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이창동 영화는 초록물고기 빼놓고는 모두 극장에서 봤군요. 최근 몇년간은 극장에 가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버닝에 관한 글들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걸 보니 몸이 근질거려서 결국 봤습니다.
그간의 이창동 영화는 예술영화스럽기는 해도 의도적으로 모호한 상징을 던져놓기보단 정면으로 문제의식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해석들도 많이 나오구요. 이곳에 올라온 글들과 검색으로 눈에 띈 몇 편의 리뷰들을 읽어보니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흥미로운 지점들도 많고..머 그렇습니다.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는 예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었습니다. 웹에 통째로 올려져 있더군요. 생각보다 많이 원작의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귤 판토마임, 아프리카로의 여행, 스포츠카, 개츠비, 그리고 중요한 몇몇 대사들. 제작투자 명단 중에 NHK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하루키 소설을 국제적인 감독들에게 영화화를 부탁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네요.
영화는 하루키의 흔적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라진 고양이를 찾는다든가, 알 수 없는 전화가 걸려온다든가, 우물에 갇혀 하루에 한번 햇볕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태엽감는 새'에서 따온 걸로도 보이고요.
'헛간을 태우다'는 윌리엄 포크너의 'Barn Burning'의 제목만을 따와서 쓴 소설인 것 같습니다. 내용은 전혀 상관이 없고 심지어 하루키는 읽어보지도 않았다는데... 원래 초판에서는 주인공이 공항에서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읽는 장면이 있지만 이후 포크너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게 되자 전집에 수록할 때는 그냥 주간지를 읽는 것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창동은 다시 포크너 소설을 등장시키죠.
영화계에 뛰어들기 전 소설가 이창동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소지'인데 이건 종이를 태우다라는 뜻이죠. 헛간을 태우다와 묘하게 연결됩니다.
소설가 출신이다보니 이창동은 자신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로만 영화를 찍을 것 같은데 이전에도 이청준의 '벌레이야기'를 원작으로 '밀양'을 찍기도 했었죠. 유괴사건을 모티브로 쓰여진 이 소설은 5월 광주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관한 비유로도 읽혀지는데요. 저는 역량있는 감독이 다른 작가의 원작을 가져와 자신의 시각으로 녹여낸 작품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런 경우에 걸작이 탄생할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연극 '이'를 원작으로 한 이준익의 '왕의 남자', 연극 '날 보러 와요'를 원작으로 한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만화 '올드보이'를 원작으로 한 박찬욱의 '올드보이' 등등. 개인적으로 이창동 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게 '밀양'이기도 하구요.
그럼 하루키의 원작을 가져온 이 영화는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 대답은 글쎄올시다..입니다. 잘 모르겠어요. 여러가지 은유와 알레고리.. 이해할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은... 은근한 재미도 있고 울림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데 이 영화가 다른 이창동 영화와 비교했을때 뛰어난 편인가..라는 질문에는 아무래도 아니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홍상수 영화같기도 하고 김기덕 영화 같기도 하다고 느꼈어요. 한국식 아트무비를 찍는 감독들은 모두 관객들에게 불편함과 낯설음을 주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창동의 그것들과 김기덕, 홍상수의 그것들은 다른 종류의 것들이었거든요. 이번 영화는 약간씩 그들의 스타일을 닮아 있는 부분이 보였습니다.
전종서의 연기 중에서 관념적인 대사를 읊는 부분들이 특히나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찌됐건 이창동 영화 안에서 배우의 연기가 튀어보인다면 그건 그거대로 감독이 의도한 거라 봅니다. 연기지도에 있어서만큼은 이창동만한 감독이 없다고 봐요. 마음에 안드는 연기가 나오면 백번천번이라도 다시 찍을 정도로 현장에서는 잔인(?)하기로 소문이 나있다고 하죠.
'밀양'에서 지방 연극무대의 아마추어에 가까운 배우들을 데려다가 그렇게 영화에 써먹는 솜씨를 보면 감탄이 나옵니다.
밀양에서 약사로 나오던 여배우와 버닝에서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최승호 엠비씨 사장은 이창동의 경북대 연극반 후배들이라고 합니다.
영화가 은유와 알레고리를 적극적으로 써먹으면서도 비틀고 또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한 부분도 있다 보니 여러가지 해석이 나옵니다. 원래 이런 해석에는 정답이 없다보니 이래저래 끼워맞추는 것 자체로 재미가 있죠.
저는 좀 정치적으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종수의 집이 북한 선전방송이 들리는 곳이라는 게 증거라고 봐요. 감독은 분명 정치적인 의미를 담았을 겁니다. 뉴스 속 트럼프가 별안간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요.
해미는 참 비현실적인 캐릭터에요. 메타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를 정도로 무식하지만 취미로 판토마임을 배우고 있고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운운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아프리카 여행을 실행할 정도로 허영(?)에 물들어 있기도 하죠.
종수의 해미에 대한 태도도 범상치 않습니다. 어릴 적에는 못생겼다고 대놓고 이야기했고, 당돌하게 다가온 그녀를 욕망하면서도 돈많고 여유로운 벤이 그녀를 소유하는 것처럼 보여도 딱히 쟁취하려는 노력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벤에게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요.
이렇게 비현실적이다보니 그냥 하나의 알레고리인것처럼 보여요. 못났다고 비하했지만 버릴 수 없는 조국, 꿈과 더 큰 가치를 찾아 성장하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나라. 그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종수의 아버지도 이런 이미지의 투영입니다. 폭력적이고 똥고집만 센 아버지. 종수는 사고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역시나 끝까지 미워할수는 없어서 탄원서까지 받으러 돌아다닙니다.
어릴때 헤어졌는데 지금 와서 돈까지 바라는 어머니는? 어쩐지 북한의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흐흐흐
벤은 미국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요. 배우가 스티븐 연이라서 그래 보이고도 하고요. 풍요롭고 친절하지만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죠. 동경하게 되지만 불길하고 음험합니다.
이렇게 되면 영화는 우리나라를 침탈하는 미국의 횡포에 무기력하게 당하다가 별안간 각성하여 복수하는 애국소년의 이야기로 갑자기 변해버리게 되지요. 어릴 적 똘이장군을 너무 열심히 보았나 봅니다.
지루한 영화일 수록 극장에 가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집에서 보다보면 중간에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어제 낮시간 극장에 한 예닐곱명 앉아 있었는데 그 중에 두명은 보다가 나가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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