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09년도 군번이고, 현재는 예비역 7년차로서 더 이상 군복을 입고 참여할 훈련은 없습니다. 좀 있으면 예비역에서도 퇴역하여 민방위의 신분이 될 테니 이제 병무청과는 더 이상 남아있는 볼일이 없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입니다.

오늘 유머게시판에서 ‘TWICE쯔위’님이 게시한 ‘요즘 예비군 훈련..’이라는 제목의 글을 봤습니다. (아래 링크 참조) 국방부가 예비역들에게 2년 가까이 인권을 박탈시키고 개같이 굴린 것도 모자라 또 뭔 짓을 하려는 건가 싶어 클릭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동원 예비역들을 전방부대로 이동시키는 훈련을 실시하겠다 해놓고는, PX도 이용 못하게 하면서 생필품까지 알아서 셀프로 준비해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을 일당 고작 17,000원 주고 부리면서 말이죠.

https://pgr21.co.kr/pb/pb.php?id=humor&no=327833

글을 읽고 스크롤을 내리며, 몇몇 댓글과 대댓글을 읽고 기분이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습니다. 2년간 인권을 박탈당하고 병영부조리를 겪으며 개같이 굴려진 것도 모자라, 수년간 푼돈 받으며 정기적으로 강제동원 당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니, ‘훈련 더 빡세지고 길어져야 돼! 난 이제 상관 없음!’같은 댓글에는 문득 화가 치밀더군요. 전역한지 꽤 됐는데도 아직도 군대꿈을 꾸는 것도 그렇고... 제가 군대에 PTSD가 남아있나 봅니다. 물론 곧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보니, 농담으로 그렇게 적은 것 일뿐 굳이 너무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들었습니다. 그동안 예비역들의 그런 반응은, 일종의 악의없는 짓궂은 놀이였으니까요.

의외로 동 글에 달린 댓글을 다신 분들 중에는, 여전히 개판인 예비군 대우에 문제의식을 갖고 성토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이런 반응들이 조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예전, 불과 3년전만 해도 그런 반응이 극히 적었거든요.

다음은 두 글은 몇 년 전, 각각 09년도와 15년도에  PGR21 유머게시판에 올라왔던 글입니다.

https://pgr21.co.kr/pb/pb.php?id=humor&no=65647&page=11&divpage=57&ss=on&sc=on&keyword=예비군
https://pgr21.co.kr/pb/pb.php?id=humor&no=233986&page=5&divpage=57&ss=on&sc=on&keyword=예비군

첫 번째 글을 보면 한 때 PGR에 유행했던 같은 댓글로 (2) (3) (4) (5) 다는 풍경이 보이네요. 두 번째 글은 불과 3년전 작성되었던 글입니다. 9년 전이든 3년 전이든 훈련 빡세진다는 글에 다년차 예비군들과 민방위 분들이 짓궂게 반응하는 게 보입니다. 물론 이 글들의 반응도 악의는 없없어 보입니다. 다만 예비군 인권 처우 개선에는 그닥 보탬이 되지는 않겠지만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여메웜을 위시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가끔은 도를 넘는) 활동에, 남성들도 조금씩 그동안 본인들이 겪거나 겪고 있음에도 그동안 별 신경쓰지 않던 남성 인권, 특히 군대와 예비군 문제에 대해 숙고하고 인식을 바꿔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사람들의 반응이 바뀌면서 점점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예비군 훈련은 필요성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요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 남북간 긴장이 해빙무드에 접어들었지만, 한국전쟁은 여전히 휴전 상태고, 남북한은 여전히 대치중이며, 언제 어디서 화약고가 터져 덜컥 전쟁이 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왕 훈련을 해야 한다면, 예비군 본연의 목적인 ‘유사시 적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방위’를 위해, 정말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은 지극히 동의합니다. 국방부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해가 지날수록 예비군 훈련이 강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역들의 경우 얼마전 올라온 글을 통해 군복무 단축, 월급 인상, 휴대전화 사용, 영창 폐지 등이 논의되고 있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쌍팔년도 갈 것 없이, 제가 겪었던 09년도 군대와 비교해봐도, 이제 정말 군인들의 기본권이 나아지고 있는 게 보입니다. 여전히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정부 이후 군에서도 조금씩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몇몇 부분에서 좀 실망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대통령을 잘 찍었구나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네요.


군인 및 예비군에 대한 조롱은 남성혐오자들이 배설하는 그것들 만으로도 충분히 넘치는 것 같습니다. 여성들은 이번 홍대 몰카 공정수사 촉구 시위처럼 말도 안되는 떼까지 써가면서 자기들 지분을 챙겨가고 있는 데, 대부분 현역 생활과 예비군 생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난 상관없음’의 생각으로 농담을 하기 보다는, 후배 군인들과, 다른 남성들의 처우 개선을 바라는 따듯한 덧글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