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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4/20 01:08:52
Name Ganelon
Subject [일반] 이번 여행을 하며 지나친 장소들 [약 데이터 주의] (수정됨)
작년 봄 어느 날 8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겠다 결심했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학 시절 꿈꾸곤 했던 장기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에 사직서를 던진 후 베이징행 편도 티켓을 끊었고, 별다른 계획 없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몸의 이상으로 귀국 후, 여행 중 구체적으로 정리한 것들이 없어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지난 여행의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제가 벌써 15년간 드나든 이 곳 pgr에 몇 순간이나마 공유하고 싶어 글을 남겨 봅니다.
평소 사진에 관심이 없어 퀄리티가 떨어지는 점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1. 몽골(사진 : 고비 사막, 테를지 국립공원)

작년, 몽골이 국내 한 티비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로, 엄청나게 많은 한국인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투어를 하던 어느 날의 게르 캠프 공중화장실은, 한국인들이 20명 이상 줄 서 있어서 이 곳이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인지 고비 한복판인지 헷갈릴 정도로요. 그런데도 이곳은 너무나 매력적인 곳입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높고 푸르른 하늘, 드넓은 초원과 그 위를 거니는 동물들, 황무지와 계곡. 어릴 적 읽은 김용의 '사조영웅전' 에서 제가 상상만 했던 바로 그 풍경들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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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 열차, 바이칼호)

몽골 여행을 끝낸 후, 베이징-울란바토르-이르쿠츠크-모스크바를 거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트랜스 몽골리안 노선을 탔습니다.
이 열차는 전 세계 여행자의 로망이지만, 실제로는 참으로 지루한 공간입니다.
열차를 타는 5~7일 간 인터넷 등은 거의 불가능하며, 언어적인 문제로 사람들과 직접적인 소통도 힘들죠. 영화에서나 보던 시베리아 벌판의 자작나무 숲도 몇 시간 이후로는 감흥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러시아인양 주야장천 홍차를 마시며, 때로는 그나마 말 통하는 외국인들과의 포커 내기도 하며, 비좁은 2층 침대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를 읽던 순간들은 분명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중간에 멈춰 며칠 머무른 이르쿠츠크, 알혼섬의 바이칼호는 자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죠.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 중얼거리며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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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지아(주타 계곡)

그루지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죠.
조지아 정교 등의 많은 유적지들도 볼 가치가 충분하지만, 이 수난 많던 땅의 카프카스 산맥에는 스위스 못지않은 멋진 풍광들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스위스의 풍경에서 리조트들을 지워내면 조지아가 된다고' 들었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카즈베기와 우쉬굴리의 산과 계곡들을 보며 백퍼센트 이해하게 되었죠.
유명 관광 국가들과는 다르게 입장료조차 낼 필요 없는 이 멋진 산들을 트래킹하고 내려와, 쌀쌀한 날씨에 벌벌 떨며 저렴한 가격의 와인과 포도 증류주 '차차'를 마시던 밤들이 요즘도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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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터키(이스탄불, 에페소스)

예상치 못하게 한 달을 터키에 머물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며, 다들 방문하는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 등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저를 이곳에 긴 시간 붙잡은 것은 터키 현지인들이었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들에서 마주친 터키인들의 친절함 덕에 잘들 머물지 않는 앙카라에도 일주일이나 지내며 터키 대학생들과 '라크' 를 마시곤 했고, 어떤 도시에서는 한류에 관심 많은 터키인과 친해져 가이드 받을 기회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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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스카이섬)

사실 술 마시러 간 곳입니다. 위스키 덕후로서 제대로 된 술이 너무 고파져 충동적으로 에든버러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참여하게 된 스카이 섬 투어가 무척이나 기억에 남았어요. 여름에 갔으면 물론 날씨도 좋고 더 여행하기 좋았겠지만, 늦가을의 우중충하고 부슬비 내리던 그 우울한 스카이섬과 하이랜드의 모습 이야말로 제가 바라던 스코틀랜드의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차를 빌려 다시 여행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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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쿠바(아바나 말레콘, 트리니다드)

가기 전 들은 정보로는 호불호가 많이 갈려서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터넷도 한 번 연결하기 힘든 이 나라에서, 아바나와 트리니다드에 늘어져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나날들이 너무나 좋았어요.
춥던 유럽을 떠나 오랜만에 본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승마, 해변, 재즈클럽, 친절한 쿠바 사람들, 헤밍웨이도 마시던 모히또(특별히 맛있진 않았지만)등 저에게는 좋은 기억만 남아 있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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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로코 (페스, 사하라, 셰프샤우엔)

페스, 마라케시, 카사블랑카, 탕헤르, 셰프샤우엔 등 모로코도 정말 매력적인 여행지죠.
다만 대도시에서 마주치게 되는 각종 호객행위와 사기 등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사하라만은 불호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여행을 다니며 세계 각지의 사막을 가보게 되었는데(인도, UAE, 이집트, 요르단, 칠레 등), 한 곳만 고르라면 바로 사하라인 것 같습니다. 이 곳이 우리가 책에서 읽고, 영화에서 보고, 상상하던 '바로 그 사막' 이거든요.
사구, 낙타, 뜨거운 태양과 멋진 일몰, 쏟아지는 별, 샌드보딩까지.
마라케시 등에서 사막이 있는 메르주가까지 가는 길이 멀미 날 정도로 고역이긴 하지만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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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르헨티나(피츠로이, 모레노 빙하)

파타고니아 여행 시에는 그 유명한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르헨티나 엘 찰턴에서 피츠로이를 오를 때의 감흥이 더 크더군요. 이곳에 가시는 분들은 꼭 봉우리 바로 아래의 캠핌장에서 1박 하시길 추천해드립니다.  캠핑장에서 높이 솟아 보이는 피츠로이를 바라보며 멍 하니 누워 있던 순간, 일출을 보러 새벽같이 올라가서 기다리다 태양빛을 받아 '불타는 고구마' 로 변하는 피츠로이를 보는 순간의 벅차오르는 감동이란!
모레노 빙하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빙하이며, 많이들 가는 곳이라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만, 꼭 가볼 만 한 가치가 있는 장소인 것 같아요. 멍하니 저 푸른 빙하를 바라보는 것도 좋았고, 빙하 트래킹 중 빙하를 넣은 위스크 온더락 한 잔은 세계 어느 바를 가도 다시 마실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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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많던 여행 중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읽던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에, 공감 가는 문장이 있어 적어 둔 적 있습니다.
'언제 떠나도 오늘보다 쉽지는 않았을 거란 뜻이야. 어쩜 더 어려울 거야. 결코 쉽진 않을 걸' 이런 주인공의 대사였죠.

30대 중반이 다 되어 멀쩡히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대책 없는 긴 여행을 떠나면서 과연 옳은 선택인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계속 같은 고민 속에서 또 다른 후회를 하고 있을 뿐이었겠죠. 한 줌 가진것 때문에 미련이 더 생기기 전에 한 번 쉬어갈 결심을 한 것 뿐이고, 당장 돈 몇 푼과 남들 시선을 신경쓰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면 더 불행해질 것이다, 이건 이번 여행에 대한 변명이자 다짐입니다.  
행복해 지고 싶네요. 모두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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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그피
18/04/20 01: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몇달 전에 장기여행 갔다 왔는데 이글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고 다시떠나고 싶어요. 저도 횡단열차 6박7일 타고 죽는줄 알았습니다. 정말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는 곳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드리드에서 쿠바로 넘어갔는데 진짜 쿠바는 글쓴분과 달리 저는 정말.... 다른나라는 모르겠는데 혹시라도 쿠바를 다시간다면(절대 그럴일이 없지만) 계획을 꼭 짜서가야지 재밌게 놀수있을것 같아요. 피츠로이는 개고생해서 올라갔건만 눈보라속에서 아무것도 못해서 아쉬웠고 왜 중간에 사람들이 텐트치는줄 올라갈땐 몰랐지만 내려올때 알게되었지요 흐흐흐 저도 피츠로이 가실분이 계신다면 꼭 텐트치고 며칠정도는 기다리시다가 날씨 좋다면 올라가시는것 추천드립니다. 콜라를 좋아서 모레노 빙하에다가 콜라 한잔 때렸던 기억이 나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많은 곳이 겹쳐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져요. 여행사진 보니 아 현실이여
18/04/20 01:35
수정 아이콘
횡단열차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 딱 맞죠. 혹시 누가 타신다면 친구 한명이라도 데려가시길 추천하고 싶습니다.
쿠바는 진짜 호불호 갈리던데 다행히 저는 호였네요. 크크. 음악과 술을 마음껏 즐겨서 그랬던 것 같아요.
파타코니아에서는 제 날씨운이 극상이어서 다행이었고..정말 많은 곳들 겹치는 것 같네요. 저도 현실로 돌아오니 고민이 많아지고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습니다.
아마그피
18/04/20 01:45
수정 아이콘
글쓴이분도 2등석 타신거 같네요. 저도 다행히 동행 1명이 있어서 2등석에 있었는데 그나마 덜 심심하더라구요. 물론 거의 자기만 했지요
횡단열차는 약간 로망같은것도 있었는데 젊을때 타길 정말 잘한것 같아요. 이제 미련도 없고 돈 준다고 해도 안탈거에요 크크
18/04/20 01:23
수정 아이콘
멋진 사진과 여행후기 잘 봤습니다. 저도 퇴사하고 산티아고 다녀왔었는데, 정리해서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8/04/20 01:3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 스스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허접한 글 남겨봤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여행 후기 남겨주세요.
18/04/20 01:52
수정 아이콘
용기가 부럽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Jon Snow
18/04/20 05:15
수정 아이콘
멋지네요
살려야한다
18/04/20 07:42
수정 아이콘
아 좋습니다. 부러워요. 흐흐
4막1장
18/04/20 08:37
수정 아이콘
출근중에 봤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지네요
콩탕망탕
18/04/20 08:40
수정 아이콘
아.. 이런 먼 길을 떠날 수 있는 용기.. 대단하십니다.
수미산
18/04/20 08:51
수정 아이콘
아 좋아보여요. 가진게 많으면 못떠납니다
김제피
18/04/20 09:04
수정 아이콘
(수정됨) 대단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PGR에 가끔 여행 후기가 올라오는데 읽고 있으면 집에서 아부지께서 자주 보시던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생각나네요.

저도 직접 경험해 볼 겁니다. 꼭!!!
18/04/20 17:10
수정 아이콘
저도 어릴 적 걸어서 세계속으로 보며 꿈을 키웠지요. 꼭 도전 해보세요!
완전연소
18/04/20 09:41
수정 아이콘
사진 잘 봤습니다. 아침부터 힐링이 되네요. 흐흐
피츠로이는 날씨가 안 좋은 날이 많아서 저 모습을 보기 힘든데 정말 운이 좋으셨네요.
저는 엘깔텐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결국 저 장면은 못 봤습니다 ㅠㅠ
18/04/20 17:09
수정 아이콘
저 내려가고 다음 날부터 비가 오더라구요. 여행 다니다보면 날씨 운이 진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재즈드러머
18/04/20 09:58
수정 아이콘
아 떠나고싶다!
벨라도타
18/04/20 10:00
수정 아이콘
부럽습니다.. 잘봤어요
다이어트
18/04/20 10:07
수정 아이콘
와 정말 부럽네요 ㅠ
꿈트리
18/04/20 12:02
수정 아이콘
역시 여행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가는게 맞네요. 나중에 꼭 잘 했다는 생각이 드실 것 같네요.
오마이걸효정
18/04/20 12:11
수정 아이콘
저도 꿈이 세계일주 인데 아직 1/4정도 밖에 실행하지 못해서 가본곳도 있고 못 가본곳도 있네요.
사진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 할수 있어서 기분이 좋네요.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18/04/20 17:09
수정 아이콘
대리만족이 아니라 꼭 가보게 되실 겁니다. 세계일주를 생각했던 분들은 결국 다 하게 되더라구요.
응원 감사합니다.
Ronaldo9
18/04/20 12:42
수정 아이콘
사하라에서 찍은 별 사진인가요?
엄청 멋지네요.
18/04/20 17:08
수정 아이콘
(수정됨) 네 사하라입니다. 사실 저 사진은 전문가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크크
18/04/20 18:3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앰버의 왕이시니 그림자를 걸어 여행하셨더라면 비행기 삯을 지불할 필요 없으셨을 텐데.... 크크.
아무튼 정말 부럽습니다. 저는 이제 아내에 아이까지 딸린지라 충동적인 여행은 못 할 것 같거든요.
18/04/20 21:45
수정 아이콘
가끔 남들 안볼 때 그림자도 걸어서 다녔습니다? 크크
저는 가정을 가지신 분들이 더 용기있는 것 같고 부러워요. 또 전 가족이 같이 어린 아이까지 데리고 세계일주 하시는 분들도 봤는데 정말 대단해 보이더라구요.
18/04/20 23:06
수정 아이콘
사진들이 정말 아름답네요 덕분에 눈호강 했습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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