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대한 경고를 볼 때마다 불쾌감을 포함한 위화감을 느낀다. 분명, 저출산으로 인해 이행될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사회는 국가 경쟁력에 손해를 끼치면 끼쳤지 도움은 전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수십 년 후 미래에 도래할 일이며, 사실상 나의 일이 아니라 국가의 사정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뭐라 떠들든 별로 와닿지 않는게 사실이다. 일부 여성들이 가임기 여성 지도를 보고 '우리가 아이 낳는 기계란 말이냐' 하고 분개하는 마음에 많은 부분에서 동감한다. 임신이라는 현상이 여성에게만 부여된 가능성이기에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지만, 고도화한 체계를 갖춘 현대 국가는 국민이라는 구성체 자체를 오직 생산성이라는 단일한 측면 하에서만 고찰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저출산 프레임은 국가의 공포 마케팅에 가깝다. (그래서 저출산 우려에 대한 반론은 '저출산이어도 괜찮다'고 최면을 거는 것이 아니라 '저출산이 오면, 그래서 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점을 논리적으로 파악하진 못해도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는 한, 저출산에 대해 해법이라고 등장하는 대부분의 정책들은 낭비로 끝날 것이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경제적 부분을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아이를 낳고자 하는 사람에게 경제 논리는 힘없는 것이다. 경제는 여기서 사후적 이유다. 근본적 원인은 '아이를 기르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표준적인 삶의 모델이 더이상 이상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중학생때부터 독신주의자를 자처한 내 눈에도 독신주의자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그 원인의 원인부터가 경제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별 의미는 없는 이야기이다.)

나는 저출산에 대해 별 생각이 없지만, 도대체 저출산 사회를 그리도 공포스럽게 이야기하는 국가가 이러한 삶의 모델을 왜 되세우려고 하지 않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현재 결혼 적령기거나 갓 결혼한 젊은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으면 행복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저출산을 아이를 많이 낳게 해 해결하자는 생각은 독재 시절에나 먹힐 얄팍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출산은 사후적 현상이다. 보통 결혼을 하지 않으면 출산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섹스다. 출산의 뿌리는 결혼이며, 결혼의 뿌리는 섹스인데, 그 결혼과 섹스가 날이 갈수록 난이도 높은 퀘스트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일단 섹스를 해야 속된 말로 정도 붙고 그러다보면 어영부영 같이 살게 되기도 할 텐데 오늘날 선진국이라는 곳들에서는, 그리고 특히 국민의 교육 수준과 교육열이 높고 그 절대다수가 프티 부르주아를 지향하는 한국에서는 결혼이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나, 하지 않고자 하는 사람에게나 중압감으로 그들을 짓누르는 인생의 최대 과제로 기능한다. 유교적인 성에 대한 터부나 가정에 대한 엄격한 원칙 역시 그 중압감에 한몫하겠지만, 자본주의 선진 사회에서 전체적으로 이 현상이 부각되는 이유는 미디어 때문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결혼을 돌이킬 수 없고 심사숙고해야 하며 준비가 제대로 되기 전에 섣불리 나서선 안 될 어떤 신성한 것으로 만드는 만큼 그런 모험에 굳이 몸을 던질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반대급부로 늘어나는 것이다. 결혼은 제도적인 어떤 것이니 그럴수 있다쳐도, 섹스는 그렇게 난이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난이도가 있는 것처럼 비춰져서도 안되지 않을까.

물론 오늘날 젊은 층의 성경험 비율은 부모 세대나 선배 세대에 비해 비교도 안될만큼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모델의 문제다. 성경험이 떨어지고 그것이 지금보다도 터부시되던 과거 사회였지만 여자들에겐 '몸을 허락한 상대가 내 배필'이라는 관념이 작용했고(물론 그 관념의 해악 또한 컸지만) 남자들 역시 당장의 성 경험은 부족하더라도 짝을 찾는 투쟁과 결혼에 대한 부담감은 지금보다 훨씬 덜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날과 정반대의 양상이다. 상대적으로 결혼이 확정적인 미래였기에 섹스에 대한 부담 역시 낮았던 것이다.

미디어의 문제는 전혀 섹스를 걱정할 일이 없는, 예쁘고 잘생겼고 잘나가는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는 데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적인 수익창출의 의미에서는 합리적인 일이지만, 결혼과 섹스에 대한 전통적인 구조를 망가뜨리는 데 분명히 일조한다. 더욱이 오늘날엔 미디어의 범위도 더 커져 세상천지 어느 곳에나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난 사람들이 넘쳐나 보이게 만듦으로서 이를 더욱 심화시킨다. 미디어는 잘난 사람들, 잘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섹스해(성공해 쟁취해)"라고 가르치는 동시에 못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지친 사람들에게는 "섹스하지 않아도 괜찮아(다른 재밌는게 많잖아)"라고 토닥인다. 이것을 단순히 미디어의 이중적인 면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경쟁에서 멀어진 이들에게 위안거리를 제공하면서 여전히 경쟁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위안받는 이들의 모습을 경쟁의 원동력으로 삼게 하는 것, 이것은 하나의 구조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점차 경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섹스는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중압감을 가한다.

성경험이 단순히 있다 없다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앞서 예전 사람들이 서방이 생기고 각시가 생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처럼, 성경험이 지속될 것을 상정할 수 있느냐와 성경험에서 사회적 의미 이외의 쾌감을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섹스는 성교라는 생물학적 행위가 아니라 결국 '관계'를 뜻한다. 섹스에 대한 갈망은 성매매로 해결할 수 없다. 성매매의 본질은 즉발적인 쾌락과 상대를 (잠시나마) 소유하고 있다는 환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체로 성매매에 더 빠진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국가는 미디어를 이겨먹으려 들어서는 안된다.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이 어떤 관념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그것을 제어하는 것은 국가의 일이 아니다. 국가가 할 수 있는 건 시민 형성 단계, 즉 교육 과정에 있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익숙하게 만들고 진로 탐색을 유도하는 만큼 왜 섹스는 그렇게 자연스러워지면 안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중3쯤 되는 아이들에게 대학교의 어떤 교양수업 같이 자연스레 짝지어 데이트를 시키는 건 왜 생각해 볼 수 없는 것인가? 까짓거 콘돔은 왜 못주는가? 국가가 인구 생산성에 대해 진심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느끼고 있다면 말이다.

국가는, 교육자들은 섹스를 허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는 섹스를 해야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