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에 대해서]

어제 거의 두 시간 동안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풀타임으로 시청하였는데, 저는 현정부의 지지자 포지션에 더 가깝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예상대로 실망스러웠습니다. 적어도 청와대가 미리 공언한대로 [각본 없는 질문쇼]라는 것은 확인이 된 것 같습니다. 미리 각본이 있었다면 질문의 퀄리티가 그렇게 처참할수는 없을 것 같으니까요.. 행사 퀄리티 자체도, 질문기회를 얻고자 발언권도 얻지 않고 질문을 내지르는 참석자들 덕에 거의 도떼기 시장같은 모습이 잇달아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답변이나 대처에는 딱히 트집잡을 일이 없었던 것 같지만, 애초에 예리한 질문이나 불편한 질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이는 사실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저 말고 많은 분들도 쉽게 짐작하셨을 겁니다. 취재와 질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인 ‘기자‘들만 모아놓고 비슷한 행사를 해도 개떡같은 질문들이 이어졌던 것을 우리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지 않나요? 그런 마당에 일반 국민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예리한 질문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요.

탁현민씨가 미리 얘기한것처럼, 이와같이 '각본없는 대화' 방식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건 대통령의 순발력 뿐입니다. 근데 지금 와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행사의 취지는 현장에 모인 300명과의 대화에 한정짓기 보다는 지상파 라이브 방송을 통한 [전 국민과의 대화]에 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고, 그런 측면에서는 분야별로 알차게 질문을 꾸리고 (저출산이든, 남북관계든, 부동산이든, 경제성장률 관련해서든) 각각의 주요 이슈에 대해 빠짐없이 우리 정부가 어느 정도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지, 그에 대해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지 '대통령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는게 훨씬 더 유익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청와대에서 ‘각본없는 대화’라는걸 유달리 강조했던 이유는 국민들이 그걸 원했기 때문이고, 이는 국민들이 [정말 대통령이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인지, 꼭두각시는 아닌지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는 심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영양가 없는 걱정일텐데, 우리 사회는 이미 한번 (비유적 표현을 넘어서서) 정말 실제로 꼭두각시였던 대통령을 가졌었고 그 대통령은 질문을 사전 파악하는 정도가 아니라 질문 순서까지 완벽하게 대본화하지 않으면 기자회견조차 진행하지 못 하는 사람이었으니, 지금 대통령은 그렇지 않은 사람임을 확인하고 싶은 심리가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고요. 물론 그 전 대통령을 뽑았던것도 똑같은 국민이니, 뭐 우리 사회가 그런 대통령을 뽑았었던것에 대한 일종의 비용을 치르고 있는것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요.

물론 대통령의 팬들(비꼬는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지금 대통령은 정치인중에서 흔치않은 '팬덤'을 가지고 있는 분이고, 실제로 그것이 굉장히 큰 정치적 자산이 되어왔지요)에게는 좋은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이돌 팬미팅을 지상파 라이브로 해준 격이고, 그를 직관하고 대화나눌 수 있는 자리이니 거기 참석신청을 한 사람들도 대부분 팬들이 많았을거고요. 격무에 시달려서 예전보다 좀 노화한 모습이 티가 났고, 본인피셜 머리도 빠지고 있다고 하지만 대통령은 여전히 미중년의 좋은 외모에 사람좋은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53년생 동갑이라는 배철수씨의 진행은 참 좋았습니다) 다만 행사의 의의는 그 뿐이었던것 같습니다. 다음번에는 기자회견이든 국민과의 대화든 좀 더 영양가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행사가 준비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 황교안의 청년간담회와 단식에 대해서]

그 몇 시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또한 [청년 취향을 저격하겠다] 라고 하면서 청년정책·비전 발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무려 [평일 오후 2시] 에요..

행사 내용의 부실함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해당 행사에 참석한 모 청년창업자분의 말씀이 핵심을 찔렀습니다. 그는 "청년들 목소리 듣겠다고 개최된 행사인데, [시간대가 오후 2시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하는 청년들 오지말란 이야기]라며, 이런 기본적 디테일 하나 개선 안 됐는데 어떻게 청년 목소리를 듣겠느냐. 아직도 [청년들을 그냥 부르면 오는 여의도 청년이나 금수저, 혹은 백수 청년들만 청년들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 라고요.

황교안 대표는 '“날카로운 말씀 잘 들었다'고 답하고, 행사 끝난 후 취재진과의 백브리핑 없이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냥 흔한 행사라고 생각하고(황 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유독 국회 밖을 돌면서 행사를 많이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려니 했는데...

뜬금없이 황교안 대표가 국정실패에 항의한다면서, [총체적 국정실패 규탄을 위한 단식투쟁] 이라는 이름 하에 단식을 선언합니다.



저는 유력 정치인들이 단식을 하는 행위 자체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단식은 그와 같은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면 목소리를 전달할 수 조차 없는 사회의 약자가 부당한 행위에 맞서서 최후의 수단으로 택하는 일종의 숭고한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엄청난 스피커를 갖고있는(발언 하나하나를 다 기사화시킬 수 있는) 정치인들이 쉽게 단식을 하고 쉽게 포기하는 모습에서 단식 자체가 희화화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뭐 이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했었기 때문에 크게 비판하지 않고 넘어간다 치는데...

이 단식은 굉장히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대의를 떠나서 논리적으로 봤을때, 단식은 어떤 특별한 부정한 행위가 생겨났을때 그걸 막기 위해서 하는것이고, 그것이 일부라도 해결이 되어야 단식을 중단할 수 있는거니까요. 근데 정부가 무슨 특별한 액션을 취한것도 아닌데 갑자기 국정실패에 항의한다고 단식을 하다니, 그럼 단식을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어떻게 중단하려고 하는걸까요...? 국정실패를 규탄하는 단식이라면, 국정이 성공해야 단식을 멈출 수 있는 것인데요...

다행히 이후 후속 기사를 통해 구체적인 단식 중단 조건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그게 [지소미아 재개, 공수처법 및 선거법 개정 철회] 등이라고 하니 이해가 안 되는것은 여전합니다. 지소미아야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미 국회에서 절차를 밟고 있는 법안의 통과 관련해서 청와대가 뭐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시키기라도 해야하는 것인지... 의아한 마음이 여전히 남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단식은 필연적으로 야외에서 진행해야 하는것인데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본격적으로 겨울 추위가 시작되는 시점에 이거 뭐 어쩌려는 것인지, 무슨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진심으로 걱정이 됩니다.

평생 공무원만 해왔고 국회경험이 없는 황교안 대표의 정무적 틀을 깨는 행보에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많은 걱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 또한 과연 황교안 대표 체제로 자유한국당이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룰 수 있을지 (걱정은 아니고) 의구심이 많이 듭니다. 저의 경우 대개 틀리는 경우가 더 많은 정치 예측이지만, 총선 전에 황교안 대표가 결국 물러나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