를 알았을 겁니다. 요세푸스는 너무 유명합니다.


5."기록이 왜 이리 간략한가? 먼저 당시의 역사가들은 자신의 관심 밖에 있는 인물은 과감히 기록에서 제외하였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요세푸스가 언급하는 [[세례자 요한]]은 필론과 사도 파울로스, 랍비문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정의의 스승은 쿰란문서에만 나오고, 힐렐학파의 창시자인 랍비 힐렐[* 예수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활동했던 학자. 높은 가르침과 인자한 태도로 인해 존경받았다.]도 역시 바리사이파였던 요세푸스가 언급하지 않았다. 역시 디오 카시우스는 유대의 반로마 저항운동을 기록한 내용에서 메시아적 지도자인 바르 코크바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지나쳤다."

- 이 주장은 "플라비우스 증언은 너무 짧다" 라는 의혹의 반박인데..기록이 짧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예외없이 요세푸스의 다른 기록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짧다는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고대인들과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사안을 잘 모르거나,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고의적으로 논점이탈을 시도하는 것이거나 셋 중에 하나가 분명합니다.

플라비우스 증언은 지나치게 짧습니다. 게다가 많은 설명이 필요한 표현을 마구 내던지기 때문에 복음서의 지식 없이는 뭔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요세푸스는 로마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설명해주는 친절한 역사가 였습니다. 그러나 플라비우스 증언의 경우 예수의 어떤 점이 지혜로운지, 유명해진 이유와 그 전개, 왜 고소를 당해 처형을 당하고 제자들은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플라비우스 증언 바로 이전 구절에서 유대인들에게 닥친 재앙에 대해 말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뜬금없이 플라비우스 증언이 나오더니, 그 다음 구절에서는 "이때 또 다른 재앙이 유대인들에게 닥쳤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플라비우스 증언을 건너뛰고 그 이전 구절과 이어집니다. 이것은 플라비우스 증언이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6. "10세기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아가피우스가 이슬람과 논쟁하면서 인용하였던 플라비우스 증언은 다음과 같다."

[요세푸스는... 말한다... 이 시기에 예수라 하는 현자가 있었는데, 그는 품행이 선했으며, 덕(혹은 학식)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 사람들도 제자로 삼았다. 빌라도는 그에게 십자가형을 내려 죽게 했지만 그의 제자였던 사람들은 그 제자됨(혹은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고, 그가 자신들에게 십자가 처형 후 사흘째 되던 날 살아서 다시 나타났으며, 그러므로 그는 아마 그리스도이며, 선지자들도 그에 대해서 놀라운 일들을 예언했다고 말했다.]

"이 인용문에는 놀랍게도 학자들에 의해 가필로 추정되고 있는 부분 중 상당수가 보이지 않는다. 가필한 부분까지 인용을 해야만 주장을 전개하는 데에 유리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달랑 위의 구절만 인용한 것이다. 아가피우스가 이 자료를 어디서 구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아마 가필이 비교적 덜 진행된 요세푸스의 사본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인기 있는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저서는 많이 필사됐을 테니, 누군가가 가필을 했다면 로마와 그리스까지 퍼진 사본들에 모조리 가필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것은 가필이 덜 진행된 사본이 900년 동안 숨겨져 있다가 10세기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냇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그 중간과정에 대한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가피우스 인용에는 핵심적인 가필 부분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별로 놀라울것도 없습니다. 가필로 여겨지는 부분 중 포함되지 않은 건 "인간이라 불러야 한다면" 달랑 하나입니다. 그 외에 "처형 후 사흘째 되던 날 살아서 다시 나타났으며" , "그는 아마 그리스도이며"(이건 "그는 그리스도 였다."에서 파생된 또 다른 가필입니다.)"선지자들도 그에 대해서 놀라운 일들을 예언했다고 말했다." 라는 부분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훨씬 덜 중요하고 크게 의심받지 않는(일부 가필을 지지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놀라운 일을 행한 일꾼" , "진리를 따르는 이들의 스승" 은 각각 "품행이 선했으며" , "덕(학식)이 많았으며"로 변경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는건 아가피우스가 가진 사본이 가필이 덜 진행된 사본이 맞을 경우 부활, 그리스도, 예언에 대한 내용보다 "놀라운 일꾼, 진리를 따르는 이들의 스승"에 대한 가필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죠

게다가 진실한 기록으로 여겨지는 부분 중 "우리 가운데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고귀한 사람들의 고소 때문에" ,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 이라고 불리는 부족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라는 두가지 부분은 빠져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진실, 가필 여부에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포함되거나 삭제되고 있으며,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세세한 표현들도 조금씩 다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가피우스가 아무렇게나 기록을 인용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기억에 의지하고 있었던 거겠죠.


7."플라비우스 증언은 유대인 고대사의 살아남은 모든 사본에서 발견된다."

- 유대인 고대사의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사본은 10세기 사본입니다. 그리고 비록 사본이 살아남지는 못했지만 유대인 고대사의 5~6세기 라틴어 번역 목차에는 플라비우스 증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론 - 일부 진실함에 대한 근거는 없습니다. 이 기록은 전체 가필입니다.




다음으로 유대인 고대사에는 예수와 관련된 또 다른 기록이 있습니다.

[황제는 베스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알비누스를 유대인 행정관으로 파견하였다.한편 아그립바 왕은 요셉을 대제사장에서 해임시키고 아나누스의 아들인 같은 이름을 가진 아나누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그의 부친인 늙은 아나누스는 많은 행운을 누렸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에게는 아들이 다섯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대제사직에 올랐고, 그 자신도 오랫동안 대제사직의 명예를 누렸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다른 대제사장들 에게는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아들 아나누스의 성격은 오만하였으며 몹시 무례하였다. 그는 내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모든 유대인들 중에서 가장 엄격한 심판을 내리는 사두가이파를 추종하였다. 아나누스는 베스도가 죽고 알비누스 신임 행정관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권위를 행사할 적절한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산헤드린을 소집하여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다른 몇 명을 소환하였다. 그는 율법을 어긴 혐의로 그들을 고발하고 돌로 쳐죽이도록 보냈다. 그러나 예루살렘 시민들 중 가장 공평하고 율법위반을 불안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은 아나누스가 행한 일을 싫어했다. 그들은 아나누스가 그런 행동을 못하게 명령하도록 요구하기 위해 왕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었다. 왜냐하면 아나누스가 부당하게 행동한 것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오는 알비누스를 만나러 갔고, 그에게 아나누스가 허락 없이 산헤드린을 소집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렸다. 그들의 말을 듣고 알비누스는 몹시 화가 나서 아나누스에게 문책할 것이라는 서신을 보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은 아나누스를 대제사장에서 3개월 만에 해임시키고 댐네우스의 아들 예수를 후임 대제사장로 임명하였다.]
- 유대인 고대사, 20, 199-203 -


이 기록은 학자들에게 진실한 기록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합니다. 가필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는게 그 이유죠. 실제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라는 가필은 쓸모가 없습니다. 의도적인 가필이라면 더 자세하고 긍정적인 묘사가 포함되었겠죠.

그러나 그 표현은 요세푸스가 썻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무위키 예수/역사 문서 참조)


1."요세푸스는 메시아(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유대인 전쟁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의 신성한 저술에서 발견되는 모호한 신탁 때문이었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예언을 그들 자신에게 속하게했으며, 많은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들의 결정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이제 이 신탁은 유대지방에서 왕으로 임명된 베스파시아누스 정부를 통해 분명히 나타납니다.]
- 유대인 전쟁사 6, 312-31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의 메시아에 대한 그릇된 기대가 반란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위 기록에서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메시아라는 표현을 피하고, 베스파시아누스가 진정한 메시아라는 선언을 하면서도 "모호한 신탁을 성취했다." 라는 식으로 묘사할 뿐 메시아를 구체화 하지 않은 것이다. 그 외에도 요세푸스는 메시아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단 한번도 메시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언급할 기회가 없었던게 아니라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중립적이건, 단순한 설명이건 할 것 없이 사용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는 거다. 그것은 오직 예수에게만 사용되었다."


2."요세푸스는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유대인들의 진정한 메시아라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잘못하면 로마 황제와 갈리리 시골 출신의 한 컬트 지도자가 메시아를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 관계로 비춰질 수 있는 표현이다. 요세푸스의 작품이 로마 제국의
지원과 승인하게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더욱 비현실 적이다."


3."이 기록은 기독교 교부 오리게네스가 언급하기 전까지 약 150년 동안 기독교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보통 기독교인들은 이런식의 침묵에 대해 "그것은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만, 요세푸스가 인용되기 전부터 기독교인들은 야고보의 죽음이 예루살렘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헤게시푸스)요세푸스의 기록을 처음으로 언급한 오리게네스 역시 정확히 그것을 말 하기 위해 요세푸스의 기록을 언급했으며 오리게네스 이후 에우세비우스, 제롬 역시 같은 주장을 했다. 그들은 야고보의 처형을 말하는 비기독교인 역사가의 기록에 관심을 보일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4."기독교 측에서는 오리게네스가 요세푸스의 기록을 언급하기 전까지 야고보가 ad62년경 아나누스의 불법 재판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대신 전혀 다른 시기에(ad69년경)전혀 다른 과정으로 순교한 야고보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존재했을 뿐이다."


5."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라는 표현은 비기독교인의 중립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 진실함에 대한 근거로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기독교들이 가장 먼저 사용한 표현이며(마태복음 1장 16절, 27장 17절, 27장 22절, 요한복음 4장 25절)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 입장에서 서술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마태복음 27장 17절,27장 22절)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것은 기독교인들에게서만 발견되는 일종의 관용어이다. 유대인 고대사 외에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라는 표현을 사용한 다른 비기독교인은 없다."


결론 - 이 기록은 특별한 의도가 없는 가필입니다.


가설을 소개해보죠.

이 기록을 처음으로 언급한 오리게네스는 요세푸스의 기록을 실제로 인용한 게 아니라, 그런 기록이 있다고 언급한 후 감상을 말 한겁니다. 즉 리뷰죠. 그런데 오리게네스의 기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제 요세푸스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라게네스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 한번 인용한 기록입니다.)

[유대인 고대사를 쓴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처형함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에 따라 큰 불행을 겪었다고 말했다. 훌륭한 것은 요세푸스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는 않았지만 야고보의 의가 너무나 위대하다는 증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야고보 때문에 그러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마태 복음 해설,10권,챕터 17 ―

요세푸스는 야고보의 의가 위대하다는 증언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오리게네스가 신념에 의한 난독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는 합니다. 즉 "아나누스가 야고보를 처형하자 유대인들이 아나누스를 고발한 건 야고보의 의로움에 대한 묘사다." 라는 난독을 일으켰다는 거죠.

그러나 요세푸스는 야고보 처형이 예루살렘 멸망이 원인이 되었다고 말 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러한 일을 겪었다고 말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요세푸스가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말 하는 것이므로 신념에 의한 난독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게다가 요세푸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다는 극적 효과를 노리는 표현까지 사용해가며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인상깊어 한다는게 느껴지죠.

그래서 나온 가설이 "오리게네스는 다른 사람의 기록을 요세푸스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오리게네스의 기록과 잘 일치하는 기록을 남긴 기독교인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헤게시푸스죠. 게다가 헤게시푸스는 요세푸스와 혼동되곤 했습니다. 실제로 헤게시푸스의 것으로 잘 못 알려진 pseudo-hegesippus 라고 부르는 요세푸스의 기록이 존재하죠.

헤게시푸스는 유대인 사이에서 야고보의 의로움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야고보의 죽음 직후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리게네스의 기록과 일치하죠.

정리하면 오리게네스는 실제 기록을 인용한 게 아니라 자신의 기억에서 일을 수행하면서 두 기록을 혼동한 겁니다. 그리고는 비기독교인 역사가가 사용할법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라는 표현을 사용한 거겠죠. 마침 그는 마태복음 해설에서 그 표현을 사용했는데 마태복음에는 그 표현이 세번 사용됩니다.(마태복음 1장 16절, 27장 17절, 27장 22절)

요세푸스의 본래 기록은 아마 다른 야고보를 가르켰을 겁니다. 오리게네스 이후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라는 표현을 누락 또는 오류로 간주하고 요세푸스의 기록에 삽입한 겁니다.


결론 - 요세푸스의 기록은 둘 다 가필입니다.
공안9과
20/01/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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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다빈치코드의 비밀' 이라고, 성서학자들이 댄 브라운의 소설을 분석한 책인데, 그 내용을 보면, 소설 중간 중간 '사실' 이라고 언급된 부분들 조차도 다 뻥이더군요. 결론은 막달라 마리아가 성경 및 기독교 내의 인식보다는 역사적으로 꽤 비중이 있는 인물이었다 정도...
아무튼 그 책이 상당부분을 예수라는 인물의 역사적 실존성에 할애하고 있는데, '처녀수태, 동방박사와 별, 말구유, 나귀타고 입성, 종려나무가지 들고 환호하는 군중' 등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고대 중동 지역 왕의 탄생 설화들에서 곧잘 등장하는 일종의 클리셰라고 하더라고요. 마치 삼국시대 건국설화에서 알에서 나온 왕이 곧잘 등장하는 것 처럼요.
그 책을 읽으며 성경에서 묘사된 예수의 행적이 후대에 꽤 많이 덧칠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성경 자체적으로 예수의 실존이 부정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강미나
20/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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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누가복음의 내용을 언급했기 때문에 가필이라는 건 정합성이 결여된 추측이네요. 사도행전에 나오듯 누가복음이 쓰여지기 훨씬 전 시점부터 누가는 바울과 전도여행을 같이 한 동역자였으니까요. 당연히 누가는 최후의 만찬에 대해 알고 있었을테니 누가복음서를 썼을테고, 동역자인 바울에게 최후의 만찬에 대해서 얘기를 해줬을 거라는 건 아무 무리가 없는 추론입니다. 그러니 누가의 이야기를 듣고 쓴 바울의 서신과 누가가 쓴 복음서의 내용이 일치하는 것 역시 당연한거고요.
아니아니
20/01/2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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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행전의 저자는 누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누가가 바울과 여행을 했건 말건 누가는 마가를 베꼈습니다. 마가는 고린도 전서 이후에 쓰였습니다.

무슨 수로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내용을 변형한 구절을 바울에게 읽어주나요?
강미나
20/01/2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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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서 자체가 그전까지 얘기되어오던 예수의 행적을 정리해서 만든 건데 여러 저자들 간 내용이 같은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한거죠.

예수는 없는 인물인데 복음서를 통해 구성된 것이다 -> 같은 부분이 있네 -> 그건 베낀거겠지
예수에 대해 알려졌던 얘기를 여러 저자들이 정리했다 -> 같은 부분이 있네 -> 당연하잖아?

어느 쪽이 가정에 가정을 더한건지 오컴의 면도날에 더 정합한지는 뻔한거고요. 어렸을 때 한동안 관심이 있어서 이런 류의 주장을 꽤 많이 파봤는데 (위에 나오는 나무위키도 그렇고, 인터넷에 이런 주장은 워낙 많으니까) 같은 부분이 있으니까 베낀거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부터가 솔직히 좀 실망스럽네요.
아니아니
20/01/2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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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유지관리
20/01/2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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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가르침을 근거로 복음서가 나왔다면 굳이 사대복음서로 쓰여질 필요가 있었을까요! 요한복음을 제외한다해도, 한 사건을 바라보는 각각의 전승이 있었다고 보는것이 더 상식적이지 않나 합니다!
VictoryFood
20/01/2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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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관계자가 아닌 외부자의 시선으로 예수 실존을 증명해야 한다는 말씀 같은데 당시 예수가 그리 중요한 인물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참 어려운 얘기이기는 할 것 같네요.
닉네임을바꾸다
20/01/2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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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그냥 끽해야 메시아라 자칭한 종교지도자였을텐데요 당시 시점에는...
그리고 고대에는 왕이나 황제정도 아니면 한줄이나 남는게 드물고 그냥 이름만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실존성을 전부 의심해야...
20/01/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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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일반적인 인물들은 실존 여부가 사실 크게 중요하진 않지요. 소크라테스나 석가모니나 단군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게 명확히 밝혀진다고 해도 우리 삶에서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이 사실 플라톤이 지어낸 말이었든 소크라테스 친구가 한 말이든, 피타고라스 정리를 그 혼자 한 것이든 어떤 공동체의 공동작업이었든 그게 뭐 어떻겠어요. 석가모니가 깨달아서 가르쳤다는 내용들이 사실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지어낸 것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게 있나요. 우리에게 중요한 건 결과물로서 전해진 사유, 아이디어, 태도 등인 거지, 고대에 살다 죽은 그 할아범들 개인이 아니죠.
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골치거리는 그가 신의 아들이고 도술을 부리다가 죽었다 부활해서 지금도 인간사와 세상을 주관하는 진.짜. 신이라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 우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신앙으로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 이후 국가보안법처럼 문화혁명처럼 자기네의 도그마 외에는 파괴해 온 사람들이죠.
솔직히 말해보죠. 역사학자들도 아닌 사람들이 굳이 예수가 실존인물이라고, 노아의 방주나 에덴동산 같은 게 실존했다고 확신하고 주장하는 게 그냥 단순히 역사적인 탐구심 같은 것 때문일까요?
아니아니
20/01/2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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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역사 증거로 볼 수 없는 복음서 이전의 유일한 증인에 의하면 복음서의 예수는 실존인물이 아닌것 같다는 얘기에요.
닉네임을바꾸다
20/01/2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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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복음서를 역사 사료로 볼 수 없다라...이건 꽤 신박하네요...
그러면 고대의 역사기록들은 다 그 모양 그 꼴이라...모든 고대의 역사 기록은 사료가 될 수 없다라는 소리인데...
팩트만 적혀야 사료인건 아니라서...
아니아니
20/01/2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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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사 기록의 예를 들어주세요.

저자도 없고, 출처도 없고, 외부사료와 교차검증도 안되고, 다양한 가필이 확인되었지만 원본에 접근할 방법도 없고, 전지적 작가시점의 전형적인 종교문헌+유일한 증인에 의해 부정됨에도 불구하고 역사로 받아들여지는 기록의 예를 들어주세요.
닉네임을바꾸다
20/01/27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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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실존자체야 유물이 발견되어서 인정되지만 생애 대부분 기록은 그냥 경전으로만 존재하는 석가모니는 좀 다른 케이스려나 적어도 300년 뒤에나 구전이 집결하고 그게 기록되는건 또 200년 정도 더 걸린걸로 아는데...
그르지마요
20/01/27 00:2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예수의 실존을 가리키는 기록들은 죄다 가필이고 사도들 및 그들의 제자들이 창조했했다는 말씀인데.... (언급하신 오컴의 면도날을 들어보자면) 그런 지난한 기록조작의 과정을 전제하는 것보다, 그냥 어떤 형태로든 예수라는 중간항의 실존을 전제하는게 훨씬 이해하기 쉽고 그럴듯한데요??
아니아니
20/01/27 00:41
수정 아이콘
플라비우스 증언, 바울과 세네카 사이의 가짜 편지, 마가 복음서의 허위 결말, 주님의 기도의 여러가지 버전, 요한의 콤마, 요한 복음의 허위 결말, 로마서의 허위 결말, 율리아누스 편지의 무자비한 편집, 이그나티우스 편지의 세가지 다른 버전, 고린도에 보내는 바울의 세번째 서신 등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위작을 만들어 냇습니다.

의심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요.
20/01/27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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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니아니님의 글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뭐 그런 겁니다
아니아니
20/01/2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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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뭔가요?
20/01/27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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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달착륙 안믿는사람, 지구평면설 주장하는 사람

뭐 이런사람들은 왜 패턴이 다들 똑같은걸까요?

사고의 진행 패턴이 동일해서 그런걸까요? 이것도 일종의 경향성인가..? 신기할정도입니다
20060828
20/01/27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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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실존했는지가 중요한 상황은 없을 것 같네요. 실존했더라도 이미 우리가 아는 예수와는 다른 사람일테고,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이 예수는 지금도 존재하잖아요.
20/01/27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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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 가톨릭 신앙 집안의 무신론자로서 성서는 구전 소설 모음집이라고 봅니다.
20/01/27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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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얼마전에 흥미를 가지고 찾아 보았던 내용이네요. 예수는 신화다 와 예수퍼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리도 환빠가 장난아지만 원조는 유대인것 같아요. 다윗과 솔로몬도 유물이 거의 없다고 하던데.
도시 국가 정도였던 이스라엘을 무슨 중동의 대제국처럼 묘사한 구약보면 국뽕은 인간 종특인것 같습니다.
사실 예수의 생예가 너무 잘 짜여진 각본 같기는 합니다. 나귀 타고 예루살렘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좀 그래요.
사도외 객관적인 증인이 없다시피 하니 머 참 그렇습니다.
거기에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도 사실 기존 신앙에서 차용한 거니까 더 의심이 가죠.
저는 충분히 얘기해 볼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솔로15년차
20/01/27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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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바울이 가장 많이, 가장 먼저 글을 쓴 건 그럴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쓴 텍스트는 전부 편지입니다. 편지란 건 대체로 멀리있는 사람에게 말을 하기 위한 거죠. 실제로도 바울의 서신서들은 그래서 쓰여졌고요. 왜 바울만 그런 게 남았냐면(다른 서신서들은 외부로 보내는 편지라기보다 유언이라 볼 수 있죠), 바울은 외부를 떠돌았던 지금으로 치면 선교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다른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생기면 편지를 쓰는게 아니라 직접 말하면 됐죠. 예루살렘을 좀 벗어난 곳이더라도 직접가는게 큰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바울은 멀리 떨어진 곳이었을 때도 있고,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던 때도 있고, 어쨌든 직접 갈 수 없어서 편지를 썼던 겁니다.

님은 편지가 먼저 쓰여졌고, 복음서가 나중에 쓰여졌으니까 겹치는 부분은 복음서가 편지를 참고했다는 건데요.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 사람들을 상대로 이야기하던 사람이, 해외에서 해외의 사람들에게 쓴 여러 편지의 내용을 어떻게든 전해듣고 그걸 베껴서 마치 예수의 말인냥 적었다는 겁니다. 당연히 본인들이 적통이라 생각하던 예루살렘 사람들이, 본문에도 나왔듯이 기독교인으로 인정받으려면 할례를 받으라고 말 할 정도로, 그리고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그대로 따를 정도로 자타가 적통으로 인정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해외에서 해외사람에게 쓴 편지의 내용을, 그것도 한두개의 편지도 아니고 여러 편지의 내용을 어찌어찌 알아내서 마치 예수가 한 말로 꾸몄다고 주장하시는 건데요. 그게 합리적 추론입니까?

복음서가 늦게 쓰여진 건 그럴 필요가 크게 없어서였습니다. 어차피 복음서라고 한들 예수가 한 말을 제자들이 기억했다가 적은 거죠. 그럼 그 자칭 제자들은 복음서가 쓰여지기 전까지는 뭘 했을까요? 당연히 복음서가 텍스트로 쓰여지지 않았을 뿐 본인들이 들었던 예수의 말을 전달하고 있었겠죠. 예수가 실존인물이 아니더라도 그 자칭제자들은 어쨌든 실존인물로 사칭하고 있으니까, 본인들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나중엔 왜 복음서가 쓰여졌을까요? 당연합니다. 예수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었거든요.

왜 바울이 쓴 편지와 복음서의 내용에 겹치는 부분이 있을까요? 님은 후대에(그래봐야 큰 차이 안나지만) 작성된 복음서가 왜곡해서 베낀거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만, 이미 자칭제자들이 떠들어 댄 이야기를 누군가 적은 것들, 혹은 직접 들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적었던 것들이 존재했던 겁니다. 어느 쪽이 보다 합당한 추론이라 생각하십니까?

바울이란 인물은 본인이 밝혔듯이 이스라엘에서 기독교인들을 사이비라고 때려잡던 사람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돌변해서 해외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기독교를 전파하는 사람이 됐죠. 즉,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기독교인들은 존재했습니다. 바울 본인이 깨달은 교리가 꼭 실존인물이 아니더라도 대속했다는 사람만 존재하면 되니까 자기가 지금까지 괴롭혔던 기독교인들의 주장을 차용해서 예수라는 인물을 가져와서 교리를 세웠다고 주장하시는 건데요.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따랐던 예수라는 인물은 존재했습니다. 그가 구원자인지 사기꾼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인물이 단순히 사이비종교의 교주였고, 사이비종교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처형시켰는데 멍청한 사람들이 그 사람이 부활했다고 주장하면서 계속 집단을 키웠던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짓일 수는 있지만, 사기꾼이든 구원자든 그 제자라는 사람들이 따랐던 인물은 존재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에 신약성경기록 전체가 허구라고 주장한다면 모를까, 바울의 편지들은 인정하면서 제자들이 따랐던 예수라는 인물은 없었다고 말하는 건 너무 허황된 소리입니다.
20/01/2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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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근데 항상 이 '기록'이라는 걸 생각하면 항상 의문스러워지는 게, 왜 굳이 몇십년간 혹은 백년 이상을 기록을 안 한 채로 있었을까 하는 겁니다. 자신의 모든 걸 바쳐가면서 전하는 절대절명의 소식인데 무슨 금기라도 있었는지 뭔지, 보고 들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텐데 최소 수십년간 기록을 전혀 않고 있었다니?
유대인들이라는 족속이 기록에 목숨 거는 사람들 아닌가요.
게다가 전통에 반항하고 그야말로 성역인 성전에 들어가 폭행을 하고 가장 망신스러운 형벌로 죽은 사람을 야훼 그 자신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데, 언제 돌맞아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들이 그냥 '그럴 필요가 없어서' 말로만 전하며 천수를 다 누리다가 수명이 다해가는 거 같아서 비로소 기록을 했다니....
솔로15년차
20/01/2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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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도 기록을 했겠죠. 다만 그 기록들이 단편적이었고, 그 단편적인 기록을 모은게 복음서라고 봐야할 겁니다.
지금의 교회를 떠올리시면 될 것 같아요. 그 전에는 하나의 거대한 책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그냥 설교를 한 건데,
시간이 흘러서 그러한 설교들을 집대성해서 책으로 엮을 필요가 생긴거죠.
그럼 왜 그걸 미리 하지 않았는가 의문이 생기실수도 있는데, 그건 님이 2000년의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그런겁니다. 2000년 전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천수를 누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얼마후면 예수가 재림해서 휴거가 일어날거라고 믿었지. 근데 그 일이 생각보다 늦게 일어나고, 말을 직접 들은 사람들이 줄어들자 직접 들은 사람들의 말을 적어놓은 걸 하나로 엮을 필요가 생긴거라 봐야합니다.
문문문무
20/01/2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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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확실히 이게 제일 맞는말이네요

교회공동체 생각하면 보통은 그냥 말로만 전하고 연락처 나 행사일정 적힌 교회주보같은 정말필요한 것들만 기록하고 문서화하는게 보통이거든요

그리고 그것들조차 어지간하면 몇개월지나면 그냥 버리고 소각하거나 창고같은데 묵혀두거나 하드에 짱박아두었다가 교회대청소 같은거 할때 너무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데? 그냥 소각하자 식으로 처리하고 땡인경우도 많고...
야크비쉬
20/01/27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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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예수가 실존인물이든 아니든 성서와 각종 기독교 기록에 많은 변형이 가해졌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역사서가 아닌 종교 경전이기에 기독교 형성과정에서 더하고 빼는 편집이 이루어졌겠죠.
기독교와 성서, 그리고 예수를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신앙을 포기하거나 가짜신앙에 빠지게 될겁니다. 모순과 불합리를 모른척하고 기독교적 가르침을 맹목적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불쌍한 친구들이죠. 하나뿐인 삶을 무의미한 굴레를 뒤집어쓰고 자기최면 속에서 살고 있다니. 그들은 불신자를 안타까워하며 예수의 품으로 이끌어주고 싶어하는데, 진정 안타까운 이는 자기들이란걸 모르는지. 약속된 천국행 열차따윈 절대 없고, 삶의 종점에 도달하면 우리는 파도의 물거품처럼 허무로 부서져갈게 거의 확실한데요. 그래서 종교를 인민의 마약, 거짓된 최면이라 부릅니다. 이 압도적인 공포와 절망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저는 거짓된 세계관에서 행복한 꿈을 꾸고 싶진 않네요. 자아와 의식이 남아있는 한 끝까지 발버둥 쳐봐야지.
20/01/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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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음... 그래도 나름 전공자로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 하하.

신약 성경을 역사적 자료로 인정하느냐의 문제는 사실 문서비평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20세기 이후에 주장들이 바뀐 이유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이 1949년에 발견되어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후대 사람들이 연대를 조작한 게 아니고 과학적으로 입증한 결과일 뿐이죠. 900년 동안 발견 안 된 필사본이 어디 있냐? 할 수 있는데, 있습니다. 사해 사본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작성되고나서 2000년 후인 1950년 경에 발견되었거든요. 그 사이에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았구요. 지금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종교를 지키기 위한 목적만 가지고 논리를 펴는 게 아닙니다. 공룡이 6500만 년 전에 다 멸종한 건 팩트잖아요? 누가 비슷한 뼈들을 나중에 만들어서 땅에 묻어두었다고 해서 6500만 년 전에 살았던 그 공룡이라고 조작할 수 없는 것처럼, 성경과 요세푸스와 같은 고대 문서들의 가필 논쟁들도 그런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사본 연구를 진행한 결과입니다.

복음서와 바울 서신이 별개로 여겨지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신약성서의 사본이 AD 125년 경에 쓰여졌다고 밝혀진 요한복음서의 일부거든요. 바울 서신들의 사본들은 AD 175년 이후의 것들만 남아 있는 상황인데... 만약 과학적으로 누군가 후대에 보고 썼다고 한다면 반대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오히려 바울의 출신에 대해서 자세히 알면 글쓴 분이 가지신 논리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예수의 근처에서 동행하던 제자의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수난 이전에 만난 적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그럼 당연히 잘 모르지 않을까요? 옆에서 예수라는 존재를 직접 체험을 한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이야기를 듣고 자기 나름대로 이해했을 뿐이죠. 당연히 복음서에 비해서 직접 인용이 적거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복음서는 승정원 일기처럼 왕의 바로 옆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면, 바울의 편지들은 국사 교과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함도 떨어지고, 본인의 관점에서 사실을 해석하고 주석을 달아두었죠.

그리고 가필 논쟁은... 음... 옛날엔 모든 문서를 손으로 썼습니다. 근데 그 사본들이 한 곳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곳곳에서, 동시 연대의 것들이 발견되는데요. 그걸 다 일일이 동일하거나 거의 흡사하게 가필했다는 건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 발달한 시기에도 힘들지 않을까요? 아시다시피 유럽에서 처음으로 활자인쇄가 가능해진 것은 1500년대던가 그러니까요.

이러한 내용들이 학자들은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그 근거에 기초해서 신약 성경도 하나의 역사적 사료로서 인정하는 것일 뿐입니다. 뭐 저도 신약 전공은 아니라서 보다 더 정확하고 상세하게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학계에서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다른 분들께 설명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니아니
20/01/27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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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신약 성서(복음서 포함)는 역사적 사료죠.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고찰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게 역사적 사실이라는 걸 보장하지는 않죠. 본문과
댓글에서 이미 말한 것 같습니다.

-

파피루스 52는 ad125년경으로 밝혀진 게 아니라
ad125~200년 사이의 언젠가 입니다. 불확실하죠.

-

저는 바울의 출신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 바울은 예수 이야기를 듣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게 아닙니다. 본인이 직접
사람에게 받거나 배운게 없으며 오직 계시를 통해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동시대의 예수가 존재했고, 바울이 예수를 잘 모르는 채로 전파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다음과 같은 상황이 예상됩니다.

바울 : "유대인의 위대한 신의 아들의 계시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누구나 아브라함의 아들이 될 수 있으며 유대인의 위대한 신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스인 : "오? 자세히 말해주세요. 어디서 들었습니까?"

바울 : "나는 내 마음속에서 그것을 스스로 발견했다."

그리스인 : "안녕."

....

공화당 후보는 로널드 레이건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흑인 인권 운동가는 마틴 루터 킹의 의지를 계승한다고 주장하기 마련입니다.

바울은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로 여겨지는 이들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그들을 비난했죠. 그런 식으로 나오면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과 예수의 얼굴도 모르는 바울 중 누구를 신뢰할까요? 바울은 최소한 그들이 예수를 오해했다는 말 정도는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았죠. 구약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말씀하신 바울의 출신이 바로 복음서의 예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입니다.

-

신약 성서의 가필은 초기에 가장 많이 이루어졌다고 여겨집니다. 말씀처럼 Ad175년 부터 발견되는 몇 개 안되는 초기 사본은 가필이나 진실함을 보장하지 못하죠. 저는 주로 그 내용에 근거해서 가필을 주장했고, 제가 제시한 가필 구절들은 모두 초기 사본으로 보장되지 않는 구절들입니다.
Love&Hate
20/01/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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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유대인의 위대한 신의 아들에 대한 계시에 대해 처음 듣게되는 고대 그리스인이
팔레스타인의 한 동네 출신인 예수의 부존재 사실은 알려져있어서 알고있다는 말씀인가요.
설득력 있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한 바울의 출신이 예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라고 하시며
굳이 사도들과 척을 졌다는 점을 드시는데
오히려 초기에 기독교를 박해했던 바울의 특성상 바울이 예수에 목맬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에 의해 만들어진 예수라면 굳이 바울은 예수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가 실존했다면 바울과 12사도의 알력다툼이 어색하다고 하시는건데
이만희 사후 이만희사후에 신천지에 입문한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가 포교에 성공해서 세력을 만든다면
본토의 이만희의 직계제자들과 알력을 벌이는건 지극히 평범한 일이에요.
이만희가 사실은 부존재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바울이 굳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보기에, 있을거같습니다.
다만 바울이 실질적으로 예수의 존재를 증명하진 못할순 있겠죠. 그런 측면에서는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예수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증거라는건 전혀 동의할수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크리스챤은 아닙니다.
계층방정
20/01/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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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글을 읽고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있었는데 Love&Hate님 댓글에 제 생각이 잘 설명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주장의 근거들을 최대한 받아들이더라도 본문의 결론은 이상해요. '현대 기독교는 예수와 12제자들의 기독교가 아닌 바울의 이단 사이비 종파다'는 나올 수 있겠지만요.
닉네임을바꾸다
20/01/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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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피마새의 타이모와 아실의 관계려나 흠...
아니아니
20/01/2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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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예수가 존재했다면 그를 알지도 못한 채로 본인 마음속의 예수를 전파해봐야 통할 리 없다는 겁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제자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는 사람이 통할것 같나요? 심지어 바울은 제자들이 틀리고 본인이 옳다고 말했죠. 어마어마한 주장입니다. 그 말은 예수가 틀렸거나, 제자들이 예수를 오해했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바울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죠.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니까요.

사실 저는 바울이 예수 신자들을 박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교회(교회가 아닌 집회가 정확한 해석입니다.)를 박해한 이야기를 총 네 번 언급하는데, 그중 2개(갈라디아서 1장 23절, 고린도 전서 15장 9절)는 가필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구절(갈라디아서 1장 13절)역시 가필일 가능성이 있지만(유대교인인 바울이 유대교를 별개의 종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가필이 아니라고 해도 반드시 예수 신자들을 박해한 이야기로 해석되지는 않습니다. 남은 하나(빌립보서 3장 6절)의 구절은 명백히 예수 신자들을 박해했다는 이야기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즉 박해 이야기는 두 개의 의심스러운 구절에 의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울은 단순히 메시아 주의자들을 박해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 대다수가 가지고 있던 메시아 사상과 조직된 메시아 그룹의 일부가 되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매우 보수적인 유대인이라고 말했으며, 보수적인 유대교에 맞지 않는 메시아 그룹을 박해했을 겁니다. 사도행전 18장 25절에 의하면 아볼로는 예수를 전혀 모르는 메시아 주의자 입니다. 예수 이전의 메시아 주의자들이 존재했다는 뜻이죠. 바울 서신에는 박해와 관련된 공격이 존재하지 않고 바울의 양심의 가책도 느낄 수 없습니다. 저는 확신에 이르지만 못하지만 의심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Love&Hate
20/01/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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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을 이해 하셨는지 모르겠는데
예수가 존재했다면 그를 보지 못한채 마음속의 예수, 즉 본인이 계시받은 예수를 전파해봤자 통할리가 없고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를 보지 못한채 본인이 계시를 받으면 통한다는 말자체가 별로 설득력이 없단겁니다.
그게 포교는 아니니깐요.

만약 몰몬교 선교사를 통해 몰몬교를 받아들이는데, 그의 몰몬교 교단내위치에 따라 성공여부가 갈린다고 생각하시진 않으실겁니다.
몰몬교 내에서의 입지싸움에서야 거기에 따라 가겠지만요.

사도 바울이 포교를 성공하는게 예수의 실존여부와는 사실 큰 상관이 없고
실제 제자가 존재한다와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일단 증명되지 않은 전제로 주장을 하셔서 설득력이 없는겁니다.
예수의 직계제자가 없어야 바울이 통할수 있다라는건 님생각처럼 당연한 논리가 아니라 님의 주장이에요.


바울의 박해이야기뿐만아니라 다른 이야기들에서
뭔가 카톨릭에서 굳이 주의 형제들을 마리아 배에서 낳은 자식이 아니게 해석하는것을 보는 느낌입니다.
마치 종교인들이 본인의 경전해석하듯이 본인의 답이라는 교리를 위해 해석하시는 모습.
말씀하신 오컴의 면도날은 그저 타자의 주장을 배척하는 용도로만 쓰시는거같네요.
아니아니
20/01/2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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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가 부적절합니다. 제자들이 틀리고 본인이 옳다고 말했다는 것, 그에 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해야 겠죠. 박정희 후계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내 마음 속 목소리에 따르면 박근혜의 기본 개념은 틀리고 내가 옳다." 라고 주장하면 그게 먹힐것 같나요? 말을 꺼낸 이상 최소한 무언가 설명했어야 합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그리고 원래 동의 안되는 주장은 그렇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Love&Hate
20/01/2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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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가 부적절하다고 하시면서 본인께서 들고오시는 예시는
너무 말도 안되는 소리라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될지 모르겠습니다.....

박정희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현실정치에서 박정희의 계시를 받았다는 말자체에서 아웃인겁니다.
부적절하다는 분이 이런 예를 들고 오시면 어떻게 하나요.

불만이 있으신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금 들어드릴께요.
몰몬교 선교사를 통해 몰몬교를 받아들이는데, 그의 몰몬교 교단내위치에 따라 성공여부가 갈린다고 생각하시진 않으실겁니다.
실제 그가 몰몬교의 원산이 아니고 몰몬교 본당의 교리와의 충돌이 있으며 그에대해 본산이 틀리고 본인이 옳다는 입장이라도
그게 포교의 성공여부를 가르는건 아닐겁니다.

그저 동의안되는 주장이라 그렇게 느끼는게 아닙니다.
오컴의 면돗날은 타자의 주장을 배척할때만 쓰고
부적절한 예시라며 들고 온 예는 몇백 광년은 더 떨어진 말도 안되는 예고요.

주장을 전제를 통해 끌고 오시는데
그 대전제를 본인께서 증명하셔야 되는겁니다.
박근혜 박정희 후계자 같은... 예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님께서 주장하시는건
예수가 실존해서 실제제자가 있었다면 바울이 포교를 성공했을리가 없으니깐
12사도는 실제 제자가 아니다 입니다.

그 대전제를 먼저 입증을 하셔야 주장자체가 가치있는겁니다.
예수가 실존해서 실제 본토에 제자가 있다는 것이 포교를 실패할수 밖에 없게 만든다를 증명하셔야해요.
아니아니
20/01/2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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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예를 그런 식으로 받으시네요. 박정희를 예수로, 박근혜를 예루살렘 사도들루 익스큐즈 해서 들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려면 단순히 몰몬교 선도사와 그의
교단 위치가 아니라, 조셉 스미스와의 관계를 통해 말해야 합니다.

조셉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내 마음 속 목소리에 따르면 동료들의 기본 개념은 틀리고 내가 옳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조셉을 만나 본 적이 없어요. 동료들은 조셉을 가까이서 보고 그의 교리를 들었을 텐데, 왜 그들이 틀린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이건 무조건적인 전제가 아니라 팩트입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것이 성공할 수 없다고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상한 요구를 하시네요. 바울이 계속 그런 식이라면 최소한 저라면 작별하겠죠. 어쨌든 이 사실을 포함한 부자연스러운 정황들을 말 한 겁니다.
Love&Hate
20/01/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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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큐즈해서 들어야될 부분을 듣지 않으시는분이.............
제 말도 좀 익스큐즈해서 들으시지..
제 이야기는 똑같아요.
죠셉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폴이라는 사람이 미국에 있는 죠셉의 실제 제자들과 교리상 분쟁이 있어요.
그 폴은 죠셉의 계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며 미국에 있는 죠셉의 10사도들과 몇몇부분에서 충돌했고
그들이 틀리고 나는 맞다고 주장합니다.
이러면 몰몬교는 조선에서 포교를 성공할수 없나요?
그걸 모르면 몰몬교 오케오케 하는 조선인들이 그걸 알게되면 이제 폴한테 잘가 안녕 하나요?
그게 아니란겁니다.
폴이 조선에서 포교하는데 교리의 몇몇부분에서 자신이 맞고 본산이 오히려 틀리다고 주장하는게
죠셉스미스가 실존하지 않았던 증거가 될수 없습니다.
서신도 마찬가지에요.


이상한 요구를 하다니요....당연한 요구를 하는거죠.
당연히 전제를 증명해야합니다. 엄밀한 수학적 증명을 요구하는게 아니잖아요.

또한 바울이 본산을 공격한것도 대단한 뭐 종교분쟁도 아니었지만
직계제자니깐 익스큐즈 못하고 직계제자가 아니면 받아들여주고 이런 건가요?
제이콥이 죠셉의 직계제자면 폴이 용서가 안되서 쫒아내고
직계제자가 아니라면 폴이 용서가 되서 감싸주나요?
전제가 계속 이상하잖아요.
아니아니
20/01/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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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Hate 님// 이 상황에서 제가 실제로 정치인들 개념을 얘기 할 리가 없잖아요?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을 겁니다. 바울은 예수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무슨 자신감일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지는 신경 쓰지도 않고, 그저 그들이 틀렸다고 말했을 뿐이죠.

저는 그들이 예수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러브님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20/01/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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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사실 아니아니님의 의견은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부터 성서학자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언급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니아니님이 바울 서신이 복음서와 다른 이유로 제시하신 여러 항목들 중에 특히 (5)번의 [바울은 예수의 제자들로 여겨지는 예루살렘 사도들(야고보, 베드로, 요한)과 자신의 복음은 관계가 없으며, 그들의 복음을 "저주받을 복음" 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 부분의 해석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사도들과 자신의 복음이 관계 없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6절을 상당히 자의적으로 해석하신 것 같은데요. 최신 번역본을 보면, ['what they actually were makes no difference to me; God shows no partiality'] -> [그들의 실제 모습은 나와 차이가 없었어] 정도로 해석하는 게 맞습니다. 상관 없다는 게 아니구요. 그들이 잘 나가는 사도라고 하는데, 내가 가서 만나보니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더라 정도의 뉘앙스죠. 또 바로 뒷 구절인 7절에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을 위해 내가 할례 받은 자들을 위해 베드로가 사도로 부름 받았다고 적고 있지요. 이건 그들과 나의 [예수와 복음에 대한 이해가 좀 달랐어] 라는 것이지, 할례 받은 자의 복음이 잘못 되었다 라고 하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2)번에서 주장하신 내용들도, 마태복음의 저자들, 이른바 마태 공동체는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 부분은 바울만 율법에서 근거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복음서의 저자들도 같은 율법에서 근거를 가져온 것이죠. 누가 공동체를 제외한 다른 복음서 저자들이 바울의 것을 뺏어가거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요.

그리고 제가 가필이 어려웠다고 한 것은 초기에 이루어진 가필들에 대해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아니아니님이 말씀하시는 건 원본에 '가필이 있었다'가 아니면 성립하기가 어렵습니다. 원본에서 이미 한 차례 필사를 거쳐 퍼지기 시작한 뒤에는 동일하게, 또는 적어도 비슷하게 가필하기가 어렵다는 걸 말씀드리는 것이구요. 만약 원본에 가필이 있었다면, 초기 필사본에서 차이가 나타나야 하지만 그런 차이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본이 가필이 다 끝난 다음에 필사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도 좀 납득하기 어렵구요. 마지막으로 지금 최신 번역본은, 한국 개정개역을 포함해서, 어디가 초기 사본에 존재하지 않았는지, 예를 들어 마가복음 16장 후반부가 있겠죠, 다 표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서신 중에 가필이 있다고 주장하신 내용들이 보면 사본에서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걸로 나오는데요. 이걸 아예 고린도전서의 저자가 다르다고 주장하면 모를까요. 11장만 누가 따로 썼다는 것도 고린도전서 논리 구조를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여튼 원본을 찾기 어렵더라도 가필 전 사본 + 가필된 후의 사본이 필요한데, 그러한 것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제가 가필이 어렵다고 자꾸 말씀드리는 이유는, 다른 고대 문서들과 비교했을 때, 신약 성서는 원본과 굉장히 짧은 텀을 두고 엄청난 양의 사본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냥 인터넷으로 컨트롤 c+v 해서 필사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그렇게 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씀을 드린 거에요.
아니아니
20/01/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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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2장은 대놓고 그들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내용입니다. 본인이 직접 사람에게 받거나 배운 게 없으며 오직 계시를 통해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왜곡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성서학자들은 갈라디아서를 다르게 해석하지만, 제 생각은 본문에 잘 설명했으니 알아서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갈라디아서 2장 7~8절은 제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가필로 여겨지는 구절입니다. 그 이후 구절에서 바울은 율법을 강요한 베드로를 비난하고 율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죠. 복음 해석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복음서의 가르침 중 일부는 단순히 구약 인용이 아니라 구약을 해석한 바울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우연히
해석이 일치했을 수도 있지만, 우연이 겹치면 의심을 사는 건 당연한 수순이죠.

바울 서신은 매우 늦게 인용되었습니다. 1세기의 언급은 전혀 없죠. 또한 서신을 최초로 수집한 건 가장 강력한 이단이었던 마르시온 이었습니다. 마르시온이 서신을 수집하는 과정, 또 마르시온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가필이 이루어졌다고 여겨집니다.
20/01/27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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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아니아니님의 글을 읽고 생각했을 때, 7-8절이 가필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가필의 가능성에 대해 논증 중이다가 보다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요? 그리고 가필의 범위도 논란 중이라고 봐야지 결론이 난 건 아닙니다. 뭐 사실 원본이 없는 시점에서 가필인지 아닌지 증명하기는 다 어렵지만, 7-8절만 가필인 것이냐, 9-10절도 가필인 것이냐 하는 것도 논증 중이구요. '가필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저는 가필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하시는 것과 '일반적으로 가필로 여겨지는 구절입니다.' 라는 건 차이가 꽤 크죠.

더불어 베드로를 비난한 이유는 율법을 강요해서 비난한 것이 아닙니다. 게바가 율법을 이후에 강요한 부분이 있었나 찾아봤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그 구절은 처음에는 이방인과 식사를 같이 하다가 (율법에 의하면 위배되는 행위죠, 베드로도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 강요할 의도가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오자 동석하지 않은 척했다는 것인데요. 이건 그냥 베드로의 위선적인 모습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이지, 베드로와 바울이 서로 다른 신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건 힘들다고 전 생각합니다. 오히려 같이 밥을 먹었으니 신학적 견해는 동일하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다만 베드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판을 보다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준 거구요.

복음서에 바울이 끼친 영향 부분에선, 서신 작성 이후에 누가 공동체나 마가 공동체에게도 바울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생각이 됩니다. 특히 갈라디아서 같은 경우에는 신약성서들 중에 가장 일찍 쓰여진 책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제가 마가 역시도 바울의 영향력 안에 있었다는 걸 깜박했네요. 그런데 구약을 해석한 바울의 가르침은 유대인 바울과 같은 연구를 하신 분들도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저도 유대교 수업 들어봤구요. 유대교 내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바울과 비슷한 해석을 이전부터 하는 공동체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쿰란 공동체와 바울의 공통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교수님들도 많거든요. 바울이 회심 이후에 광야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그 광야가 사해 근처의 쿰란 공동체로 보는 견해가 많이 늘었습니다. 말씀하신 그 계시를 강조하는 것 역시 매우 비슷하구요. 그런데 그러한 내용들은 유대인들도 어느 정도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고, 복음서를 쓰는 저자들 역시 그것이 자신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기록했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더 많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좀 이상한 거 같은데요. 율법에 대한 해석에서는 바울의 해석에 복음서 저자들이 영향 받았다고 하셨는데, 고린도전서 11장의 가필 논란에서, 왜 누가복음이 써지기 전에 쓰여진 서신이기 때문에 후대에 누가복음을 보고 가필한다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누가복음이 써지기 전에 바울이 먼저 서신에서 사용하고, 그것을 누가 공동체에서 보고 복음서에도 그대로 인용했다가 보다 더 그럴싸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가필 논란도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구요.

바울 사도가 복음서의 예수를 잘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건 사실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필 논란도 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부분적인 가필들이 정경의 통일성을 흔들지는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미 우리가 읽고 있는 신약 성경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세 가지 다른 관점에서의 서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전혀 관계 없어보이는 해석들이죠. 근데 그 때, 공관복음과 바울 서신의 예수에 대한 관점은 보통 분리되어 생각되지 않습니다. 결국 둘 다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겼던 댓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바울이 기록한 예수는 국사교과서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편찬했다' 라고 하고 넘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의 수난사는 승정원 일기나 실록에 기록된 세세한 증언들이겠죠. 그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되지도 않구요.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저자들이 선택한 결과물로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반박하는 중에 가장 궁금한 게 있는데요. 복음서의 예수와 바울 서신이 어떤 점에서 그렇게 모순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순된다고 하는 건 복음서 안의 예수와 바울이 가르치는 복음이 서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야 하는데요. 그렇게 나타나는 부분이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니아니
20/01/2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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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반대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모든 논쟁은 논의 중이라고 해야겠죠. 저의 확신이 표현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위선을 지적한 거라는 말씀이죠? 그렇다면 율법을 강요하냐고 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대한 양보해도 두 가지 모두 비난했다고 볼 수는 있어도 위선만 지적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그 직후 15절부터 율법을 따를 필요가 없고, 사람은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율법으로는 누구도 의로워 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두 죄인으로 드러나기 때문이죠.)베드로를 향한 비난과 연결하면, 베드로의 예를 통해 사람은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는 해석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미 율법을 강요한 시점에서 신학이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바울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읽는다면 말이죠.

누가복음은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혹시 동의하지 않으시나요? 제 논리는 마가복음이 쓰이기 전, 마가복음을 변형한 누가복음의 구절이 고린도 전서에 포함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누가복음은 보통 마가복음+Q+L을 사용해서 쓰였다고 여겨집니다. 고린도 전서는 아니에요. 무엇이든 가능성은 있지만, 가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바울 서신과 복음서의 모순은 서로 반박하는 내용이 있다는 게 아니라, 큰 그림으로 보았을 때 복음서 속 예수 존재의 정황이 바울 서신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근본적인 증거의 부족을 받아들이고 일관적인 정황에 의지합니다.
20/01/2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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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말씀하신 바울과 베드로의 그 사례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13절에 바울이 베드로를 이미 외식과 위선에 대해서 꾸짖었거든요. 그 이후에 이야기는 단순히 베드로를 지칭한다기 보다는 그 자리에 함께한 유대인들까지 포함하는 거라고 보는 거죠. 베드로 같은 경우에는, 이건 단순히 제가 받아들인 쪽의 의견일 뿐이지만, 바울로 대표되는 비할례 신학 노선과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할례 신학 노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그의 행동에서 나타났다고 보구요. 베드로가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죠. 물론 그건 제가 9-10절이 가필이 아니고 11절 이후의 이야기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제가 바로 위에도 적었는데요. 마가 공동체도 바울의 영향력에 있었을 것이라는 게 주류 의견입니다. 뭐 이건 성서적인 근거는 아니지만, 야사들에서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었을 때, 누가와 마가가 옆에서 보필했다는 이야기들이 있거든요. 서신에서도 마가를 부르기도 했구요. 물론 성찬에 대한 이야기가 바울보다야 사도들이 더 중심이 되었겠지만, 그 구절과 바울, 누가, 마가 공동체와의 역학적 관계를 살펴 보면 가필의 가능성도 있지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 또한 높다는 것이죠.

사실 이것도 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이, 가필이 되었다고 하면 뭐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도 나오는 것 같네요. 말씀하셨던 내용을 보면 마르시온이라는 곳을 언급하셨는데, 마르시온에선 바울 서신 뿐 아니라 누가복음도 정경으로 채택해서 두 가지만 사용했죠. 그들이 바울 서신과 누가복음 양쪽의 필사본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안에서 서로 가필하는 건 가능할 수 있겠네요. 그럼 반대로 그들이 고린도전서에 있는 내용을 누가복음에 삽입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복음서 속의 예수의 정황들도 보면 율법을 새롭게 개혁하거나, 때로는 파괴하는 장면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친다거나, 세리와 함께 밥을 먹는 것 같이요. 이방인들도 고쳐주죠. 수단보다 목적이 중요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그저 활동의 주무대와 시간대가 미묘하지만 달랐고, 바울의 예수에 대한 세세한 지식은 부족했다 정도로 이해합니다. 큰 틀에서는 둘이 가진 생각이 급진적이며 비슷했습니다. 기존에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한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기존 문서적 율례에 얽매여서 사람의 구원을 버리면 안 된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등등이요. 예수는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른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넌 할례 안 받았으니 내가 뭘 해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도 않았구요. 할례를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인 중에서 유대계 극단주의자들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복음서 속 예수 존재의 정황이 바울 서신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순으로 보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의혹 정도죠. 모순은 논리적으로 상충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계속 이야기하지만, 공관복음서들과 바울 서신은 오히려 그 큰 틀에서 보면 논리적으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울 서신 외에 다른 책들도 신약 정경 또는 외경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책들은 배제하고 바울 서신만 가지고 복음서의 예수 존재를 논증하는 것도 결론을 내리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닌밤
20/01/27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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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예수가 실제하는 인물인가,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논의는 신학계와 역사학계에서 이미 충분히 다루어진 문제로 알고 있습니다.

영문 위키피디어의 관련 내용을 옮겨 보면,
"Most biblical scholars and classical historians see the theories of his non-existence as effectively refuted, and in modern scholarship, the Christ myth theory is a fringe theory and finds virtually no support from scholars." (대부분의 성서학자들과 고전 역사학자들은 예수가 실제하지 않았다는 이론은 실질적으로 논박되었다고 여긴다. 그리고, 현대 학계에서 '그리스도 신화 이론(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fringe theory(근거가 부족하나 흥미꺼리로 계속 언급되는 비주류 의견 정도의 의미)이고 사실상 학계에서 어떤 지지도 얻지 못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icity_of_Jesus#Christ_myth_theory

위 위키에 정리된 내용을 더 살펴보면, 성서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의 역사성에 대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예수에 대한 세례자 요한에 의한 세례와 십자가 형에 처해진 것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학계의 전반적인 동의가 있다고 나오는 등, 예수의 역사성에 대해 학계의 연구 성과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길게 쓰신 글에 들어간 노력을 폄하하는 것으로 전해질까 우려스럽지만, 하고 계신 주장의 크기에 비해 기존의 연구에 대한 검토와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정도는 너무 작아 보입니다.

* 추가: 이 댓글을 쓰고 나서 위의 hey님의 댓글에 아니아니님이 길게 다신 댓글을 보았습니다. 본문 만을 보고, 기존 연구에 대한 검토가 부족해 보인다고 적었는데, 그런 제 언급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다만 본문과 아니아니님이 쓰신 다른 댓글을을 다시 보았지만, 문헌학과 역사비평에서 기존의 연구를 검토하는 방법을 포함 이런 문제를 다루고 주장을 펴기 위해 필요한 본인의 훈련 정도에 비해 주장의 크기가 크고 강하다는 제 느낌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아니
20/01/27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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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은 자유죠. 저도 여러 댓글에서 다양한 느낌을 받습니다.
말하지 않을 뿐이죠. 무의미한 항의니까요.
20/01/2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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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라는 표현이 재미있네요

단어는 자신을 어떻게 포지셔닝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죠

항의라...크..
닉네임을바꾸다
20/01/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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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저분은 일단 성서학자들 자체를 신뢰하지 않으시니 기존 주류의견같은건 당연히 틀렸단 스탠스일거라...
20/01/2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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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장르만 바꾸면 환빠랑 똑같은거거든요. 예를들어 수밀이국이 없다는 증거를 대봐라. 증거없지? 내말이 맞아. 뭐 이런식.. 전 이런타입보면 빡치더군요

음모론을 말할땐 적어도 이건 음모론입니다 저도 알아요 뭐 이런태도면 웃어넘길수라도 있지 이건뭐.. 게다가 무슨 자신감인지 남들이 다 속고있다는 식이죠 기가찹니다
-안군-
20/01/27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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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근거의 대부분이 당대의 유태인 학자들의 역사서에 기반하고 있는 듯 한데요, 지금도 그렇지만 유태인들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다수의견입니다. 유태교는 기본적으로 예수를 부정하고, 아직 메시아는 오지 않았다고 믿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유태인들의 시각에서 본 기독교는 "자신을 메시아라 주장하는 한 사이비 교주가 만들어낸 이단 종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연히 예수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하겠죠.
말하자면 기독교계에서 문선명이나 정명석을 재림예수라고 인정하지 않는것처럼. 이단 종교를 다루는 문건을 제외하고, 한국 기독교계의 어떤 서적에서도 문선명이나 정명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요. 유태인들도 마찬가지였겠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나, 부정적(이단 교주)으로 보고 있는 유태인이나 서로 편향성을 가지는건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비 그리스도인의 시점에서 예수를 다뤘다고 해서 그게 다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비 통일교인이 문선명에 대한 글을 썼다고 그 글이 객관적일 거라는 보장이 없듯이 말이죠.
뭐, 이미 그런 모습들은 요즈음의 정치글들에서도 많이 보이는 현상 아닙니까? 자기 진영에 따라 같은 사건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주장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뭐 그런거죠;;
퀀텀리프
20/01/2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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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과 필사 시대의 한계라고 할수 있겠네요. 말이란게 한 사람 두사람 건너다보면 추가되고 누락되고 변형되죠. 인쇄된 문서나 컴퓨터로 작성된 문서가 아니라면요. 현시대의 뉴스조차 가짜 뉴스때문에 시끄럽기도 하죠.
기독교적 관점의 많은 문서는 가필의혹이 있으니 전부 의심스럽고, 마지막 예시로 든 기록 한개를 그 근거로 드는 것은 답정너식 기준이겠죠.
삼국지를 봐도 정사가 있고 야사가 있습니다. 야사를 보면 재미삼아 쓴 소설이 뻔할걸로 봐서 유비 관우 장비도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할수 있겠군요. 뭐, 그런 건가요 ?
아니아니
20/01/2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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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많이 왜곡하시네요.

저는 복음서의 예수 기원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증거 부족으로 인해 알 수도 없고 정확히 모르는게 이상하지도 않죠. 언급한
것들은 약간의 힌트라고 생각해요.

본론은 복음서 이전 유일한 증인인 바울 서신의 정황에 의하면 예수는 동시대의 실존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강미나
20/01/2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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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울이 로마로 보낸 서신을 보면 바울은 첫 챕터부터 자기가 말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전제로 하고 들어갑니다. 그러니 2번 항목에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어떤 묘사도 없다'는 얘기는 아무 의미도 없어요. 처음부터 그런 전체를 아예 별도의 챕터를 만들어서 얘기하고 들어가는데 일일이 또 달아야 할 아무 이유가 없죠. 더군다나 바울이 예수의 행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하기엔 십자가 고난에 대한 언급은 또 너무 많고요. 바울서신에 예수의 행적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얘기되지 않은 게 이례적인 것처럼 얘기하시지만 베드로의 서신, 야고보의 서신, 요한의 서신도 다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렇게 되면 바울서신의 이례적인 특징이라기보단 보편적인 서신의 특징으로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는데요.
아니아니
20/01/2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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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관한 복음이지, 예수의 복음이 아니죠. 

바울이 복음서의 예수의 행적을 미주알고주알 말하지 않는게 문제가 아니라, 한번도 말하지 않은게 문제입니다. 

서신의 특징이라는데는 동의합니다
강가딘
20/01/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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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기에는 바울의 서신이라는 것들 중 일부나 혹은 전부 아니면 신약 전체가 저자는 따로 있고 권위성을 주기위해 사도의 이름을 저자로 한게 아닌가 합니다.
익건 구약도 마찬가지고요
-안군-
20/01/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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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신학계의 주류의견입니다. 특히나 복음서는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는게 정설에 가깝더라고요.
20/01/2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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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관심이 많으시고 다방면에서 자료도 수집해서 정리하신 것 같은데 이런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쓰기 보다 논문을 써서 정식으로 논의를 해보시는건 어떠세요?
닉네임을바꾸다
20/01/2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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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주류에 매장된다고 안하실듯...
감전주의
20/01/2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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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얼마전에 본 영상이 생각나네요.
내가 다 아니까 증거가 필요없어.
근 2천년의 시간동안 연구해 왔던 다른 역사학자, 신학자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
강동원
20/01/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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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사료의 빈칸을 채우는데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건 자유지만
내가 채우는 건 합리적 추론이고
남이 채우는 건 신뢰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보기에 좋진 않죠.
아니아니
20/01/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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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성서학자들은 가장 확실한 역사적 사실 중 하나로 세례 사건을 꼽습니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건 당황스럽기 때문에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 방법론을 "당혹함의 논증" 이라고 부릅니다. 학자들은 복음 저자들이 당황스러워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들은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에서 세례 이야기가 처음으로 쓰이고 이후 마태, 누가, 요한에서 이야기가 점점 기독교에 유리하게 바뀌는 걸 당황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가복음에 대한 당황이지 역사에 대한 당황이 아닙니다. 정작 마가의 저자는 당황스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내러티브로 보이며, 요한의 권위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불확실한 논증을 가장 확실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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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연구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N.T 라이트는 마커스 보그와 논쟁한 "예수의 의미"라는 책에서, "왜 예수의 역사를 다루면서 신앙과 역사를 분리하여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가? 나는 신앙과 역사를 통해 예수를 연구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 했죠. 게다가 다른 곳에서는 마태 복음 27장 51~53절의 좀비 부활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모든 연구를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민감한 문제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명백하다고 봅니다. N.T 라이트는 가장 권위 있는 연구 기관으로 인정받는 성서학회의 의장직을 지낸 경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집단 자체의 문제로 치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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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 속한 학자들은 교단의 교리를 준수해야 하며, 신앙 선언문에 싸인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 : 댈럭스 신학대학, 비올라, 시더빌, 마스터, 휘튼 칼리지)민감한 사안을 건드린 학자들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이 있습니다.(예 : 로버트 프라이스, 토마스 브로디, 마이클 리코나, 피터 엔스)

그래서 저는 성서학자들을 신뢰하지 않아요. 물론 모든 말 하나하나를 거부하는게 아닙니다. 들어보고 스스로 판단하죠.
20/01/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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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저가 또 있었는데 그 누구더라...
솔로15년차
20/01/2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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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정성이란게 이렇게나 중요하죠. 기독교 교리와 별개로 주장하는 논리가 자체적으로 너무나도 허술한데, 여기에 대해서 피지알러 분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반응해주시는 이유가 바로 정성 때문 아니겠습니까. 다수가 너무 길어서 읽지도 않았겠지만, 읽기 쉬운 글이었다면 논리의 허술함이 더 쉽게 드러났겠죠.

바울이 활동했던 시기에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기독교 내에서 높은 권위를 갖고 있었다는 건 바울이 쓴 내용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예수라는 인물은 없었고, 제자라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인물이며, 바울이 그걸 차용했다고, 다시 제자라는 인간들이 바울이 차용한 그걸 베꼈다는 논리를 쓴다뇨. 그러면서 시기는 추정일 뿐이라며 바울이 쓴 편지들과 복음서가 기록된 시기를 굳이 더 벌리네요.

그냥 바울이 쓴 편지부터 시작해서 다 거짓이라고 해야 말이 되지, 바울서신을 근거로 주장하는 논리가 그 바울서신으로 반박되는데 대체 이게 무슨 주장이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제자라는 사람들은 존재했지만 예수만큼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그냥 다 존재하지 않았으면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하자니 바울이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으니. 이 모순을 견디며 주장해야하는 건가요?
아니아니
20/01/2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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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댓글에서도 그러시던데, 자칭 제자 같은 건 없습니다. 바울은 단 한 번도 "제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을
예수와 연결시킨 적이 없어요. 우리는 예루살렘 사도들이 무엇을 믿었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예루살렘은 메시아 종교의 본진이었고, 본진의 지도자들은 권위를 갖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예수를 만들어냈는지 여부를 모르고, 바울은 제자들의 예수를 차용하지 않았고, 제자들은 아무것도 쓰지 않있습니다. 뭔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기본적인 개념이 너무 달라서 제 논리가 허술한지 여부를 다룰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뭐 어디서 부터 말 해야 할 지 모르겠군요. 그냥 서로 갈 길 가는게 낫지 않을까요?
솔로15년차
20/01/2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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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같은 사소한 걸 자꾸 이야기하시는데요. 말씀하신대로 이미 기독교인들이 있었고 그 기독교인들 내에서 예루살렘은 공신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건 바울 스스로 말하고 있죠. 그럼 바울이 회심하기 전의 그들 집단은 뭐라고 설명하실 겁니까?

기본 개념이 다르다는 것 같은 걸로 허술한 논리를 넘기려하지 마세요. 님의 주장은 사실 각자 다른 주장을 하는 다양성 어쩌고 따지기엔 그냥 기본부터 안되어있습니다.
아니아니
20/01/2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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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님은 성서학의 기본조차 모른다는 거 잘 아시죠?
문제를 논쟁하지 마십시오.

그냥 들어가세요. 뭐하러 댓글 달아요?
라방백
20/01/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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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흥미로운 글이군요. 가장 흥미로운점은 바울이 세계적 보편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만드는데 있어서 굳이 메시아 예수의 존재 유무가 중요하지는 않았겠다는 부분입니다. 다만 글쓴분의 주된 주장은 바울의 모든 글에서 예수라는 개인의 존재는 배제되어있고 이후 복음을 제외한 예수 개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을 조작되었을것이라는 점을 들어서 예수 본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계시는데요. 사실 제가 느끼는 조작된 부분의 문제는 예수가 '동네의 유대교에서 세계의 기독교로 넘어갈수있는 교리를 개발하고 전파한 스승이다' 와 '거기에 더해 죽었다가 부활했으며 스스로 자신을 희생한 메시아다' 라는 부분이 너무 큰 괴리가 있거든요. 바울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고 이를 발전시켜서 세계종교를 만들게끔 한 어떤 사건에 있었서 (이게 기적이든 아니든) 그에게 가장 큰 사상적 핵심을 제공한 것은 예수다 라는 부분과 예수가 신의 아들이자 죽음도 극복할수있는 메시아였던거임 이라고 포장하는 부분을 분리해서 보면 어떨까요. 댓글까지 보면 바울이 기독교 교리를 개발하고 이를 전파할때 예수 직계의 제자들과 교류없이 이를 개발했는데 나중에 예수 직계 제자들과 맞춰봐도 내 교리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정도로 정리가 되거든요.
아니아니
20/01/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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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제자들과 맞춰봐도 내 교리에 문제가 없음" 이 아니라, 교리에 차이가 있지만 본인이 옳다고 주장한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 실제 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보다 본인의 계시를 믿은 걸까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않은 게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유일한 해결책은 바울이 초자연적 방법으로 진실한 예수의 계시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바울의 자신감은 설명 가능하죠. 사실 기독교인 시절에는 바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지금은 받아들이지 않기에 다른 설명을 찾는 거죠.
20/01/2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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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기독교가 주제인 글만 올라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기독교 신앙인들을 어리석고 불쌍한 인간들로 몰아대는 분들이 꼭 있는데 이 글도 예외는 아니군요. 뭐, 니체는 더한 독설도 퍼부어댔지만 수천 쪽에 달하는 철학적 논변을 했는데 이 분들은 기독교 신앙이 합리적으로 지지되지 않는다는게 요지인, 그리고 그 요지가 전부인, 이성과 신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유구한 사유의 역사에 완전히 무지한 이들이나 내놓을 만한 서너 줄을 내놓는게 고작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의미있다고 여기는 삶의 한 형태를 깔아뭉개는 크기의 주장을 하려면 아무리 인터넷 게시판이라도 그 크기에 어울리는 수준의 논변이 필요한데 말이죠..
닉네임을바꾸다
20/01/27 18:31
수정 아이콘
사실 예수라는 존재가 실존했는가는 신학 이전의 영역이죠...이 예수라는 존재가 신의 아들인지 이런게 아니라 특정 사상을 주장한 예수라는 종교지도자가 실존했는지와 관련이라...
20/01/2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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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역에 산수 문제 답같은 것은 없죠. 그럴듯함의 정도가 비슷하거나 다른 양쪽의 여러 논변들이 있을 뿐이죠. 논박을 주고 받으며 계속 새로운 논변들이 나오죠. 관련 전문가 다수가 지지하는 논변은 있어도 합의는 안 되죠. 이럴진데, 즉 어느쪽 논변도 나름 말이 되는데 내가 편드는 논변만 말이 된다고 확신하고 반대 논변의 그럴듯함이 전제되어 있는 기독교 신앙 자체를 어리석고 불쌍한 것으로 공격하는 것은, 제가 다른 곳에서 자주 쓰고 이곳에서는 쓰는 일이 없기를 바랬던 표현을 어쩔 수 없이 또 쓰자면, 배운 사람이 할만한 행동이 아니죠.
20/01/2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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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워마드나 신천지를 비웃는데 뭐 대단한 사유씩이나 필요할까요. 도술을 부리고 부활했다는 신의 아들을 숭배하면서 그걸로 과학교과서를 바꿔야 한다느니 소수자를 배척하는 게 당연하다느니 하는 것에 대해 무슨 논변씩이나 해야 하는 건가요. 그들은 다른 신을 믿자는 사람을 죽이라는 신을 엄청난 사유를 통해서 숭배하고 있기라도 한가요.
적어도 신천지나 환빠 같은 사람들은 자기 신앙을 얘기할 때 그게 일반인들에게 보통 잘 안 받아들여지리라는 거 정도 눈치는 챙기고 말을 합니다. 근데 기독교인 같은 경우는 그냥 투정이예요. 내 믿음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고. 왜 우리가 그래야 할까요. 양심의 자유라는 권리에 따라, 그 신앙 때문에 경찰에 잡혀가거나 공무원 응시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신앙은 충분히 존중받은 겁니다. 그 이상을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남들에게 요구하진 마세요.
20/01/2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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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그럼 워마드나 신천지를 비판하세요. 기독교 신앙인들 전체를 본인이 경험하거나 전해 읽고 들은 개독교인들과 등치시키지 말구요. 흔히 예수라 불리는, 도술을 부리고 부활했다는 신의 아들 을 숭배하는 것이 어이없다는 생각은 마르크스나 니체식의 구체적인 문명/사회 비판적 논거를 갖추지 않으면 인간사를 과학적 합리성의 잣대로만 재는 어이없게 좁은 인간이해의 표현이라는걸 조만간 깨닫기도 해야 할테구요.
20/01/27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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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나 아난님이 이만희가 야훼라는 신앙 혹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신앙을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게 언젠가 '어이없게 좁은 인간이해'이라고 깨닫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그 날이 오면 다시 한 번 얘기해보지요.
고구마장수
20/01/2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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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분께 궁금한 점이 있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윗 글을 작성하실때 참고하신 책이나 저자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아니아니
20/01/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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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arlywritings.com/forum/viewforum.php?f=3&sid=60cbe811b4c1846138377571fd3accb4 이 사이트를 주로 참고했습니다.

리처드 캐리어, 얼 도히티, 로버트 프라이스의 사이트 등도 참도 했지만 저는 그들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피터 커비라는 사람의 블로그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peterkirby.com

한국 사이트로는 시앙스 앙퓌즈라는 사이트의 종교 & 철학 태그를 보면 다양한 서적의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
20/01/27 21:56
수정 아이콘
논리학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오컴의 면도날 그렇게 쓰는 게 맞나 싶어서요.

오컴 책은 한국말로도 번역이 된 게 몇 권 있어요 그거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아니아니
20/01/27 22:42
수정 아이콘
이야기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사용한 겁니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집착하지 마세요.
솔로15년차
20/01/27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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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이런게 문제입니다. 본인은 남이 쓰는 명칭같은 게 중요하다며 집착하고, 그 부분을 지적하면 중요한게 아니니 집착하지 말라고하고.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비슷한 기준은 사용하세요.
아니아니
20/01/27 22:57
수정 아이콘
그렇게 단순하지 마십시오.
20/01/28 05:20
수정 아이콘
그럼 그냥 거창하게 오컴의 면도날 하지 마시고 정리합니다 이러면 되죠.

뒤로 뺄 때는 좀 겸허하면 안 되요?
아니아니
20/01/28 06:43
수정 아이콘
그럴걸 그랬네요.

그래서 그게 공부를 더 하라느니 무례하게 댓글 달 정도로 이 글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말도 안 되잖아요.
20/01/29 16:26
수정 아이콘
중요한 부분이건 아니건 아니라고 봤으니 제가 지적하면 안 되요?

그게 더 말이 안 되는데.

중요한 부분은 중요하니까 내 말이 맞고 안 중요한 부분은 안 중요하니까 지적하지 말라 이럴 거면 게시판에 글 왜 올려요? 그냥 나가서 포교나 하지지 종교인처럼. 내 말은 오류가 없고 오류가 있다고 하면 그건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니까 지적하지 마 무례하잖아 이러실 거면 걍 나가서 포교나 하시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아니아니
20/01/29 20:11
수정 아이콘
참 이상해요. 왜 말을 있는 그대로 읽지 않는 건가요?

지적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의도를 간단히 설명하기도 했죠. 그런데 본인 댓글을 보세요. 실제 문제는 다루지 못하고 특정 표현을 언급하며 "논리학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라고 시비조로 트집을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
겁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세요. 무슨 반응을 기대하나요? 무례한 댓글이 아니었다면 정상적으로 반응했을 겁니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는 건 무례하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무례한 댓글을 달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냐고 물어본 거죠. 이 차이가 이해하기 어렵나요?
20/01/29 22:21
수정 아이콘
전 쓴 글 그대로 보고 읽었는데요?

전 님 친구도 아니고 지인도 아니고 친척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데 왜 님이 글 이상하게 써놓고 저보고 뭐라고 하세요? 남이 지적하면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하면서 왜 내 진의를 읽지 못하냐던가 그런 곁다리는 보지 말고 중요한 거나 바라보라거나 그런 건 님 친구한테나 가서 말씀하시는 게 맞지 않아요? 내가 잘못되었다는 걸 지적하면 다 시비조로 트집인 거죠? 아니 틀린 걸 틀렸다고 했는데 그게 트집이예요? 내가 님 머리 속에 들어가서 그렇게 쓰라고 시켰던가요? 님이 쓰신 거고 님이 잘못 쓰신 건데 그거 지적하면 트집이예요? 제가 시켰나요? 님이 하신 거 아니예요?

전 있는 그대로 읽었어요. 아닌가요? 있는 그대로 읽었는데 지적당하니까 기분 나빠져서 그건 중요한 부분이 아니고 설라무네 하는 분은 따로 있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면 님도 허허 그런가요 하면 되지 왜 이렇게 집착하세요? 제가 집착하는 건가요? 님이 집착하시는 거 아니예요?
아니아니
20/01/29 23:07
수정 아이콘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고, 댓글을 순서대로 읽고 다시 이해해 보세요.

그래도 모르겠다면 여기까지 합시다.
20/01/29 23:41
수정 아이콘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고, 댓글을 순서대로 읽고 다시 이해해 보세요.

그래도 모르겠다면 할 수가 없죠 저도.

왜냐고요?

"솔로 님은 성서학의 기본조차 모른다는 거 잘 아시죠?
문제를 논쟁하지 마십시오.

그냥 들어가세요. 뭐하러 댓글 달아요?"

와, 정말 너무 예의 바르신 거 같아요. 본인이 할 때는 기본조차 모르면 논쟁하지 말고 그냥 들어가세요, 뭐하러 댓글 달아요, 이런 건 예의 바르고 시비조는 커녕 공손한 말이고 트집도 아닌 거죠? 제가 하면 트집이고요?

불리하면 항상 여기까지 합시다, 모르면 말 안 합시다 이런 말 가능하고요?

성서학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이랑은 논쟁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시는데, 아마 성서에 관한 논쟁이죠?
근데 논리학의 기본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랑 논쟁이 가능한 거예요? 논리학 지적하면 벌컥 화내면서 무마하고 지엽적인 거라고 하시면서? 논쟁을 한다면서 왜 논리학 지적이 지엽적인 거예요?
설마 예의가 바르지 않은 문제인 건가요? 그것도 아닐텐데, 왜냐면 예의 없는 기준이 제 수준이라면 피차 일반이잖아요? 양자의 예의 수준이 어차피 그저 그런데요? 그냥 지적당하니까 지적 받기 싫어서 예의로 물고 늘어지면서 딴 말 돌리는 거잖아요?

와, 틀렸다고 지적 받으면 예의가 바르니 어쩌니로 말을 돌리고, 남이 잘 모르는 거 같으면 예의는 제처두고 모르는 사람은 끼어들지 마라, 와,

혹시 윤서인이나 황교익 블로그 같은 거 많이 다니세요?
아니아니
20/01/30 01:25
수정 아이콘
(수정됨) skkp 님// 그러면 조금 더 해봅시다.

"예의 없는 건 마찬가지다."

- 저는 부처가 아닙니다. 무례한 댓글 달면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어요. 저는 결코 먼저 시비 거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전후 사정은 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단 댓글까지 퍼오는 건 그냥 개그입니다. 본인 양심에 물어보세요. 누가 문제인지는 명백합니다.


"불리하면 항상 여기까지 합시다, 모르면 말 안 합시다 이런 말 가능하고요?"

- 불리해서 그런 말 한 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보세요.


"논리학의 기본도 없다."

- 이 글에서 오컴의 면도날이 적절한 표현인지는 성서학에 대한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지만 제 이론에서 중요하지도 않고, 첫 댓글부터 무례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과 쓸모없는 논쟁을 방지하기 위해, 그냥 정리하는 의미로 사용했으니 집착하지 말라고 한겁니다. 그다음 댓글에서 "그럴 걸 그랬네요." 라고 말한 건 틀린 걸 인정한 게 아니라, 그랬다면 이런 시비 거는 댓글이 안 달렸을텐데.. 하는 작은 후회고요.


"그냥 지적당하니까 지적 받기 싫어서 예의로 물고 늘어지면서 딴 말 돌리는 거잖아요?"

- 일반적인 이해력의 부족을 보여줍니다.


"혹시 윤서인이나 황교익 블로그 같은 거 많이 다니세요?"

- 봉창 두드리는 소리.



결국 님은 계속 집착하며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합니다. 문제를 논하지는 못하면서 뭔가 비난하고 싶어하는 본인의 욕망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 동기는 무엇인가요? 진심으로 궁금하네요.
아니아니
20/01/30 07:0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삭제, 타 화원에 대한 과도한 비아냥(벌점 4점)
20/01/30 21:36
수정 아이콘
아니아니 님// 본인 양심에는 님이 물어보셔야죠. 제가요?
불리해서 하는 말 예시 - 틀린 거 아니냐고 지적하니까 화를 벌컥 내면서 무례하다고 트집 잡고 중요한 게 아니라고 발뺌. 그리고 여기까지 합시다

논리학의 기본도 없다
딱 봐도 배운 적 없고 대충 오컴의 면도날을 쓰는 걸 보고 논리학의 기본이 없다는데 지금도 적절한 표현인지 아닌지는 성서학에 대한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고 이상한 말 하시는데

문제를 논하지도 못하면서 뭔가 비난하고 싶어하는 본인의 욕망

그야 문제를 회피하면서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본인이시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죠. 님 재료거리를 주루루 늘어놓은 다음 오컴의 논리학으로 정리해 봅시다 이러고 재료정리하는데

이걸 가지고 중요하지 않다, 지엽적이다 이러면서 문제가 아니라고요?

논리학 공부를 안 하시려는 그렇게 강렬한 동기가 무엇일까요? 진심으로 궁금하네요.

본인은 이렇게 "솔로 님은 성서학의 기본조차 모른다는 거 잘 아시죠?
문제를 논쟁하지 마십시오.

그냥 들어가세요. 뭐하러 댓글 달아요?"
안 무례하고,

저는 무례하고.

무슨 차이예요? 본인이 하니까 안 무례한 거고요? 스스로를 좀 돌아봐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 거 아니예요? 본인은 자유롭게 하고 남이 나한테 하면 무례하고.
20/01/30 21:38
수정 아이콘
아니아니 님//
님이야 맘에 안 드는 사람 무시하고 무례하게 쫓아내고, 사실을 지적하면 무례하다고 트집잡고 지엽적인 거라고 귀를 막고(재료를 모은 다음 그 재료를 다듬어서 논지를 전개하는 정당성을 오컴의 법칙에 기댔으면서 지엽적인 거라는 놀라운 지성적 능력) 백해무익한 개싸움이라고 몰아내니

그야 항상 정신적으로는 승리를 계속하고 사실 테니 익숙할 수가 없겠죠 항상 본인 정신에서 본인은 똑똑하고 경우 바르고 무례하지 않으니까요.
기도씨
20/01/27 22:36
수정 아이콘
이 글을 피지알에 올리신 의도가 진짜 궁금해 지네요. 신학생들 모인 포럼이나 그런 곳에다가 쓰시면 더 소득이 많으실텐데.
아니아니
20/01/27 22:45
수정 아이콘
이미 충분히 많은 토론을 접했습니다. 이 글은 간단히 소개하는 의미에서 쓴거죠.
기도씨
20/01/27 22:53
수정 아이콘
어떤 곳에서 어떤 대상들과 어떤 내용의 토론을 했는지가 중요할것 같습니다.
아니아니
20/01/27 22:57
수정 아이콘
물론 약간 편향되어 있죠. 대놓고 기독교 변증만 아니면 반대 의견도 들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20/01/27 23:19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지적하자면 이레네우스, 터툴리안 따위는 제 오른팔의 봉인을 풀었다면 한주먹거리도 못되는 존재들일 따름입니다.
고구마장수
20/01/28 09:44
수정 아이콘
저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시간되시면 조금만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라지
20/01/28 10:43
수정 아이콘
복음은 잘 모르지만 종교쪽은 논리고 설득이고가 통하지 않는 영역이죠.
그러니 종교라고 하는거구요.
율리우스카이사르
20/01/29 00:32
수정 아이콘
취향저격글 감사합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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